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2화
모든 세력을 동원해 대대적인 침공을 준비하는 울텔. 침공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그 준비 난도는 올라가기 마련이다.
세상에 흩어져 있는 로브들과 밸리드 신도들에게 총단으로의 집합 명령을 내린 지도 꽤 지났다. 속속 그의 세력이 총단 근처 집결지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수는 예상보다 적었다. 패잔병 꼴로 목숨만 부지한 채로 도착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였고, 아예 소식이 끊긴 이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 외부에서 키우고 있던 마인들은 아예 전멸하다시피 했다.
살아 돌아온 자들은 한목소리로 카르위먼과 각국의 공격을 받았다고 했다.
“놈들이 우리 세력을 각개 격파하고 있습니다.”
부하의 냉정한 보고에 울텔은 침음을 삼켰다.
하나로 모은다면 정말로 어마어마한 울텔의 세력이었지만, 대륙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것이 너무도 커다란 약점이 되고 있었다.
물론 대책 없이 흩어져 있는 건 아니었다.
울텔의 세력은 아주 깊숙이 숨어 있었다. 설혹 운이 나빠 몇몇 무리가 들킨다고 하더라도 철저하게 훈련받은 그의 부하들이 정보를 뱉어 낼 리 없었다. 애초에 그들은 다른 무리의 정보를 알지도 못한다.
하지만 지금, 그의 세력은 전방위적으로 공격을 받고 있었다.
그게 뜻하는 바는 오직 하나.
“우리의 세력이 언제 어디에 있는지 모두 알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환장하겠군.”
울텔은 머리를 짚었다.
“놈들이 이곳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희망적인 생각이겠지?”
“적의 정보력이 무섭긴 하지만 이곳을 모를 가능성도 충분하긴 합니다. 이곳의 정보는 정말로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른 시간선에서 섣불리 이곳의 정보를 노출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회귀 능력만 있다면 알아낼 수 있는 바깥 세력의 정보와는 다릅니다.”
부하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울텔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놈이 이곳을 알든 모르든 우리 계획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도 일단 도착하는 녀석들이 있긴 하니 조금 더 기다려보지.”
그때, 회의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큰일입니다! 일단의 군 병력이 이쪽으로 향하고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역시 이 장소를 알고 있었나.”
울텔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적이 이곳을 모를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한 부하가 고개를 숙였다.
“어디 병력이지? 지크 모어나 카르위먼이 동행하고 있나? 병력의 구성은? 우리를 치려고 왔다면 몇 개 나라가 연합했을 가능성이 높을 텐데.”
그러나 곧 울텔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해.”
사방의 수족이 잘려나가고 있는 터라 울텔에게 제대로 된 정보가 들어오지 않게 된 지는 꽤 지났다.
하지만 적어도 수족이 잘려나가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각 나라에서 병력을 동원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어오지 않았다.
밸리드의 신전이 세계 곳곳에 박혀 있던 만큼 왕국이 전쟁을 준비했다면 어느 정도 소식은 들어왔을 것이다.
하지만 울텔은 물론이고 주변 부하들도 전부 각 나라의 병력 동원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울텔이 소식을 가져온 자를 쳐다봤다. 눈으로 빨리 질문에 대답하라고 독촉했다.
“군을 발견하자마자 보고를 하러 온 터라 정확한 정보는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깃발을 보건대 카르위먼이나 다른 왕국의 세력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크 모어 또한 그저 발견하지 못했을 뿐인지 모르지만 일단 확인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럼 지금 오고 있는 군대는….”
“확인된 건 브로드스탁 제국군뿐입니다.”
회의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브로드스탁 제국.
밸리드 총단이 위치하는 이 미로텔 호수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다. 제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주변 왕국에 거대한 영향력을 미치며, 그 군사력은 주변에서도 맞설 자가 없는 강국.
“설마 브로드스탁 혼자서 우리를 치러 오고 있는 건가?”
부하 한 명이 어처구니없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브로드스탁 제국이 주변에서 가장 강한 나라라지만 그 혼자서 그들을 이길 수는 없다.
“가능성은 있군. 그놈들이라면 자기 혼자서라도 충분히 우리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
브로드스탁 특유의 특성인 것일까. 아니면 제국의 위신이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브로드스탁은 여러 나라들 중에서도 자존심이 굉장히 강한 나라였다.
“놈들이라면 다른 나라와 연합을 한다는 것 자체를 못마땅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다른 나라나 카르위먼과 연합을 해서 우리를 치려 한다면, 다른 세력의 군대를 자기 나라 안으로 들여야 한다는 소린데 그것 또한 놈들의 마음에 들진 않았을 겁니다.”
부하 한 명이 울텔의 의견을 거들었다.
의견이 점점 이번 군사 행동이 브로드스탁의 독단적인 일이라는 쪽으로 흐르자 희의실에 있는 이들의 안색이 좋아졌다.
그들은 브로드스탁의 만용을 마음껏 비웃었다.
“무지란 참 무섭군요. 아무리 제국이라고 하더라도 우리와 단독으로 맞서려고 하다니.”
“무지도 아니지. 아마 지크 모어가 정보를 제공했을 텐데, 지금까지의 일을 생각하면 녀석이 우리의 전력을 어렴풋이라도 모를 리 없어.”
“그렇다면 더더욱 멍청한 놈들이 아닌가. 그 자존심이 제 놈들의 목을 조이는 것도 모르고.”
“외부 정보가 끊기기 전에 브로드스탁이 징병을 실시했다는 소식은 없었습니다. 제국이라도 이렇게 빨리 전력을 확충하진 못합니다. 아니, 덩치가 커다란 제국이니만큼 오히려 더 그렇죠. 아마도 놈들의 군세는 평소에 유지하고 있던 상비군뿐일 겁니다.”
“기회입니다, 주인님. 이번에 브로드스탁의 상비군을 모조리 말살시킨다면 앞으로의 침공이 한층 수월해질 겁니다.”
부하들의 의견에 울텔은 고개를 끄덕였다.
“함정일지도 모른다. 발견을 하지 못했을 뿐, 다른 세력의 병력이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브로드스탁 놈들이 제들의 오만을 주체하지 못하고 단독 공세를 벌이고 있는 것이라면…!”
콰앙!
울텔이 탁자를 내리쳤다. 탁자는 그대로 두 쪽으로 쪼개져 무너져 내렸다.
“그놈들은 단 한 놈도 살아남지 못할 거다!”
* * *
계획대로 목표한 자들을 처치하던 지크는 잠시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살피기 위해 카르위먼의 총단으로 향했다.
“어머, 지크 님 아니세요!”
막 총단 안에 들어섰을 때 지크를 반기는 목소리가 들렸다. 여성의 목소리.
혹 루벨라인가 싶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윈드네로군.”
“오랜만이에요!”
첼시가 방긋방긋 웃으며 다가왔다.
지크의 추천으로 첼시는 성공적으로 카르위먼에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스스로 카르위먼을 뛰쳐나가 몰랐다고는 해도, 밸리드의 주구와 협력을 한 이력이 사라지지는 않아 그녀는 상당히 먼 지부로 좌천이 된 상태였다.
“네가 총단엔 웬 일이냐?”
“일이 있어서요. 그리고 일이 없다고는 해도 높으신 분들에게 꾸준히 얼굴은 비쳐야죠.”
첼시가 당당하게 말했다.
“아직도 성녀를 노리냐?”
“당연하지 않나요? …라고 하고 싶지만 저도 슬슬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을 하는 중이에요.”
“어렵긴 한참 전부터 어려웠지. 루벨라가 경쟁자가 됐을 때부터 너한텐 일말의 가능성도 없었어.”
“으으….”
원망스러운 눈길이 지크를 향해 뻗어왔지만 지크는 상큼하게 무시했다.
“뭐, 이젠 굳이 성녀가 아니라 해도 올라갈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높이 올라갈 생각이에요. 한때 성녀 후보자까지 된 자로서 밑바닥에서 전전할 수는 없으니까요.”
“네 그 뻔뻔한 상승 지향적 태도는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 화제를 돌렸다.
“지금 밸리드랑 한판 붙으려는 건 알고 있지?”
“그럼요. 지금 카르위먼 내에서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
“뭔가 알고 있는 거 없냐?”
루벨라와 와이그, 없다면 다른 고위 신관들에게 물어볼 요량이었지만 첼시를 만났으니 지크는 가볍게 물어봤다.
“음, 지금 윗선에서 오가는 이야기가 저한테까지 오지 않아서 자세히 아는 건 없지만 그래도 하나가 있긴 하네요.”
“뭔데?”
“브로드스탁 제국군이 밸리드 총단을 단독 공격하겠대요.”
“아, 역시 그렇게 됐군.”
“안 놀라시네요?”
“그놈들은 그럴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울텔에 대항해서 지크는 주변 나라들의 병력을 묶어 연합군을 만들려 했다.
그러나 그게 순탄하리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지크가 드래곤 슬레이어의 칭호를 갖고 카르위먼을 등에 업고 있더라도 마찬가지였다.
‘회귀 전에도 나라들이 연합하기 시작한 건 마인들에게 처맞을 대로 처맞은 이후였으니까.’
특히 브로드스탁 제국의 자존심은 유명한 이야기다.
일단 밸리드의 총단이 있는 미로텔 호수가 제국의 영내에 있으니, 호수에 총단이 있다는 걸 그들에게 알리긴 했다.
밸리드가 본격적으로 침공을 시작한다면 가장 먼저 피해를 볼 나라가 그 나라이니 미리미리 방어 준비를 하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지크는 브로드스탁이 자신의 의견을 따르리라곤 전혀 기대하지 않았고, 상황은 예상대로 흘러갔다.
‘뭐, 차라리 잘됐어.’
아무리 세계 곳곳에 있는 흑막의 수족들을 끊어 놨다고 해도 흑막의 세력은 강하다. 브로드스탁은 결국 엄청난 피해를 입을 터.
그걸 보고 다른 나라들이 기겁을 해 빠르게 연합이 이루어진다면 브로드스탁의 멸망은 분명 의미가 있는 멸망이 될 것이다.
물론 막대한 사람의 수가 죽어 나가겠지만 정통적인 용사가 아닌 지크에게 그 정도 희생은 신경 쓸 바가 못 됐다. 막말로 지크의 탓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넌 그걸 어떻게 알고 있냐? 네 말마따나 밑바닥 신세가 된 네가 알 정보는 아닌 것 같은데.”
“제국이 제게 접촉을 했거든요. 성기사 같은 직접 무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들의 지원은 거절한 그들이지만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 신관들은 탐이 났나 봐요. 보내줄 수 있으면 보내달라고 했다더군요. 물론 윗분들은 거절한 것 같고. 그래서 저 같은 사람에게도 찾아온 거예요. 아무래도 주류에서 벗어난 몸이다 보니 설득이 쉬울 거라고 생각했나 봐요. 밸리드 총단 공격에서 공을 세운다면 지금 제 신세를 바로 뒤집을 수 있으니까요.”
“여기 있는 걸 보니 거절한 모양이지?”
“당연하죠!”
첼시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지크 님 덕분에 겨우 복귀를 했는데 어떻게 사적으로 제국을 도우러 갈 수 있나요? 그건 지크 님의 은혜를 무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절대 그럴 순 없죠.”
“본심은?”
“지크 님은 그 공세가 실패할 거라고 생각하시죠? 그러지 않다면 밸리드의 총단 공격에 끼어들지 않을 리가 없죠.”
지크는 고개를 끄덕여 순순히 긍정했다.
“그런 공세에 제가 왜 끼어들겠어요. 괜히 제국과 손을 잡았다가는 안 그래도 눈초리가 좋지 않은 상부에 더 찍힐 텐데요. 썩은 줄을 잡아 진창을 뒹굴 뻔한 건 한 번이면 족해요.”
그러며 배시시 눈웃음을 친다. 지크는 소리 내어 웃었다.
“잘 생각했다. 브로드스탁 녀석들과 손을 잡고 공격에 나서봤자 운이 좋아야 ‘저번 사건에서 배운 것 없는 멍청한 놈’ 취급을 받았을 거고 운이 나쁘면 그대로 목숨을 잃었을 테니까.”
“역시 그렇죠?”
그렇게 두 사람은 낄낄대며 총단 안을 걸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