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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462화 (462/628)

제462화

지크 일행은 그렌 일행과 헤어진 후 계속 밸리드의 신전을 찾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 사람이 예의 그 사람입니까?”

지크가 물었다. 의사소통의 기본인 정보가 숭숭 뚫려 있는 질문이었지만 루벨라와 와이그는 어렵지 않게 그 뜻을 이해했다.

“그래요.”

루벨라가 입술을 삐죽이며 대답했다.

“예전 제가 성녀 후보 시절 때, 툭 하면 시비를 걸고 절 깎아내리지 못해서 안달이 나 있던 사람이죠.”

“루벨라 님께서 성녀로 추대되시고 어디 지방 신전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생각했더니, 설마 제너드 님의 곁에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와이그도 그녀에 대한 좋은 추억이 있을 리 없기에 무척 탐탁지 않아 하는 어조였다.

“뭐, 그래도 지크 님의 조언으로 그 녀석의 뺨을 후려갈겼을 때에는 제법 재미있었어요.”

“갑갑하던 속이 일순간에 후련해지는 장면이었죠.”

당시의 추억이 상당히 만족스러웠는지 찌푸려져 있던 둘의 얼굴이 일순 편안해졌다.

“제 조언이 힘이 되었다면 무척이나 영광입니다.”

“무척 힘이 되었고말고요. 지크 님과 함께한 경험과 지크 님의 조언 덕에 루벨라 님은 유일한 약점이었던 강단을 가지게 되셨습니다. 그걸 생각하면 지크 님은 카르위먼의 엄청난 은인이시죠.”

“과분한 말씀 감사합니다. 하지만 방금 본 사람이 루벨라 님과 경쟁 상대였다면 굳이 제 도움이 필요했을지 의문입니다. 루벨라 님의 인품과 실력만으로도 충분히 성녀의 직위를 받을 수 있었을 것 같으니까요.”

“물론 성녀 후보로서의 경쟁 상대가 그자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만, 결국은 루벨라 님이 성녀가 될 수 있었을 거라는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지크 님과 함께하면서 루벨라 님이 성장하신 것도 사실입니다. 카르나를 모시는 자로서 당연히 감사를 드려야죠.”

그렇게 지크를 칭찬한 와이그는 살짝 뒤를 돌아보며 혀를 찼다.

“저런 녀석이 루벨라 님과 경쟁하려고 한 것 자체부터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정말로 카르위먼의 인재 판별 체제를 근본부터 다시 뜯어고쳐야 해요.”

카르위먼의 체제에 투덜거리는 와이그와는 달리 루벨라는 그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렌 제너드 님이라고 했었죠?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인. 그분은 첼시 윈드네의 본질을 모르고 일행으로 받으신 걸까요?”

“그러지 않겠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가 그런 녀석과 어울릴 이유가 없지요.”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는 그 존재 자체가 엄청난 신뢰의 덩어리다. 웬만한 은인이 아니면 카르위먼은 명예 성기사의 칭호를 주지 않는다.

지크야 무척 쉽게 그 칭호를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루벨라가 그에게 명예 성기사를 권했던 당시 지크는 카르위먼의 유력 성녀 후보를 구해냈고 도시 하나를 멸망시키려던 ‘도시 제물의 의식’을 막아낸 상태였다.

지크야 회귀 전에도 후에도 그런 일을 밥 먹듯이 해서 별 감흥이 없었지만 일반적으로 그것은 정말로 어마어마한 위업이었다.

당연히 지크와 같이 명예 성기사란 지위를 획득한 그렌도 그 비슷한 위업을 달성했을 것이란 생각에 둘은 그렌이란 존재를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아마 알고 있을 겁니다. 그 음습한 놈이라면.”

때문에 지크가 이런 말을 했을 때 적잖게 놀랐다.

“음, 분명 지크 님은 제너드 님과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아 보이셨죠. 하지만 지크 님께서 고작 그런 이유로 다른 이를 흠잡지는 않으셨을 테고.”

선량한 사람들끼리라도 걷는 길과 갖고 있는 생각에 따라 사이가 좋지 않은 건 흔한 일이다. 와이그는 지금껏 두 사람의 사이가 그런 유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크의 어투를 보건대 고작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아까 루벨라 님과 성녀 후보로서 경쟁을 하던 사람, 첼시 윈드네라고 했죠? 와이그 님은 그 사람의 일을 두고 카르위먼의 인재 판별 체제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네, 그랬었죠.”

지크가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와이그는 조금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카르위먼에 자격이 되지 않는 사람이 위로 올라오는 일이 많아진 모양입니다.”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저 첼시 윈드네만이 아니라 자격이 되지 않는 이들이 많이 보이죠.”

“그렇다면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는 어떨까요.”

“…그분도 첼시 윈드네와 같은 부류란 말입니까?”

와이그의 질문은 무거웠다. 때문에 그에 대한 답변은 무척이나 신중을 기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지크의 어조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애초에 명예 성기사란 직위 자체가 카르위먼에 공을 세운 자가 받는 것 아닙니까. 아무래도 엄격한 기준으로 사람을 판별하는 카르위먼의 내부 심사보다는 헐렁할 수밖에 없죠. 그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성녀 후보로서 추대된 첼시 윈드네가 저 지경인데 명예 성기사는 오죽하겠습니까.”

“으음.”

일리 있는 말이다. 와이그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루벨라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물론 반드시 믿어달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틀렸을 수도 있으니까요.”

강하게 말하지는 않는다. 지크야 여러 가지 이유로 그렌의 본모습을 알고 있지만 루벨라와 와이그는 이번에 처음 듣는 것이다.

지크의 말을 굉장히 신뢰하는 그들이라고 해도 지크의 지금 말은 카르위먼의 신뢰도를 건드리는 것이다. 바로 믿지 못한다고 해서 실망할 건 없다.

“그저 앞으로 그 사람을 대할 때 한 번 정도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하죠.”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크의 말이니 두 사람에게 분명 그렌에 대한 의심의 싹이 자리 잡았을 것이다.

‘슬슬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지.’

지금까지는 놈의 회귀 능력 때문에 녀석의 행동을 두고 본 감이 있었다. 하지만 녀석의 능력이 사라진 걸 확인했으니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

‘길고 긴 꿈에서 깨어날 때야.’

그리고 눈앞에 닥친 현실을 자기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할 때였다.

* * *

스틸월 영지를 둘러싼 사건은 모두 그렌 제너드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소규모의 밸리드 신전을 파괴하러 다닐 때 그렌을 마주친 이후 지크는 이에 대해 거의 확신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렌이 비올사에 있는 대규모 밸리드 신전을 발견했다고 했을 때,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거기서 스틸월과 관련된 무언가가 나오겠지.’

그리고 음모가 가속될 것이다.

지금껏 텅 비어 있던 지방의 신전과는 달리, 이번에 발견된 대형 신전에는 밸리드 신도들이 꽤 존재하고 있다고 했다. 때문에 농성 중인 그들을 퇴치하기 위해 지원군을 요청했다고 한다.

‘또 사람들을 모아서 용사 노릇을 할 작정인가.’

그렌의 심리가 너무나도 확연해 절로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뭐, 앞으로 발견될, 스틸월과 연관된 무언가를 여러 사람에게 알리기 위함도 있겠지.’

어쨌든 밸리드의 신전이 발견되었으니 지크도 그곳으로 갈 생각이었다.

예상대로라면 금방 끝날 토벌전이지만 그래도 사건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 그래서 지크는 발견됐다는 신전으로 가기 전에 라일라와 만났다.

“그래서 다음에 만나는 건 좀 늦어질지도 모르겠다.”

지크가 빵 하나를 쭉 찢어 스프에 찍으며 말했다.

지크와 라일라는 거대 수정을 둘러 싸고 있는 링 위에서 테이블 하나를 두고 여러 음식을 차린 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웬만한 일이 없는 이상 지크는 하루에 한 번씩은 라일라에게 들렀다. 대부분은 식사 때였다. 하루 종일 유적 연구에 푹 빠져 있던 라일라는 그 짧은 시간만큼은 연구를 그만두고 지크와의 식사 시간을 즐겼다.

라일라가 고기를 썰어 입 안에 넣으며 말했다.

“알았어. 기억하고 있을게.”

이 즐거운 시간을 한동안 갖지 못한다는 것에 조금은 실망하는 라일라였지만,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다.

“아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신전은 꽤 가까이에 있다고 하니까.”

비올사에 있다는 소문과 크게 어긋나지 않게 새로 발견된 신전은 비올사와 상당히 가까웠다.

라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게슴츠레 눈을 떴다.

“성녀와 같이 가는 거지?”

“그렇지.”

“흐음.”

기분이 나쁘다는 듯 라일라가 지크를 쳐다봤다. 고기를 써는 칼질이 조금 거칠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그래. 잘 다녀와. 몸조심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라일라는 미소까지 띠어가며 지크에게 말했다.

“뭐야. 가까이 붙지 말라든가 사고치지 말라든가 말 안 해?”

“지금 내가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니. 아직까지는 일방적인 짝사랑 중인데.”

그녀가 느긋하게 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엔 강렬한 의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반드시 돌아보게 만들겠어. 그때에는 방금 네가 한 말처럼 꽉 속박해줄게.”

“난 자유로운 게 좋다만. 그래도 남이 도전을 한다는 데 초를 칠 수는 없지. 잘해봐. 응원할 테니까.”

지크는 피식 웃으며 나머지 빵을 입에 던져 넣었다.

“연구는 잘되고 있어?”

“아직까지는 별 성과는 없어.”

라일라가 링의 한구석, 정체 모를 장치들이 모여 있는 곳을 쳐다보며 말했다.

“마력을 조금씩 흘려가며 장치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보는 중이긴 한데, 성과가 느려. 아무래도 장치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니까.”

“잘 생각했어.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조심하는 게 낫지.”

지크는 얼마 전 봤던 색색의 마력을 떠올렸다. 그것들이 고삐를 잃고 폭주를 한다면 대재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지금의 음모가 해결될 때까지 알아내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어. 그때는 그냥 이곳에 더 머무르면 되니까. 내가 해준 일이 있으니 저 망할 아버지라도 당장 나가라고 하진 못하겠지.”

“알았어.”

그리고 둘은 자잘한 담소를 나눴다. 누가 봐도 무척이나 즐거운 분위기다. 그렇게 식사를 끝낸 둘은 다시 자신들이 할 일로 돌아갔다.

* * *

지크는 라일라를 제외한 자신의 일행을 데리고 루벨라, 와이그와 합류했다. 그렌이 찾았다는 신전은 비올사에서 마차로 불과 한 시간 거리에 있었다.

“하여간 이 바퀴벌레 새끼들은 이런 곳은 기가 막히게 찾는단 말이야.”

지크는 눈앞에 떡하니 드러난 동굴 입구를 보며 혀를 찼다.

“딱 저들에게 어울리는 능력이죠. 정말로 귀찮기 짝이 없는 능력이지만요.”

루벨라가 서늘한 눈으로 입구를 쏘아봤다.

그들은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들어간 듯 동굴 입구에는 사람들의 흔적이 가득했다.

동굴은 상당히 깊었다. 그리고 가면 갈수록 넓어졌다. 딱 밸리드의 신전이 있을 만한 곳이다.

그들이 동굴의 끝에 다다랐을 때, 그들은 상당한 규모의 밸리드 신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전에 봤었던 북부 지부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봤었던 신전에 비하면 확실히 커다란 규모였다.

신전 주위로 스틸월의 기사와 병사, 카르위먼의 성기사들이 모여 있는 게 보인다. 규모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아무리 동굴치고는 넓은 곳이라지만 밸리드 북부 지부 같은 곳이 아닌 이상 대규모 인원이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스틸월의 기사와 병사 그리고 카르위먼의 성기사들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진영을 두고 있었다.

지금의 스틸월 백작가와 카르위먼의 사이를 보여주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아, 오셨군요.”

듣는 것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지크는 목소리의 주인을 쳐다봤다.

그렌 제너드가 다가오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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