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569화 (569/628)

제569화

지크 일행이 탄 배는 호수를 가르며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노를 젓는 이도 없고 돛도 펴지 않았다. 그러나 배가 나아가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도 없었다.

퍼엉!

배 후미에 선 지크가 뒤쪽으로 손을 휘두를 때마다 연신 파공음이 일어난다.

그 반동으로 발생한 추진력이 배를 앞으로 쭉쭉 밀어냈다. 순풍을 받더라도 나오기 힘든 속도였다.

항해 초반은 무척이나 수월했다. 하늘은 조각구름 몇 개가 떠다닐 뿐 새파란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으며, 조금은 거친 맞바람이 연신 얼굴을 쓰다듬었다.

평화로운 시간. 세계의 명운을 건 전투를 위해서가 아니라 한가한 소풍이라도 나온 느낌이다.

그러나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키아아아악!

샛노란 눈. 온몸을 뒤덮은 비늘. 목 옆으로 툭 튀어나온 아가미. 손과 발 사이에 있는 물갈퀴까지.

누가 봐도 물속에 사는 생물이 확실하다고 입을 모아 말할 외견이다. 사람은 절대 아니라는 의견이 같이 포함될 것도 확실했다.

그것들이 다수의 무리를 지은 채 배를 공격했다.

일부 녀석들은 배에 오르려 버둥댔고, 대다수는 반쯤 수면에 얼굴을 내민 채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인어.

세간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운 물속의 여인들 같은 이미지로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것들의 실체는 그저 추한 몬스터일 뿐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물에서 그것들과 싸우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아니, 인어들뿐만이 아니라 수중 몬스터 대부분이 그러했다. 그것이 물속이든 배 위든 인간들이 활동하기 어려운 환경이란 것은 매한가지였으니까.

그러나 지금, 자신들이 유리한 전장임에도 인어들은 처절하게 박살 나고 있었다.

퍼억!

또 하나의 화살이 인어의 미간을 꿰뚫었다. 인어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자신이 태어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저런 게 인어라니. 믿을 수가 없어.”

“너희 일족도 호수에 산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쪽 호수엔 저런 못생긴 것들은 없는가보지?”

“우리 호수는 깨끗해! 저런 놈들 따위 발붙이게 할까 보냐!”

레오나가 연신 화살을 날려 댔다.

한 번에 다섯 개의 화살을 동시에 시위를 먹여 내쏜다. 그 엉터리 같은 사용법에도 빗나가는 화살은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연사 속도도 어마어마했다. 누군가 본다면 한 무리의 궁수들이 일제 사격을 하는 것이라 착각할 만한 광경이었다.

“그건 다행이로군.”

다른 이들이 인어와 싸움 아니, 인어를 학살하고 있을 때에도 지팡이나 만지작거리며 멀뚱히 서 있던 윌위스가 갑자기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화르르륵!

그의 지팡이 끝에서 거대한 불덩어리가 치솟아 올랐다.

직후.

퍼어어엉!

배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수면이 폭발하듯 튀어 올랐다.

그 아래로 한 마리의 몬스터가 등장했다. 예전, 지크 일행도 싸워본 적이 있는 크라켄이다. 녀석이 촉수를 배를 향해 내뻗었다.

하지만 그것들이 배에 닿기 전, 윌위스의 불덩이가 먼저 크라켄에 직격했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고 열기가 주변을 뒤덮는다. 기세 좋게 뻗치던 촉수가 힘을 잃고 물속에 잠겼다.

폭염이 걷힌 후 모습을 드러낸 크라켄은 얼굴이 반쯤 날아가 있었다.

남아 있는 부분도 새까맣게 타, 도저히 생명력 강한 몬스터라도 살아 있을 수 없는 상태였다. 역한 탄내가 열기의 뒤를 이어 밀려 왔다. 기세 좋게 등장했던 처음과 달리, 크라켄은 처참한 몰골로 호수 속에 다시 잠겨 들었다.

그 뒤로도 꽤 많은 몬스터들이 달려들었지만, 지크 일행의 배에 올라탄 녀석은 아무도 없었다.

* * *

“원래 호수에 몬스터가 이리 많나요?”

루벨라가 배 주변에 둥둥 떠다니는 몬스터를 바라보며 물었다.

벌써 세 번째 전투다. 게다가 등장하는 몬스터들도 도통 통일성이 없었다.

“호수의 크기가 크기인지라 없진 않습니다만, 이렇게 많지는 않죠. 뭣보다 크라켄 같은 녀석은 깊은 바다에 사는 놈이기도 하고요.”

“밸리드 놈들이 수를 쓴 거군요.”

“본거지를 지키기 위함이겠죠.”

그녀가 배의 옆 부분을 내려다봤다.

“저 정도 몬스터야 퇴치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배는 괜찮으려나요?”

배에 올라탄 몬스터는 단 한 마리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배로 향한 공격까지 모두 막은 것도 아니다.

한동안 계속된 몬스터의 공격을 받은 배는 상당 부분 부서져 있었다.

특히 루벨라가 보는 배의 옆구리 쪽은 상당히 심하게 부서져, 전문가가 아니라면 응급조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 상태였다.

그들이 탄 배가 그리 큰 것도 아니라 더더욱 그 파손은 심각해 보였다.

“확실히 많이 부서졌긴 하네.”

“이대로는 얼마 더 전진하지 못할 것 같은데….”

레오나와 윌위스도 배 상태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틸도 말없이 배의 상처를 바라봤다.

“괜찮습니다.”

지크가 그들의 걱정을 일축했다. 일행의 눈에 기대의 빛이 어렸다.

“역시 지크 군이로군. 하긴, 자네라면 수리할 방도 정도는 마련해 왔겠지.”

“지금부터 고칠 거야?”

지크는 무슨 소리는 하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리요? 제가 아무리 천재라도 배를 수리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진 않습니다만.”

뭔가를 부수고 파괴하는 데에는 자신이 있지만 만들고 고치는 일에는 일절 재능이 없는 지크다.

“그럼 어쩔 생각인가? 설마 이 배로 계속 항해를 할 생각은 아니겠지?”

“물론이죠. 중간에 침몰할 게 뻔한 배로 어떻게 계속 항해하겠습니까.”

일행이 일행인 터라 배 좀 침몰한다고 바로 물고기 밥이 되진 않겠지만 적어도 밸리드 토벌을 계속할 순 없을 터.

지크는 품을 뒤졌다. 그의 품에서 마법 상자가 나왔다.

“…설마.”

뭔가 짐작 가는 게 있는 듯 루벨라가 중얼거렸다.

지크는 마법 상자를 들고 배의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곧 마법 상자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첨벙!

그것은 호수에 떨어져 커다란 물보라를 일으켰다. 하지만 가라앉지는 않았다.

지크가 꺼낸 것은 그들이 타고 있는 것과 비슷한 형태를 한 또 다른 배였다.

지크는 뒤를 돌아 일행을 바라봤다.

“옮기죠.”

그렇게 말하고 지크는 훌쩍 점프해 멀쩡한 배에 올라탔다.

“…그렇군. 배가 망가질 것 같으면 여분의 배를 준비하면 되는 거였어. 내 한 수 배웠군.”

너무도 간단한 지크의 문제 해결 방식에 윌위스가 중얼거렸다.

* * *

그 뒤로도 한동안 항해는 계속됐다.

몇 번 더 몬스터들의 습격이 있었지만 지크 일행의 반격에 손쉽게 몰살당했다. 배도 몇 차례 더 손상됐지만 그때마다 지크는 새로운 배를 꺼냈다.

“마법 상자에도 한계는 있을 텐데. 어떻게 한 겐가?”

그런 윌위스의 의문에, 지크는 지금껏 허리춤에 차고 있던 자루 안을 보여줬다. 그 안에는 마법 상자가 잔뜩 들어 있었다.

“적어도 배가 부족하진 않겠군.”

마법 상자가 있는데도 왜 불편하게 자루를 따로 챙겼나 했는데, 설마 그 안에 마법 상자를 담아뒀을 줄이야.

윌위스는 고개를 저으며 물러났다.

대략 세 번쯤 해가 다시 떴을 즈음, 호수의 상태가 변했다. 하늘은 여전히 파랗고 바람도 선선하다.

그러나 호수의 표면은 달랐다. 곳곳에 소용돌이가 일고 그렇지 않은 곳도 거센 물살이 넘실거렸다.

지크 일행이 탄 배가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루벨라와 윌위스가 배의 난간을 꽉 잡았다.

그에 비해 지크, 틸, 레오나는 흔들리다 못해 요동치는 배 위에서도 두 다리만으로 균형을 잡고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심한 물살이군.”

“미로텔 호수는 옛날부터 거친 물살로 유명했었으니까요.”

윌위스에게 그렇게 답한 루벨라는 험한 눈초리로 소용돌이를 노려봤다.

“그게 밸리드 놈들이 저들의 총단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짓거리인 줄은 몰랐지만요.”

끼긱!

배의 중앙 부분에서 불길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배가 강대한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는 것이다.

소용돌이에 끌려들어 갈 걱정은 없다. 지금 배가 움직이는 추진력은 지크의 강대한 마력에 의한 충격파였으니까. 소용돌이에서 탈출하는 것쯤은 쉽다.

하지만 한 걸음 내딛는 정도의 거리만 움직여도 물살의 방향과 세기가 모조리 변해버리는 현 상황에선 선체 자체가 버티질 못했다. 지금 타고 있는 배도 조금만 있으면 산산이 부서져 소용돌이 안으로 끌려들어갈 터였다.

“그래도 밸리드 놈들도 이곳을 오고 갈 것 아냐? 그럼 뭔가 방법이 있겠지.”

레오나가 날카로운 눈초리로 물결의 틈을 포착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기대는 지크의 말에 무너졌다.

“놈들은 이곳을 건너지 않아. 편한 방법이 따로 있거든.”

“치사한 놈들. 너희들이 왜 그놈들을 바퀴벌레니 쓰레기니 부르는지 알 것 같아.”

“역시 그렇죠? 나중에 한번 놈들의 더러운 생태에 대해 토론을 해보는 게 어때요?”

마치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을 발견한 소녀 같은 눈빛으로 루벨라가 물었다. 레오나가 조금 질린다는 눈빛으로 그녀에게 떨어졌다.

“아, 난 그럴 정도로 놈들에 대한 걸 잘 아는 게 아니라서….”

“걱정 마세요. 놈들에 대한 건 제가 자세하게 알려드릴 테니.”

“그쯤하게나, 성녀. 녀석이 당황하고 있지 않은가.”

언제나 레오나와 티격태격하는 윌위스가 그녀의 편을 들어줄 만큼 루벨라의 반응은 어딘가 무서운 데가 있었다.

“틸 씨. 지금껏 제가 배를 움직인 방법은 봐 오셨죠?”

“음.”

지크가 한 일이라고 대단한 건 없다. 마력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고 마력 양만 충분하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틸은 쉽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길을 낼 겁니다. 하지만 길이 유지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테니, 틸씨가 바로 배를 움직여 주세요. 배가 망가져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속도를 내주세요.”

“길… 말입니까?”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뭔가 방법이라도 있는 겐가?”

마법사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윌위스가 물어 왔다. 지크는 어깨를 으쓱였다.

“힘으로 찍어 누를 겁니다.”

지크는 배의 선미에서 호수로 뛰어내렸다. 배조차 박살 날 정도로 급류가 흐르는 호수에 뛰어드는 게 마치 자살이라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지크의 몸은 가라앉지 않았다. 마치 단단한 땅바닥을 디디듯 호수 표면을 사뿐히 밟은 채 굳건히 섰다.

지크는 에스텔레이드를 뽑아 들었다.

우우우우우웅!

마력이 주입되며 에스텔레이드가 거센 검명을 터뜨렸다. 마력이 변환된 빛이 주변을 환하게 물들였다. 마치 호수 표면에 또 하나의 태양이 뜬 것 같은 모습.

지크는 천천히 검을 치켜올렸다. 호흡을 가다듬고 몸 곳곳에 마력을 움직인다. 그의 눈이 거세게 날뛰는 호수 표면과 그 위쪽 수평선 너머를 향했다.

“흡!”

짤막한 기합과 함께 온몸의 근육을 움직이며 마력을 폭발시켰다. 에스텔레이드가 깔끔한 직선을 그리며 아래로 내려쳐졌다.

빛이 세상을 갈랐다.

콰아아아아!

거친 물살로 일행을 위협하던 호수가 기겁을 해 양옆으로 도망치는 것처럼 반으로 갈린다. 새하얀 포말이 허공을 가득 덮는 그 모습은 마치 구전되어 오는 전설 일부를 현실에 체현한 듯한 모습이었다.

아무것도 없던 공간이 찢겨지듯 벌어졌다.

그리고 섬 하나가 보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