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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472화 (472/628)

제472화

스녹이 찾아낸 입구는 절벽 위, 지면에 갈라진 틈 아래에 있었다.

어찌나 좁은지 사람 한 명이 몸을 구겨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곳. 게다가 틈 아래의 공간도 좁기는 매한가지였다. 허리를 구부려야 겨우 움직일 수 있는 곳이었다.

공간의 벽면에 있는, 툭 튀어나온 바위가 가리고 있는 틈에 또다시 몸을 구겨 넣어야 할 좁은 굴이 있었고, 그 굴로 조금 더 기어들어 가야 비로소 밸리드가 만든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충분히 허리를 펴고 걸을 수 있는 인공적인 통로가 나왔다.

“솔직히 놈들의 이런 능력은 감탄스럽습니다. 아무리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라지만 이런 곳을 찾고 굴을 파다니요.”

지크가 감탄했다.

적어도 바위틈과 틈 아래 공간, 그리고 공간 옆으로 이어진 비좁은 굴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 분명했다. 밸리드 놈들은 그런 지형을 이용해 비밀 통로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쓰레기들이 쓸데없는 능력을 가졌어요.”

와이그조차 투덜거리면서도 밸리드의 그 ‘능력’을 인정할 정도였다.

정말로 스녹이 없었다면 찾는 데 무척이나 애를 먹었을 곳이었다.

“이 앞으로 통로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쿠!

스녹이 굴 저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노웸이 울음소리를 내 동의했다.

“그다지 복잡한 통로는 아닙니다. 일직선으로 쭉 이어져 있어요. 갈림길 같은 것도 없고요. 그리고 통로 끝에 커다란 공동 하나가 감지됩니다.”

“거기가 바퀴벌레 놈들의 소굴이겠지.”

들을 것도 없었다.

“어서 갑시다.”

와이그가 재촉했다. 그는 벌써 검을 빼 들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밸리드 신도들의 피를 손에 묻히고 싶어 안달하는 모양새였다.

그 모습이 마치 피에 취한 미친놈 같아 천하의 지크조차 성기사라는 작자가 저래도 되나 잠시 고민에 빠지게 만들 정도였다.

그러나 와이그의 말을 반대할 이유도, 생각도 없었다.

“그러죠. 출발합시다.”

“다른 사람들을 부르는 게 낫지 않을까요?”

한스가 병력을 증원시켜 가는 게 낫지 않나 물었지만, 지크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놈들을 제거하는 게 낫다. 통로의 크기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놈들이 있을 것 같진 않으니까.”

이미 스녹에게 통로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다는 걸 들은 상태다. 밸리드 놈들이 꽉꽉 들어찼다고 해도 머릿수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런 좁은 통로에서는 소수 정예로 움직이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이들은 진압군 중에서도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자들이었다.

일행은 굴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깥에서 유입된 빗물이 그들을 따라 통로 안을 흘러내렸다. 빗물은 여전히 거세게 쏟아지는 모양이었다.

지크가 스녹에게 질문을 던졌다.

“탐색된 공동까지는 얼마나 걸리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이 속도로 진행한다면 뜨거운 차 한 잔 마실 정도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가까운데 도시 제물의 의식으로 모았을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라. 역시 뭔가 수작을 부려서 힘을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하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힘을 감지하는 방법을 위주로 탐색을 했다면 크게 낭패를 볼 뻔했습니다.”

와이그도 지크의 의견에 동의했다.

지크는 통로 저편을 경계하면서도 혹시 수상한 것이 없는지 주변도 자세히 살폈다.

“…이건 뭐지?”

통로 이곳저곳에 손가락만 한 구멍이 무수히 뚫려 있었다. 자연적으로 생긴 건 절대 아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곳에도 수많은 구멍이 흘러내리는 물속에 잠겨 있었다.

“통로 전체를 감지한 결과 그런 의미 모를 구멍들이 무수히 뚫려 있더군요. 깊이도 꽤 깊었습니다.”

스녹이 설명했다. 지크는 잠시 걸음을 멈춰 구멍을 천천히 살폈다. 한쪽 눈만 뜬 채 구멍 안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별다를 건 없었다. 그저 시커먼 어둠만이 지크의 시선을 반길 뿐이었다.

“인테리어는 아닐 테죠.”

와이그도 구멍을 툭툭 만지며 불쾌하게 말했다. 어떤 의도로 만들었든 밸리드가 만든 이상 그게 좋은 의도가 아닌 건 분명했다.

“아마도 절벽의 붕괴를 더 잘 유도하기 위해 만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반을 약화시켜 통로가 더욱 잘 무너져 내리도록 말이죠.”

지크가 구멍에서 눈을 뗐다.

“역시나 되먹잖은 짓이군요.”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는 듯 와이그가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아닌 것과 분노가 솟지 않는 건 전혀 별개의 이야기다.

“어서 가시죠, 지크 님. 놈들이 또 다른 되먹잖은 짓을 하기 전에 박살 내야죠.”

와이그의 목소리에 짙은 분노가 섞였다.

지크 일행은 멈췄던 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일행은 굳이 커다란 소란을 피워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숨기려 애쓰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별다른 장애물조차 없는 뻥 뚫린 통로다 보니 기척을 숨기는 게 어려웠기 때문이다.

당연히 통로의 끝에 도달할 즈음, 마중이 나왔다. 밸리드 신도들이었다.

“나왔군!”

와이그가 바로 검을 들고 앞으로 나갔다. 아무래도 비좁은 굴이다 보니 두 명 이상이 함께 싸우다간 오히려 서로 간에 방해가 될 게 뻔하기에 지크는 와이그의 뒤에 섰다.

단, 언제든 공격을 할 준비는 마쳐뒀다. 한스도 스녹도 마찬가지였다.

“와이그 님. 전투는 조심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괜히 통로 벽에 충격을 줬다가 통로가 무너져 내리면 우리 때문에 절벽의 붕괴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구멍이 숭숭 뚫린 통로 벽의 내구성이 결코 좋을 리는 없다. 통로만 붕괴된다면 괜찮지만, 그게 연쇄반응을 불러올지도 모르니, 조심하는 게 좋았다.

도시 제물의 의식으로 만들어진 힘의 실체를 확인하고 확실히 제거하기 위함과 함께 스녹을 시켜 굴을 붕괴시키지 않는 이유였다. 대규모 붕괴가 일어난다면 아무리 스녹이라도 그걸 막을 수는 없으니까.

“명심하죠!”

와이그는 그 말만을 남겨놓고 밸리드 놈들에게 뛰어들었다.

밸리드 신도들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열댓 명의 신도들이 일제히 손을 뻗었다.

촤아아악!

통로 안으로 흐르던 물의 수위가 급격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정강이까지 들어찼다. 곧 통로 안이 한 점 틈 없이 물로 가득 찰 것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지크 일행이 바로 익사하지는 않겠지만 그들의 움직임에 제약이 걸린다는 건 분명했다. 그리고 그들이라고 호흡을 영원히 참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가득 들어찬 물은 또 다른 위협을 만들기도 했다.

퍼어엉!

물을 조종하는 밸리드의 특성상 그들의 기술의 위력이 더욱 강해졌다. 물 위로는 날카로운 물줄기가 날아오고 물 아래에서는 막대한 수압이 일행을 짓눌렀다.

그러나 와이그는 그 모든 악조건을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온갖 경험을 겪어온 그에게 이 정도 상황은 위기도 아니었다.

퍼엉!

다리를 으스러뜨리기 위해 조여오는 수압을 물을 거칠게 차 일시에 무너뜨린다. 날아오는 날카로운 물줄기는 검으로 요격했다. 아무래도 전진 속도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달리 말하자면 밸리드의 공격은 고작해야 잠깐 발을 묶는 효과밖에 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와이그가 다가오자 가장 가까이 있던 밸리드 신도가 무기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와이그를 공격했다.

쾅! 쾅!

제법 실력이 좋은 듯 그는 와이그와 몇 합을 주고받았다. 뒤에 있는 다른 밸리드 신도들도 연신 와이그를 집요하게 공격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콰앙!

와이그의 육중한 일격에 그와 맞붙고 있던 밸리드 신도의 균형이 크게 흐트러졌다. 그 기회를 와이그가 놓칠 리 없었다.

서걱!

와이그의 검이 부드럽게 상대의 목을 갈랐다. 피가 분수처럼 솟아오르며 잘려 나간 머리가 물속으로 풍덩 떨어졌다. 물에 새빨간 피가 흘러 색을 변형시켜갔다.

하지만 그 장면에 관심을 기울이는 자는 없었다. 와이그는 별 감흥 없이 계속 전진해 앞을 가로막는 신도들을 족족 베어 넘겼다.

통로 안이 물로 가득 찼다. 하나, 그런 악조건도 와이그의 전진을 막을 수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좁았던 통로가 일순 뻥 뚫렸다. 통로의 끝에 있다는 공동에 도착한 것이다.

그곳에는 열댓 명의 밸리드 신도들이 모여 있었다. 하지만 지크 일행의 눈을 사로잡은 건 다른 것이었다.

‘밸르의 석상.’

생선 대가리가 인상적인 밸르의 석상이 공동 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석상을 중심으로 복잡하고 기묘한 진이 그려져 있었다. 공동 가득 찬 물에도 지워지지 않는 것이, 특수한 물질로 그려졌거나 진 자체에 스스로를 보호하는 능력이 있는 모양이었다.

지크는 석상을 자세히 훑었다.

‘이쯤 되니 슬슬 느껴지는군.’

석상에서 희미한 기운이 뿜어지고 있다. 그다지 위협적인 기운은 아니지만 그저 밖으로 새어 나오는 기운이 약할 뿐, 석상 안에 들어 있는 기운은 전혀 다를 것이다.

‘저기에 도시 제물의 의식으로 만들어진 힘이 들어 있겠지.’

그렇다면 해야 할 건 하나다. 석상을 둘러싼 진을 망가뜨리고 석상을 부순다. 그렇다면 머무를 곳이 사라진 힘은 사방으로 흩어질 것이다.

와이그도 지크와 같은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는 검을 들고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신도들을 베어버리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야 신도들도 뻔히 알고 있는 노릇이다. 당연히 신도들은 저항했다.

하나, 지금껏 와이그 한 명 막지 못한 그들이다. 비좁은 통로라는 환경이 커다란 공동으로 변한 이상 와이그 한 명에게만 전투를 맡겨놓을 필요는 없다. 지크, 한스, 스녹 또한 전투에 참전했다.

순식간에 네 명의 신도들의 목숨이 사라졌다. 아직 열 명 이상 남아 있지만 밸리드 신도들의 미래가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나머지 신도들이 전멸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게 분명했다.

신도들의 얼굴에 잠시 고민의 빛이 스쳤다. 하지만 곧 그들은 독기 어린 눈빛을 머금었다.

‘뭔가 할 셈인가.’

적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게 할 필요는 없다. 지크는 바로 검을 휘둘렀다. 수많은 검기들이 물속을 헤집으며 나아갔다. 물이 갈라지며 상이 비틀게 보이는 것이 묘한 아름다움을 풍겼다. 물론 목표가 된 자들에게는 섬뜩하기 그지없는 광경이겠지만.

하지만 검기는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강하게 움켜쥔 것처럼 검기가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다.

‘수압으로 찍어 눌렀군.’

지금껏 밸리드 신도들이 자주 사용하던 방법이다. 하지만 위력만은 지금까지와 전혀 달랐다.

지크는 신도들을 살폈다. 그들은 어느새 밸르 석상의 주위에 모여 하나같이 석상에 손을 대고 있었다.

‘석상의 힘을 쓴 건가.’

순간 석상에서 폭발적인 힘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석상의 힘을 가리고 있던 무언가가 사라진 것이다. 그건 지크조차 위협을 느낄 정도로 커다란 힘이었다.

밸리드 신도들은 본격적으로 석상의 힘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날아오는 공격의 위력이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자신들의 계획이 방해받은 것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듯 밸리드 신도들은 격렬하게 공격을 가했다.

분명한 위험스러운 상황. 하지만 지크 일행 중에서도 만만한 사람은 없다. 그들은 곧 힘을 합쳐 대항하기 시작했다. 거센 공격을 받으면서도 그들은 꾸준히 앞으로 전진했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히 승리를 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지크는 뒤에서 다가오는 기척을 하나 느낄 수 있었다.

지크는 한숨을 쉬었다. 기척의 주인이 누군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너무도 뻔했다.

‘그렌 제너드.’

그렌이 공동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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