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4화
“역시 알고 있군.”
“알고 있지.”
“일단 확인차 묻는다만. 네놈도 겪은 건 확실하겠지?”
애매하기 짝이 없는 울텔의 말. 하지만 지크는 어렵지 않게 그가 하고 싶은 말을 알아차렸다.
“조심스럽기 짝이 없군. 회귀를 말하는 거잖아?”
“역시.”
울텔은 잔 두 개를 자신의 앞에 끌어 둔 채 포도주를 따르기 시작했다.
“이해해 주게. 자네도 알지 않나. 회귀라는 개념 자체가 함부로 유출되는 건 좋지 않다는 걸. 그 존재를 알게 된다면 그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손에 넣고 싶어 하는 이들이 우글우글할 걸세.”
“뭘 자긴 아닌 것처럼. 너도 그 우글우글거리는 이들 중 하나면서.”
“그렇긴 하지.”
두 개의 잔에 포도주가 가득 찼다. 울텔은 잔 하나를 들어 지크에게 던졌다.
놀랍게도 안의 포도주가 단 한 방울도 튀어 나가지 않은 채 유리잔은 부드럽게 지크의 앞까지 날아들었다.
탁!
지크가 잔을 낚아챘다. 포도주 표면에 약간의 흔들림이 생겼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포도주의 표면은 다시 잔잔해졌다.
지크는 포도주를 한 모금 마셨다.
“드럽게 좋은 거 마시고 다니네. 사이비 교주 주제에.”
“‘세계에서 가장 세력이 큰’이라는 수식어는 빠뜨리지 말아주게. 그 정도 되니 이런 사치를 부릴 수 있지.”
지크와 울텔은 각자 의자에 앉았다. 둘 모두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눈앞의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적에게서 받은 음식에 의심이 들 만도 하건만, 지크의 움직임엔 망설임이 없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테이크 한 입을 크게 베어 물고 잘근잘근 씹었다.
“이것도 맛있네?”
“요리사가 실력이 좋거든.”
“루벨라가 봤다면 방방 뛰었겠군. 사교도 놈들이 이런 좋은 음식을 먹고 다닌다고 말이야.”
“말하지 말아주게나. 지금의 성녀는 나도 좀 무섭거든. 우리끼리의 비밀일세.”
울텔이 한쪽 눈을 찡긋했다. 물론 지크의 반응은 당연하게도 좋지 않았다.
잠시 방 안에는 두 사람이 음식을 먹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그래.”
먹을 만큼 먹은 듯 울텔이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말 돌릴 것 없이 직접적으로 묻지. 어떻게 회귀의 힘을 얻게 됐지?”
“…….”
지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먹음직스럽게 익은 닭 다리를 입에 집어넣고 있었다.
울텔은 잠시 기다렸다. 그래 봬도 이 만찬을 준비한 주인이 아니던가. 손님이 아무리 예의가 없다 하더라도 식사를 끝마칠 때까지 기다려는 줘야 했다.
그러나 지크의 식사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지크의 앞에 놓인 음식은 모두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지크는 몸을 일으켜 앉아서는 닿지 않는 곳의 음식까지 덜어다 자신의 입으로 처넣었다.
잔잔하던 울텔의 눈에 슬슬 짜증이 들어찼다. 눈꼬리가 파르르 떨리고 입매가 꾹 다물렸다.
그러나 지크는 울텔에게 눈도 주지 않고 계속 음식을 퍼 날랐다.
지크의 포크가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갈빗대로 향할 때였다.
퍼억!
울텔이 있는 곳에서 날아온 나이프가 정확히 지크가 내뻗은 포크의 진로를 가로막았다. 지크가 고개를 들어 울텔을 쳐다봤다.
“그만 먹고 이야기 좀 나누지 않겠나?”
“쯧, 만찬이랍시고 초대했으면서 음식도 못 먹게 하다니. 하여간 이래서 사이비 교주란….”
구시렁거리면서 지크는 나이프를 포크로 날려버린 뒤 기어이 갈빗대를 자신의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 울텔을 향해 이야기를 하란 듯 턱짓했다.
“어떻게 회귀의 힘을 얻게 됐냐고 물었다.”
“어쩌다가.”
울텔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지크는 느긋이 갈빗대를 뜯을 뿐이었다.
울텔은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건 넘어가지. 자네가 한 회귀의 횟수는 몇 번이지?”
“한 번.”
“한 번?”
“그래.”
“대단하군. 고작 한 번의 회귀로 나라는 진실에 다가섰다는 건가. 용사 병신 그놈은 그토록 많은 회귀를 하고도 자신의 힘에 의심 한 번 하지 않았는데.”
“지금 그놈을 나와 비교하는 거야?”
지크의 목소리가 절로 불퉁해졌다. 입맛이 떨어졌는지 반쯤 뜯던 갈빗대를 접시에 던지듯 내려놨다.
“확실히 큰 실례를 했군. 사과하도록 하지.”
울텔의 생각으로도 지크를 그렌과 비교를 하는 건 너무한 짓이었을까. 그는 순순히 사죄의 말을 꺼냈다.
“앞으로는 잘 생각하고 말을 하도록 해. 입맛 떨어질 뻔했잖아.”
“이젠 슬슬 그만 먹을 때도 되지 않았나?”
그러나 지크는 이번에도 울텔의 말을 무시하고 내려놓았던 갈빗대를 다시 뜯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지만, 울텔은 그것을 내리눌렀다.
“대답만 잘해준다면 계속 먹는다고 해도 상관은 없지.”
“걱정 마. 성실하게 대답해줄 테니까.”
어떻게 회귀 능력을 얻게 되었냐는 첫 번째 질문에 태연히 ‘어쩌다가’라고 대답했던 녀석이 말은 잘했다.
“그럼 다음 질문이네. 자네, 어디까지 알고 있나?”
“전부.”
심플한 대답. 그러나 그 내용은 전혀 심플한 것이 아니었다.
“전부라…. 추상적인 대답이군. 오만한 대답이기도 하고. 내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설명을 해줄 수 있겠는가?”
“말 그대로 전부다. 정확히는 회귀에 관한 정보들 말이야. 그리고 그 외에 이것저것.”
“여전히 모르겠군.”
“예를 들면, 너희 밸리드의 시작이 고대 제국의 사이비 종교부터 시작된 것이라든가.”
“…그걸 알 줄은 몰랐는데.”
울텔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일단 내가 아는 우리 밸리드의 역사와 맞춰 볼 테니, 자네가 아는 정보를 말해 보겠나?”
“어려울 것 없지.”
지크는 다 먹은 갈빗대를 옆쪽에 휙 던졌다. 산처럼 쌓인 뼈 무더기에 하나가 더 얹어졌다.
“고대 제국의 말엽, 제국의 혼돈 속에서 꽤 많은 세력들이 일어났다. 거기엔 사이비 종교도 꽤 있었고, 그중 하나가 바로 너희 밸리드였지.”
울텔은 계속 해보라는 듯 지크를 향해 손짓했다.
“당시 제국엔 제국에 대항하는 반란군이 있었는데 그 녀석들은 제국, 정확히 말해서 황제를 쓰러뜨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놈들이었어. 그래서 제국을 쓰러뜨리는 데 도움을 주기만 한다면 그 어떤 세력과도 연대를 하려 했지. 사이비 종교도 예외는 아니었고. 당연히 놈들은 너희 밸리드에게도 손을 뻗었지.”
“…….”
“결국 제국은 멸망했다. 하지만 반란군이라고 성하지는 않았어. 그들도 괴멸했지. 제국도 반란군도 쓰러진 후 남은 건 서로 제국의 땅덩어리를 집어삼키겠다고 날뛰는 포악한 욕심쟁이들뿐.”
“그리고 그중 하나가 우리였단 말인가?”
“그렇지. 다만 너희 세력은 그다지 크지 않아 그리 힘을 쓰진 못했어. 하지만 운 좋게 너희는 제국의 여러 힘 중 하나를 손에 넣을 수 있었지. 지금 너희가 밸르의 기운이라고 일컫는 성법을.”
“밸르를 신앙하는 충실한 신도인 나에게 그 말은 조금 받아들이기 어렵군.”
“아까도 말했지? 네놈에게 밸르에 대한 신앙 따위 손톱만큼도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고. 아니, 네놈뿐만이 아니라 다른 밸리드의 교황들이었던 네놈의 선조들도 그딴 걸 갖고 있진 않았잖냐. 네놈들의 인식은 사람들을 현혹해 이득을 차지하는 사이비 종교에서 단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으니까.”
“아무래도 정말로 우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모양이야.”
“계속 그렇게 말했잖냐. 더 말해줄까? 온갖 세력이 치고받으며 충돌하던 그 시절, 네놈의 선조이자 밸리드의 초대 교주는 성법을 얻은 이후 그 세력 다툼에 끼어드는 대신, 다시 물밑으로 숨어드는 걸 택했다. 그리고 사이비 종교로서 계속 세력을 확장했지. 제국의 힘을 얻은 채 암약하던 너희는 계속해서 힘을 키웠다. 혼란스러운 세계는 사이비가 판치기 아주 좋은 환경이었으니까. 그에 비해 죽은 제국의 시체를 뜯어 먹겠다며 난리를 치던 놈들은 하나하나 세력이 깎여갔고 말이야. 결국 제국의 찬란했던 문명과 강력했던 힘은 대부분이 사라졌고, 조금 남은 것도 세월의 흔적에 완전히 덮여버렸지.”
케이크 한 조각을 잘라 자신의 접시에 담아 온 지크가 케이크 위에 장식되어 있던 딸기를 포크로 콕 찍었다. 그리고 딸기를 매단 채, 포크로 울텔을 가리켰다.
“밸리드 너희를 제외하고 말이야. 내가 괜히 네놈들을 바퀴벌레라고 부르는 게 아냐. 정말로 생명력 하나만큼은 끝내주잖냐.”
“우리를 바퀴벌레라고 부르는 것에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을 줄이야. 그것 참 몰랐군.”
울텔이 빈정거렸다.
“그렇게 사이비, 네 말마따나 ‘세계에서 가장 세력이 큰’ 사이비가 된 너희는 대대로 떵떵거리며 살아왔지. 사람들의 피와 눈물을 쪽쪽 빨아 먹으면서.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거야. 너희에게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정보가 내려오고 있었으니까.”
“무수한 시간을 살게 해주는 절대적인 힘. 회귀 능력.”
울텔이 지크의 말을 가로챘다.
“네 말이 맞다. 우리는 계속해서 회귀 능력을 찾아다녔다. 아무리 대단한 세력을 일궜다고 해도 진짜 왕이나 황제는 아니잖나. 양지로 나가고 싶어도 네 말대로 고작 사이비인 우리에게 사람들은 결코 지배당하고 싶지 않을 거란 말이지. 당연히 반항을 할 거야. 거기에 여러 나라나 카르위먼의 방해까지 생각한다면 더더욱 어려워지지.”
“주제 파악은 그래도 하는군.”
“계획을 짤 때 무척 중요한 요인 중 하나지. 주제 파악. 우리 세력이라면 어찌어찌 나라 하나 정도는 차지할 수 있을 거다. 제국을 칭할 만한 강역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남은 운명은 다른 나라들과 카르위먼의 연합 공격에 멸망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회귀 능력을 찾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렇지?”
“그렇지.”
울텔은 반쯤 남아 있던 포도주를 쭈욱 들이켰다. 그리고 텅 빈 잔에 포도주를 다시 따랐다.
“하지만 그렇게 오랜 세월을 찾아다녔는데도 쉽게 찾지 못했어. 회귀 능력은 제국, 특히 황가의 비장의 수단이었다. 당연히 보안도 무척이나 철저했지.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우리도 그렇게 필사적으로 그 흔적을 찾아다니진 않았어.”
“하지만 넌 달랐지.”
“정말로 모든 걸 알고 있군. 맞다. 난 달랐다. 당연하지 않나? 그 옛날 이 세상을 지배한 고대 제국. 그리고 그 제국을 지탱한 절대적인 힘이라니. 게다가 난 은근히 그 힘의 존재가 신빙성이 높다고 생각했었거든. 온갖 기록을 탐독하며 그것들을 찾아 나섰지. 그때 그것이 튀어 나온 거다!”
“세르피나.”
“그래! 바로 브뤼셀 시스템의 코어가!”
지금껏 차분했던 울텔이 흥분해 소리쳤다.
“그때의 내 기분을 알 수 있겠나? 기적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압도적인 힘이 증명된 거다! 흥분했다! 환희했다! 저거라면 우리의, 나의 욕망을 이루기에 충분하고도 남았지!”
쿵!
울텔이 식탁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흥분을 내리눌렀다.
“그러나 그 힘은 당장 내 것이 아니었어. 빼앗을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압도적인 파괴 행위 때문에 마왕이라 이름 붙은 그것은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바로 제국의 부활 말이야. 게다가 그것에게 위협스러운 존재 또한 등장했다.”
울텔의 시선이 지크를 또렷이 직시했다.
“바로 용사, 지크 브레이브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