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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548화 (548/628)

제548화

주름진 얼굴 사이로 보이는 눈이 마치 소년처럼 반짝인다. 새로운 배움 앞에 나이 따위는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는 열정이 손에 잡힐 듯 보였다.

“마침 시기도 좋아. 마탑주 자리에 있다 보면 여러 가지 신경을 쓸 게 많아서 마법에 몰두할 수가 없거든. 자리에서 내려오자마자 이런 사건을 겪은 것도 뭔가의 인연이겠지.”

“그럼 한동안 밖으로는 잘 안 나오시겠군요.”

“아니, 그건 아닐세. 물론 잠깐은 이론 정리를 해야겠지만, 바깥 경험도 해야지. 골방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경험도 배움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니 말일세.”

그리고 요즘 것들은 방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딱 그 나이대 사람의 말을 푸념하듯 내뱉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는 뭣 하고 있었던가?”

“아버지가 불러서 가고 있었습니다.”

“…자네 분명 저택 쪽에서 오지 않았나?”

“가다가 엘레나의 마법이 보이길래 호기심이 생겨서 말이죠. 가긴 갈 겁니다.”

고위 귀족인 백작의 부름을 고작 호기심 운운 때문에 뒤로 밀어 놓다니. 윌위스도 그렇게까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스틸월 백작과 지크 사이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백작령으로 온 후 어느 정도 알게 됐기에 윌위스는 뭐라 하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백작보다 지크 쪽이 더 중요한 인물일 테니.’

드래곤과의 전투 중 갑작스럽게 상승한 지크의 실력은 정말로 가공한 것이었다.

윌위스는 젊었을 적, 자신의 지론대로 골방에 파묻혀 있지 않고 세상을 주유하며 여러 경험을 쌓았다. 그때 나름대로 상당한 실력자들을 만나 볼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중 지크만 한 이는 없었다. 그 정도로 지크의 실력은 독보적이었다.

게다가 드래곤 슬레이어의 대표격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지금에야.

‘만약 스틸월 백작과 본격적으로 적대 관계에 들어간다 해도 그를 원하는 국가는 많을 거야.’

스틸월 백작가가 속해 있는 이 크로뇽 왕국만 해도 스틸월 백작과의 관계 악화를 무릅쓰고라도 지크에게 손을 내밀 게 분명했다.

무엇보다도.

‘지크 한 사람과 스틸월 백작령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하더라도 지크가 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군.’

정말로 말도 안 되는 말이다. 일개 개인이 영지를 가진 한 귀족 가문의 세력을 넘어서는 무력을 갖고 있다니.

그 개인이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존재고, 비교되는 귀족 가문이 작은 영지를 갖고 있는 낮은 작위의 귀족이라면 그나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스틸월 백작령은 절대로 작지 않았고 백작이라는 작위도 절대 낮지 않다.

게다가 스틸월은 변경백, 그것도 왕국의 변경백들 중에서도 최고,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세력이다. 그 세력은 웬만한 후작가조차도 넘어선다. 그런 세력이 일개 개인에게 밀릴 것이라니.

‘지크가 괴팍하긴 해도 나쁜 이가 아니라 다행이야. 만약 저 실력에 성정이 나빴다면….’

마왕. 소설 속에서나 보던 단어가 어른거리는 건 그가 유치해서는 아닐 것이다.

막말로 전설이나 소설 속에서나 등장하던 드래곤도 나타났는데, 마왕이 못 나타날 것은 또 뭐란 말인가.

어쨌든 지크의 성정이 썩 나쁘지 않은 건 많은 이들에게 다행이었다. 어쩌면 세계 전체에게도.

‘그건 그렇고 갑자기 폭증한 실력이 궁금은 하긴 한데 말이야.’

과장을 조금 보태 호기심 빼면 시체인 것이 마법사가 아니던가. 당연히 지크의 갑작스러운 실력의 상승도 그의 관심 대상이었다.

지크는 굳어 있는 모든 마력을 풀어주는 아티팩트의 덕이라고 설명을 했었다.

‘연구를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만.’

그러나 지크의 완곡한 거절에 윌위스는 입맛만 다시며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크!”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멀리서 손을 크게 흔들며 달려오는 한 엘프의 모습이 보였다.

“쯧쯧! 철딱서니 없는 모습 하곤.”

윌위스가 그녀의 모습을 보고 혀를 찬다. 순식간에 지크에게 다가온 레오나도 윌위스의 얼굴을 보고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성미 더러운 마법사도 있었네.”

“성미가 더러운 녀석을 상대할 때는 똑같이 대해주는 게 최고거든. 나이를 먹고 얻은 지혜지. 너도 잘 새겨 두려무나.”

“내가 너보다 더 나이 많거든?”

“아쉽게도 정신 연령이란 단순히 세월을 맞는다고 해서 저절로 자라지 않는 법이지. 인간 세계에서는 속된 말로 그걸 나잇값 못한다고 하니 그것도 새겨 두거라.”

둘의 사이는 여전했다. 저러고서도 서로에게 진심으로 악감정을 품지 않는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잘 지내고 있었어?”

지크의 물음에 레오나는 홱 얼굴을 돌렸다. 윌위스와 대면할 때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만면의 미소가 걸렸다.

“응! 백작가가 이것저것 편의를 봐주고 있어서 굉장히 편해.”

“그건 다행이네. 앞으로는 어떻게 할 계획이야?”

“귀환해야지. 물론 바로 할 건 아니야. 조금만 더 도와달라는 요청이 있었거든.”

병력 부족을 겪는 스틸월 백작의 요청에 그들은 조금 더 백작가를 돕고 있었다.

“귀환할 때까지는 계속 인간 도시를 돌아볼 생각이야!”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하는데 그 옆에서 놀겠다니. 철딱서니도 정도가 있어야지.”

“할 일은 끝내고 놀 거거든?”

또다시 말다툼을 시작한 둘. 둘이 하는 양을 재미있게 지켜보던 지크에게 한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지크 님. 백작님을 너무 기다리게 하는 건 아니신지.”

“아, 그랬었지.”

스틸월 백작에게 가는 길이었던 걸 잊고 있었다. 굳이 서두르는 건 아니었지만, 이 자리에 계속 머물 이유도 없었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백작께 가는 길이라고 했었지? 어서 가보게나.”

“다음에 같이 도시 구경 가자!”

윌위스와 레오나가 지크를 배웅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둘은 다시 자신들이 하던 일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둘의 다툼을 바라보고 있던 스녹과 엘레나의 인사까지 받은 후, 지크는 몸을 돌려 백작가의 저택으로 향했다.

저택 안에 들어서 백작의 방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틸 씨.”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틸과 만났다.

“안녕하십니까, 지크 씨.”

“요샌 어떻게 지내십니까?”

지크는 바로 틸과의 잡담에 들어갔다. 옆에서 한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지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최근 좀 여유가 났습니다. 그래서 윌터랑 엘리와 놀아줄 짬이 났죠.”

틸이 작게 미소 지었다. 그의 아들인 윌터와 죽은 친우의 딸인 엘리는 그의 살아가는 의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아이들과 다시 놀아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건 그에게 무엇보다도 기쁜 일이었다.

“용병단의 재편은 어떻습니까? 꽤 피해가 났다고 들었는데요.”

후방에서 철저하게 보호를 받고 움직이던 마법사들이나 역시 후방에서 재빠른 몸놀림으로 화살을 날리며 치고 빠지는 식의 전투를 주로 했던 엘프들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중상자가 좀 나온 정도.

그러나 연합군과 정면으로 치고받은 용병단은 그보다 피해가 커 사망자도 제법 나왔다. 당연히 부상자는 더 많았다.

“칼과 목숨을 걸고 돈을 벌어먹는 일이니만큼 언제나 있는 일입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분명 틸의 목소리에는 작은 씁쓸함이 감돌았다. 틸이 그렇게까지 말한 이상 지크가 뭐라 할 말은 없다. 그는 주제를 돌렸다.

“오는 방향을 보니 아버지의 집무실에서 오시던 모양인데, 뭔 일이 있으셨습니까? 혹 백작가가 고용비를 깎으려 한다거나 하면 제게 말해주시죠. 그대로 백작가를 들이받을 테니까요.”

과장 섞인 우스갯소리 같다. 하지만 지크의 성질과 무력을 모두 경험했던 틸은, 수틀리면 지크는 정말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닙니다. 고용비는 확실히 지급하고 보너스도 조금 더 주시겠다 하시더군요. 이번에 상의를 한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제가 들어도 괜찮겠습니까?”

“비밀스러운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저 저희 용병단을 백작가에서 통째로 고용하고 싶으시다는 것이니까요.”

“병사로 말입니까?”

“저를 포함해 몇 명은 기사 자격을 주신다고도 하셨습니다.”

“그 사람도 꽤 대범한 생각을 했군요.”

그러나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이번 전쟁으로 스틸월 백작가의 기사와 병사 상당수가 죽었다. 그 부분을 숙련된 전투 자원인 늑대의 송곳니 용병으로 채운다면 백작가의 전력 공백이 단숨에 줄어들 터다.

일반적인 용병들이라면 신용 문제 때문에 아무리 여유가 없다 하더라도 쉽게 그런 결정을 내릴 순 없겠지만, 늑대의 송곳니는 그런 면에서 신뢰할 수 있는 집단이었다.

“틸 씨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일단 고민을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승낙 쪽으로 상당히 기우신 모양인데요.”

“저번 사건 이후 용병 일에 회의를 느낀 녀석들이 꽤 많아서 말입니다.”

“닉의 일이 들켰습니까?”

“아뇨. 다만 닉의 죽음이 영향을 끼친 건 사실입니다. 이러나저러나 녀석은 용병단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었으니까요. 용병단의 덩치를 키울 때 들어온 녀석들도 문제였습니다. 그 사건 이후 전부 추려내긴 했지만, 자신들이 아무리 신용을 쌓아도 결국은 그 녀석들과 같은 용병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낀 모양입니다.”

용병이라도 상당히 자긍심이 높았던 늑대의 송곳니 용병단의 용병들에게는 꽤 자괴감이 드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저는 윌터와 엘리를 키워야 되는 입장이 아닙니까. 아무래도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저곳 떠도는 것보다는 한 곳에 정착을 하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랬다. 부단장인 맥스도 그 건에 관해서 투덜거리지 않았던가.

“기사 작위를 받는다면 신분도 확실해지고 수익도 안정적이 되죠. 아이들의 미래에도 분명 도움이 되리란 걸 생각하면, 분명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럼 승낙하시면 되잖습니까.”

“하지만 일생을 완전히 뒤바꿀 일이 아닙니까. 조금 고민을 해야죠.”

과묵한 틸이 이 정도까지 길게 말하는 걸 보면 확실히 그의 고민은 깊은 모양이었다.

“결정을 내리는 거야 틸 씨와 다른 용병 분들의 일이니만큼 깊게 참견은 못하지만, 조언을 하나 해드리자면 스틸월 백작가라면 여러분을 결코 나쁘게 대하지는 않을 겁니다.”

틸의 표정이 모호해졌다.

“지크 씨는 스틸월 백작님과 사이가 안 좋지 않으셨습니까?”

틸도 지크와 스틸월 백작의 사이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제가 그 작자랑 사이가 나쁜 것과 그 작자가 당신들을 어떻게 대우할지는 다른 이야기죠.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 작자가 나쁜 인간인 건 아닙니다. 특히 자기 부하들과 영민들에게는 꽤 좋은 영주죠. 제 대우야 외가와 어머니의 문제, 계승권 문제 등등 여러 가지가 겹쳐서 터진 거니까요.”

그리고 지크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렇다고 제가 그 작자와 다시 하하호호 하게 될 일은 없겠지만요.”

“그렇군요. 조언 감사합니다.”

틸은 지크의 조언을 깊이 새겼다.

둘은 몇 마디를 더 나누고 헤어졌다.

곧 지크는 백작의 집무실 앞에 도착했다.

쿵! 쿵!

“누구냐!”

“나요!”

집무실에서 들려온 백작의 음성에 지크가 퉁명스럽게 외쳤다.

이름도 뭣도 알리지 않은 불손하기 그지없는 소리였지만 찾아온 이가 지크라는 걸 너무도 잘 증명하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집무실 안쪽에서 백작이 말했다.

“들어와라.”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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