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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570화 (570/628)

제570화

루벨라는 지크를 쳐다봤다. 그는 호수 위에 당당히 서서 숨을 한 번 길게 내쉬고 검을 수습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지크를 떠나 배의 앞을 향했다.

공간이 갈라져 있다. 눈앞의 광경은 그렇게밖에 표현을 할 수 없었다.

마치 풍경을 덮은 장막을 딱 중간만 갈라 열어젖힌 것 같다.

갈라진 공간 뒤로 보이는 섬의 일부. 그곳을 제외하면 섬의 모습은 일절 보이지 않았다.

루벨라는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공간이 뒤틀려 있던 것이다.

아마 호수의 거친 물살로 접근을 막고 공간을 뒤틀어 섬의 모습을 숨긴 것이리라.

찢겨진 공간 뒤로 드러난 저 섬이 바로 지크가 말한 밸리드의 총단이 있는 곳일 터.

카르위먼이 그토록 찾아다닌 밸리드의 총단이 눈앞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루벨라의 시선은 섬보다 지크에게 더 오래 머물렀다.

방금 본 그 빛의 일격.

공간을 뒤틀어 섬의 모습을 숨기는 건 보통 힘으로 될 일이 아니다.

게다가 지금 공간의 틈으로 보이는 섬의 일부만 봐도 섬의 크기가 꽤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섬의 규모가 클수록 섬을 숨기기 위한 마력의 양이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

그걸 지크는 거센 물살이 몰아치는 호수의 표면과 함께 갈라버렸다.

루벨라는 지크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도 어느 정도 실력이 있던 지크였지만, 말 그대로 어느 정도다. 그 나이 또래보다 강한, 딱 그 정도의 젊은 실력자.

하지만 지금 지크의 모습은 말 그대로 차원을 달리 하는 실력자의 것이었다. 언제나 루벨라의 곁을 지키던 와이그조차 지금의 지크에겐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지금의 모습이라면 말 그대로 세계 최강이라도 해도 틀린 말이 아니리라.

만난 지 고작 몇 년. 그 사이에 최강의 자리를 움켜쥔 지크를 보며 루벨라는 진심으로 안도했다.

조금(?)은 난폭한 그가, 그래도 삿된 길로 빠지지 않고 어쨌든 정의의 길을 걷고 있음에.

지크의 어처구니없는 무력에 경악한 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드래곤과 싸울 때 지크의 실력을 보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직 익숙해진 건 아니었다.

“이건 숫제 괴물이로군.”

윌위스의 중얼거림에 언제나 그의 말에 반박부터 하고 보던 레오나가 입을 꾹 다문 게 그 증거였다.

하지만 과연 지금껏 쌓은 경험과 실력이 어디로 가진 않는지, 일행은 곧 정신을 차렸다.

배 후미에 대기하고 있던 틸이 후방을 향해 손을 뻗었다.

퍼엉!

반발력으로 인해 배가 앞으로 쭈욱 나갔다.

아무래도 지크보다 마력의 제어 능력은 많이 떨어지는 틸인 터라 배가 많이 요동쳤다. 하지만 그 속도만큼은 지크가 배를 몰던 때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후웅!

아직 지크가 갈라놓은 호수의 표면이 복귀되지 않아 배가 아래로 쑤욱 꺼졌다. 물로 만들어진 계곡을 배가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목표는 지크가 열어젖힌 공간의 틈. 왜 지크가 보면 바로 알 수 있다고 했는지 틸은 공간이 갈라지자 알아챌 수 있었다.

틸의 눈썰미가 공간의 틈이 살짝 좁아지는 걸 눈치챘다. 틈이 계속 열려 있진 않을 모양이다.

하지만 배가 틈 안으로 들어가는 데는 충분했다.

촤아아아아!

아무리 지크의 힘이 대단하다고 해도 가른 호수를 계속 유지할 순 없는 노릇.

순식간에 양옆으로 물이 쏟아져 틈을 메우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물이 배를 강타해 뒤집어엎을 것 같다.

틸은 마력을 방출하는 방향을 조금 위로 올렸다.

퍼엉!

마력의 반동으로 가속하던 배의 후미 부분이 아래로 눌리며 반대로 선미 부분은 들렸다.

밀려드는 호수 물을 가르며 배가 물의 계곡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퍼엉! 퍼엉! 퍼엉!

틸이 연속으로 마력을 분출하며 추진력을 배가했다. 배는 쏟아져 내리는 거친 물살을 거스르며 호수 위로, 위로 향했다. 일행은 배의 난간을 꽉 붙잡고 버텼다.

투웅!

뱃머리가 호수의 표면 위로 솟아올랐다. 기세 그대로 배가 허공에 약간 떴다.

촤아아아악!

탈출한 배 뒤로 갈라진 호수가 완전히 닫혔다. 하얀 포말이 호수 위를 가득 메운다. 그 포말을 부수며 배가 호수 위로 떨어져 내렸다.

“끝…났나요?”

지금껏 힘껏 배 난간을 붙든 채 배의 험악한 주행을 견디던 루벨라가 슬그머니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네.”

역시 난간에 매달리다시피 하던 윌위스도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이구, 허리야! 이젠 몸도 예전 같지 않아서 원….”

그가 허리를 부여잡고 몸을 뒤로 젖혔다. 그의 허리에서 뚜둑 소리가 났다.

“그러니까 너무 골방에만 틀어박혀 있지 말고 운동을 좀 해.”

“그 나이를 먹어도 팔팔한 너희 엘프랑 비교하지 말거라. 인간은 나 정도로 나이가 먹으면 전문적으로 기사 같은 수련을 쌓지 않은 이상 아무리 체력을 단련한다 해도 한계가 있으니.”

그러고 윌위스는 후미에 서 있는 틸에게 시선을 돌렸다.

“수고했네. 그 갈라진 호수 사이에서 배를 조종하기 어려웠을 텐데.”

“감사합니다.”

“배도 상당히 부서졌군. 또 배를 갈아타야겠어.”

그리고 윌위스는 무언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우리 배 물주께서는 어디에 계시나.”

퉁!

윌위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크가 허공에서 배로 떨어져 내렸다.

“수고들 하셨습니다.”

“수고는 틸 군이 가장 많이 했지. 그래도 이런 경험은 한 번으로 족했으면 하네. 늙은 몸에 너무 무리가 가.”

“그래, 지크. 안 그래도 삐걱거리는 늙은 마법사에게는 너무 고된 경험이야.”

“엘프는 언제 늙나? 저것도 빨리 나이를 처먹고 나 같은 경험을 느껴야 하는데 말이야.”

“적어도 너같이 늙지는 않을걸?”

“자자, 다투지 마시고. 저 앞을 보십시오. 저게 우리가 쫓던 목표입니다.”

지크의 말에 루벨라도 레오나도 윌위스도 틸도 앞쪽을 쳐다봤다.

섬이 있었다.

지금껏 마력에 의해 뒤틀린 공간으로 보호받고 있던 그곳은 상당히 컸다.

일행은 뒤쪽으로 고개를 돌려, 결계 안쪽에서 바깥쪽은 어떻게 보이는지 확인했다.

바깥쪽에서는 철저하게 안쪽 섬의 모습이 숨겨져 있었지만, 안쪽에서 바깥쪽을 보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일행은 다시 섬의 모습을 살폈다.

섬은 평평했다. 산이나 언덕 같은 굴곡도 보이지 않고 절벽처럼 상륙이 어려운 곳도 없다.

그들이 보이는 호숫가는 모래로 뒤덮여 있었으며, 언덕조차 없는 지형을 보건대 맞은편 호숫가도 별다를 바 없어 보였다.

하지만 섬에는 그 무엇보다 커다란 특색 하나가 있었다.

한가운데에 높이 솟아 있는 탑이었다.

상당히 높아 과장 좀 보태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것 같다. 일행의 시선이 탑을 타고 올라가 그 꼭대기에 도달했다.

“이것 참. 밸리드 놈들. 분수 넘치는 둥지를 갖고 있었군.”

윌위스는 썩 기분이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가 우두머리로 있었던 마탑보다 눈앞의 탑이 훨씬 높아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그에 비해 루벨라는 탑의 높이 따위엔 관심도 없었다.

“어서 가죠. 어서 저 벌레들의 뿌리를 뽑아버려요.”

“그러죠.”

지크는 새로운 배를 꺼냈다. 일행이 모두 옮겨 탄 후, 지크는 배를 섬까지 몰았다.

얼마 전까지 배를 조각낼 기세로 흘렀던 호수 물은 결계 안에서는 잔잔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배가 섬 기슭에 도착할 때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섬에 도착했다고 끝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시작이었다.

“준비됐습니까?”

지크가 물었다. 그의 시선은 섬 안쪽에 못 박혀 있었다.

마치 불청객을 환영이라도 하려는 듯, 엄청난 수의 몬스터가 그들이 상륙한 호숫가에 한가득 몰려 있었다.

“그래도 총단이라고 그럭저럭 방비는 해 놓은 모양이로군.”

“하지만 고위급 몬스터는 별로 없어요. 대부분이 머릿수만 채우는 놈들이군요.”

“뭔들 상관없잖아. 어차피 여기까지 온 이상 탑 꼭대기까지 올라갈 생각만 해야지.”

윌위스와 루벨라, 레오나가 각자의 무기를 꺼내며 말했다. 틸은 입을 열진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먼저 검을 빼 든 채 배의 앞부분으로 향했다.

모두의 시선이 지크에게 향한다. 지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군요. 귀찮은 것들은 대충 정리하고 탑까지 진격합시다.”

지크가 가장 먼저 섬에 발을 디뎠다. 그 뒤를 일행이 따랐다.

곧 거센 전투 소리가 섬을 휘감았다.

* * *

섬에 상륙한 일행은 정말로 압도적인 실력을 자랑하며 몬스터의 무리를 짓밟고 전진했다.

호숫가를 메운 몬스터들은 들판 위에 서 있는 허수아비보다 못한 것처럼 보였다.

“곧바로 탑으로 갈 텐가? 아니면 여기 있는 무리들을 먼저 모조리 쓸어버릴 텐가.”

“탑으로 가죠!”

“알겠네!”

별다른 의문 없이 윌위스는 지크의 말을 따랐다.

콰아아앙!

윌위스의 거대한 마법으로 전방의 몬스터가 일소되자, 그들과 탑 사이에 남아 있는 몬스터들은 없었다.

“입구는 어디 있지?”

“저쪽입니다!”

일행은 지크가 가리킨 곳을 향해 움직였다.

곧 그들의 앞에 탑의 입구가 드러났다. 사람 네다섯 명은 족히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문.

지크는 문손잡이를 잡고 당겼다.

덜컹!

문은 잠겨 있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 걱정을 하는 이는 없었다.

지크가 일행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췄다.

“안은 지금보다 훨씬 더 위험할 겁니다. 준비는 됐습니까?”

일행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갑시다!”

콰지직!

지크가 손에 힘을 줬다. 검을 휘둘러 공간을 뒤틀던 결계를 수면과 함께 갈라버린 지크다. 고작 탑의 문 따위가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거친 파열음과 함께 잠금장치가 부서지고 탑의 문이 열렸다.

“내가 먼저 가지.”

틸이 입구 안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검을 꽉 붙들어 쥔 채 그는 사방을 경계했다.

“…아무것도 없군.”

“1층부터 드잡이질을 할 생각은 없나? 녀석들도 최소한의 손님에 대한 예의는 있는 모양이로군.”

“설마요, 드웨인 님. 밸리드 따위가 그럴 리 있나요. 예절이라니. 바퀴벌레와 청결만큼이나 어울리지 않는 단어예요.”

윌위스와 루벨라가 뒤이어 들어갔고, 최후까지 바깥을 경계하던 지크와 레오나가 마지막으로 들어섰다.

쾅!

지크가 탑의 문을 닫았다.

하지만 문을 잠그려 해도 지크가 잠금장치를 부숴놓은 터라 잠글 수가 없었다. 설령 잠금장치가 멀쩡했다고 해도 고작 그 정도로 몬스터들이 들어오지 못할 리도 없었다.

“잠시 비켜 보게.”

윌위스가 문에 지팡이를 가져다 댔다.

“이건 전문이 아니지만….”

윌위스의 지팡이에 마력이 맴돌았다.

쩌저저저적!

탑의 문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쾅! 쾅! 쾅!

우어어어어어!

크아아아아아!

바깥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윌위스가 얼려 놓은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저 정도 수준의 몬스터들이라면 꽤 오랫동안 들어오지 못할 걸세.”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있지만 윌위스의 학파는 화염 마법에 특화된 학파다. 한데 이렇게 강한 얼음 마법을 그리 쉽게 사용하다니. 윌위스의 마법에 대한 경지를 엿볼 수 있었다.

탑의 출입구를 봉인한 일행의 시선이 탑 안쪽으로 향했다.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미지의 공간. 일행의 긴장감이 차올랐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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