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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558화 (558/628)

제558화

그렌은 당황했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어떤 시간선에서건 그를 충직하게 따르던 조직이 누가 봐도 그를 업신여기고 있었다.

가슴을 한껏 메우고 있던 공포를 뚫고 분노가 치밀었다.

‘또! 또 겪어보지 못한 일이!’

도대체 이 빌어먹을 시간선은 얼마나 겪어보지 못한 사건들을 던져줘야 분이 풀린단 말인가.

‘전부 지크 모어 때문이야!’

한심하게 침대 위에서 꼼지락대게 된 것도, 충직했던 부하들이 배신을 하게 된 것도 모두, 모두 지크 탓이었다.

“그렌 제너드.”

울텔이 입을 열었다. 언제나 주인님이라며 깍듯한 자세를 바꾸지 않았던 그의 입에서 그렌의 이름이 쉽게 튀어나왔다.

“네 녀석에게 물어볼 게 있다.”

거절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일방적인 통보. 듣는 사람이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일 수밖에 없는, 하지만 그런 감정조차 상관 않는 오만한 회화 방식이다.

당연히 그렌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무례하다! 밸르의 단죄가 두렵지도 않더냐!”

다시 한번 그렌이 소리 높여 외쳤다. 하지만 이번에도 돌아온 반응은 같았다.

“그딴 돼먹잖은 소리는 그만둬라. 네놈이 밸르의 화신이 아니란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뭐…!”

“그리고 난 밸르 따위 신경 쓰지 않아. 그딴 사이비 신을 정신없이 믿는 놈들이 등신이지.”

“너, 넌 밸리드의 교황이잖아!”

세상 전체가, 특히 카르위먼이 잡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는 밸리드의 교황. 그게 바로 울텔의 정체였다.

“교황이 꼭 신을 믿으란 법 있나?”

폭론.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폭론이다. 종교의 수장이 종교의 신을 믿지 않는다면 대체 누가 신을 믿는단 말인가.

그러나 울텔은 물론 그의 주변에 있는 부하들도 너무나 태연했다.

로브 놈들이 밸리드의 교황인 울텔을 섬기고 있을 뿐, 밸리드와 완전히 별개의 조직이란 건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설마 울텔이 밸르를 섬기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데 동요조차 하지 않다니.

마치 자신만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얌전히 질문에 대한 답을 해라. 네게도 나쁘지 않을 거다. 지금 네가 가장 원하는 걸 줄 생각이니까.”

“…내가 원하는 거라니.”

“회귀의 중단.”

“……!”

그렌의 눈이 커졌다. 경악이란 감정이 선명히 담겼다.

회귀는 오로지 그만의 능력이 아니었던가. 왜 갑자기 회귀의 존재를 아는 놈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단 말인가.

“네, 네가 회귀를 어떻게….”

“네게 회귀 능력을 준 게 나다.”

“……!”

또 한 번의 충격. 그렌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마치 자신의 머리가 종이 되어 이리저리 얻어맞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준 회귀 능력을 다시 거둬들일 수도 있지. 예측컨대 넌 지금 무척 고통스러울 거다. 이번에 죽어도 또다시 회귀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제대로 잠도 못 이루겠지.”

그 대목에 경악과 두려움밖에 들어차 있지 않던 그렌의 마음속에 의문이 깃들었다.

잠을 제대로 못 이루고 있는 건 맞지만 그건 또다시 회귀를 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회귀를 하지 못하게 됐다는, 완전 정반대의 이유 때문이다.

“얌전히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기만 한다면 네 회귀의 힘을 거둬가마.”

“…그 말은, 네가 회귀 능력을 마음대로 부여하고 회수할 수 있다는 소리냐?”

“그래.”

그렌의 눈이 빛났다. 울텔도 낌새를 눈치챘다. 그는 바로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외쳤다.

“막아!”

펄럭!

침대 위에 있던 이불이 허공에 펼쳐졌다. 그것이 일순 로브들의 시야를 막았다.

하지만 울텔이 대동하고 온 이들은 조직에서도 정예. 그렌의 의향으로 그의 영웅 행보를 위한 보조로 돌아선 대부분의 부하들과는 달리 그들은 여전히 엄청난 무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당연히 단순한 이불 따위는 단 한 순간의 방해조차 되지 않았다.

부욱!

한 명의 로브가 내지른 검에 이불은 두 조각 나 옆으로 흩어졌다.

시야가 확보됐다. 조각난 이불 사이로 그렌의 모습이 보였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거무튀튀한 검이 쥐어져 있었다. 로브들이 일제히 마력을 방출했다.

콰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엄청난 마력이 폭풍우 치며 주변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 그것은 무기의 부딪침이라기보다는 어떤 자연재해에 가까웠다.

폭발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충격과 굉음이 주변을 휩쓸었다.

“괜찮으십니까?”

로브 한 명이 울텔에게 다가와 물었다. 울텔은 옷에 묻은 파편과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괜찮다.”

고작 저 정도로 죽을 정도로 그의 실력이 떨어지진 않는다. 대부분은 그렌에게 양보했지만 그도 고대 제국의 유산으로 실력을 꽤 올렸다.

울텔은 바로 조금 전까지 있었던, 한때 방이었던 공간을 쳐다봤다. 산산이 부서진 건물의 잔해 위로 그렌과 로브들의 싸움이 한창이었다.

울텔은 인상을 찌푸렸다.

“저 녀석, 회귀 한계가 온 게 아니었군.”

“그렇습니까?”

“회귀의 공포에 빠진 인간이 회귀를 중단시켜 주겠다는데 이빨을 들이밀 리 없어.”

“지금껏 자기를 이용해 왔다는 것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건 아닐까요.”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을 정도로 회귀 한계에 의한 공포가 만만한 게 아냐. 회귀가 축복에서 끔찍한 저주로 바뀐 상태에서 그 저주를 풀어줄 상대가 나타났다면, 상대가 부모의 원수라도 무릎을 꿇고 저주를 풀어달라고 빌 거다.”

“한데 저 용사 병신은 그 저주를 풀어줄 대상에게 빽빽거리며 덤비고 있군요.”

“아직 저주가 발동된 게 아닌 모양이야. 아니면 녀석의 회귀 능력에 뭔가 문제가 생겼거나.”

어느 쪽이든 달가운 이야기가 아니다.

아니, 그나마 축복이 아직 저주로 바뀐 게 아닌 쪽이 나았다. 회귀 능력이 작동은 하고 있단 뜻이었으니까.

“그럼 저 새끼가 꼬리 내린 개처럼 끙끙 앓던 이유는 대체 뭐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뭔가 있다면 이번 전쟁에서 일어나지 않았겠습니까.”

“드래곤이 나타났다지?”

“네.”

“저놈 때문에 전장의 정보도 제대로 얻지 못하니, 이게 무슨 꼴이야.”

피네 자작가에 밀어 넣은 밸리드의 신도와 그렌에게 맡긴 로브들은 이번 전쟁에서 싹 몰살당해 정보를 제대로 얻지 못했다.

도착하자마자 방에 틀어박힌 그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이제야 조금씩 전쟁에 대한 정보가 들어오는 중이었다.

“드래곤에게 겁을 먹었나? 드래곤의 등장은 이번 시간선이 처음인 것 같으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만.”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 녀석을 잡은 후에 물어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곧 잡힐 것 같으니 말입니다.”

“음.”

전투는 여전히 격전이었지만, 슬슬 로브들에 의해 그렌이 몰리는 느낌이 나고 있었다.

“저 녀석, 왜 저러지?”

울텔은 그렌에게 의문 섞인 시선을 던졌다. 그가 아는 그렌의 실력은 저 정도가 아니었다.

‘전성기의 지크 모어, 그 괴물딱지가 아니고서는 지금의 저 용사 병신을 막을 수 없을 텐데.’

지금까지의 굴욕과 모욕 때문에 그렌을 무척이나 증오하는 데다 그렌을 때려눕힐 이유까지 얻은 울텔이었지만, 회귀 중단을 미끼로 걸며 일단 그렌을 회유하려 한 이유가 바로 저 그렌의 실력 때문이다.

강제적으로 정보를 뽑아내려 무력을 사용하려 하면 그들 조직도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물론 대책은 있었다. 하지만 그 대책을 사용한다 해도 일정 수준의 피해가 예상됐다.

그렌만이 아니라 지크, 라일라도 습격해야 하는 울텔로서는 조직의 피해가 전혀 달갑지 않은 상황.

결국 일이 꼬여 무력을 사용하게 되었지만, 의외로 그렌은 부하들의 협공에 몰렸다.

“저 녀석이 저럴 놈이 아닌데….”

“움직임이 지나치게 소극적입니다. 마치 처음 목숨을 걸고 전투를 하는 인간 같군요. 그중에서도 특히나 겁이 많은 인간들이 저렇습니다.”

“저놈이 목숨을 건 전투를 처음 할 리가.”

오히려 경험 하나만큼은 이 세계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많은 녀석이다.

물론 그렌이 제대로 전투를 하지 못한다는 것에 불만을 표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무척이나 기쁜 일이다. 하지만 꺼림칙한 의심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사실은 울텔이 회귀를 부여하고 거둬들이는 능력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회귀 능력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무작정 검을 겨눴다가, 이제는 목숨이 하나라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라 바짝 쫄은 것뿐이었지만 울텔이 그걸 알 리 없었다.

“그것도 물어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제 슬슬 시간이 된 것 같으니까요.”

“그것도 그렇군.”

그들이 그렇게 말을 한 순간, 그렌이 피를 토하는 모습이 보였다. 곧이어 그의 움직임이 확연히 둔해졌다.

“시작됐군요.”

“음.”

지크를 제외하면 세계 최강이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을 그렌에게 울텔이 검을 들이댈 수 있었던 이유.

지금의 그렌은 고대 유적의 유물을 한껏 사용해 힘을 끌어 올린 상태다. 그에 따른 부작용은 특수한 약으로 찍어 눌렀다.

울텔은 그 약을 가짜로 바꿔치기했다.

힘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반년 가량은 괜찮게 지낼 수 있을 테지만, 힘을 사용한다면 바로 부작용이 튀어나온다.

“그래도 잘 버티는군요.”

부하의 말처럼 그렌은 입으로 피를 토하면서도 끈질기게 저항했다.

“애초에 저 상태에서도 상당한 피해가 날 걸로 예상했다. 그렌 제너드의 실력은 그 정도야. 갑자기 웬 겁먹은 개새끼처럼 움츠러들어서 난도가 쉬워졌을 뿐이지.”

그렌의 저항은 점점 약해져 갔다. 이미 전투의 주도권은 로브들에게 넘어간 상태.

그렌은 도주를 시도했지만 로브들은 우월한 숫자를 이용해 그렌의 퇴로를 철저하게 막아섰다.

그리고 얼마 뒤.

“커헉!”

복부에 검을 맞은 그렌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로브들이 추가로 검을 날렸다.

그들의 손속엔 사정이 없었다. 팔 다리를 날려도 되고 내장 뼈 몇 개를 가루로 내도 된다.

그저 목숨만 붙인 채 질문을 들을 귀와 대답을 할 입만 보존하면 그만이었다.

“아아아악!”

몸 곳곳에 꽂히는 칼날들. 그리고 그 위로 쏟아지는 거친 주먹질과 발길질.

복부에 칼을 맞은 이후 그렌이 완전히 무력화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곧 그렌은 바닥에 쓰러졌다. 피범벅이 된 채 몸 이곳저곳이 잘려나가고 구멍이 뚫린 그는, 얼핏 보면 시체나 다름없었다. 다만 아직 숨이 끊어진 건 아니었다.

촤아악!

로브 한 명이 포션을 꺼내 그렌에게 부었다.

나름 죽기 바로 직전까지 난도질을 했을 뿐, 죽음에 다다를 부상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상황을 원천봉쇄하기 위함이었다.

깊은 상처 몇 개가 스르르 사라졌다. 하지만 그렌의 부상을 전부 회복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그에게 포션은 제공되지 않았다.

“잡았군.”

울텔은 그렌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는 어떻게 그렌이 얌전히 정보를 토해내게 만들지 고민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 그렌은 썩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었다.

울텔은 그렌의 옆에 섰다. 그렌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신음만 흘리고 있었다.

마치 벌레를 건드리듯 발끝으로 그렌의 몸을 툭툭 치던 울텔의 시선이 그렌의 옆에 떨어져 있는 토르니움으로 향했다.

‘이놈에겐 과분한 물건이야.’

그는 토르니움을 주웠다. 토르니움 특유의 파괴적인 마력을 느끼며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 * *

지크는 눈을 떴다. 머릿속으로 라일라가 보내준 따끈따끈한 정보들이 떠다녔다.

“이 녀석들 재미있게 노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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