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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504화 (504/628)

제504화

마법사들에게 도움을 준 것이니만큼 윌위스는 나름 고마움을 표할 마음이 있었다. 엘프에 대해 안 좋은 편견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꽤 있다지만, 그는 그런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도와준 엘프를 본 윌위스는 절로 혀를 찼다.

“도와준 사람에게 그런 반응이라니. 인간은 그런 모양이지?”

새로 꺼낸 화살을 시위에 걸며 레오나가 한심하게 말했다.

“아, 내가 생각이 짧았네. 지크나 내가 봐온 다른 사람들은 달랐지. 그냥 네가 그런 성격인 모양이구나.”

“앞으로는 생각을 길게 하거라.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녀석이 그렇게 생각이 짧아서야….”

그러며 혀까지 몇 번 차주는 게 일품이다. 레오나가 도끼눈을 뜨고 그를 노려보았지만 윌위스는 다시 적 마법사들에게 시선을 돌린 상태였다.

쌔애애액!

화살 한 대가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윌위스 쪽으로 날아왔다. 당장이라도 날카로운 화살촉이 윌위스의 피부를 꿰뚫을 것 같았다.

퍼엉!

하지만 윌위스의 주변에서 일어선 불꽃이 화살을 통째로 태워버렸다.

‘역시 여기도 안전하진 않군.’

윌위스는 전장을 살폈다. 목재 방벽 위에 자리를 잡고 되는 대로 퍼붓고 있는 스틸월 백작가의 궁수들보다는 못하다지만 연합군도 제법 궁수를 투입해 진채 안으로 화살을 쏟아붓고 있었다.

물론 방금 전 적 기사를 격살시킨 엘프의 화살도 아닌, 눈먼 화살 정도가 윌위스를 위협할 순 없었다. 하지만 다른 마법사들은 조금 위험할 법도 했다.

윌위스가 다른 마법사들을 쳐다봤다. 그들도 자체적으로 화염의 벽을 만들어 화살을 막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옆에는 커다란 방패를 든 병사들도 착 달라붙어 있었다.

연합군처럼 고위 기사들을 붙여주진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 스틸월 백작가가 마법사들의 보호를 위해 파견한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화살의 비에서 완전히 안전해진 것은 아니었다.

‘하긴, 전장에 안전한 곳이 어디 있나.’

전장이 안전해지는 상황은 단 하나뿐이다. 전투가 끝나는 것.

그리고 윌위스는 그에 힘껏 손을 보탤 의욕이 넘쳤다.

화르르르륵!

윌위스의 지팡이 끝에서 다시 한번 불꽃이 타올랐다. 아까처럼 많은 수의 불꽃은 아니었다. 오로지 단 하나. 문제는 그게 무척이나 커다랗다는 것이었다.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허둥지둥 윌위스와 거리를 벌렸다. 불덩이는 상당이 높은 곳에 떠올라 있었지만 그 열기는 어렵지 않게 지상까지 미쳤다.

윌위스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후웅!

불덩이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과장 좀 보태서 마치 태양이 떨어져 내리는 것처럼도 보이는 광경이다. 콘로드 학파의 마법사들이 다시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수의 얼음 마법이 불덩이를 향해 쏘아졌다.

퍼억! 퍼억!

얼음이 틀어박힐수록 불덩이의 덩치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 규모는 여전히 강대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다시 기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레오나가 활시위를 당긴 건 그때였다.

슈욱!

다시 한번 섬뜩한 파공음이 윌위스의 귀를 간지럽혔다.

퍼억!

“크악!”

한 기사가 얼굴에 화살을 맞고 넘어졌다. 투구 틈을 노린 절묘한 궁술은 과연 엘프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윌위스도 그녀의 활 솜씨에는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지원을 온 엘프는 레오나만이 아니었다. 그녀 주위에 있던 몇 명의 엘프도 화살을 쏘아보냈다.

슉! 슉! 슉!

섬뜩한 파공음이 이번엔 여러 번 들렸다. 하나하나가 빠르고 강하며 은밀하다.

하지만 콘로드 학파의 마법사들을 지키고 있는 기사들도 마법사들의 호위를 위해 나름 가려 뽑은 자들이다. 그들은 일반적인 활의 사거리 밖에 있는 곳에까지 날아드는 데다가 기사마저 격살시키는 강력한 화살에 당황하긴 했지만, 곧 검을 휘둘러 화살을 쳐냈다.

피할 순 없었다. 그들의 뒤에는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켜야 할 마법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활약으로 엘프들의 화살에 의한 피해는 억제됐다. 그러나 그걸 기뻐할 수는 없었다.

화르르르륵!

기사들이 화살에 정신이 팔린 사이 불덩이는 어느덧 지척에 달해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앙!

불덩이가 폭발한다. 주변 사람이 하늘의 분노가 지상에 임박했다며 몸을 넙죽 엎드린다고 해도 놀랍지 않을, 그런 폭발이었다.

사방으로 흩어진 불꽃이 지면을 기어 다니며 먹잇감을 찾았다.

툭! 툭!

마치 이야기로만 듣던 지옥불처럼 영원히 타오를 것만 같았던 화염이 꺼졌다. 불똥 몇 개가 검게 그을린 땅 위로 굴러다녔지만 그것만으로 천벌 같던 불덩어리의 위용을 재현할 순 없었다.

보인 불덩어리의 위력이 위력인 만큼 그 영향권 안에 접어든 자들 중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화염이 사라지고 난 뒤 나타난 것은 주변을 뒤덮고 있는 단단한 얼음의 벽이었다.

“실패했네?”

레오나가 말했다. 약간의 웃음기가 느껴져 윌위스는 하얗게 바랜 눈썹을 꿈틀거렸다.

“녀석들도 나름 실력 있는 마법사들이니까. 게다가 기사들의 능력도 제법이지 않더냐.”

그리고 윌위스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멀쩡해 보이지도 않고 말이다.”

윌위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얼음 벽이 무너져 내렸다. 그 안에 있던 자들은 누가 봐도 낭패를 크게 본 몰골을 하고 있었다.

마법사들은 모두 살아 있었다. 하지만 방금 전의 방어에 많은 심력을 쏟았는지 낯빛이 전체적으로 창백했다.

하지만 기사들의 몰골은 마법사들과는 달랐다.

마법사들이 마법을 발동할 시간을 벌기 위해 그들은 말 그대로 온몸을 내던져 불꽃을 막았다. 출진 전 햇빛을 반사해 찬란하게 빛나던 갑옷들은 잔뜩 그을려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차라리 나은 편이었다. 온몸에 김을 모락모락 피운 채 쓰러져 있는 기사들의 수도 적지 않았다. 갑옷 안 그들의 모습이 어찌 되어 있을지는 어렵지 않게 예상이 가능했다.

레오나가 바로 화살을 뽑아 시위를 당겼다. 다른 엘프들도 마찬가지. 플루 학파의 마법사들도 다시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컥!”

“아악!”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아무래도 승기는 확실히 스틸월 쪽으로 넘어가 있었다.

얼마 안 되어 콘로드 학파의 마법사들이 허둥지둥 뒤를 향하기 시작했다. 후퇴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비심 깊게 그 장면을 보기만 할 자는, 적어도 이 전장에는 없었다.

그들을 노리고 화살과 마법들이 날아온다. 그 모습을 마법사들을 호위하는 기사들이 노려봤다. 그들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마법사들을 지키라 명령받았다.

오늘 따라 더욱 무거워진 것 같은 갑옷을 이끌고 그들은 날아오는 마법과 화살 앞에 섰다. 그리고 말 그대로 목숨을 내던져 공격들을 막아냈다.

“칫, 놓쳤어!”

활을 내리고 레오나는 분한 듯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대로 그들은 끝내 마법사들이 사정거리 밖으로 도망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뭐 어떠냐. 그 대신 기사들은 많이 죽였지 않느냐.”

“그렇긴 하지.”

윌위스의 말에 수긍한 레오나는 몸을 돌렸다.

“그럼 난 간다.”

엘프들이 맡은 임무는 진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기사나 마법사 혹은 중무장 병력 같은 고급 병종을 콕 집어 저격하는 것이었다.

마법사와 기사들이 물러갔으니 이제 다른 사냥감을 찾을 시간이었다.

“조심하거라. 괜히 철없이 뛰어다니다 돌부리 같은 것에 걸려 넘어지지 말고.”

“내가 애인 줄 알아?”

레오나는 혀를 날름거리고는 일행을 끌고 다른 쪽으로 달려갔다.

혀를 몇 번 찬 윌위스의 시선이 다시 전장으로 향했다. 콘로드 학파를 격퇴했다지만 아직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다. 마치 바퀴벌레처럼 우글대는 병사들이 보였다. 이미 그들을 견제라도 할 콘로드 학파의 마법사들도 사라진 상황.

이제는 보여줄 때였다. 왜 마법사라는 존재가 전장에서 공포의 대명사가 됐는지.

윌위스는 지팡이를 앞으로 겨눴다.

* * *

플로드 학파의 마법사들이 전면으로 나선 때. 연합군은 기사들 또한 동원했다. 많은 세력이 모인 만큼 그들이 동원할 수 있는 기사들의 숫자도 엄청났다.

마법사들의 호위에 기사들을 돌릴 수 있는 여력이 거기 있었다.

뿌우우우우우!

커다란 나팔 소리와 함께 말을 탄 기사들이 전장을 달리기 시작했다. 앞에 있던 병사들이 급히 옆으로 도망쳤다. 기사들의 돌진과 함께 갈라지는 인파는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물론 제때에 도망친 병사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종종 넘어지거나 해서 기사들의 진로에 낙오되는 병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기사들은 그들을 배려하지 않았다.

두두두두두!

무참한 말발굽은 아군이라 해도 상관하지 않고 말 그대로 다져버렸다. 기사들이 지나간 곳에 군데군데 피 웅덩이가 생겼다.

기사들의 돌진은 진채에서도 보였다. 곧 비상음이 울리며 스틸월 백작가의 기사들이 연합군의 기사들이 나타난 방향으로 속속 모였다.

방벽을 공략하고 있던 병사들이 썰물처럼 옆으로 빠져나가 어느새 두 세력의 기사들 사이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스틸월 기사들이 방벽 밖으로 하나둘 뛰어내렸다. 기사들을 상대로 임시로 급히 만든 목재 방벽은 방어벽으로서 아무런 이점이 없다. 기사들 몇이 마력을 담은 칼질을 하는 것만으로도 산산이 부서져 나갈 게 뻔한 것이다.

때문에 스틸월 기사들은 방벽 밖에서 적 기사들을 맞았다.

스틸월 기사들이 방벽 밖에서 간단한 진영을 짜고 연합군의 병사들이 미친 듯 말을 돌려 돌진한다.

콰아아앙!

곧 두 세력의 기사들이 거세게 충돌했다.

* * *

라라는 눈앞에 있는 기사 한 명에게 연신 검을 휘둘렀다. 마력이 가득 담긴 검끼리 계속 충돌하며 큰 소리를 낸다. 라라와 맞붙고 있는 기사는 제법 실력이 있는 기사였다.

하지만 선천적인 재능이 본격적으로 폭발하기 시작한 라라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푸욱!

라라의 검이 기사의 가슴을 찔렀다. 나름 고급 처리를 한 갑옷인지 저항감이 상당했지만 라라의 검은 결국 갑옷을 뚫고 상대의 심장을 꿰뚫는 데 성공했다.

“커억!”

투구 안에서 타는 듯한 비명이 들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상대의 몸이 축 늘어졌다.

털썩!

검을 뽑고 자신을 향해 쓰러지는 상대를 피한 라라는 다음 상대를 찾기 시작했다. 주변은 기사들 간의 전투가 치열했다.

아직은 승기가 어느 쪽으로 기울었다고 판단하기가 애매했다. 기사들의 질은 스틸월 쪽이 우세한 것 같았지만 수는 연합군 쪽이 압도적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주변에 있던 스틸월 기사를 도우려 라라가 움직이려 할 때였다.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소름의 원인을 생각할 새도 없이 라라는 옆으로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커다란 폭음. 라라의 몸이 휘청였다. 하지만 그녀는 필사적으로 몸의 중심을 잡았다.

몇 번의 뒷걸음 끝에 그녀는 몸의 제어를 다시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은은하게 느껴지는 손아귀의 아픔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녀는 자신을 향한 공격의 원인을 찾았다. 순간, 라라의 눈이 커졌다.

“오랜만이지?”

부드러운 목소리. 익숙하다. 언제나 저 목소리에 마음의 안정을 얻은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그 목소리에서 불안감밖에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만약 놈과 마주친다면 각오 단단히 해. 놈은 예전에 네가 알던 그놈이 아닐 테니까.》

예전 지크가 해준 말이 떠오르는 건 그녀가 예민해서는 아닐 것이다.

라라는 침을 한 번 삼킨 채,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를 쳐다봤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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