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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578화 (578/628)

제578화

망망대해.

시선을 어디에 두어도 보이는 것이라고는 짙푸른 색의 바닷물과 하늘과 맞닿는 수평선뿐인 바다 한복판에서 배 한 척이 항해하고 있었다.

커다란 돛이 바람을 한껏 머금어 속도를 낸다. 뱃머리에는 새하얀 포말이 튀며 부서졌고 후미로는 기다란 물살이 배가 지나갔다는 사실을 알렸다.

뱃머리에 선장이 나침반을 살피며 연신 앞쪽을 살폈다. 그의 뒤로 사람 한 명이 다가섰다.

“뭐가 보입니까?”

“아, 한스 씨!”

선장이 나침반에서 눈을 떼고 반색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보통 뱃사람은 거칠기 마련이다. 자신이 방해를 받았다 생각하면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는 이도 굉장히 많다.

그러나 지금 선장의 태도는 배 위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 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온화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목숨 걸고 바다로 나가 거친 바닷바람과 거센 파도에 맞서 싸우는 괄괄한 뱃사람이라지만 상대가 너무도 대단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나 나오던, 드래곤을 잡은 드래곤 슬레이어. 그 이야기를 현실 속에 구현한 사람이 바로 지금 다가온 사람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광범위하게 침략 행위를 하는 밸리드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자이기도 하다.

물의 신인 만큼 뱃사람들이 혹 밸르를 신앙하지 않을까 여길 수도 있지만, 밸리드의 악명이 너무도 높아 뱃사람들도 밸르를 신앙하는 사람은 극소수의 밸리드 신도 말고는 없었다.

오히려 뱃사람들을 유혹해 바다에 빠뜨려 죽이는 악신으로서 미움받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니 선장의 태도는 공손할 수밖에 없었다.

혹 한스의 태도가 불손했다면 반감이 일어날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도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한스는 선장에게 깍듯한 태도를 유지했다.

“슬슬 목적지가 보일 때가 되어서 한 번 살펴보는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보이진 않는군요.”

“선장님과 선원분들의 노고가 참 크십니다.”

“뭘요. 세계를 위한 일 아닙니까. 오히려 이런 일에 참가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선장은 호탕하게 웃었다.

“게다가 여러분도 굉장한 도움을 주지 않으셨습니까. 솔직히 여러분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도착하진 못했을 겁니다.”

한스 일행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항해를 도왔다. 덕분에 그들은 선상 생활을 오래 한 선장조차 경악할 정도로 빠르게 항해를 할 수 있었다.

한스는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을 보았다. 그의 눈에 마력이 모였다. 선장도 제법 눈이 좋은 편이었지만 마력을 사용하는 한스에 비할 수는 없었다.

“혹시 저걸까요?”

“뭐가 보이십니까?”

“땅이 보입니다. 섬인지 육지인지는 아직 구분이 안 갑니다만….”

“그럼 섬이 맞을 겁니다. 이 근방에 있는 뭍이라고는 그 섬뿐이니까요.”

“그렇군요.”

선장이 목적지에 접근했다는 소식을 선원들에게 알리기 위해 뱃머리를 떠났다.

한스는 깊은 눈으로 섬을 쳐다봤다.

* * *

얼마 뒤, 일반인도 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섬에 가까워졌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배가 닻을 내렸다. 배에서 작은 조각배가 내려졌다.

“태워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선장님.”

“정말 여기서 내려드려도 되겠습니까?”

조금은 걱정 어린 어투에 한스는 미소를 지었다.

“섬이 보인다면 저희만으로도 충분히 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섬에 너무 가까이 간다면 여러분이 위험할 수 있어요. 말씀드린 대로 저희가 떠나면 바로 배를 돌려 돌아가셔야 합니다. 재수 없으면 여러분도 저 무도한 밸리드 놈들에게 들킬 수 있으니까요.”

“그럼 용사님네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용사님네도 돌아가긴 하셔야 할 거 아닙니까.”

용사님네. 그 말을 듣고 한스는 감회가 새로웠다.

분수도 모르고 지크에게 기어올랐다가 말 그대로 개처럼 처맞고 백작가에서 끌려 나갔을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이런 호칭을 들을 거라 상상이나 했는가.

하지만 한스는 철모르는 아이의 것이나 다름없었던 꿈을 멋지게 현실로 만들었다.

그게 누구의 덕분인지는 말할 것도 없다. 때문에 한스는 더더욱 이 임무에 매진해야 했다.

제자가 아닌 한 명의 동등한 동료로서 지크가 그에게 부탁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용사님의 실력이 뛰어난 건 익히 들었습니다만, 바다는 굉장히 위험합니다. 게다가 이곳은 찾기도 무척 힘든 곳입니다. 육지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어 이곳을 아는 뱃사람도 얼마 없죠. 게다가 근처 해류도 강하고 날씨도 변덕스럽습니다. 아무리 용사님의 능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자칫하다가는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자세한 건 말씀드리지 못합니다만, 저희도 다 방법이 있습니다.”

선장은 못내 걱정을 떨쳐내지 못 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한스는 조각배에 올라탔다. 한스 일행이 타고 온 배는 크게 선회해 그들이 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한스의 시선이 조각배에 먼저 타 있던 이들을 살폈다.

스녹, 엘레나 그리고 라라. 친근하기 이를 데 없는 동료들이다.

그들도 한스를 보고 있었다. 명령을 기다리는 것이다. 지금 이 파티의 리더는 지크가 아닌 한스였다.

“갑시다.”

한스는 뒤쪽으로 손바닥을 펴 마력을 내뿜었다.

퍼엉!

거센 파공음이 울리며 배가 앞으로 쭈욱 미끄러져 나갔다. 섬이 순식간에 그들에게 다가왔다.

섬은 무척이나 황폐했다. 생명의 흔적이라고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저 검은 돌과 흙만이 황량하게 노출되어 있을 뿐.

섬 중앙에 있는 화산에서 연신 올라오는 연기가 이 섬이 왜 황폐한지 알려주고 있었다.

짙은 유황 냄새가 섬에 도착하기 전부터 진동할 정도였다.

상륙하기에 적합한 곳도 적어 보였다. 그들의 앞에 나타난 해안은 커다란 검은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다른 이들이라면 상륙하기에 적절한 다른 해안을 찾아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스녹이 마법 상자에서 미스릴 덩어리들을 꺼냈다.

“노웸.”

쿠!

미스릴들이 제멋대로 공중에 떠올랐다. 그러더니 배 아래 쪽으로 이동했다.

둥실!

미스릴에 의해 배가 떠올랐다. 배는 계속 상승해, 절벽 위에 내려앉았다.

일행은 섬에 발을 디뎠다. 마법 상자로 배를 회수한 한스는 지도를 꺼냈다.

상당히 대충 그려져 있는 지도였지만 지형의 특색은 확실히 표시되어 있어 알아보기에 어렵진 않았다.

한스는 지도와 섬의 지형을 대조했다.

“가죠.”

지도를 집어넣으며 한스가 발을 내디뎠다.

“황폐하다고 이야기는 들었지만 예상 이상이네. 풀 조금이랑 바닷새밖에 없어.”

쿠.

스녹이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툭하면 화산이 터진다고 했으니까요.”

라라의 시선이 연기를 내뿜고 있는 화산 꼭대기를 쳐다봤다.

나름 여유를 가진 둘에 비해 엘레나는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괜찮아?”

“연습해야 하니까 말시키지 마.”

말을 건 스녹이 무안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엘레나는 단호하게 그의 걱정을 쳐냈다.

하지만 스녹은 이해했다. 이번 일에서 그녀는 무척이나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저렇게 계속 신경을 쓰는 것도 이해가 됐다. 배를 타고 오면서도 선실에서 계속 저 연습만 하지 않았던가.

스녹은 엘레나를 방해하지 않도록 조금 거리를 뒀다. 하지만 너무 멀어지지도 않았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바로 그녀를 지킬 수 있을 정도의 거리는 유지했다.

“저깁니다.”

앞을 걷던 한스가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라라가 그의 곁에 섰다.

“동굴이네요.”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들어갈 만한 동굴이 일행의 앞에 있었다.

“저 안에 있을 겁니다.”

“적이 많을까요?”

“계획이 수월하게 풀렸다면 얼마 없을 겁니다. 어쩌면 아예 비어 있을 수도 있고요.”

미끼가 미끼이니 고기가 전부 몰렸을 가능성도 높았다.

일행은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아래로 비스듬히 뻗은 동굴은 걷기 무척 불편했다. 그들은 조심조심 동굴 안쪽을 향해 움직였다. 동굴은 상당히 깊었다.

얼마쯤 내려왔을까. 앞에서 움직임이 보였다.

“몬스터.”

한스가 검을 빼 들었다.

“아쉽게도 적이 전부 사라지진 않았나 보네요.”

“상관없습니다. 저 정도 수준의 몬스터야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어요.”

동굴을 정찰하듯 어슬렁거리고 있는 몬스터는 상당히 강한 축에 속하는 녀석이었지만, 한스 일행에게 위협이 될 만한 정도의 놈은 아니었다.

한스는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빠르게 돌파합니다. 지크 님과 약속한 시간까지 여유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미적거릴 정도로 많이 남은 것도 아니니까요.”

“정말로 시간이 맞을까요?”

라라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번 작전은 두 세력의 작전 시간을 정확하게 맞춰야 했다.

상당한 거리를 두고 며칠간의 오차 내로 두 작전이 연달아 시행되어야 하다니. 라라가 보기에는 실패할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은 위험한 작전이었다.

그러나 한스는 간단히 대답했다.

“우리만 잘 맞추면 됩니다. 지크 님이 실패할 리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도 수월하게 풀리고 있고요.”

여전히 대단한 믿음이다. 살짝 질투가 날 정도로.

라라는 미미하게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민 채 고개를 끄덕였다.

“갑니다!”

한스가 검을 들고 뛰어나갔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그를 따라 지면을 박찼다.

갑자기 들린 소란에 몬스터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몬스터가 적을 확인하기도 전에 한스의 검이 그것의 목을 갈랐다.

몬스터의 몸이 넘어가는 걸 일별도 하지 않은 채 한스는 다른 적을 찾았다.

동굴 안에는 상당한 몬스터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제대로 반항도 하지 못하고 한스 일행에게 쓰러졌다.

그렇게 앞을 가로막는 몬스터들을 도륙하며 전진하길 얼마.

한스 일행은 어떤 커다란 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인가.”

한스가 문 앞에 섰다.

누가 봐도 이런 외딴 섬에 있을 만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제대로 찾아왔다는 증거였다.

한스는 문에 손을 대봤다. 그리고 힘을 줬다.

하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역시 잠겨 있어.’

지크의 말대로였다.

* * *

“…섬으로 별동대를 보낸 건가.”

세계수의 본체가 있는 유적과 탑은 마력에 의해 이어져 있다.

그로 인해 브뤼셀 시스템의 제어권을 갖고 있는 울텔은 유적의 문을 누군가 열려 시도하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침입자가 분명했다. 보초로 세워 놓은 몬스터들은 문을 열려고 하는 시도 따위 하지 않는다. 그의 부하들 대부분도 지금 탑에 모여 있는 상황.

적어도 유적의 문을 열려 시도할 놈은 없었다.

남은 건 하나.

지크가 별동대를 보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지금 그 섬의 중요성을 아는 자는 그와 소수의 부하, 그리고 지크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사실 울텔은 지크가 탑이 있는 섬으로 올 거라고 확신하고 있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탑이 있는 섬과 세계수가 있는 섬, 둘 중 하나로 쳐들어올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섬에 대기시켜 놓았던 부하들은 탑 안의 지크를 압박할 목적과 더불어 지크가 혹 섬으로 온다면 그를 막기 위한 목적도 겸하고 있었다.

결국 지크는 탑이 있는 섬을 공격하러 왔고, 울텔은 모든 전력을 탑에 집중했다.

당연히 지금 세계수가 있는 섬은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울텔은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저 지크를 이해할 수 없을 뿐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냐.’

유적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울텔이 갖고 있는 황제의 반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세계수의 마력으로 보호받고 있는 문은 절대 열리지도 뚫리지도 않는다.

다만 지크가 갖고 있다 예상되는, 반지와 비슷한 기능을 갖고 있는 물건이라면 열릴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하지만 지크는 지금 여기 있지 않던가.

지크가 탑으로 온 이상, 섬의 유적은 그 누구도 열지 못한다.

혹 지크는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하지만 브뤼셀 시스템 코어의 정보를 얻게 된 지크가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대체 왜?’

하지만 울텔의 의문은 그리 길지 않았다. 울텔의 눈이 경악으로 치떠졌다.

* * *

쿠구구구궁!

거친 소리와 함께 열리는 문을 보며 한스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어떤 물건을 내려다보았다.

지크가 문을 열 때 필요할 것이라며 건네준 물건.

‘운명을 비트는 열쇠라고 했던가?’

참 거창한 이름이라고 생각하며, 한스는 그 작은 칼 조각을 조심스레 다시 챙겼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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