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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494화 (494/628)

제494화

또랑또랑 울리는 쾌활한 음성. 예전 그대로의 목소리다. 활짝 미소 짓고 있는 그녀의 표정엔 구김살 하나 없었다.

“오랜만이야.”

지크는 의자에서 일어나며 그녀를 반겼다.

회귀 전, 그렌 제너드와 함께 자신을 토벌했던 자와 이런 밝은 재회를 할 수 있는 사이가 되다니. 회귀란 존재가 가져온 인연의 변화는 언제 느껴도 흥미롭기 그지없었다.

‘그래. 아군으로 만난 지금이 특이한 거야.’

그가 지크 브레이브 시절, 그의 동료였던 적이 있던 그녀지만 지크는 애써 그 기억을 외면했다.

“그동안 잘 지냈어?”

레오나가 지크의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지크도 다시 자리에 앉았다.

“평소와 같지.”

“평온하게 지내지는 않았다는 뜻이네.”

“그게 그렇게 되나?”

지크는 피식 웃으며 레오나를 안내해 온 하인에게 차를 부탁했다.

“같이 여행을 했던 때를 생각해보면 그렇지. 그 짧은 기간에 사건 몇 개를 겪은 거야.”

레오나는 하나하나 꼽기 시작했다.

“처음 만나자마자 미다스랑 싸웠고, 그다음에는 어떤 실험실 같은 곳에서 고깃덩이를 합쳐놓은 것 같은 괴물이랑 싸웠지. 그 후에 고대 제국의 황제들의 무덤에까지 가게 됐고 말이야. 우리 고향에서는 전쟁까지 치렀고.”

레오나가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 이번엔 네 고향에서 전쟁이야. 내가 빠지고 평온한 여행을 하게 됐다고 생각하는 편이 무리 아니야?”

“그중 두 개는 네 일이었잖냐.”

미다스의 경우는 레오나가 되찾으려 했던 호수의 눈물 때문에 엮이게 된 것이었고, 아드로원 대수림에서의 전쟁은 레오나의 일족이 당사자였다.

“그래서 네 편지에 바로 달려와 줬잖아.”

“그건 고맙다.”

“그치?”

레오나는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폈다.

그때, 다시 한번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요.”

지크의 대답에 문이 열렸다. 문 너머로 두 명의 사람이 서 있었다. 지팡이를 든 노인과 거한.

“다른 손님이 먼저 계셨군.”

노인, 윌위스가 방 안으로 걸음을 내디디며 말했다. 그의 시선은 레오나를 향해 있었다.

“다음에 다시 오는 게 좋을까요.”

그에 비해 거한, 틸은 방 밖에 서서 상황을 살폈다.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지크가 틸에게 물었다.

“아뇨. 인사차 들른 것뿐입니다만, 아무래도 다른 분들이 먼저 오셔서 말입니다.”

“그 때문이라면 그냥 들어오셔도 됩니다. 다른 분들도 인사차 오신 것뿐이니까요.”

“거 보게. 내가 뭐라고 했나. 괜찮을 거라고 했잖나.”

윌위스가 태연하게 지크와 레오나가 이미 앉아 있던 탁자에 앉으며 조금은 뻔뻔하게 말했다.

“어차피 이번에 다 같이 싸울 동료일 텐데, 이 기회에 친분을 다져 놓는 게 좋지. 모두 지크 군이 부른 사람이니 더욱 그게 낫지 않겠나.”

“맞아! 어차피 모두 지크의 친구인 거 아냐!”

레오나마저 그렇게 말을 하니 여기서 돌아가는 것도 모양이 이상해진다. 틸은 방 안으로 들어와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지크는 자신의 앞에 있는 인물들을 쳐다봤다. 전부 다 쟁쟁한 인물들이다.

호수의 일족의 공주이자 회귀 전, 지크 토벌대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레오나. 마탑의 탑주이자 회귀 전 지크와 같이 마왕이라 두려움받던 윌위스 드웨인. 그리고 늑대의 송곳니 용병단의 단장이자, 회귀 전 또 한 명의 마왕이었던 틸.

“잘 지내셨습니까, 마탑주님.”

일단 레오나와는 인사를 끝냈으니 지크는 다른 두 사람 중 연장자인 윌위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잘 지냈네. 그리고 지금은 마탑주가 아니야. 다른 놈에게 넘겼지.”

그의 자식인 올랜드가 일으킨 반란 때문에 그가 마탑주를 그만두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어디까지나 바로 마탑주를 그만뒀을 때 일어날 혼란 때문에 조금 더 유지하고 있었을 뿐. 그걸 이번에 완전히 넘기고 온 모양이었다.

“다행히 기분은 나쁘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맞네. 오히려 시원할 정도지. 애초에 괜한 권위와 자부심 따위에 연연해서 그 꼴이 난 것 아닌가. 그까짓 게 뭐라고.”

아무래도 올랜드의 반란이 그의 심경에 큰 변화를 준 모양이었다. 마치 어깨에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사람 같다.

“…좋아지신 것 같아 다행이군요.”

회귀 전이야 어쨌든 지금은 적대 관계가 아닌, 오히려 협력 관계에 더 가까운 사람이다. 이번 지원 요청에도 흔쾌히 달려와주지 않았던가. 때문에 지크의 말은 분명 본심이었다.

다만, 예전 마탑주로서 무게를 잡던 모습보다 지금의 시원하고 털털한 모습에 떨떠름함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예전 꿈속에서 보았던, 지크 브레이브의 동료로서의 모습이 윌위스에게 보였기 때문이다.

“엘레나는 만나 보셨습니까?”

“만나봤지. 많이 늘었더군. 아니, 그 정도 말로 평가할 정도가 아냐. 누가 저 아이가 비교적 최근에 마력을 해방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하겠나.”

엘레나가 오랜만에 만난 할아버지 앞에서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한 모양이었다. 윌위스의 얼굴에 자랑스러운 손녀에 대한 자부심이 반짝반짝 빛났다.

“역시 자네들에게 엘레나를 맡긴 건 최고의 선택이었어.”

“만족하셨다니 다행이군요. 라일라가 관심을 많이 기울였죠.”

“나중에 내 꼭 보답을 해줘야겠어.”

그렇게 간단히 윌위스와 대화를 나눈 지크는 이번엔 조용히 앉아 있는 틸에게 시선을 돌렸다.

“틸 씨는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별일 없었을 것 같긴 합니다만.”

레오나, 윌위스와는 달리 틸과는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내에 뭔가 일이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말씀대로 별일 없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 해봤자 용병단을 재정비한 정도뿐이군요.”

“그러고 보니 그러겠다고 하셨죠. 잘 진행됐습니까?”

“완벽하다고 할 순 없지만 적어도 예전의 모습은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틸은 살짝 웃었다.

“윌터와 엘리는 건강합니까?”

“네. 아직 엘리가 간간이 우울해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곧잘 웃는 게 예전의 모습을 거의 되찾았습니다.”

다행히 엘리는 아버지의 죽음을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금은 지크 씨의 호의 덕에 백작가에서 보내고 있죠. 그에 대해서는 감사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뭘요. 늑대의 송곳니를 고용하는데 그 정도 편의는 봐드려야죠.”

그렇게 지크가 사람들과 가볍게 근황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또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요.”

아까 지크가 차를 부탁한 하인이었다. 차를 부탁했을 때 지크의 방에 있던 손님은 레오나뿐이었지만, 하인은 총 네 개의 찻잔을 준비해 왔다. 윌위스와 틸이 지크를 찾아온 걸 알고 눈치 좋게 찻잔을 더 준비한 모양이었다.

잠시 후, 각자의 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이 하나씩 놓였다.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지크는 눈앞의, 자신의 요청에 쾌히 전쟁터로 발걸음을 옮긴 이들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여러분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았군요.”

지크는 고개를 숙였다.

“제 요청을 받아들여 주신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세 사람은 손사래를 쳤다.

“아까도 말했지만 지크도 우리 편을 들어서 철의 일족 놈들과 싸워줬잖아. 은혜는 갚아야지. 다른 엘프들도 흔쾌히 허락했고.”

“자네가 아니었다면 난 영문도 모른 채 마탑에서 쫓겨나야 했을 거네. 말 그대로 모든 걸 잃었겠지. 그걸 막아준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저희는 용병단입니다. 돈을 받고 고용주의 아래에서 일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이번엔 고용주를 스틸월 백작가로 선택한 것뿐입니다. 지크 씨가 해주신 일에 비하면 특정한 고용주에게 고용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죠.”

회귀 전에는 적대적 중립이던 틸이 가장 사이가 좋은 관계였을 만큼 반목했던 자들이, 자신에게 빚을 졌다고 말하고 있다.

‘이게 착한 일을 한 것에 대한 대가인가.’

나쁘지 않다. 지크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신다니 정말로 감사를 드립니다.”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고 지크는 조금 묵직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번 전쟁은 우리 쪽의 세력이 상당히 부족할 겁니다. 뭐, 그건 여러분이 오시지 않았다면의 이야기지만 말입니다.”

눈앞의 세 사람이 이끌고 있는 세력들은 그 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질만큼은 여느 국가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의 정예들이다.

“하지만 상대도 절대 만만하진 않을 겁니다.”

분명 그렌 제너드와 그 끄나풀들이 섞여 있을 게 분명하다.

“자네 말이 맞네.”

윌위스가 입을 열었다.

“자네의 편지를 받고 오기 전, 마탑에 하나의 소문이 돌았네. 콘로드 학파의 사람들이 전쟁을 위해 플로드 백작가로 향했다고 말이야.”

콘로드 학파. 올랜드 드웨인과 재위크가가 속해 있던 학파다. 그리고 저 둘이 저번 마탑 반란의 핵심이었던 만큼, 반란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학파이기도 했다.

“반란 때문에 떨어진 명예를 공을 세워 되찾으려는 모양이더군.”

“그럼 상대편에도 마법사들이 있다는 말입니까?”

틸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법사란 존재는 아군으로 있을 때 무척이나 든든한 존재인 만큼, 적으로 있을 때는 무척이나 무서운 존재였다.

“그렇네. 하지만 그리 걱정할 필요 없어. 놈들은 우리가 상대할 테니.”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이면서 윌위스는 또렷하게 말했다.

“내가 끌고 온 제자들의 실력은 마탑에서도 분명 윗줄에 있는 녀석들이야. 게다가 나도 전쟁에 참여할 걸세. 아무리 마탑주에서 물러났다고 해도 아직 내 실력이 그렇게 녹슬진 않았거든.”

털털하게 말을 하던 윌위스의 눈이 일순간 날카로워졌다. 성격이 둥글어졌을 뿐, 그가 가진 발톱과 송곳니는 여전하다는 게 여실히 보인 순간이었다.

“그래도 같은 마탑에 소속되어 있던 사람들일 텐데, 괜찮겠습니까?”

지크의 질문에 윌위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런 경우가 흔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것도 아니네. 게다가 마법사란 것들은 마탑에 모였다고 해도 그리 인간적으로 친해지는 놈들이 아니니까. 다른 학파라면 더더욱 그렇지. 게다가 자네도 잘 알지 않나. 지금 우리 학파와 콘로드 학파는 꽤나 껄끄러운 사이라는 걸. 눈에 불을 켜고 죽이려 들 정도의 사이까지는 아니지만, 적대 진영에 있을 때 쓸데없는 감정을 가질 정도도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알겠습니다.”

윌위스가 저런 말까지 했는데 더 말을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지크는 깔끔하게 윌위스의 말을 받아들였다.

“상대에게 마법사가 충원됐다면 전쟁이 조금 더 힘들어질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패배한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서, 전 아예 진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제 요청에 응하기 전에도 그랬죠. 여러분이 응원군으로 온 지금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오히려 저 놈들을 얼마나 어떻게 짓밟아야 할지가 지금 제 최대의 관심사입니다.”

세 사람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지크에게 고마움을 느끼긴 하지만 그의 성격이 썩 좋은 편이 아니라는 것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기세 좋게 나갑시다. 결코 놈들은 우리의 적이 되지 못할 테니까요.”

그리고 지크는 찻잔을 마치 술잔처럼 높이 들어 올렸다.

“우리의 승리를 위해서.”

세 사람도 자신의 찻잔을 들어 지크의 찻잔에 가볍게 부딪쳤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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