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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529화 (529/628)

제529화

전위가 무너진다면, 다음 공격 대상은 후위다. 때문에 후위는 전위가 무너지지 않도록 어떻게든 도와주는 것이 제 1순위 목적이 된다. 첼시가 할튼의 상처를 바로바로 치료해주는 것 또한 그 이유가 제일 컸다.

당연히 같은 후위인 피나 또한 어떤 식으로든 할튼을 지원해줘야 했다. 그러나 그녀에겐 그럴 여유가 없었다.

“칫!”

피나는 혀를 차며 지팡이를 흔들었다. 그녀의 입에서 빠른 속도로 주문이 흘러 나왔다.

스으으윽!

지팡이 끝에 마력이 모여 주변의 온도를 급속도로 끌어내린다. 그녀의 주위에 마치 별이 내리듯 햇빛을 반사해 반짝이는 얼음 알갱이들이 무수히 만들어졌다.

크기는 작지만 마력이 스며들어 그 강도는 웬만한 돌덩이를 능가했다.

슈욱!

피나가 지팡이로 전면을 가리키자 얼음 알갱이들이 빠른 속도로 지팡이가 가리킨 곳을 향해 쇄도했다. 보기에는 예쁘지만 막상 그 공격을 맞는다면 절대 그런 생각이 들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주변을 가볍게 초토화시킬 것만도 같았던 그 마법은, 갑자기 솟아오른 불의 벽에 막혔다.

얼음들이 녹아간다. 마력이 깃든 얼음이라 일반적인 불꽃으로 쉽게 녹진 않지만, 그것들을 가로막은 불꽃도 마법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결국 끝끝내 불의 벽을 뚫어낸 얼음은 없었다.

“또 실패인가요? 저쪽 마법사는 애초에 마법을 쓸 수 있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서요! 그렇게 본인이 엘리트라고 자부하더니 마법을 배운 지 얼마 안 된 사람조차 어떻게 하지 못하는 건가요!”

“시끄러워!”

옆에서 빈정대는 첼시에게 차갑게 쏘아주고는 피나는 다음 마법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엘레나의 마법이 더 빨랐다.

화르르륵!

불꽃이 마치 뱀처럼 몸을 이리저리 뒤틀며 피나에게 향한다. 피나도 대항해 지팡이를 움직였다.

콰득! 콰득!

불꽃이 날아오는 궤적 앞에 얼음벽 하나가 샘솟았다. 하지만 불꽃은 얼음벽을 만든 피나를 비웃듯 뱀처럼 몸을 구부려 벽을 넘어 계속 전진했다. 피나의 눈꼬리가 치솟았다.

퍼억! 퍼억!

이번에 땅에서 얼음 송곳이 솟았다. 그것들은 무차별적으로 불꽃의 몸통에 틀어박혔다. 불꽃이 한 번 크게 꿈틀거리더니 곧 폭발하며 공기 중에 사그라들었다.

공격을 막아내 잠시 안도하던 피나. 하지만 곧 다급한 첼시의 외침이 들려 왔다.

“잠깐, 어쿠스 씨! 위!”

피나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이 커졌다. 언제 준비됐는지 허공에 거대한 불화살 몇 개가 생성되어 있었다.

‘어느새?’

그러다 피나의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이 스쳤다.

‘이중 영창!’

피나가 급히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영창을 읊을 시간은 없다. 그녀는 급히 얼음벽을 세웠다. 무영창의 마법을 그 나이에 사용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재능 있는 마법사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무영창 마법의 위력을 보완하는 경지에까지는 닿지 못한 상황. 그녀는 마력의 격렬한 소모를 감수하고 얼음벽을 몇 겹 더 세웠다.

하늘에서 불화살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콰득! 콰득! 콰득!

자신을 가로막는 얼음벽을 불화살들이 무참히 부수기 시작한다. 피나의 고생이 완전히 헛되진 않았는지 많은 수의 불화살들이 얼음벽들을 부수다 소모됐다.

하지만 역시 갑자기 세운 얼음벽으로 불화살 전부를 막기는 불가능했다.

콰직!

마지막 얼음벽이 깨지고 남은 불화살들이 피나를 노린다. 피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그녀의 앞에 빛나는 벽이 출현해 남은 불화살들을 막아냈다.

“아, 진짜! 더 잘하지 못해요?”

첼시가 언성을 높여 피나에게 쏘아붙였다. 하지만 그녀는 화를 낼 수 있는 시간조차 없었다.

“크윽!”

“아, 씨!”

한스의 일격에 크게 부상을 당한 할튼을 향해 첼시가 급히 성력을 쏘아냈다. 부상을 회복한 할튼이 다시 한스를 막아섰다.

그러나 사태는 점점 그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질 수 없어.’

피나가 엘레나를 쳐다본다. 그녀는 냉정한 눈으로 입술을 들썩여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마탑주라는, 마법사에게는 일국의 국왕만큼이나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의 손녀이자, 마탑에서도 커다란 세력을 자랑했던 콘로드 학파의 우두머리의 딸. 하지만 그 자신은 마법에 대한 재능이 전혀 없던 낙오자.

그게 바로 엘레나 드웨인이라는 존재였다.

마탑의 엘리트 중에서도 상위진에 속하던 피나에게는 신경 쓸 가치도 없던 그런 인간.

하지만 다시 만난 엘레나는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되어 있었다. 저게 어딜 봐서 본격적으로 마법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란 말인가.

재능이 없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마법을 파고들어 이론적으로는 이미 훌륭하게 완성되어 있었고, 타고난 마력도 강했으며, 거기에 이론과 실전의 괴리를 잡아줄 뛰어난 스승이 붙어 있었으니 엘레나의 급성장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걸 피나가 알 리 없다. 안다고 해도 ‘그렇구나’라며 넘어갈 수도 없다.

이미 저번에 터진 마탑주에 대한 반역 사건 때문에 드웨인가와 재위크가의 사이는 극렬히 냉각됐다. 그리고 피나는 재위크가의 수장이었던 웨인 재위크의 외손녀다.

윌위스 드웨인의 손녀이자 올래드 드웨인의 딸인 엘레나에게 어두운 감정을 품고 있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피나는 그녀의 학파를 다시 부흥시키기 위해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이 전쟁은, 그 부흥을 위한 조각 중 하나다. 반드시 승리를 쥐어야 하는 전쟁인 것이다.

‘절대 질 수 없어!’

사적으로도 공적으로도 패배는 용납되지 않았다.

피나는 다시 한번 엘레나를 향해 마법을 뿜어냈다.

퍼어엉!

“큭!”

하지만 이번의 공방도 마찬가지로 피나가 밀렸다. 미처 막지 못한 엘레나의 공격을 막아준 첼시가 다시 한번 거친 말을 쏟아냈지만, 피나는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

‘드웨인조차 이기지 못한다면….’

그녀는 점점 초조해졌다.

전위에 라라라는 예비 전력이 존재한다면, 후위에는 스녹이 존재했다. 그도 엘레나와 피나의 싸움에 끼어들진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능력이 얼마나 강한지는 지금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지크과 그렌이라는 두 마리 괴물이 사라지고 둘의 일행만이 남게 되자, 둘보다는 그래도 만만해 보였는지 전투에 끼어들려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겨났다.

그리고 이곳이 스틸월 진영의 바깥에 존재하는 곳인 이상, 그건 당연히 연합군 측의 병력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전투를 방해하는 인물은 없었다.

전부 스녹 선에서 정리가 됐기 때문이다.

무기를 들고 달려오는 병사들의 아래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바위 송곳이 병사들을 하반신부터 말 그대로 꿰어버렸다.

화살을 겨누는 이들에게는 엄청난 바윗돌이 쏟아졌고 간간이 덤벼 오는 기사들은 거대화한 노웸이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으로 갑옷째 썰어버렸다.

힐끔 거리며 경계하던 피나는 그 모습에 마른침을 삼켜댔다. 과연 대지의 환수와 그 계약자의 능력은 대단했다.

문제는 그 능력이 그녀의 적에게 있다는 것이다.

암담한 상황이었지만, 피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겨야 해!’

밸리드의 협력자인 스틸월 백작가를 토벌하는 정의로운 전쟁이다. 여기에서 활약을 하면 콘로드 학파의 명성은 올라간다. 더해서 플루 학파와 드웨인가의 명성을 꺾어버릴 수도 있다.

잘하면 다음 대 마탑주는 콘로드 학파에서 나오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마법사. 대책 없는 근성론만으로 상황을 낙관할 순 없다. 그러나 희망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제너드가 올 때까지만 버티면 돼!’

누가 봐도 그렌의 실력은 지크보다 위였다. 그가 지크를 쓰러뜨리고 온다면, 상황은 역전될 것이다.

‘아직 희망은 있어!’

그러나 그녀의 희망이란 것이 꺾이기 시작할 때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갑자기 전장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윌위스 드웨인이 귀환한 것이다. 동시에 후방에서 돌아온 스틸월 백작군이 연합군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합군에게 가장 충격적인 건 따로 있었다.

“밸리드와 그에 협력한 놈들을 모조리 죽여라!”

“항복하라! 그렇지 않다면 카르나의 심판의 기다릴 것이다!”

“밸리드와 협력한 놈들에게는 죽음뿐이다! 혹시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면 당장 무기를 버려라!”

갑작스러운 카르위먼의 참전은 전장에, 특히 그들에게 적대당하게 된 연합군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줘다 줬고, 그건 한창 싸우고 있던 할튼과 첼시, 피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가 밸리드의 협력자라고?”

아무리 카르위먼에서 나왔다지만 일단은 카르나의 신자인 첼시가 가장 먼저 반응했다. 당황도 당황이지만, 아무래도 카르위먼 출신인 그녀는 카르위먼이 밸리드와 그 협력자를 어떻게 다루는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카르위먼에 있을 때는 별생각 없었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자신이 그런 꼴을 당할 수도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그녀가 지금 이 고생을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아직 카르위먼의 성녀 자리를 포기하지 못해서가 아닌가. 하지만 밸리드의 협력자로 낙인이 찍힌다면?

그토록 원하던 성녀 자리는 완전히 파탄난다.

첼시만큼은 아니지만 할튼과 피나도 당황했다.

하지만 지크 일행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여유가 있었다.

“끝이군요.”

한스가 방벽을 뛰어내려 연합군을 몰아붙이는 성기사들을 보며 말했다.

“항복하세요. 지금 반항하다간 개죽음만 당합니다. 카르위먼에게 밸리드의 협력자로 낙인찍힌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아시죠?”

“…항복이라고?”

할튼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상당히 당황했다. 하지만 한스의 입에서 나온 항복이라는 단어에 다시 눈이 뒤집혔다.

“나보고 너 같은 천한 놈에게 항복을 하라는 거냐!”

“제가 아니라 스틸월 백작군에게 항복을 하라는 겁니다.”

“그 빌어먹을 지크 놈의 가족에게 항복이라니! 절대 있을 수 없어!”

한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본인이 그렇게 선택을 하셨다면, 네, 존중해 드려야죠.”

지크의 영향을 짙게 받은 한스는 역시 사람의 선택을 무척이나 존중했다.

“하지만 선택을 했다면 그 책임 또한 본인이 져야 되는 건 아시죠?”

한스의 시선이 할튼을 떠나 그의 뒤에 있는 첼시와 피나에게 향했다.

“두 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두 분도 절대 항복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시렵니까?”

“잠깐! 잠깐만 기다려 봐!”

첼시가 다급하게 말했다.

“저게 대체 무슨 일이야! 왜 우리가 밸리드의 협력자라는 건데!”

“이번 사태는 플로드 백작이 스틸월 백작가를 집어삼키려 밸리드와 협력해서 일어난 일입니다. 피네 자작가는 아예 밸리드의 소굴이었고요.”

첼시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 그럼, 그렌 씨가 속았다는 거야?”

“아뇨. 반댑니다. 그렌 제너드는 속은 게 아니에요. 그렌 제너드가 다른 이들을 속인 거죠.”

“그 무슨…!”

“그렌 제너드는 원래 밸리드와 한통속이었습니다.”

첼시와 피나, 할튼은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그럴 리….”

첼시가 망연하게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쿠웅!

누군가 그들의 옆으로 거칠게 도착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그는 그렌이었다.

“그렌 씨!”

첼시가 그렌을 보고 반색했다.

“마침 잘 왔어요!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설명을…!”

“바이너! 첼시! 피나!”

그렌이 그들을 보며 크게 외쳤다.

“당장 목숨을 걸고 날 지켜라!”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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