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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564화 (564/628)

제564화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클라시 후작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이곳에 올 때까지만 해도 황제의 적들을 모조리 격멸하겠다는 투지에 불타던 브로드스탁군이다.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상비군만으로 짜여 있던 터라 숫자는 적을지언정 그 정예도는 다른 군과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그런 무적의 브로드스탁군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도무지 현실성 없는 광경에, 카르시 후작은 다급하기 그지없는 상황임에도 멍하니 전장을 바라보기만 했다.

처음 두 세력이 충돌했을 때만 해도 카르시 후작은 제국의 선택이 옳았다고 확신했다.

밸리드의 성기사들과 신관들은 제국의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훌륭히 틀어막았고, 몬스터들은 제국 정예병들의 창과 방패의 벽을 넘지 못했다.

물론 아무리 약한 부류라도 그게 몬스터인 이상 신체적 능력은 인간보다 우수하다.

게다가 밸리드의 성기사와 신관들의 실력도 제법 뛰어났다. 분명 밸리드는 위협적인 상대였다.

그러나 전쟁은 개개인의 실력만으로 하는 게 아니다.

카르시 후작은 뛰어난 군재로 명령을 내렸고, 그것들은 곧 능력 있는 장교들에 의해 빠른 속도로 제국군 전체에 퍼졌다.

그리고 병사들은 평소 쌓아온 훈련을 통해 내려온 명령을 완벽하게 실현했다.

마치 하나의 생물 같은 유기적인 움직임.

그 조직력은 결국 종교 집단이 근본인 밸리드로서는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다.

때문에 초반에 승기를 잡은 건 제국군이었다.

아부를 받고 웃음을 터뜨리던 속물과 동일 인물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카르시 후작은 우직한 지휘로 제국군을 마치 자신의 손발처럼 움직여 밸리드를 몰아붙였다.

제국 최고의 지휘관이란 건 결코 아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싸움은 제국의 승리로 끝날 것 같았다.

하지만 카르시 후작의 그 낙천적인 생각은 어떤 존재들의 등장으로 사정없이 깨졌다.

마인.

예상 못 한 존재는 아니다.

그들에겐 카르위먼에서 내준 마인들의 능력이 적힌 자료조차 있었다.

다만, 카르위먼이 말한 마인의 위험도를 그들은 그저 과장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생각의 대가를, 카르시 후작은 철저하게 치르게 됐다.

“커헉! 네, 네가 왜…!”

“아냐! 몸이 멋대로…!”

“이거 놔! 이거 놓…아아아악!”

강렬한 햇빛을 받아야만 간신히 그 존재를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가느다란 실을 이용해 주변 적들을 강제로 조종하여 상잔시키는 인형사.

“젠장! 이 녀석, 칼이 안 들… 끄아아악!”

“방패로 막아! 방패로…!”

“소용없어! 칼도 창도 방패도 안 들어!”

몸을 마치 유령처럼 만들어 창과 칼을 무시하고 방패를 관통해 제국군을 격살하는 고스트.

“떼 줘! 떼… 아아아아악!”

“끄륵! 끄르르륵!”

인간의 몸을 양분 삼아 지독하리만치 화려한 핏빛 꽃을 피워내는 식물들을 부리는 핏빛 수림.

“한 명은 안 돼! 여러 명이…! 꺽!”

“안 돼! 너무 커! 창을 찔러도 꿈쩍도 하지 않아!”

“비켜! 비켜어어! 밟힌다ㄱ…! 끄윽!”

크고 단단한 몸을 무기 삼아 무작정 전선을 헤집고 다니는 거인.

모습과 능력은 대단히 해괴했지만, 그 능력만은 엄청났다. 그나마 대항할 수 있는 건 기사와 마법사들뿐.

하지만 그들도 감히 마인들과 단독으로 대적하진 못했다.

게다가 그들은 밸리드의 성기사와 마법사들에게 붙들린 상태. 마인들을 처리하기 위해 등을 돌리는 순간 적의 칼과 성법이 그들을 노릴 것이었다.

마인들이 그렇게 마구잡이로 날뛰며 전선을 붕괴시키자 그 사이사이로 몬스터들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단단한 전선과 유기적인 조직력은 이미 박살 났다. 남은 건 개개인의 전투 능력.

하지만 아무리 잘 제련된 강철 병기로 무장한 정예 병사들이라도 신체 능력이 우월한 몬스터들 상대로는 손색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젠장!”

카르시 후작은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계속 지휘를 했다. 예비대를 투입해 뚫린 전선을 틀어막았고, 어떻게든 기사와 마법사들을 돌려 마인들을 막으려 했다.

그 지휘는 정말로 눈부신 것이었다. 어째서 브로드스탁의 황제가 이 급박하게 진행된 토벌의 지휘를 그에게 맡겼는지 그는 여실히 증명해 보였다.

하지만 그뿐. 사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동원된 전력이 달랐다.

“라타네 남작.”

“네!”

후작은 딱딱한 안색으로 자신의 옆에 있는 부관을 불렀다.

“뒷수습을 부탁하네.”

“네?”

“병사들을 이끌고 후퇴해. 폐하께는 모든 일이 내 책임이라고 전해드리게. 기대를 저버려 정말로 송구하다는 말도.”

남작은 뭔가를 말하려 했다. 하지만 입만 몇 번 달싹거릴 뿐, 그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그가 보기에도 이 전투는 패배했다. 남은 건 어떻게든 병력을 온전해 후퇴하는 일뿐.

하지만 그러기엔 상대의 공세가 너무도 강했다. 섣불리 후퇴를 하다간 오히려 아군의 피해가 눈더미처럼 불어날 게 분명했다.

상대의 발목을 잡고 늘어질 제물이 필요했다.

그리고 후작은 지금 그 스스로를 제물로 바칠 생각이었다.

“…모실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음.”

남작은 후작에게 고개를 한번 숙여 보이고는 큰 소리로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후작은 황제가 내려 준 원수봉을 만지작거렸다. 명예의 상징인 그 원수봉이 무척 무겁게 느껴졌다.

그는 원수봉을 조심스럽게 품에 넣었다. 그리고 검을 뽑았다. 그의 신분과 권위를 상징하는 검은 상당한 화려함을 자랑했다.

그러나 지금, 후작은 그 화려함이 무척이나 어색하게 보였다.

제국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전투는 그 자존심 때문에 패배한 것과 다름없다.

‘카르위먼의 말을 들었어야 했나.’

후작은 사태가 왜 이 지경까지 치달았는지 확실하게 깨달았다. 적은 카르위먼의 말처럼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설령 군사 요충지에 처박혀 방어적으로 행동하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제국의 군사력을 총동원해 밀어 버려야 할 놈들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후회는 늦게 찾아오는 법.

그나마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건 라타네 남작을 통해 밸리드의 위험성을 황제에게 알리는 것뿐이었다.

‘이제 결사대를 뽑아야겠군.’

그와 운명을 같이 할 병력들. 상대의 기세가 강하니 어쭙잖은 병력을 뽑을 수는 없다. 후작은 곧 결정을 내렸다.

결사대를 이끌고 후작은 말을 끌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날, 브로드스탁 제국군은 괴멸했다.

* * *

카르시 후작의 희생도 무의미하게 브로드스탁 제국군은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다.

군대는 와해됐고, 생존자들은 질서 있는 후퇴를 하기는커녕 가까스로 몸만 빠져 나와 무작정 가까이 있는 마을로 내달렸다.

패잔병이 된 병사들이 홀로, 혹은 몇 명씩 나타나기 시작하자 제국은 파견군이 대패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연히 제국은 발칵 뒤집혔다. 이번에 몰살된 병력은 그냥 병력이 아니다. 제국의 최정예 병력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깔끔하게 날아갔으니 당연히 제국의 전력에 거대한 공백이 생겼다.

제국군이 강군으로 유명하다는 건 여러 전쟁을 거쳤다는 뜻이고, 당연히 제국은 적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제국은 외부의 적에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외부가 아닌 그들의 몸속에, 제국의 최정예군을 갈아 마신 괴물이 똬리를 틀고 있었으니까.

제국은 부랴부랴 새로운 병력을 만들기 시작했다.

국경에 있던 병력들을 최소한만 남기고 소환했고, 징집 계획도 세웠다.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황제는 카르위먼이 제안한 지원 방안까지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밸리드는 제국이 힘을 회복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그들의 총단에서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사방에서 비명이 날아들었다. 밸리드가 나타나 마을이 점령당하고 도시가 점령당하고 요새가 점령당했다.

정예군이 박살 나 텅 빈 제국의 강역을 밸리드는 해일같이 휩쓸었다.

어떻게 대응할 새도 없이 제도가 포위됐다. 그때, 황제에게 남은 군대라고는 정말로 한 줌뿐이었다.

군사강국이라 주변 나라에 두려움을 받던 나라의 우두머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비참한 상황.

하지만 황제는 어떻게든 버티려 했다. 아직 제국의 모든 병력이 사라진 건 아니다.

조금만 버티면 지방에서, 국경에서 불러들인 병력들이 도착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황제의 기대는 밸리드의 파상공세에 완전히 묻혀버렸다.

결국 얼마 안 가 제도는 함락됐다.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군사 국가의 수도가 일개 광신도들에게 점령당했다는 경악할 만한 소식은, 그 즉시 세계 전체로 퍼지기 시작했다.

* * *

“결국 함락됐군요.”

지크는 느긋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사람 중 지크만큼 냉정한 반응을 보이는 자는 없었다.

“그 빌어먹을 해충들이 결국은…!”

와이그는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조금만 더 갈았다가는 치아가 전부 박살 날 것 같았다.

루벨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기어이 지크 님의 말씀대로 됐네요.”

“멍청한 황제 같으니! 무능한 제국 귀족 놈들 같으니!”

와이그는 계속해서 제국을 씹어댔다. 아무리 그가 카르위먼의 무력을 대표하는 이라 해도 다른 나라, 그것도 브로드스탁 같은 강국의 황제와 귀족을 씹어 대는 건 충분히 문제가 될 만한 일이었지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차피 불만을 말할 놈들이 멍청하게 전부 뒤져 버렸는데.

“자자, 진정하세요. 일단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으니 앞으로의 대책을 생각해 봐야죠.”

지크의 만류에 와이그의 욕설이 잦아들었다. 아직도 거센 콧김을 내뿜으며 씨근덕거리기는 했지만.

“성하께서는 어떻게 하신답니까?”

지크는 일단 교황의 의중을 물었다.

“모든 지부에 있는 신관들을 불러 모으고 계세요. 성기사들도 모두 전투 준비를 하고 있고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던 밸리드의 총단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이참에 아예 뿌리를 뽑아 버리겠다고 벼르고 계시죠.”

카르위먼의 지도자라면 당연한 일. 루벨라나 와이그 또한 교황과 별로 다르지 않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 병력은 어떻게 운용하실 생각입니까? 바로 밸리드의 총단으로 진격하실 생각입니까?

“생각 같아서는 그러고 싶지만….”

루벨라가 말끝을 흐린다. 아무래도 밸리드의 전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군사강국으로 이름 높은 브로드스탁 제국을 그토록 짧은 시간 안에 멸망시키지 않았던가. 그런 상황에 섣불리 밸리드의 총단으로 병력을 밀어 넣을 수는 없었다.

“설마 밸리드가 그렇게 강할 줄은 몰랐어요.”

루벨라의 한탄에 와이그가 신음 소리를 냈다. 밸리드의 전력을 인정하기 싫다는 감정이 여실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그 와이그가 끝끝내 입을 열어 밸리드의 강함을 부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밸리드의 위험은 카르위먼에 확실히 정착했다고 봐야 했다.

“지크님은 벨리드가 어떻게 움직일 거라고 보십니까?”

와이그가 질문을 던졌다. 이제는 숫제 대 밸리드 정보 전문가라고 생각을 하는 듯 눈이 초롱초롱하다.

그리고 그리 틀린 말도 아니었다. 지금도 지크는 밸리드의 정보, 정확히 말해 울텔의 정보를 전달받고 있었으니까.

“놈들은 크로뇽 왕국으로 올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는 뭐죠?”

“제가 튀어나올 가능성이 가장 높으니까요.”

“음, 그놈들 입장에서 지크 님은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사람이긴 하죠.”

와이그는 고개를 주억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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