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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559화 (559/628)

제559화

그렌을 사로잡은 울텔은 어딘지 모를 곳으로 그를 끌고 갔다.

퀴퀴한 냄새와 역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그곳은 누가 봐도 고문을 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방 여기저기에 놓인 고문 도구들이 음산하게 켜진 촛불의 불빛을 섬뜩하게 반사했다.

울텔은 바로 그렌의 고문을 명령했다. 숙련된 그의 부하들은 능숙하게 그렌의 몸에 최적의 고통을 주기 시작했다.

고문을 참아낼 인내도, 지켜낼 신념도 없는 그렌은 당연히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며 살려달라 울부짖었다.

그러나 울텔을 포함한 일당은 일체의 자비 없이 망가져가는 그렌을 지켜봤다. 오히려 울텔은 미소마저 띠고 있었다.

감히 자신을 비천한 노예처럼 부려먹던 놈이다. 목이 터져라 쏟아내는 비명이 그 어떤 음유시인의 음악보다 감미롭게 들렸다.

기억나진 않는 지난 시간선의 자신들은 분명 이 한순간을 위해 그 어떤 굴욕도 감내했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이 음색이 질릴 리는 절대로 없었다.

그러나 이 즐겁고도 즐거운 시간 속에 영원히 있을 수도 없다.

그의 야망은 고작 그렌 제너드 같은 벌레 한 마리를 짓이기는 걸로 채워지지 않는다. 그의 진정한 야망을 위해 그렌에게서 정보를 뜯어내야 했다.

그렌은 쉽게 쉽게 정보를 토해냈다. 상황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지크 모어가 회귀했다고?”

“그, 그렇습니다!”

얼마 전까지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과는 다르게 그렌은 감히 고개를 들 생각조차 못 하고 구차하게 울먹이며 울텔에게 대답했다.

하지만 충분히 그럴 만했다. 질문을 듣는 데 필요한 귀와 대답을 할 입을 제외한 그렌의 온몸은 성한 곳이 없었다.

그토록 엄청난 고문을 받았음에도 꿋꿋이 대들 수 있는 강직한 자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렌은 강직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인간이었다.

하지만 울텔은 그렌의 추한 모습을 비웃을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지크 모어의 회귀라니.

안 그래도 괴물딱지인 지크가 회귀를 했다는 말을 들은 순간, 울텔은 정말로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을 뻔했다.

“어, 얼마나? 몇 번이나 회귀를 했다고 했어!”

“잘 모르겠습니다.”

철썩!

“악!”

울텔이 그렌의 뺨을 후려쳤다. 불합리한 화풀이였다. 그러나 그렌은 끙끙거릴 뿐 항의할 엄두도 내지 못 했다.

당장이라도 그렌을 죽일 듯싶은 울텔을 다른 부하들이 말렸다.

“참으십시오! 지금 죽이면 더 이상 정보를 얻지 못합니다!”

부하의 만류에 울텔은 들어 올렸던 손을 내렸다.

하지만 울분이 풀린 건 아니다. 그는 그렌을 더욱 가혹하게 고문했다. 그렌은 정신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내뱉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울텔을 더욱 경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더 이상 회귀를 할 수 없다고?’

그렌은 그게 정말인지 아닌지 확신을 못 하는 모양새였지만, 세계수와 시스템의 이상을 알고 있는 울텔은 그 말이 진실일 가능성이 무척 높다고 생각했다.

‘설마 그 이상이 전부 지크 모어의 짓이었단 말인가!’

드디어 원흉을 알아냈지만 울텔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저 감당하기 힘든 적의 등장에 두통만이 계속 생겼다.

지크가 했다는 말도 걸렸다.

‘제국과 시스템 운운했다면 정말로 모든 걸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커!’

클로원 제국과 브뤼셀 시스템의 정식 이름을 그렌은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크가 제국과 시스템 운운했다는 것만은 기억하고 있었고, 그걸 들은 울텔은 지크가 회귀에 대해 상당히 깊게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제길!’

지크 모어는 절대 그렌 같은 등신이 아니다.

그가 회귀를 겪었고, 회귀에 대한 정보도 알고 있다면 그의 야망에 굉장한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컸다.

울텔은 몸을 돌렸다. 어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가자.”

“이 녀석은 어쩔까요?”

울텔의 시선이 그렌에게 향했다. 그렌은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혐오감밖에 느껴지지 않는 인간.

“대충 치료해서 감옥에 처넣고 감시자를 붙여. 혹시나 어디에 또 쓸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울텔은 피비린내 자욱한 공간을 나섰다.

그의 허리춤엔 토르니움이 얌전히 매달려 있었다.

* * *

지크는 전해져 오는 정보들을 정리했다.

라일라는 착실하게 토르니움이 보내주는 정보를 지크에게 전했다. 덕분에 지크는 지금 그렌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울텔에게 토르니움을 빼앗겼군.’

고문실에서 나온 후로 그렌의 정보는 사라졌다.

단, 그때부터는 울텔과 그 주변에 대한 정보가 보내졌다.

‘오히려 잘됐어. 이제 와서 그렌 제너드에 대한 정보 따위 별 가치도 없으니까. 울텔 녀석의 정보가 훨씬 더 가치 있지.’

물론 그 전에 보내진, 그렌이 흠씬 당하는 장면은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정보는 그 이후로도 보내져 왔다.

과연 모든 일의 흑막이라는 게 거짓말은 아닌 듯 울텔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돌파구를 찾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냈다. 그렌과는 비교하는 것조차 미안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울텔이라도 토르니움을 통해 자신의 정보가 지크에게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알지 못 했다.

‘녀석도 브뤼셀 시스템에 대해 정확히 알지는 못하니 그럴 테지.’

지크도 라일라가 다시 코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않던가.

울텔이 눈치채지 못한 건 지크에게 있어서는 무척 좋은 일. 그는 들어오는 정보를 토대로 앞으로의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 * *

지크는 한스를 만났다.

한스는 오늘도 백작가를 도와 일을 하고 있었다. 전쟁의 뒷수습은 슬슬 끝나가고 있었지만, 그 후유증은 단시간에 해결되지 않는다.

당연히 인력 부족은 여전했고, 한스는 백작의 부탁으로 계속 백작가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한스와 붙어 있는 시간이 많은 라라도 그와 같이 백작가를 도왔다.

“안녕하십니까, 지크 님!”

“안녕하세요, 지크 씨.”

한스와 라라가 지크를 향해 인사했다.

“그래. 별일은 없고?”

“네. 그저 영지의 빈틈을 노리고 지방에 도적 집단 몇 개가 나타났다는 정보가 있을 뿐입니다.”

“그것참, 목숨 아깝지 않은 놈들이네.”

지크에게 무시당하고 그렌의 계획에 걸려들어 멸망 직전까지 갔기에 살짝 무능력해 보일 수도 있는 스틸월 가문이지만, 그거야 지크와 그렌이 워낙에 특수한 경우이기에 그런 것일 뿐, 스틸월 가문은 절대로 만만한 가문이 아니다. 도적 집단쯤이야 얼마든지 쓸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도적 집단들이 몇 개씩이나 나왔다는 것은 지금 스틸월 백작가의 전력이 상당히 떨어졌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얼마 안 가 박살 나겠지. 규모가 어떻게 되든 고작해야 도적 집단을, 아무리 약해졌다 해도 스틸월이 어떻게 할 수 없지는 않을 테니까.”

“백작님께서 산적 토벌을 위해 파병될 군대에 제가 포함되기를 부탁하셨습니다.”

“그 인간, 아주 알뜰히도 써먹네.”

물론 백작이라는 직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영지의 안전을 위해 가용할 수 있는 패를 모두 가용하는 건 이상한 게 아니었다.

지크가 물끄러미 한스를 쳐다봤다. 그 묘한 시선에 한스가 움찔거렸다.

“가고 싶냐?”

“…네.”

지크의 시선에 못내 찝찝함을 느끼면서도 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슬슬 움직일 생각이라 하더라도?”

“…그럼 지크 님을 따라가야죠.”

약간의 망설임. 조금 더 사람들, 특히 은혜를 입은 백작가를 돕고 싶은 마음은 컸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한스는 바로 망설임을 털어버렸다.

지크는 그런 한스를 묵묵히 바라봤다.

“……? 왜 그런 눈으로 보시….”

“지크님! 안녕하세요!”

쿠우!

조심스럽게 지크의 의향을 묻던 한스의 목소리는 어느새 다가온 스녹과 노웸의 목소리에 끊겼다.

스녹은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는 엘레나와 함께였다. 엘레나가 지크를 보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반갑게 다가온 스녹이었지만 지크와 한스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에 살짝 안색이 굳었다.

“제가 좀 안 좋은 때에 왔나요?”

쿠?

“아니, 그렇게 심각한 이유는 아니다. 차라리 잘됐군. 안 그래도 생각해둔 게 있었는데.”

아무리 존경한다고 해도 여전히 지크가 어려운 스녹은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차마 지크의 허락도 받지 않고 도망갈 수는 없었다.

지크는 한스를 시작으로 라라, 스녹, 엘레나를 한 번씩 쳐다봤다. 지크의 시선을 받은 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

“한스.”

“네!”

“넌 계속 스틸월 가를 돕고 싶지?”

“하지만 지크 님이 우선….”

“됐어, 인마. 내가 무슨 보살핌 받아야 할 어린애도 아니고.”

지크는 징그럽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그리고 네 사람에게 하나의 통보를 했다.

“지금부터 일행을 해산한다. 앞으로 너희들 앞길은 너희가 정해라.”

갑작스러운 통보에 네 사람은 당황했다. 특히 오랜 시간 일행에 있었던 한스와 스녹은 머리가 하얗게 될 만큼 충격에 빠졌다.

“그, 그게 무슨 소립니까, 지크 님! 혹시 제가 백작가에 미련이 남아서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당장 백작가와 인연을…!”

“아, 됐어. 그런 거 아니니까 신경 꺼라. 애초에 네가 백작가와 인연을 끊든 이어가든 아예 네가 새로운 스틸월이 되든 신경 안 써.”

“그럼 어째섭니까?”

스녹도 지크를 향해 이유를 캐물었다.

쿠!

노웸도 항의의 뜻으로 울부짖었다.

“너희들은 언제까지 날 따라다닐 생각이었냐? 평생?”

둘 모두 대답하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날아온 해산 통보에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지크를 평생 따라다닐 생각은 없던 것이다.

“인간도 짐승도 자식은 언젠가 부모에게서 독립해야 하는 법이다. 제자라고 다르겠냐. 이미 너희들에게 가르칠 건 다 가르쳤어. 그런 상황에 계속 너희들을 데리고 다닐 이유가 없지.”

한스와 스녹은 물론, 엘레나와 라라도 지크의 말에 집중했다.

“너희들은 나를 굉장히 신격화하고 내 명령을 절대적으로 따르지. 나란 존재가 너무도 위대하고도 위대하다 보니 그건 어쩔 수 없어.”

지크의 자아도취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하지만 그게 너희들의 미래에 도움이 되진 않지. 안 그래도 적절한 시기에 독립시키려 했다. 지금이 환경도 적당할 것 같고 말이야.”

“환경이 말입니까?”

“독립시킨다고 해서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그저 사회에 밀어 넣는 건 미련한 짓이지. 뭐, 대안이 없었다면 그렇게라도 할 생각이었다만….”

저게 진심이라는 걸 아는 터라 일행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마침 여기 스틸월이라는 좋은 조건의 터전이 있잖냐. 나는 저 인간들을 정말로 끝 간 데 없이 싫어하지만, 객관적으로 귀족 중에서 양심이 있는 쪽이라는 건 사실이지. 게다가 지금 굉장히 일손이 필요한 놈들이기도 하고.”

“…스틸월에 도움을 주며 세상을 알아가라는 말씀이십니까?”

“글쎄? 나는 하나의 길을 보여준 것뿐이야. 그런 길도 있다는 거지. 말 그대로 나는 너희들을 세상에 밀어 넣는 거다. 앞으로의 결정은 너희들이 해야 하고 책임도 너희들이 져야 하지.”

결정과 책임. 그 단순한 단어가 이렇게 숨이 막히는 것이었던가. 가지고 있는 일신의 무력에 걸맞지 않게, 넷은 살짝 두려움에 떨었다.

“너희들이 어떤 길을 걷게 될지는 모르겠다만, 한때의 스승으로서 응원해주마. 아, 혹시 나쁜 길을 걷게 되는 것도 난 반대하지는 않아. 다만 추천은 못 하지. 훗날에 날 또 만날지도 모르거든. 적으로서.”

“절대 나쁜 길은 걷지 않겠습니다.”

한스의 말에 다른 셋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지크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손뼉을 한 번 치며, 눈앞의 넷에게 말했다.

“졸업을 축하한다, 병아리들. 앞으로는 너희 뜻대로 살아 봐.”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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