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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491화 (491/628)

제491화

친구. 그 말에 맥스는 물론이고 갑자기 나타난 엘프와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용병들 모두가 놀랐다.

살면서 한 번도 보기 힘든 엘프와 친구라니.

‘이종족 친구? 그거 소설에서나 나오는 거 아니었어?’

하지만 앞에서 방실방실대고 있는 엘프는 분명 허상이 아니었다.

“레오나 님!”

누군가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용병들의 시선이 절로 소리의 근원지로 향했다. 저 멀리서 로브를 입은 자들 한 무리가 우르르 달려오는 게 보였다.

“혼자 가지 마시라고 그렇게…. 아, 로브를 내리시면 어떻게 합니까!”

아마도 무리의 우두머리인 듯, 무리 가장 앞에 서 있던 자가 레오나를 향해 외쳤다. 누가 봐도 고생하고 있다는 투가 느껴져, 절로 동정심에 잠겨들 만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고생의 원인이 분명한 레오나는 무척이나 맑고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이 사람들, 지크의 친구래.”

“지크 님과 말입니까?”

지크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잔소리 폭풍을 퍼부으려던 우두머리가 멈칫했다. 그리고 용병단을 쳐다봤다. 하나 그것도 잠시.

“아무리 그렇다 해도 로브를 쉽게 벗으면 안 되죠. 인간들이 우리 정체를 알면 귀찮을 일이 많단 말입니다!”

“어차피 목적지도 코앞이잖아. 스틸월 백작가를 도우러 왔다고 할 때도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을 거야?”

“그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때까진 계속 쓰고 있어야죠!”

투덕거리기 시작한 둘을 틸은 조용히 관찰했다. 그러다 길에서 조용히 대기하고 있는 무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차림새는 레오나와 같다. 로브를 뒤집어쓰고 어깨에 활을 메고 있다.

‘혹시 저들이 다 엘프인 건가.’

한 명 보기도 힘든 엘프들이 저렇게 대규모로 있다니.

‘우리처럼 스틸월 백작가를 도우러 온 건가?’

늑대의 송곳니는 지크의 편지를 받고 스틸월 백작가에 고용되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 아마 저들도 자신들처럼 지크의 편지를 받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틸은 말을 몰고 천천히 맥스의 옆으로 움직였다.

“당신들도 이번 스틸월 백작가의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서 온 겁니까?”

레오나와 우두머리의 말다툼이 멈췄다.

“맞아. 지크가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달라고 했거든. 예전에 빚진 것도 있으니 도와줘야지. 우리 호수의 일족은 은혜를 잊는 일족이 아니니까. 너희도 스틸월 백작가를 도와주러 온 거야?”

“정확히 말하자면 고용받으러 온 겁니다. 우리는 용병단이니까요. 다만 지크 씨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온 건 맞죠.”

“역시 그랬구나!”

레오나가 우두머리의 소매를 잡고 꽉꽉 잡아당겼다.

“봐봐! 역시 우리랑 똑같은 일로 온 거였어!”

“알겠으니까 흥분하지 마세요.”

우두머리는 반쯤 포기한 듯한 어조로 레오나를 진정시키고는 틸을 바라봤다.

“음, 거기 용병 씨? 일단 움직이죠. 비도 오는 상황에 길 한가운데 계속 있을 순 없으니까 말입니다.”

“그러죠.”

용병단과 엘프들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무리는 조금 거리를 두고 걸었다.

난데없이 마주친 엘프 무리가 신기한 듯 용병들은 흘끔흘끔 엘프들을 쳐다봤지만, 엘프들은 인간들에겐 별 관심이 없는지 똑바로 앞만 보고 걸었다.

하지만 레오나는 달랐다. 그녀는 용병단 가까이에 붙어 종종 말을 걸어왔다. 대꾸는 대부분 맥스가 했다.

종족도 삶의 방식도 살아온 세월도 다른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상태에서 매끄럽게 말을 이어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둘의 대화는 그럭저럭 이어졌다.

보통 처음 만난 사람끼리 대화를 나눌 때 가장 좋은 건 공통된 화제를 찾는 것. 둘의 화제는 당연히 지크였다.

똑같이 지크를 도우러 왔다고 해도 혹시 동명이인이 아닐까 잠시 생각이 들기도 했었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둘은 서로가 알고 있는 지크가 동일 인물임을 확신했다.

그만큼 개성적인 인물 중 지크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자가 또 있을까.

그들이 만난 곳은 비올사의 성벽이 보일 만큼 도시에 가까워져 있는 곳이었기에 두 무리는 금방 성문에 도착했다.

백작령의 주도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성문에 도시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적었다. 우기라는 기상 상황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스틸월 백작가에 대한 소문과 전쟁을 앞두고 있는 시기의 탓이 컸다.

그래도 어느 정도 성문 앞의 대기 줄이 있던 터라 두 무리는 대기 줄 뒤에 섰다.

두 무리는 대기 줄에 서자마자 바로 관심을 받았다. 무장을 한 용병단과 로브를 푹 눌러 쓴 정체불명의 무리는 누가 봐도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역시 가장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건 레오나였다.

“저 사람 엘프 아냐?”

“엘프라고? 진짜?”

호기심 어린 시선이 쏠렸지만 레오나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미 자신이 인간 사회에서 어떤 시선을 받는지는 저번 여행 때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두 무리가 대기 줄에 선 지 얼마 되지 않아 경비병 몇 명이 헐레벌떡 두 무리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정말로 엘프가 있는 걸 확인하고 깜짝 놀란 경비병들은, 하지만 재빠르게 정신을 수습하고 일단 늑대의 송곳니에게 다가갔다.

“용병들이십니까?”

전쟁을 앞둔 시기에 갑자기 나타난 무력 단체에 경비병은 적잖은 긴장을 했다. 다른 경비병 몇 명을 끌고 오긴 했지만 늑대의 송곳니의 숫자에는 한참 못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기대감이 샘솟기도 했다. 경비병도 백작가에서 용병들을 모집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잘 풀리지 않고 있는 것도.

틸은 말에서 내려 경비 앞으로 나섰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늑대의 송곳니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용병단입니다.”

“비올사에 방문한 목적은 뭡니까?”

“스틸월 백작가에서 전쟁에 대비해 용병을 모집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전쟁에 참전하시겠단 겁니까?”

“그렇습니다.”

경비병의 표정이 밝아졌다. 용병 모집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는 참에 척 봐도 능력 있는 것 같은 용병들이 이번 전쟁에 참여하겠다니.

“우리 스틸월 백작령은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바로 상부에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경비병이 바로 동료에게 보고를 맡겼다. 동료가 급히 도시 안으로 뛰어가려 할 때였다.

“아, 잠깐만요.”

틸은 품속을 뒤져 둘둘 말린 가죽 하나를 꺼냈다. 그 안엔 지크가 보낸 편지가 들어 있었다. 거세게 내리는 비에 젖지 말라고 틸이 처치를 한 것이었다.

“이걸 스틸월 백작님께 전해주시겠습니까?”

“이게 뭡니까?”

경비병은 일단 틸이 주는 가죽을 받았다.

“안에 편지가 들어 있습니다. 저희를 부른 사람이 그걸 백작님께 전해드리면 된다고 하더군요.”

“여러분을 부른 사람? 그게 누굽니까?”

“지크 씨입니다. 백작님의 아들분이라고 하던데요.”

수상한 눈빛으로 가죽을 이리저리 살피던 경비병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크 도련님의 편지라고요?”

‘진짜냐!’

지크가 정말로 백작의 자식이라는 말이 들려오자 맥스는 속으로 기함을 질렀다. 딱히 의심을 했던 건 아니지만, 백작가의 병사가 도련님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자 그제야 확실히 실감이 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상부에 말씀을 드려보죠.”

경비병은 조심스럽게 가죽에 싸인 편지를 보고를 부탁한 동료에게 건넸다.

“잠깐!”

레오나가 끼어든 건 그때였다. 그녀도 품속에서 나뭇잎에 꽁꽁 싸인 편지를 꺼내 들었다.

“그거 나도 있어! 이것도 같이 그… 백작이란 사람에게 갖다줘!”

레오나가 경비병에게 편지를 쥐여줬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경비병이 놀랐다.

“저… 이건 뭡니까?”

생전 처음 보는 엘프가 갑자기 쥐여주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편지를 받은 경비병이 물었다.

그도 상당히 오랜 시간 경비병 생활을 해왔지만 처음 보는 이종족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편지. 백작이란 사람에게 갖다주면 돼.”

“죄송하지만 백작님께 아무 편지나 가져다드리는 건….”

백작을 함부로 부르는 건 분명 무척이나 무례한 아니, 그걸 넘어 당장 경비대에 끌려가도 할 말이 없는 일이었지만, 이종족에게까지 인간의 신분을 강요할 수는 없다.

경비는 인간 사회를 잘 모르는 엘프가, 틸이 경비에게 편지를 맡기는 걸 보고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용히 타이르려 했다.

하지만 틸의 보충 설명이 뒤따르자 그의 말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것도 지크 씨의 편지일 겁니다.”

“…이것도 도련님의 편지라고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이분들과는 중간에 만나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분들도 지크 씨의 부탁을 받고 온 거라더군요.”

“네?”

경비병이 놀란 눈초리로 레오나를 쳐다봤다.

레오나의 옆으로 우두머리가 섰다. 레오나의 돌발 행동에 골치가 아픈지 고개를 살짝 젓고 있다. 빗소리 사이로 한숨 소리가 살짝 들리는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그는 곧 엄숙한 목소리로 경비병을 향해 말했다.

“저분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건 지크 님의 편지입니다. 정확한 상황은 아마 그 안에 다 들어있을 겁니다만, 간단히 말씀드리죠.”

우두머리가 로브를 벗었다. 동시에 다른 자들도 일제히 로브를 벗었다. 경비병들은 경악했다. 설마 레오나의 뒤에 있던 로브를 쓴 무리가 전부 엘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경비병의 심정이 어쨌든, 우두머리는 자신의 말을 계속했다.

“백작님께 전해 주십시오. 지크 님께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아드로원 대수림의 엘프들이 이번 전쟁에 원군으로 참여하기를 희망한다고요.”

“…네?”

자신이 생각해도 멍청해 보이는 태도다. 하지만 경비병은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엘프가 이 전쟁에 참여를 해? 그것도 도련님 덕분에?

생각을 막는 바윗덩이가 머리 곳곳에 쏟아져 내린 것처럼, 경비병들은 빗물이 들어가는 것도 모른 채 입을 떡 벌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응? 왜 저러지? 의사소통이 잘 안 됐나?”

레오나가 동공이 풀린 경비병 앞으로 손을 휘휘 젓는다. 그제야 경비병의 정신이 돌아왔다. 하지만 돌아온 건 정신뿐, 아직 몸의 통제권은 제대로 잡지 못한 모양이다.

“어… 그… 에, 엘프 분들이 전쟁에 참여하신다고요?”

“그래! 지크에게는 은혜를 많이 입었으니까. 이 정도 부탁은 들어줘야지.”

엘프의 원군이라니. 그들의 궁술과 마법은 인간들에게도 유명하다. 엘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비병들조차 눈앞의 원군이 얼마나 엄청난 전력인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다, 당장 백작님께 연락을…!”

허둥지둥 받은 편지를 동료에게 전하며 보고를 하라는 경비병. 그러나 이번에도 편지는 바로 백작에게 전해지지 못했다.

“이보게, 거기 경비병. 전달해 주는 김에 백작께 이것도 전달해 주겠나.”

어느새 일단의 무리가 다가와 있었다. 경비병은 목을 돌렸다. 그건 거의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이미 머리는 혼란과 당황 속에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눈에 들어온 건 웬 노인이었다. 로브를 입은 채 지팡이를 짚은 것이, 그저 평범한 노인 같다. 하지만 경비병은 노인의 지팡이가 예사롭지 않은 것을 눈치챘다.

그러나 경비병의 눈을 사로잡은 건 예사롭지 않은 지팡이도, 노인 뒤에 서 있는 무리도 아니었다.

노인이 내밀고 있는, 뭔가를 둘둘 싸고 있는 가죽. 안에 내용물이 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미 비슷한 걸 두 개나 받은 이상, 경비병의 뇌리에는 가죽 안의 내용물도 그와 비슷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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