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1화
드래곤이 브레스와 마력을 동시에 준비하는 걸, 지크는 신중하게 분석했다.
‘단순히 브레스와 마법을 동시에 쓰려는 건가?’
분명 무시무시한 공격이다. 안 그래도 마법 하나하나가 강력하기 그지없는데 거기에 브레스까지 얹히다니.
하지만 새삼 위협을 느낄 만할 공격 또한 아니었다. 그것뿐이라면 지크 일행은 드래곤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방어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지크는 드래곤의 공격이 고작 그런 걸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쿠우우우!
마력이 소용돌이치며 드래곤 주위에 마법이 생성된다.
지크는 윌위스의 곁으로 가서 물었다.
“저게 뭔지 알겠습니까?”
“단순한 공격마법이 아닌 건 확실하네.”
“다른 건 모르시고요?”
“으음, 속성이 모두 다른 건 확실한 것 같다만….”
윌위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드래곤을 살폈다.
“일단은 한 번 찔러보겠네.”
워낙에 높은 고도에 있기에 드래곤을 공격할 방도가 적어진 상태. 윌위스가 마법을 날리고 레오나가 화살을 쏘아 보냈다.
하지만 그것들이 닿기 전에 드래곤의 마법이 먼저 발동했다.
우우웅!
드래곤의 앞으로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낸 마법들. 그것들은 아래로 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곁에 있던 다른 마법들에 달려들었다.
마법이 실패한 것일까. 그러나 그걸 본 윌위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마법들이 옆에 있는 마법의 위력을 증폭시키고 있네.”
마법이 속성의 상성을 이용해 옆에 있는 마법을 키워주고, 그 마법은 또 다시 옆의 마법을 키워준다. 다섯 가지의 마법은 그렇게 서로를 계속해서 증폭시켰다.
브레스의 마력 또한 고점에 다다랐다. 남은 건 내뱉는 것뿐.
윌위스가 드래곤의 의도를 눈치챈 건 그때였다.
“저 새끼! 마법으로 브레스를 강화할 셈이다!”
윌위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드래곤의 마법이 브레스로 빨려들었다.
후우우욱!
브레스에서 나오는 빛이 더 강해졌다. 열과 마력은 말할 것도 없다. 드래곤이 브레스를 토했다.
투화아아악!
공기를 가르며 거대한 붉은색의 선이 쏘아졌다. 이제야 도착한 윌위스의 마법과 레오나의 화살은 브레스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렸다.
그것이 지면으로 다가온다. 마치 태양이 긴 꼬리를 드리운 채 땅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한 곳에 모여어어!”
지크가 커다랗게 소리를 질렀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바로 지크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피할 순 없다. 일반 브레스보다 범위가 더 넓고, 피한다 해도 드래곤이 바로 브레스의 방향을 바꿀 것이다.
일반 브레스는 직격 범위만 벗어난다면 커다란 부상을 당하진 않았지만, 지금 쏘아진 브레스의 마력을 생각하면 저건 스쳐도 즉사였다.
지크가 공격을 막아준 덕에 협력해 공격을 하기 위하여 일행이 가까이 붙어 있던 것도 불운이었다.
싫든 좋든 일단 막아야 했다.
지크는 가장 앞장서 에스텔레이드와 토르니움에 마력을 잔뜩 집어넣었다.
“뭐든 좋아! 시간에 맞출 수 있는 것으로 가장 강한 기술을 내 신호에 맞춰서 쏟아부어!”
지크의 지시 아래 사람들이 일제히 기술을 준비했다.
드래곤의 브레스가 지척까지 다가왔다.
“지금!”
지크가 크게 소리치며 에스텔레이드와 토르니움을 휘둘렀다.
빛과 어둠의 마력이 광폭하게 돌진했다. 그 뒤를 따라 다른 일행도 각자의 공격을 쏟아부었다.
전부 전투에 일가견이 있는 자들인 만큼 다른 이의 공격을 방해할 만한 공격을 한 이는 없었다.
콰아아앙!
브레스와 일행의 공격이 맞부딪친다. 에스텔레이드와 토르니움에서 나간 강렬한 마력은 브레스에 맹렬히 저항했지만, 마법으로 인해 극도로 강력해진 브레스는 두 힘만으로는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곧 다른 힘들이 두 힘을 지원했다.
두 진영 사이로 격렬한 마력과 충격파가 치솟았다.
콰아아앙!
커다란 폭발이 일었다.
지크는 급히 에스텔레이드와 토르니움을 교차하고 마력을 불러일으켰다. 그 앞으로 루벨라의 성법이 장벽을 쳤다.
곧 폭발이 그들을 휩쓸었다.
고온의 마력이 말 그대로 사방을 뒤집는다. 지면을 들어내고 새까맣게 태운다.
가까이 있던 초목들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었다. 마치 그곳만 지옥을 구현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사람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력한 일격이 지크 일행을 덮쳤다. 도저히 그들이 살아남았을 것 같지 않았다.
저들이 모두 죽었다면 과연 드래곤의 다음 표적은 누가 될 것인가. 사람들의 등허리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래서였다.
화염이 거치고 폭연이 가신 후, 아직 꿋꿋이 서 있는 지크 일행의 모습을 보고 환호를 지른 것은.
우와아아아아!
그건 진영을 가리지 않았다.
아직 진영을 유지하고 있는 스틸월 백작가는 물론이고, 사방으로 흩어졌음에도 아직 일부가 도망가지 않고 남아 있던 연합군 쪽도 마찬가지였다. 스틸월 백작군의 응원군으로 참여한 카르위먼의 사람들도 마찬가지.
그만큼 갑자기 나타나 인간들을 유린하기 시작한 드래곤에 대한 공포감은 컸다.
브레스에서 살아남긴 했지만 지크 일행의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루벨라의 장벽은 가장 먼저 깨졌고, 지크를 위시한 다른 이들이 최선을 다해 막았다 해도 브레스의 여파를 모조리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다행히 죽은 이들은 없었다. 루벨라가 회복을 시키면 다시 전투력을 되찾을 수 있다.
그러나 루벨라도 상당히 심한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온몸에 화상을 입은 그녀가 지크를 향해 지팡이를 내민다.
먼저 지크를 치료하려는 것이었다.
원래는 회복 역할인 그녀 자신을 먼저 치료해야 했지만, 지금은 일행 모두가 부상에 만족스럽게 움직일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가장 강한 지크를 치료해 드래곤을 견제시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럼 당연히 전체적인 치료가 늦춰진다. 아무래도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는 치료가 늦어지는 것이다.
전체적인 치료가 늦어진 상태에서 드래곤이 급습해올 경우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루벨라도 상당히 초조해하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지크의 치료를 끝내고 자신을 치료해야 했다.
그러나 도중에 끼어든 사람이 있었다.
“넌 네 상처나 회복해!”
고통을 참는 듯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가 루벨라를 만류한다. 루벨라가 목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봤다.
“윈드네?”
그렌의 동료였던 첼시였다. 그녀도 브레스에 상당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러나 고통을 꾹 참고 그녀는 지크를 향해 지팡이를 뻗었다.
우우웅!
첼시의 지팡이 끝에서 빛무리가 뻗어 나가 지크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지크의 상처가 서서히 치유되어 갔다.
그 모습을 놀란 눈으로 쳐다본 것도 잠시. 루벨라는 바로 지크에게 뻗었던 지팡이를 회수해 자신의 치유를 우선하기 시작했다.
회복되는 자신의 신체를 한 번 바라본 지크가 첼시에게 눈을 돌렸다.
그렌에게 버림받고 할튼이 죽은 후, 그녀와 피나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드래곤과의 전투 지점 근처에 있던 건 알고 있었다.
‘드래곤이 그렌 제너드 그 새끼를 공격한 걸 보고 도망갈 엄두를 내지 못한 거겠지.’
그리고 조금 전의 브레스가 뿜어졌을 때, 그녀들도 일행이 모인 곳으로 달려왔었다. 그녀들도 이번 브레스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껴 살길을 찾은 것이다.
“괜찮나요?”
첼시가 지크에게 묻는다. 그녀도 상당한 미인이다. 거기에 온몸에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다른 이를 위해 치료를 해주고 있는 상황.
일반적인 남자라면 감동을 받을 만한 일이건만 지크는 그저 재미있다는 듯 피식 웃었다.
“어차피 파멸이 예상된 미래. 여기서 우리를 도와 혹여나 드래곤을 잡을 수 있다면 재기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인가.”
첼시의 볼이 살짝 떨렸다.
“그럴 리가요. 아무리 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런 일에는 힘을 합쳐야죠.”
“내숭 떨 필요 없어. 성녀님에게 들은 말도 있고 우리가 본 것도 있는데 이제 와서 내숭을 떨어봐야 통하겠냐? 저기 성녀님이 끔찍한 걸 본 얼굴을 하고 있잖아.”
“아, 역시 안 통하나.”
첼시는 바로 가면을 내던졌다.“정확해요. 이렇게 몰락할 생각은 없으니까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죠.”
첼시는 지크에게서 지팡이를 뗐다.
“회복 끝났어요.”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지크는 자신의 몸을 한 번 살피고 위를 올려다봤다. 드래곤은 여전히 하늘에 떠 있었다.
“너희들이 목숨을 건다면 기회를 한 번쯤은 얻을 수 있겠지. 하지만 이제 성녀 자리는 꿈 깨라.”
“루벨라보다 제가 더 잘할 자신 있어요!”
지크는 조금 떨어진 곳에 여전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렌을 손가락질했다.
“남자 보는 눈이 없잖냐.”
“젠장!”
성녀 자리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말이지만, 그렌이 해놓은 짓이 워낙에 화려한 탓에 첼시는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욕설만 내뱉었다.
지크는 다시 두 검을 들고 일행을 향해 쏟아지는 마법을 걷어냈다. 루벨라와 첼시에게 치료를 받은 사람들도 곧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꿍꿍이가 천박하네.”
“시끄러워.”
루벨라의 빈정거림에 첼시가 투덜거렸다.
루벨라도 그 이상 말하진 않았다. 개인적으로 싫어한다고 하더라도 첼시의 실력은 분명 신관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했다.
회복역이 하나 더 늘어난다면 분명 전투에서 유리해지니 개인적 호오를 떠나 전력으로서 그녀의 합류는 분명 환영할 만한 것이었다.
전투에 합류한 건 첼시만이 아니었다. 피나도 엘레나의 곁에서 드래곤의 마법을 방해했다.
‘어떻게든 우리 학파의 명맥을 이어나가려면 여기서 공을 쌓아야 해!’
드래곤이 얼마나 만만치 않은 상대인지는 충분히 보았고, 패배한다면 모두 죽음이라는 결과가 나온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첼시와 피나는 둘 다 목숨을 걸고 있었다.
그만큼 그녀들이 내몰린 상황은 심각했다.
그렇게 둘은 드래곤과의 전투에 참여했고, 지크 일행도 둘의 참전을 인정했다.
루벨라와 첼시가 있는 곳으로 라라가 내려앉았다. 드래곤의 마법에 스친 듯, 그녀의 팔에 새빨간 불꽃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산 채로 타들어 가는 고통에 라라는 굉장히 인상을 쓰고 있었다. 아무리 불꽃을 꺼뜨리려 해도 그것은 꺼지지 않았다.
“꺼지지 않는 마법의 불꽃이야.”
곁에 있던 피나가 라라의 팔에 지팡이를 갖다 댔다.
콰드득!
라라의 몸에 얼음이 자라나 불꽃을 꺼뜨렸다. 그리고 팔을 뒤덮고 있던 얼음도 곧 떨어져 내렸다. 새까맣게 탄 팔은 첼시의 성법에 곧 멀쩡하게 되돌아갔다.
“고마워!”
그 한 마디를 남겨놓고 라라는 다시 전투로 되돌아갔다. 검을 든 채 드래곤에게 달려간 그녀가 한스와 합세해 드래곤에게 검을 겨누는 장면이 보였다.
콰아앙!
옆에서는 화염과 대지가 힘을 합쳐 드래곤을 노렸다. 엘레나가 스녹과 힘을 합쳐 공격을 가한 것이다.
공격 대부분은 스쳐 지나갔지만 그래도 드래곤에게 타격을 주는 것에는 성공했다.
그에 비해 피나는 혼자서 드래곤을 향해 얼음을 날렸다.
그 모습을 본 첼시는 슬쩍 그렌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드래곤이 날린 또 하나의 견제 마법에 또다시 벌벌 떨며 땅을 뒹구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젠장!’
지크에게 들은 ‘남자 보는 눈이 없다’라는 소리가 너무도 뼈아팠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