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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455화 (455/628)

제455화

스틸월 영지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든 말든 지크와 성기사들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성기사분들이 여기까지 온 이유야 당연히 소문 때문이겠죠?”

“물론입니다. 더럽디더러운 밸리드에 관한 소문이니, 아무리 헛된 소문일 가능성이 있더라도 직접 움직여야죠.”

그렇게 말한 윈스틴의 시선이 살짝 스틸월 기사들에게 향했다가 돌아왔다. 지크는 그 움직임을 눈치챘다.

‘의심하고 있군.’

그렇다고 해서 무슨 유력한 용의자를 보는 시선은 아니다. 더러운 소문을 듣고 ‘정말로 그럴까?’ 생각하는 정도의 의심 정도였다.

게다가 스틸월의 명성이 절대 낮지 않으니 티를 내지도 않았다. 괜히 의심스럽게 취급했다가 소문이 헛소문으로 결론이 날 경우, 스틸월과 카르위먼의 사이가 나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여러분도 아마 소문 때문에 오신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혹시 뭔가를 찾으셨습니까?”

“네, 정말로 있더군요.”

순간 성기사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건 밸리드의 신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게 아니면 뭐겠습니까.”

지크는 뒤쪽에 있는 굴을 가리켰다.

“저 안에 있었습니다. 그다지 규모는 크지 않더군요.”

“뭐, 산 옆에 있는 호수의 크기를 보면 그렇겠죠. 혹시 거기서 뭔가 발견한 게 있습니까?”

“아뇨. 깨끗하더군요. 그래서 아예 신전을 해체할 생각이었습니다. 해체하다가 뭔가를 발견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저런 재수 없는 걸 그냥 놔두기도 싫으니까요.”

“그건 그렇죠. 혹시 해체하기 전에 저희가 다시 한번 확인해봐도 괜찮겠습니까?”

말은 요청이었지만 윈스틴의 눈은 단호했다. 아마 여기서 지크가 거부한다면 상당한 갈등이 있을 것이다.

“얼마든지요.”

지크는 한 걸음 옆으로 물러나 안내하듯 팔을 굴 쪽으로 뻗었다.

“협력 감사드립니다.”

윈스틴이 성기사들에게 손짓을 했다. 그들은 굴 안으로 들어갔다. 성기사들의 모습이 모두 사라지자 일행이 지크에게 다가왔다.

“뭔가 오해가 생기진 않겠죠?”

“오해가 생길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저 소문을 확인하러 온 것뿐인데요. 의심하는 기색이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만, 진지한 것도 아닐 겁니다.”

“그럼 다행이군요.”

“그래도 따라 들어가 보기는 합시다.”

일행은 다시 굴로 들어갔다. 신전까지 가보니 성기사들이 신전 이곳저곳을 뒤지고 있었다. 몇몇은 신전 벽에 어떤 성법까지 쓰고 있었다. 밸리드 놈들의 흔적을 찾아내는 카르위먼 특유의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었다.

“뭔가 찾은 건 있습니까?”

신전 입구에서 성기사들을 지휘하던 윈스틴에게 지크가 물었다.

“아뇨. 아직까지 특별한 건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다이너 경은 여기가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근처에 사는 밸리드 신자들을 위한 곳? 아니면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지어진 곳? 아니면 전혀 다른 용도로 만들어진 곳일까요?”

“글쎄요. 저도 확실한 건 모르겠습니다.”

윈스틴은 일단 확답을 피했다.

“하지만 경험상 특정한 목적을 위해 지어진 곳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규모도 그렇고, 더러운 밸르의 석상도 그다지 정교한 게 아니군요. 아마도 근처에 사는 밸리드의 신자들을 위한 곳 같습니다.”

“그럼 근처에 있는 마을 사람들이 밸리드의 신도들일까요?”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죠.”

“하지만 확률은 낮지 않습니까.”

“그것도 그렇죠.”

정말로 거기 있는 자들이 밸리드의 신도들이었다면, 적어도 신전을 발견했다는 여행자가 도망가게 놔두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소문이 퍼지는 즉시 마을을 비웠을 거고.

“특별한 건 보이지 않습니다, 다이너 경.”

한 성기사가 윈스틴에게 말했다.

“흐음, 역시 그저 소규모 신전이었을 뿐인가.”

윈스틴은 실망했다.

첼시가 끝내 성녀가 되지 못하면서 그의 벨리 와이그를 넘어서겠다는 야망도 후퇴했다. 아니, 후퇴한 정도가 아니었다.

벨리 와이그는 명실공히 성녀의 수호기사가 된 셈이니 그가 후퇴한 만큼이나 벨리 와이그는 앞으로 나아가, 둘의 차이는 더더욱 벌어졌다. 어떻게든 그 거리를 조금이나마 좁혀야 했다.

그때 들어온 소식이 스틸월 영지에서 돈 소문이었다. 공적에 목마른 윈스틴은 누구보다도 빨리 움직였다.

그리고 바랐다. 제발 이곳에서 그의 후퇴한 야망을 일거에 회복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밸리드의 주요 거점이라도 좋고 성물이라도 좋으며 고위 신관이라도 좋았다.

하지만 그의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그가 발견한 것은 소규모의 밸리드 신전일 뿐. 공적이 완전히 인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기대했던 것에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물며 그 적은 공적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이미 스틸월 기사들이 먼저 이 신전을 발견하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니 스틸월 영지가 밸리드와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지.’

그러나 아무리 공적에 눈이 먼 윈스틴이라도 그건 헛소문일 가능성이 컸다.

왕국이 자랑하는 강철벽 스틸월 백작가다. 그런 가문이 밸리드의 주구라니. 아무리 카르위먼이라도 그 현실성 없는 소문을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다면 그만한 공적도 없는데.’

자신의 위업은 일시에 상승할 것이다. 거기에 스틸월의 협력자라는 지크의 명성에도 흠을 낼 수 있었다. 아니, 자신의 손으로 그의 목을 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망상일 뿐이었다.

“수색은 끝낸다. 이 흉측한 건물이나 헐어버려라. 그리고 근처 마을 사람들을 신문한다.”

“잠깐!”

윈스틴의 명령에, 지크를 앞세우고 한 걸음 물러서 있던 대니가 반발했다.

“아무리 카르위먼에서 나온 성기사들이라도 그리 멋대로 움직이는 건 지양해 주시오! 여긴 스틸월 영지요! 그리고 밸리드의 신전을 먼저 발견한 것도 우리고!”

카르위먼이 얼마나 밸리드에게 진저리를 치는지 아는 터라 신전의 수색까지는 충분히 양보해줬다. 하지만 그 이상은 그럴 의무가 없었다.

밸리드의 신전을 헐어버리는 것 정도야 그들이 허락을 먼저 구한다면 양보해주지 못할 것도 없지만, 마을 사람들을 신문하겠다는 건 다른 문제였다.

아무리 의심스럽다고는 하지만 그들도 분명 스틸월 영지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신문을 한다고 해도 스틸월 영지의 사람이 해야 했다.

“음, 제가 스틸월 백작가를 무시하는 듯한 언사를 했군요. 사과드립니다.”

윈스틴이 고개를 숙였다. 물론 진심으로 사과를 하는 건 아니었다. 안 그래도 실낱같던 희망이 박살 나 짜증이 나던 참에 참견해 오는 대니가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그는 절대로 성격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대를 들이받을 수도 없었다. 상대는 명문 귀족 가문의 기사인 것이다. 자칫 잘못하다간 그의 목표는 더더욱 멀어져 돌이킬 수 없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카르위먼의 사람으로서 이대로 돌아갈 수도 없는 저희의 입장도 헤아려 주시길 바랍니다. 다른 건 몰라도 마을 사람들의 신문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대니가 신음을 흘렸다. 윈스틴이 스틸월 백작가에 눈치를 보는 만큼 대니도 카르위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지크가 중재를 했다.

“어차피 근처에서 밸리드의 신전이 발견된 이상 마을 사람들의 신문은 진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생선 대가리의 노예들을 가장 잘 가려내는 건 카르위먼의 분들이시죠.”

성기사들이 ‘풋!’ 웃음을 터뜨렸다. 지크의 생선 대가리란 단어 선정이 퍽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들이 스틸월 영지의 영민이란 것도 분명한 일. 스틸월 영지에서 파견한 관료들이 신문을 할 때 같이 있어야 합니다. 둘 다 무리한 요구는 아닐 겁니다. 보통 이런 일에 적용되는 방식이니까요.”

기사들과 성기사들 모두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그들 사이에서 흐르던 묘한 기류가 사라졌다.

“그럼 남은 건 이 건축물에 대한 것뿐이군요.”

윈스틴이 신전의 벽을 두드렸다. 둔탁한 소리가 불길하게 울려 퍼졌다.

“이것도 스틸월 백작가에서 부수실 겁니까?”

대니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그 정도야 카르위먼의 분들께서 하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일단 허락을 구했으니 그 정도는 양보할 수 있었다. 기뻐하며 신전을 때려 부수는 성기사들을 쓴웃음과 함께 바라본 대니는 굴을 나가려고 했다.

어차피 이 안에서 할 일은 더 이상 없다. 거기다 신전이 무너지며 먼지마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가 철수 명령을 내리려 할 때, 옆에서 한 기사가 조언을 해왔다.

“그래도 일단 여기서 확인은 해보시죠. 혹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잖습니까. 무엇보다 저희도 밸리드 신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 그래도 흉흉한 소문이 도는 판국에 또 다른 신전이 나타나지 말라는 보장도 없지 않습니까.”

듣고 보니 일리 있는 소리이기에 대니도 고개를 끄덕였다.

“도련님은 먼저 나가셔도 됩니다.”

“아니, 나도 구경하도록 하죠.”

지크는 마법 상자에서 손수건 몇 장을 꺼내 기사들에게 건넸다. 그리고 자신 몫의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았다. 기사들은 지크에게 감사를 표하고 그들도 코와 입을 막았다.

한참을 날리는 흙먼지와 함께 돌이 썰리고 깨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성기사들은 정말로 자근자근이란 단어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표하는 것처럼 신전을 아주 가루로 만들고 있었다.

기사들은 질린 눈으로 그들의 해체 아니, 분쇄 작업을 봤다. 카르위먼이 밸리드를 얼마나 증오하는지 그 증거를 눈으로 똑똑히 본 날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부정적인 감정을 듬뿍 담아 건물 해체를 했어도 결국 끝은 오는 법. 돌과 가루로 바뀌어버린 잔해의 위에서 성기사들도 작업을 멈췄다. 소리가 멎었다.

후웅!

지크가 손을 휘둘렀다. 그의 마력이 움직여 강력한 바람을 형성했다. 굴에 있던 흙먼지가 일시에 굴 밖으로 빠져나갔다. 뿌옜던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날리는 먼지가 모두 사라진 건 아니지만 사물을 보는 데 문제는 없었다.

“만족하셨습니까?”

지크의 질문에 윈스틴이 웃었다.

“밸리드와 관련된 것을 짓밟는데 어찌 만족이란 것이 있겠습니까. 생각 같아서는 몇 날 며칠을 저 저주받을 부스러기들을 짓밟는 데 사용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시간은 유한하니 이쯤에서 멈출 수밖에요.”

정말로 엄청난 집념이다. 이것엔 지크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도 성기사들은 잔해 위를 돌아다니며 혹시 밸리드를 족치기 위해 쓸 만한 것이 없는지 다시 살펴보고 있었다. 발로 잔해 부스러기를 걷어차 기껏 지크가 날려버린 흙먼지가 다시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슬슬 철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응?”

성기사 한 명이 무언가를 발견한 듯 허리를 굽혔다. 그는 흙먼지를 마구 뒤집었다.

“뭐야?”

“무슨 일 있어?”

옆에 있던 성기사들이 관심을 표했다. 조금 떨어져 있던 지크와 스틸월 기사들의 시선도 그들을 향했다.

“웬 찢어진 종이… 같은데? 이건…!”

성기사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인장이 찍힌 명령서?”

모두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때였다. 어떤 움직임이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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