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7화
가장 먼저 날아온 건 또 육탄 공격이었다. 드래곤이 거대한 발을 들어 올린다.
그대로 지크 일행을 향해 내리찍었다.
쿠우우웅!
드래곤의 거대한 무게에 더해 강대한 근력에서 나오는 속도, 거기에 온몸을 감싸고 있는 비늘의 단단함은 단순한 발 구르기를 튼튼한 건물 하나 정도는 쉽사리 붕괴시켜 버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공격으로 탈바꿈시켰다.
다행히 지크 일행은 재빠르게 그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드래곤의 빈틈을 파고들려 했다.
하지만 드래곤은 그들의 생각보다 더 강대한 생물이었다.
물 흐르듯 드래곤의 거체가 회전한다. 종으로 휘둘러진 아까와는 달리 이번엔 횡으로 휘둘러진 꼬리가 일행을 덮쳤다.
후우우웅!
동반되는 바람소리만으로도 일격의 위력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흡!”
틸이 두 다리에 힘을 줘 굳건히 대지를 디딘다. 그리고 검을 세웠다.
계속 도망칠 수는 없다. 아무리 상대가 드래곤이라도 공격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게다가 틸은 자신도 있었다. 세련된 기술은 없지만, 힘 하나만큼은 누구한테도 밀리지 않는다.
드래곤의 공격도 체중을 실은 단순한 휘두르기. 거기에 성녀의 존재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더라도 괜찮다는 안정을 주었다.
“흐아아앗!”
때문에 틸은 언뜻 무모해 보이는, 드래곤의 꼬리 공격을 전면으로 받아낸다는 일에 도전했다.
꽈아아아아앙!
틸의 검과 드래곤의 꼬리가 부딪쳤다. 어마어마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결과는 즉시 나왔다.
“끄으윽!”
틸의 몸이 마치 급류에 휩쓸린 나뭇잎처럼 힘없이 튕겨나갔다.
“스녹!”
지크의 외침에 스녹이 바로 대지를 움직였다. 손의 모양으로 치솟은 흙이 틸을 안전하게 받아냈다.
루벨라가 급히 달려갔다. 스녹은 틸을 루벨라 쪽으로 옮겼다
지크는 틸의 상태를 확인했다. 거리가 어느 정도 있었지만 그의 상태를 알아보기에 어렵진 않았다.
‘팔이 작살났군.’
틸의 팔은 끔찍했다. 손가락부터 팔뚝까지 기괴하게 뒤틀려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조각난 뼛조각이 피부를 뚫고 나온 모습은, 신관을 동원하지 않는다면 결코 원상태로 치료할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저 상태로 어떻게든 검을 놓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에 비해 드래곤의 피해는….’
지크는 회수되어 가는 드래곤의 꼬리를 봤다. 틸의 검과 부딪친 부분에 핏물이 흩날리는 게 보였다. 드래곤도 분명 상처를 입은 게 분명했다.
그러나 틸의 부상에 비하면, 그 상처는 무척이나 작았다.
지크는 틸의 옆으로 움직였다. 루벨라의 막대한 성법에 의해 틸의 상처는 눈에 띄게 수복되고 있었다.
“반응은 어땠습니까?”
지크가 물었다. 아직 느껴지는 고통에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틸은 대꾸했다.
“힘, 마력 모든 것이 저보다 위였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단단하더군요.”
“단단하다라….”
드래곤의 비늘. 그 강도는 미스릴이나 오리할콘 같은 희귀 금속에 버금간다 전해지는 것이다.
지크는 드래곤의 몸을 살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붉은 색의 비늘이 빈틈없이 뒤덮여 있었다.
크아아아아!
드래곤이 포효했다. 꼬리에 난 상처가 녀석의 분노를 가열시킨 모양이었다.
드래곤이 손을 움직였다. 거대한 몸체와 육중한 뒷발, 긴 꼬리에 어울리지 않는 상당히 왜소한 팔과 손이다. 때문에 약간 우습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움직임이 불러온 영향은 절대 우스운 것이 아니었다.
우우우웅!
드래곤의 몸에서 마력이 요동친다. 밖으로 흘러나온 마력이 규칙적으로 배열되기 시작했다.
‘마법!’
드디어 마법의 종주라 불리는 드래곤의 마법을 손수 견식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걸 좋아하는 인물은 하나도 없었다.
“…농담이겠지?”
윌위스가 중얼거렸다. 마법에 해박한 그가 가장 먼저 눈치채고 입을 열었을 뿐, 아마 다른 이들도 그와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지크 또한 마찬가지였다.
“5중 영창이라고? 그런 말도 안 되는…!”
결국 중얼거림으로만은 참을 수 없었는지 윌위스가 꽥 소리를 질렀다.
그들의 눈앞, 드래곤의 주변으로 막대한 마력이 소용돌이치며 마법이 완성되고 있었다. 문제라면, 마법 다섯 개가 동시에 완성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영창도 아니잖아.’
드래곤은 긴 주문 같은 것을 외우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건 5중 영창 파기라 이름 붙여야 할 터. 그러나 윌위스에게 친절하게 정정을 할 여유 따위는 전혀 없었다.
마법의 속성은 제각각이었다. 화염, 바람, 물, 대지, 번개. 여러 개의 마법을 사용할 때, 같은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쉽고 그 다음으로 같은 속성의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쉬우며, 다른 속성의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그 최상위급 기술을 드래곤은 다섯 개나 구현하고 있었다.
완성된 다섯 개의 마법이 일행을 향해 쏘아졌다.
“두 개는 내가 맡으마!”
윌위스가 크게 외치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도 이미 이중 영창으로 두 개의 마법을 준비해둔 상태였다.
콰아앙!
윌위스의 마법이 드래곤의 마법과 충돌했다. 윌위스의 마력이 무섭게 빠져나갔다.
퍼엉!
윌위스는 드래곤의 마법을 상쇄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건 고작 두 개뿐. 아직 세 개가 더 남아 있었다.
스녹이 대지를 일으켜 마법 앞에 벽을 세운다. 그에 맞춰 엘레나도 지팡이를 휘둘렀다. 회복을 끝낸 틸이 검에 마력을 넣어 검기를 날렸고 와이그도 성력을 뿜어냈다. 레오나 또한 이번엔 활을 잠시 내려놓고 마법을 쏘아 보냈다.
퍼엉! 퍼엉! 퍼엉!
지크 일행의 협력에 의해 드래곤의 마법이 모조리 요격됐다. 하지만 안도할 새도 없었다.
쩌어어억!
이미 마법이 상쇄되기 전부터, 드래곤의 입에서는 새로운 고열의 마력이 생성되고 있었다.
‘음.’
그 모습을 보며 지크는 생각했다.
‘일찍 끝내기는 글렀군.’
콰아아아앙!
드래곤의 브레스가 다시 한번 뿜어졌다.
* * *
싸움은 무척이나 거칠었다. 과격했다. 그리고 공포스러웠다.
콰아앙!
또 한 번의 폭음이 인다. 드래곤이 엉거주춤하게 몸을 내린 후 앞발을 휘둘렀다.
다른 부위와 비교하면 무척이나 작은 앞발이지만, 그 파괴력은 결코 다른 부위 못지않았다. 지면에 드래곤의 손톱자국이 길게 새겨졌다.
탓!
한스와 와이그가 드래곤의 다리를 노리고 덤벼들었다. 하지만 거세게 휘둘러진 꼬리가 그들을 방해했다.
동시에 드래곤의 주위에서 다시 마력이 결집됐다.
“이런 젠장!”
윌위스가 부랴부랴 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마법사인 윌위스였지만 지금 그는 고작해야 드래곤의 마법 일부를 상쇄하기에도 바빴다.
‘그렇군.’
지크는 회귀 전 만났던 엘프가 자신을 보고 마력량은 드래곤과 동등하다고 했던 걸 떠올렸다.
솔직히 기분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다. 전설 속의 드래곤과 동등한 마력량이라니. 자신은 전설의 드래곤과 동급이라며 마음속으로 우쭐댔었다.
하지만 완전히 틀렸다.
‘어디까지나 ‘마력’만 동등했던 거로군.’
드래곤은 마력만 많은 것이 아니었다.
거대한 육체는 그 자체만으로도 흉기. 그저 움직이는 것만으로 인간을 터뜨리고 대지에 자국을 낼 수 있다.
그 몸을 감싼 비늘은 어떤가. 틸이나 와이그 같은 최상급의 검사가 안간힘을 써야 겨우겨우 부술 수 있을 정도다.
마법은 후에 마도의 마왕이라고까지 불리는 윌위스가 경악을 할 정도로 능수능란하게 사용했고 거기에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막대한 위력의 브레스.
지크와 일행은 왜 드래곤이 전설 속에서 그토록 공포스럽고 경외받는 존재로 나오는지 아주 절절이 느꼈다.
물론 지크 일행이 지크가 회귀하기 전의, 전성기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다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크는 아직 마력이 전부 해방되지 않았다. 윌위스와 틸도 굉장히 강하긴 했지만, 회귀 전 마도의 마왕과 재난의 마왕이라 불렸을 적에 미치지는 못한다. 루벨라와 레오나도 마찬가지.
그나마 와이그는 회귀 전보다 지금이 오히려 전성기였지만, 마인 시대에도 정말로 최상위급 마인에 비하면 손색이 있던 게 와이그의 실력이다.
즉, 지금 일행의 힘으로 드래곤을 쓰러뜨리긴 버거워 보였다.
‘젠장, 내 마력만 전부 풀렸더라도 어떻게든 해보는 건데.’
일단 마력만은 드래곤과 동등하지 않던가.
‘병사들은 동원해 봤자야.’
드래곤에게 병사들의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전략은 희생자들의 숫자만 늘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병사들의 무기는 드래곤의 비늘을 뚫지 못하고 드래곤의 한 걸음만으로 수십의 병사가 육포가 되어버릴 것이다.
‘백작가의 정예 기사들에게는 어느 정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승기를 잡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콰아앙!
다시 한번 드래곤의 꼬리가 지면을 훑었다. 한스와 와이그가 황급히 피하는 모습이 보인다.
드래곤이 지면에 내려왔을 때는 다행이라고 여겼다. 아무래도 비행을 하는 몬스터보다는 지면에 두 다리를 딛고 있는 몬스터가 더 상대하기 수월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은 반대였다. 드래곤의 압도적인 육탄 공격은 지크 일행을 사정없이 몰아치고 있었다. 차라리 공중에서 브레스와 마법만으로 공격하는 것이, 방어하는 데는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퍼엉!
다시 한번 발동된 마법이 일행을 습격한다. 하지만 이번에 구현된 마법 중 두 개가 엉뚱한 곳으로 향했다.
“으아아아아악!”
더러운 비명 소리가 울린다.
그렌이 또 다시 도주를 하려다 실패한 모양이었다.
그렌의 도주 시도는 드래곤의 신경을 꽤 많이 끌어주어 지크 일행에게 도움을 줬다.
‘저 녀석에게 고마운 마음이 드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그러나 그게 전투의 승리를 가져다주진 않는다.
콰아앙!
지크가 자신을 향해 날아온 거대한 얼음덩어리를 피했다. 바로 그가 피한 곳으로 불덩이가 날아왔다. 지크는 몸을 던지듯 불덩이의 사정권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연이어 날아온 꼬리는 피하지 못했다.
꽈앙!
“크윽!”
검을 세워 드래곤의 꼬리를 방어한 채 최대한 몸에 힘을 뺐다. 그의 몸이 뒤쪽으로 튕겨나갔다.
대미지가 누적되어 온 검이 파편을 흩뿌리며 산산이 부서졌다. 동시에 그의 팔도 심하게 뒤틀렸다.
퍼어엉!
기회를 잡은 김에 끝장을 내겠다는 듯 드래곤이 브레스를 쏘아냈다.
그러나 팔이 엉망이 된 상태에서도 지크는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투웅!
발에 마력을 가득 담아 지면을 박찬다. 그 상태로 날아가던 힘을 이용해 방향을 뒤바꿨다.
콰아아!
브레스가 지크를 스쳐지나갔다. 화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이 자식!”
“으랴아아앗!”
와이그와 틸이 드래곤을 공격했다. 치명적인 공격을 먹이진 않았지만 귀찮게 하긴 한 모양이다. 지크를 향한 브레스가 멈췄다.
지크는 바로 루벨라에게 뛰어갔다.
우우웅!
루벨라는 바로 지크의 팔을 치유했다. 걱정 어린 말도 안쓰러운 표정도 없다. 전시하에서 루벨라는 자신이 맡은 일에 철저했다.
팔이 회복된 후, 지크는 새로운 검을 뽑아들고 다시 전투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상황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역시 드래곤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는 자가 필요해!’
지크 일행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드래곤의 공세가 너무도 격렬해 도무지 공격을 행할 틈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는 방법을 시도할 수도 없다. 드래곤의 공격에 맞는다면 살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뼈조차 바로 증발할 테니까.
그렇게 지크의 머리가 팽팽 돌아갈 때였다.
콰아앙!
“아악!”
“으으윽!”
정신없이 드래곤의 공격을 방어하며 어떻게든 피해를 입히려던 한스와 스녹이 브레스에 스쳤다. 막대한 고열이 스친 부분을 통째로 태워버렸다.
“한스 씨!”
“스녹!”
라라와 엘레나가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지독한 지크의 훈련을 버틴 둘답게 둘은 바로 몸을 빼내려 했다. 하지만 드래곤이 한발 먼저 빨랐다.
그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가볍게 드래곤이 점프했다. 그 육중한 무게 그대로 둘을 깔아뭉개려는 것이다.
“젠장!”
지크는 바로 움직였다. 하지만 둘을 구할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냉정하게 둘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도달한 지크가 이를 으득 갈 때였다.
우웅!
갑자기 손가락 끝에서 어떤 이물감이 느껴졌다. 동시에 몸에 폭발적인 마력이 솟구쳤다.
이유 따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지크는 그대로 가속해 드래곤을 검으로 후려쳤다.
콰아아아앙!
거센 폭음과 함께, 드래곤의 거체가 처음으로 휘청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