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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542화 (542/628)

제542화

허공에서 쏘아지는 특수 브레스.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의 분노 그 자체를 구현한 것 같은 그 공격은 어마어마했다.

인류 최고의 실력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들이 잔뜩 모여 있는 상태에서도 고작 방어만이 가능했다. 그것도 엄청난 피해를 입고서.

만약 드래곤이 계속 하늘 저 높은 곳에서 그 특수 브레스만 쏘아댈 때 대체 어떤 대처를 해야 할지, 지크도 당장은 뚜렷이 생각나는 게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드래곤은 특수 브레스를 연사하지 않았다.

‘아니, 못한 거야.’

드래곤의 자욱한 살기는 여전하다. 게다가 자신과 싸우는 작은 인간들이 위험하다는 걸 확실히 인식하고 있다.

애초에 클로원 제국의 인간들에게 잡혀 수정 속에 봉인되었으니 덩치가 작은 인간이랍시고 얕볼 리 없다.

그런 드래곤이 단 한 방으로 지크 일행을 빈사 상태로 만든 공격을 계속하지 않는다는 건,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뜻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자신에게도 부담이 될 가능성이 커.’

루벨라가 자신의 치유를 포기하고 일단 지크부터 회복시켰을 정도로 그들은 특수 브레스 이후 방어를 할 여력이 되지 않았다. 당연히 후속타가 날아와야 했다.

하지만 드래곤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천천히 내려오더니 그냥 땅에 내려앉았다.

무엇보다 지금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지만 특수 브레스를 쏜 바로 직후, 녀석의 입과 목, 가슴 부위가 새빨갛게 물든 걸 지크는 확인했다.

‘아마 브레스의 고열을 드래곤의 몸도 감당하지 못한 게 아닐까.’

그렇다면 그 특수 브레스는 드래곤 입장에서 철저히 양날의 검이다.

‘쉽게 쓰지도 못할 테고, 쓴다 해도 약점이 나타나지.’

즉, 녀석의 그 공격은 지크에게 나쁜 일만도 아니라는 뜻이다.

드래곤의 공격 목표가 바뀌었다.

쿠오오오오!

포효를 내지르며 드래곤이 돌진했다. 입에서 브레스를 뿜어 앞에 있는 적들을 흩어놓는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지진이 난 듯 땅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루벨라를 노리나?’

녀석의 움직임이 뚜렷하게 루벨라와 첼시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회복역을 끊으려는 움직임.

‘점점 전투에 익숙해지고 있군. 아니, 정신을 차리고 있다고 해야 하나?’

증오와 분노에 우격다짐으로 무조건 클로원의 검을 들고 있는 자들과 그 방해꾼들을 제거하려던 움직임이, 점점 기초적이지만 전술적 판단에 의한 움직임으로 바뀌고 있었다. 회복역을 먼저 끊는 건 싸움의 기본 조건이 아니던가.

물론 루벨라를 노리는 걸 와이그가 가만 두고 볼 리 없다. 다른 이들도 회복역의 중요성을 알기에 루벨라와 첼시를 보호하려 들었다.

‘하지만 증오가 사라진 건 아닌 모양이야.’

그렌은 또 도주를 시도했다. 하지만 드래곤은 그렌의 기색을 순식간에 눈치채고는 마법을 그렌을 향해 쏘아 보냈다.

루벨라와 첼시를 먼저 노려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일시적이나마 그녀들을 노리는 걸 중단하고 그렌을 잡아둔 걸 보면 무척이나 그 증오가 사무치는 모양이다.

루벨라와 첼시를 노리던 드래곤의 공격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드래곤의 상처가 늘어간다. 하지만 지크 일행의 표정도 썩 좋지 않았다.

그들은 마력을 한계까지 짜내고 있었다. 인간들 중에서는 상당한 마력 보유량을 자랑하는 그들이지만 아무래도 지크와 드래곤에 비하면 손색이 있을 수밖에 없다.

드래곤의 상처가 늘어나는 만큼 그들의 마력 보유량도 줄어갔다. 마력을 아낄 상황이 아니었기에 그 속도는 당연히 빨랐다.

“이러다가 마력 적은 이들이 전투에서 제외되기 시작하면 우리가 밀릴 걸세. 루벨라 님과 윈드네 저것의 성력도 한계가 있고.”

와이그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지크는 드래곤과 끝까지 싸울 자신이 있었지만, 역시 저 괴물과 혼자 싸워 이길 수는 없었다. 오히려 마력을 다 써버린 자들을 보호하다가 손도 못 쓰고 당할 수도 있었다.

‘결국 전투를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는 소리군.’

“사람들에게 말 좀 부탁드립니다. 아까처럼 최대한 모인 후 협력해 공격을 해달라고요.”

“그럼 그 브레스가 또 올 텐데?”

특수 브레스를 경계해 지크 일행은 아까처럼 극단적으로 모여 싸우지 않고 있었다.

“그걸 노리는 겁니다.”

“하긴, 반동이 큰 것 같긴 하더군. 전투를 빨리 끝내려면 위험을 감수해야겠지.”

경험 많은 와이그도 드래곤의 약점을 눈치챈 상태였다.

와이그는 다른 이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움직였다.

콰앙! 콰앙!

드래곤을 향하는 공격이 다시 격렬해졌다. 지크 일행이 다시 모인 걸 드래곤은 보았다. 그것의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특수 브레스를 쏘아야 할까. 하지만 그 일격을 봤으면서도 저렇게 모인다는 것 자체가 의문이었다.

함정일까. 아니,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전투를 최대한 일찍 끝내려 하는 걸지도 모른다. 적들 몇몇의 얼굴에 피로함이 슬슬 묻어나는 게 드래곤에게도 보였다.

드래곤은 결심했다. 하늘 높이 날면 적들의 공격 수단도 제한된다. 특수 브레스를 쏜다면 잠시 하늘을 나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지치지만, 그걸 맞고 적들도 여유가 있지는 않을 터. 적어도 아까처럼 빈사 상태에 빠질 것이 분명했다.

펄럭!

드래곤이 날개를 움직였다. 그것의 몸이 둥실 뜨며 하늘로 올라갔다.

우우우웅!

이미 입에는 고온의 마력이 잔뜩 모이고 있다. 동시에 주변에서도 마법이 구현되기 시작한다. 만족스러운 고도에 도달한 드래곤은 아래를 보았다. 적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떨어져 있지 않다면 이 브레스의 범위를 벗어나는 건 무척이나 어려우니까. 모여서 최대한 막을 수밖에.

콰아아아아앙!

다시 한번 브레스가 불을 뿜었다. 드래곤은 입과 목, 가슴이 후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이 고통으로 변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고온의 브레스에도 끄떡 않던 몸이 이 특수 브레스에는 버티지 못한다. 때문에 그리 길게 쏘아낼 수도 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위력은 일반 브레스보다 월등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놈들을 죽이지 못했다. 때문에 드래곤은 조금 더 무리를 했다. 고통이 가중됐다.

텁!

브레스를 멈추고 입을 닫았다. 하지만 드래곤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목 너머로 느껴지는 뜨거움을 최대한 토해냈다. 강렬한 통증은 여전했다. 스스로 목을 쥐어뜯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드래곤은 꾸욱 눌러 참고 브레스가 강타한 지점을 바라봤다. 적들이 어떤 상태인지 확인해야 했다.

그때, 드래곤의 기감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두 개의 기운이 쏜살같이 올라오고 있었다. 드래곤에게는 치가 떨리도록 익숙한 것들이다.

클로원 황태자의 검과 장군의 검.

그리고 지금, 그 검들을 다루는 이는 클로원 황제의 검의 냄새가 진하게 나는 자. 드래곤에게 가장 위협적인 인물이었다.

드래곤은 다급해졌다. 설마 그 브레스를 버티고 이 고도까지 뛰어오르는 것인가.

아직도 벌건 입과 목, 가슴은 연기를 피워내고 있다. 그 단단하던 비늘이 달아올라 물러지고 질긴 근육 또한 축 늘어진 상태다.

이 상황에 저 검들이 꽂힌다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커다란 상처를 입을 것이다. 입과 목에 상처를 입는다면 그래도 견딜 수 있었지만 가슴은 다르다. 만약 심장에 저 검이 닿기라도 한다면 끝이다.

힘이 빠진 날개를 어떻게든 펄럭거리며 드래곤은 팔로 가슴을 감쌌다.

하지만 드래곤의 위기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에스텔레이드와 토르니움을 들고 올라오는 지크를 상상하던 드래곤. 하지만 정작 본 광경은 맥이 빠지는 것이었다.

덩그러니 두 개의 검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저 검을 사용하는 인간은 보이지 않는다.

아까는 당황해 느끼지 못했지만, 클로원 황제의 검의 기운은 아직 저 밑에 있다. 그저 자신을 향해 검만 던진 것이다.

드래곤은 긴장을 풀었다. 역시 적들은 이 고도에 있는 자신을 어찌할 수 없다. 고작해야 화살과 마법 정도만이 위협적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약체화된 상태에서도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

그럴진대 고작 검을 던져 위협을 하다니.

드래곤은 가슴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날아오는 검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증오스럽기 짝이 없는 클로원의 검. 그것들을 빼앗으면 적을 상대하기 무척 쉬워질 것이다.

아무리 그것들이 날카롭다지만 주인조차 없는 검을 낚아채는 데 어려움을 느끼진 않는다.

하지만 손에 느껴진 건, 비늘 너머로도 느껴지는 날카로운 예기가 아니었다.

퉁!

갑자기 나타난 지크가 드래곤의 손을 걷어차고 몸을 날린다.

어느새 그의 손엔 에스텔레이드와 토르니움이 쥐어져 있었다. 마력을 가득 품고 언제든 토해낼 순간만 기다리고 있는 두 개의 검.

그의 목표는 누가 봐도 아직 벌건 열을 뿜어내고 있는 드래곤의 가슴이었다. 지크의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가 햇빛을 받고 빛났다.

콰드드드득!

끄아아아아아아아!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괴성이 드래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특수 브레스에 물러진 비늘은 에스텔레이드의 빛을 막아내지 못했고 축 늘어진 근육은 토르니움의 거친 마력에 사정없이 찢어졌다.

쩍 벌어진 가슴에서 피가 용솟음친다. 지금껏 웬만한 상처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적을 죽이러 들어갔던 드래곤도 지금의 상처에는 몸부림칠 수밖에 없었다.

후웅!

드래곤이 팔을 휘젓는다. 고통과 당황 때문에 아무렇게나 휘두른 것이지만, 드래곤급의 괴력이 있다면 그 자체로 치명적인 공격이다.

게다가 그 상황에서도 무척이나 정확했다. 공격이 지크에게 적중했다.

콰득!

토르니움을 든 팔이 통째로 뜯겨나갔다. 피분수가 솟구치며 팔이 토르니움과 함께 저 멀리 떨어져 내린다.

하지만 지크의 눈은 여전히 고요했다. 오히려 자신의 팔을 뜯어낸 드래곤의 발톱을 발로 차 다시 한번 몸을 움직였다.

콰드드드드드득!

끄아아아아아아아악!

휘둘러진 에스텔레이드의 빛. 더욱 깊어진 드래곤의 상처. 그리고 더욱 끔찍해진 드래곤의 비명.

드래곤이 다시 한번 손을 휘둘렀다. 과연 썩어도 드래곤인지 이번에도 발톱은 정확히 지크를 노렸다. 한 팔은 쉽게 내줬지만 다른 팔마저 내줄 순 없다. 그랬다간 겨우 잡은 이 기회를 놓친다.

까아아아앙!

이번엔 에스텔레이드가 지크의 손에서 튕겨나갔다. 그의 손은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엉망진창으로 짓이겨져 있었다.

그러나 지크는 오히려 그 힘을 이용해 드래곤의 상처 부위로 접근할 수 있었다.

폭포처럼 용솟음치는 드래곤의 피를 뚫고 지크는 드래곤의 상처 안으로 비집어 들었다.

드래곤의 몸부림이 심해진다. 단단한 드래곤의 발톱이 지크를 잡기 위해 가슴을 파헤쳤다.

인간이라면 가망이 없을 만한 상처가 생겼지만 드래곤의 생명력은 강했다. 어느 정도 요양만 취한다면 이 정도의 상처라도 충분히 치유할 수 있다.

하지만 지크도 드래곤이 이 정도로 쓰러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크는 한 팔과 다리를 이용해 계속 드래곤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움직임에 거칠 것은 없었다. 목표는 이미 자신의 존재를 극명히 드러내고 있었다.

곧 어둠 속에서 피에 잔뜩 절여진 그것이 지크의 눈앞에 나타났다.

사람들이 드래곤 하면 바로 떠올리는 두 가지. 하나는 브레스. 그리고 또 하나가 눈앞에 있는 드래곤의 심장이다.

심장이 뿜어내는 어마어마한 마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지크는 손을 들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드래곤의 심장의 강도도 엄청나, 드래곤의 비늘에 못지않다고 한다.

에스텔레이드도 토르니움도 잃은 채, 자세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지금 드래곤의 심장에 유효한 타격을 입힐 능력은 지크에게 없어 보였다.

지크는 손을 쳐다봤다. 여러 손가락이 꺾이고 손바닥과 손등은 짓뭉개져 뼈가 보인다. 하지만 검지만은 멀쩡했다.

지크는 검지를 깨물었다. 손가락 앞부분이 뜯겨나갔다. 피가 흘러내리는 살점 안으로 금속이 보인다.

회귀 전, 그렌에게 마지막으로 엿을 먹였던 바로 그것.

운명을 비트는 열쇠.

지크는 마력을 가득 담아 손가락을 드래곤의 심장에 찔러 넣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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