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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514화 (514/628)

제514화

추격대는 말을 타고 거침없이 길을 내달렸다. 상당한 강행군이었지만 그들도 연합군 내에서 알아주는 정예인지라 흐트러짐 하나 없었다.

하지만 길 바로 옆에 있는 커다란 숲의 존재를 확인했을 때, 그들은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추격대를 통솔하는 지휘관에게 부관이 물었다.

“매복을 하기 좋은 지형입니다. 하물며 적에게는 엘프 병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엘프가 숲속에서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는 건 상식이었다. 지휘관도 마찬가지의 생각인지 일단 군을 멈춰 세웠다.

‘흔적은 계속되고 있군.’

꽤 대규모 무리가 이동한 흔적은 길과 주변에 착실히 나 있었다. 스틸월 백작군은 이 길을 통해 이동한 것이 확실했다.

지휘관은 숲으로 시선을 돌렸다. 빽빽한 나무들이 안쪽을 꽁꽁 숨기고 있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수풀이 서로를 비비며 소리를 낸다.

푸른 하늘 아래 생명의 색이 넘실거리는 숲의 모습이 사람들의 마음을 절로 풍요롭게 하는 광경이었지만, 지휘관을 비롯한 추격대에겐 치명적인 독을 품은 이빨을 숨긴 채 시치미를 뚝 떼고 있는 뱀과 같이 보였다.

‘우회하긴 힘들겠지.’

길을 중심으로 숲 반대편으로는 커다란 바위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구성물이 구성물인 만큼 산에는 간신히 뿌리를 내린 생명력 강한 나무가 얼마간 있을 뿐, 대부분은 회색빛 바위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아무리 엘프라도 저런 나무 몇 그루가 듬성듬성 있을 뿐인 곳에 몸을 숨길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지형은 추격대의 움직임조차 제한했다. 아무리 그들이 타고 있는 군마가 적절한 훈련을 받은 비싼 말이라 해도 거친 바위산을 타고 움직이는 건 불가능한 것이다.

가능하다고 해도 속도는 대폭 제한받을 터.

‘만약 녀석들이 이대로 자작령의 주도까지 내달려 성을 공격한다면 시간에 늦을 가능성도 있어.’

따라서 바위산을 끼고 더 크게 우회하는 방법도 자연적으로 선택지에서 제외되었다.

‘그렇다면 역시 숲속에 정찰병을 보내야 하나.’

하지만 적을 찾든 찾지 못하든 그것도 시간이 걸린다는 건 같다.

지휘관은 찌푸린 눈으로 숲을 노려봤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뒤에서 소란이 일었다. 안 그래도 머리 아픈 상황에 일어난 소란이 지휘관은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곁으로 막무가내로 다가오는 자는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자였다.

그렌 제너드.

신분도 대단한 데다가 그 실력은 연합군 제일로까지 불리는 사람이다. 지휘관은 목 바로 아래까지 올라온 큰 소리를 조용히 내리눌렀다.

“무슨 일입니까.”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 왜 진군을 멈췄죠!”

“전방에 상당히 울창한 숲이 있습니다. 엘프가 매복을 하고 있다면 그대로 기습을 당해 막대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회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어지고요. 지금 대책을 생각….”

“진군을 재개하십시오!”

그렌의 말에 주변 사람들 모두가 얼굴을 찌푸렸다. 몇몇은 헛기침을 하며 대놓고 불쾌함을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렌은 위축되지 않았다.

“자칫하다가 우리가 늦으면 피네 자작의 본성이 함락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적이 소수라도 대부분이 정예로 이루어진 건 확인됐지 않습니까. 성을 끼고 싸운다고 해도 주력이 빠진 피네 자작가의 주도가 그리 오래 버틸 순 없을 겁니다. 자작령의 주도인 만큼 본성도 그리 규모가 크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성급히 전진했다가 기습을 받으면….”

“그럼 차라리 잘됐죠. 상대는 안 그래도 적은 병력을 쪼갠 겁니다. 저기서 더욱 쪼갤 수는 없겠죠. 즉, 우리가 공격을 받으면 적의 별동대는 저 숲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자작령의 안전은 보증받게 되는 셈이니 우리는 차분히 저 숲 안에 있는 부대를 섬멸하면 됩니다.”

“음….”

지휘관은 고민에 빠졌다.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 온 것치고는 그렌의 말은 제법 이치에 맞았다. 매복으로 심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만이 문제였지만….

‘피네 자작령이 함락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매복 공격을 당할 위험을 감수하는 게 더 낫겠지.’

“부관!”

“네!”

“다시 진군을 시작한다. 부대에 알리도록.”

“네!”

“매복이 있을 수 있으니 숲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라고도 전하고.”

“알겠습니다!”

부관이 서둘러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그 부하들은 크게 목소리를 높이며 전군에 명령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지휘관은 주변을 살폈다. 그렌은 어느 순간 사라져 있었다.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져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그렌 제너드라….’

분명 그 무력은 굉장하고 방금 전 의견을 보면 머리가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지휘관의 얼굴은 여전히 찌푸려져 있었다.

‘마음에 드는 인간은 아니야.’

추격대는 다시 고삐를 쥐고 길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말발굽이 사납게 지면을 두드린다. 하지만 그런 기세에도 추격대는 옆의 숲을 경계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앞보다 옆의 숲 쪽을 더 응시하는 자가 있을 정도였다.

어쩔 수 없었다. 숲 안에서의 엘프가 어떤 존재들인지 인간 세상에도 충분히 떠돌고 있었으니까.

숲은 그리 크진 않았다. 그리고 조용했다. 숲에서 화살이 날아오기는커녕 흔들리는 수풀만이 그들의 시야에 잡혔다. 추격대는 제발 이 조용함이 숲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계속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보통 그런 소망은 곧잘 빗나가는 법이다.

슈욱!

시끄럽게 울리는 말발굽 소리 사이로 흐릿한 파공음이 들려 왔다. 하지만 그 소리를 포착한 추격대의 사람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온몸에 털이 쭈뼛 서는 느낌을 받았다.

챙! 챙! 챙!

과연 연합군 내에서도 정예인 사람들답게 많은 이들이 갑작스럽게 날아 온 화살 공격을 막아냈다. 계속 숲을 경계한 것도 나름 수월하게 화살을 막아낸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컥!”

“크학!”

“케엑!”

급소에 화살을 맞은 이들이 비명을 뱉어내며 말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대부분은 즉사였고, 혹 살아 있다 해도 뒤이어 달려온 아군의 말발굽에 무참히 밟혀 숨이 끊겼다.

“매복이다!”

“속도를 줄이지 마라! 일단 이곳을 빠져나간다!”

“숲 안쪽을 경계해라! 날아오는 화살들은 최대한 쳐내!”

추격대는 달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박차를 가해 속도를 높였다. 도망갈 곳도 마땅치 않은 곳에서 유일한 선택지였다. 엘프를 쫓아 숲 안으로 들어간다는 결정은 아예 논외였다.

지휘관은 마력을 북돋아 숲 안을 쳐다봤다. 무언가 나무 사이사이를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엘프야.’

캉!

자신에게 향한 화살을 쳐내며 그는 이를 갈았다. 하지만 동시에 안도하기도 했다.

‘주도엔 가지 않았군.’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플로드 백작에게 전군이 전멸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피네 자작령의 본성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다.

적이 이 숲에 있다면 일단 주도가 함락된다는 걱정은 놓아도 될 것이다.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 숲을 포위한다.’

그 후 훨씬 많은 병력으로 천천히 녀석들을 몰아넣을 것이다. 숲을 완전히 불살라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다.

하지만 함정은 매복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쿠르르릉!

불길한 소리가 울렸다. 진원지는 옆에 있는 바위산이었다.

“뭐야?”

“이게 무슨 소리지?”

숲을 경계하며 화살을 튕겨내던 기사들이 흘끔흘끔 바위산 쪽을 훑어봤다. 아무래도 바위산에서 들려온 소리가 심상치 않다는 걸 그들도 느꼈던 것이다.

“대장님!”

“알고 있다.”

지휘관도 슬쩍 바위산을 훑어봤다. 뭔가 일어날 것 같다. 하지만 추격대에게는 다른 방법을 선택할 여유가 없었다.

“최대한 빨리 이곳을 빠져나간다. 바위산에도 숲에서도 멀어지면 상관없겠지.”

하지만 아무래도 이상 현상은 그들을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어, 어?”

“사, 산사태다아아아!”

“피해애애애!”

추격대의 기사들이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지휘관도 급히 바위산을 올려다봤다.

쿠르르릉!

바위산에서 돌들이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대부분은 자잘한 돌멩이들이었지만 그중에는 사람 몸통만 한 커다란 바윗돌들도 있었다. 게다가 돌멩이들도 산비탈을 구르며 순식간에 가속이 붙어 훌륭한 흉기로 변모했다.

“젠장!”

이 광경에는 지휘관도 무의식적으로 욕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 짧은 순간에 지휘관의 머리가 미친 듯이 돌아갔다. 그는 입술을 꽉 깨문 후 목에 마력을 집어넣고 크게 외쳤다.

“말을 버리고 돌들을 피해라!”

마치 산 전체가 무너지는 것 같은 광경이지만, 지휘관은 빠르게 지금의 산사태가 바위산의 표면이 작게 무너진 것이라는 걸 간파했다. 생각만큼 규모가 거대한 건 아니다.

물론 얕잡아볼 정도로 별거 아닌 것도 아니었지만.

‘말을 버리고 스스로 움직이는 정도로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어!’

그건 그들이 정예여서 가능한 묘기이기도 했다.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기사들은 말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덮쳐 오는 돌들을 이리저리 피했다. 커다란 바위는 검에 마력을 담아 부숴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굴러떨어지는 돌덩이가 너무 많아, 피해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퍼억!

“켁!”

주먹만 한 돌덩이에 머리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기사 한 명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그의 신체를 돌덩이들이 무수히 두들겼다.

콰직!

마지막은 커다란 바윗덩이가 그의 몸을 덮치는 것으로 끝났다. 갑옷 사이로 흘러나오는 대량의 피가 그가 죽었음을 증명했다.

게다가 추격대를 괴롭히는 건 돌덩이들만이 아니었다.

슈욱! 슈욱! 슈욱!

숲에서는 끊임없이 화살이 쏘아졌다. 그것들은 돌덩이들을 피하기 위해 정신없이 움직이는 기사들의 빈틈을 정말로 잔혹하게 노렸다. 화살이 꽂힌 기사들이 쓰러지고 그들의 위로 돌덩이들이 덮여 순식간에 많은 돌무덤들이 생겨났다.

영원할 것 같은 산사태가 끝났다. 많은 인명 피해가 나고 대다수의 말을 잃었으며 흙먼지를 하얗게 뒤집어써, 누가 봐도 패잔병의 몰골이 되어버린 추격대였지만, 그래도 아직 그 숫자는 상당히 많았다.

지휘관의 정확한 판단과 뛰어난 개개인의 능력이 일궈낸 훌륭한 업적이었다.

그러나 아직 그들의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놈들을 죽여라!”

우와아아아아!

숲에서 함성과 함께 검을 든 기사들이 뛰어나왔다. 패잔병 같은 플로드 백작군과는 달리 그들은 누가 봐도 쌩쌩했다.

그리고 그 앞. 오만한 미소를 띤 채 누구보다도 먼저 달려 나오는 인물이 있었다. 순식간에 적에게 달려든 그는 가장 가까이 있는 기사 세 명을 순식간에 도륙했다.

그리고 폐에 공기를 한껏 불어 넣은 후, 크게 외쳤다.

“어디 있냐, 그렌 제너드! 여기서도 한 판 해야지!”

그 말과 함께 스틸월 백작군과 플로드 백작군이 본격적으로 맞부딪치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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