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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450화 (450/628)

제450화

지크 일행의 뛰어남은 알음알음 백작가 전체에 퍼져나갔다.

특히 마법사들에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언제나 마탑에만 모여 지내며 왕명이 아니면 잘 움직이지도 않는 마법사가 두 명이나 있는 것이다.

그녀들이 연습장에 등장하는 날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철저하게 몸에 때려 박는 게 먼저인 검술보다는 이론도 중요한 마법의 특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습을 위해 간간이 나와 보여주는 마법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뺏기에 충분했다. 변경백으로서 그 어떤 영지보다 무력을 중요시하는 특성도 그에 불을 붙였다.

무엇보다도 마법사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했다. 그런 마법사를 두 명이나 일행으로 두고 있는 지크의 능력에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그레이그에 대한 실망까지 겹쳐져 지크를 쫓아낸 일에 대한 후회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더더욱 커졌다.

그러나 백작이나 백작 부인, 그레이그에겐 다행히도 그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적었다.

지크를 무시하고 못마땅해한 것은 백작가 사람라면 누구나 갖고 있던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사람은 자신의 잘못에는 관대하거나 눈을 돌려 부정하는 법이다.

그러나 그것도 영원할 수는 없었다. 계속해서 지크와 일행이 보여주는 능력은, 그들의 잘못을 계속 상기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백작가 사람들이 어떤 마음을 품든 지크는 알 바 아니었다. 그는 그저 그레이그에 대한 치료를 계속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원래의 목적을 잊은 것도 아니었다.

“여기야?”

라일라가 물었다.

지크와 라일라는 백작가 뒤쪽 정원에 나와 있었다. 조그만 숲처럼 생긴 그곳은 지크가 검술을 연습하던 곳이었다.

“맞아.”

지크가 윈두르를 흔들어 보였다. 윈두르의 검날이 그들이 밟고 있는 지면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행이네. 백작가 건물 아래에 있는 건 아니라서.”

그레이그의 치료를 조건으로 백작가 건물 일부까지 헐어버릴 권리를 얻었다지만, 정말로 그런다면 백작가 사람들이 좋아할 리 없다. 괜한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줄어들어 라일라는 마음을 놨다.

하지만 지크는 코웃음을 쳤다.

“다행은 무슨 다행. 생각 같아서는 백작 침실이라거나 집무실 아래라서 원 없이 부숴버릴 수 있길 바랐는데.”

그러고 지크는 윈두르를 흔들었다.

“어이! 너 솔직히 말해 봐. 백작 침실이라거나 집무실에 뭔가 있지? 혹시 내가 아직 부자간의 정을 끊지 못해 그곳들을 파내는 데 상처를 받을까 봐 감춰두고 있는 것뿐이지? 그런 걱정 하지 않아도 돼. 나도 가슴이 아프기 이를 데 없지만 세계수의 해방이라는 중대한 일을 앞두고 사사로운 정에 기댈 생각은 없으니까. 그러니까 빨리 그곳들을 가리켜 봐. 날들 모두도 필요도 없어. 하나만 구부려 봐, 응?”

“검에 대고 뭘 하는 거야.”

아무리 윈두르가 미약하지만 의지가 있는 검이라고 해도 검에게 사정하는 주인이라니. 그 이유가 고작 자기 아버지를 엿 먹이고 싶다는 것이라는 것도 대단했다.

“기다려 봐. 지금 설득하고 있는 거 안 보여?”

“쓸모없는 헛짓을 하고 있는 건 잘 보이네.”

지크의 설득(?)은 그 이후로도 조금 더 계속되었지만 윈두르는 꿈쩍도 하지 않고 여전히 그들이 밟고 있는 땅 밑만을 가리켰다. 결국 지크는 포기했다.

“쳇! 제가 뭔 구국의 열사라도 된다고.”

“장난은 그만하고, 지금 파 볼 거야?”

지크는 아래를 살짝 봤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그레이그를 완치하진 않았으니까 벌써 판다면 한 소리 듣겠지. 나중에 하자고.”

지크는 윈두르를 원상태로 돌린 뒤 등에 멨다.

둘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다시 백작가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 한스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뭔 일 있냐?”

한스의 얼굴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 것을 본 지크가 물었다.

“백작가에 손님이 왔습니다.”

“그게 왜?”

명문 귀족 가문인 스틸월 백작가에 손님이 오는 것은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한스의 표정이 안 좋은 것으로 봐서 그다지 좋은 손님이 아니라는 걸 짐작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도 지크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어진 한스의 말에는 지크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플로도 백작가에서 왔습니다.”

“얼씨구? 그놈들이 여기를 왜 와?”

“잘은 모르겠습니다. 제가 연유를 물어보니 눈치를 보며 사람들이 피하는 기색이라….”

지크와는 다르게 한스는 백작가에 미움을 사지 않았고, 지금도 예전에 인연이 있던 자들과 잘 지내는 형편이었다. 백작가 내부의 일이라 알리지 않을 순 있어도 눈치를 봤다니.

“나에 대한 일인가?”

“아마도 그렇게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뻔하군. 하여간 그놈들 욕심은.”

지크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라일라가 물었다.

“플로도 백작가가 어딘데?”

“스틸월 백작가가 왕국의 강철벽이라는 이름을 갖게 해준 놈들.”

“적이라는 거야?”

“그래.”

플로드 백작가. 크로뇽 왕국의 이웃 왕국인 세스틸 왕국의 변경백이었다. 그리고 크로뇽 왕국과 세스틸 왕국은 보통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이 으레 그렇듯 사이가 안 좋았다. 그저 안 좋은 정도가 아니라 심심치 않게 무력 분쟁을 벌일 정도였다.

그리고 두 나라가 무력 분쟁을 벌일 때 가장 먼저 동원되는 병력은 당연히 왕국의 국경에 있는 귀족. 즉, 스틸월 백작가와 플로드 백작가였다.

당연히 두 백작가의 사이가 좋을 리 없었다. 두 백작가는 정말로 대대로 싸워왔고, 왕국끼리의 전쟁이 아닌 두 영지 간의 다툼만 해도 상당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두 영지간의 세력 싸움은 스틸월 백작가 조금 더 우월했다. 그렇다고 플로드 백작가의 세력을 폄하할 순 없었다. 그들도 크로뇽 왕국, 스틸월 백작가와 계속해서 싸워온 무가였던 것이다.

“그래도 그놈들이 얼뜨기 개새끼들인 건 맞지만.”

“…지크 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한스의 어이없다는 질문에 지크는 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지크와 그 사람들 사이에 뭔가 있어?”

분명 플로드 백작가가 지크와 관련되어 있는 일로 스틸월 백작가에 왔다고 했었다. 그리고 지금 지크와 한스의 반응도 그냥 백작가의 적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지크가 독립하기 전에 개인적으로 충돌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그러기엔 지크가 너무 얌전한데?’

그런 일이 있었다면 당장 플로도 백작가를 엿 먹이겠다며 나서야 할 사람이 지크가 아니던가.

“내 외가다.”

“…뭐?”

“플로드 백작가는 내 외가, 그러니까 우리 어머니가 시집오기 전에 있던 가문이라고.”

* * *

스틸월 백작은 삐딱하게 앉아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자를 바라보았다.

플로드 백작가. 대대로 스틸월 백작가의 원수이자 그의 사돈 가문인 그곳에서 보내온 사신이었다.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백작님.”

“뭐, 못 지내진 않았소.”

인생사 최악의 나날을 보낸 요 근래지만 그건 눈앞의 놈에게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그들과는 약점을 보이면 사정없이 물어뜯고 뜯기는 사이였으니까.

“그거 다행이군요. 저희 백작님께서도 무척 기뻐하실 겁니다.”

“언제부터 그쪽과 우리가 이런 마음에도 없는 말을 주고받게 되었소? 시간 낭비할 생각 없으니 용건이나 말하시오.”

귀족으로서는 무척이나 무례한 백작의 말. 하지만 사신은 별 신경 쓰지 않았다. 백작의 말대로 스틸월과 플로드는 그런 사이였다.

“그럼 백작님의 말씀대로 시간 낭비하지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요. 지크 님은 찾으셨습니까?”

백작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저놈들이 할 말을 대략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직접 귀로 듣는 건 다른 일이었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남의 가문 일에 참견하지 마시오.”

“저희도 그러고 싶습니다만, 지크 님은 남이 아니지 않습니까. 백작님의 자식이기도 하지만 제 주군이신 플로드 백작님의 어여쁜 손자이기도 합니다.”

“어여쁜은 지랄.”

반존대조차 때려치운 백작이 노골적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코웃음 쳤다. 대놓고 면박을 받은 사신이지만 그의 얼굴에 변함은 없었다. 놀랍게도 이런 상황은 두 귀족 가문 사이에는 무례조차 아니었다.

“백작님께서 뭔가 오해를 하고 있으신 모양입니다만, 지크 님이 저희 백작님의 손자인 건 사실이 아닙니까. 그리고 주군은 돌아가신 따님도 집을 나가신 손자분도 무척 아끼십니다.”

“그렇게 아껴서 전쟁을 걸어왔군그래?”

스틸월 백작과 사라 플로드의 결혼은 이 근방에서는 정말로 세기의 결혼이었다. 대대로 검과 활을 주고받던 두 영지의 사람이 결혼을 한 것이다. 그것도 방계나 먼 친척이 아닌, 스틸월 백작과 플로드 백작 영애의 결혼이었다.

당연히 목적은 하나, 평화였다.

결혼 후 두 지역의 국경은 급속도로 안정화되었다. 두 가문의 결합이란 선택이 완벽하게 과실을 이루는 듯했다.

그러나 그건 짧은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이야, 장인어른도 정말로 대단하지 않나. 설마 자기 딸을 적을 안심시키는 도구로 내던지다니 말이야.”

백작은 ‘장인어른’이란 말에 힘을 주며 비꼬았다. 사신은 어깨를 으쓱했다.

“백작님도 귀족이면 아실 거라 믿습니다. 권력은 비정하지요. 아무리 사랑하는 자식과 손자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때도 있는 법입니다.”

백작은 손을 내저었다.

“그만 입 놀리고 꺼져. 생각 같아서는 혀를 확 뽑아버리고 싶으니까. 그리고 더 이상 스틸월가의 후계 문제에 간섭할 생각은 마라. 지크는 후계자 자리를 포기했다. 이제 와 녀석이 돌아올 일 같은 건 없어.”

“세상에 확정된 일이라는 건 없죠.”

“이봐. 가서 리빌 플로드 그놈에게 전해. 스틸월의 후계 자리에 네놈들이 낄 자리는 없고, 설령 일이 희한하게 돌아가서 지크가 다시 후계자 자리를 잡는다 해도 그놈이 네놈들을 대우해주는 일은 없을 거다. 자기를 도구로 삼을 게 뻔한 놈들과 손을 잡을 것 같으냐!”

“그거야 모르는 법이죠. 하지만 일단 알겠습니다. 저는 이만 물러가죠. 하지만 저희 세스틸 왕국도 백작님이 적을 두고 계신 크로뇽 왕국도 원칙은 장자 계승입니다. 그 점을 명심해주십시오.”

“나가, 이 새꺄!”

백작은 사신을 쫓아냈다. 그가 머리를 짚었다.

“트레얼.”

“네!”

“놈들이 지크가 돌아왔다는 걸 모르게 해. 분명 되먹잖은 짓거리를 할 거다.”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플로드 백작가의 사신이 너무도 갑자기 찾아온 데다가 지크 일행에 대한 소문도 너무 퍼져 있어 그게 가능할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 * *

“…그런 일이 있었구나.”

라일라도 대충 스틸월 백작가와 플로드 백작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었다.

“애초에 어머니가 성격이 완전히 박살 난 것도 그 일 때문일 거다. 평화를 위한답시고 적국에 있는 적성 영지에 시집왔는데, 친가란 곳에서 자신 따위는 아랑곳 않고 전쟁을 걸어버리니 몰릴 데로 몰린 거지. 아마 나를 쥐 잡듯 잡고 가신들을 가혹하게 취급한 것도 언제 이혼당하고 백작 부인 자리에서 쫓겨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목숨까지 빼앗길지 모른다고 생각했을지 몰라. 거기에 아버지가 떡하니 후처까지 맞아들이니 돌아버릴 지경이었겠지. 그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그레이그와 그레이그 어머니를 그렇게 괴롭힌 것도 이해가 가긴 해.”

심리적으로 극도로 몰린 것이다.

“하지만 이유야 어쨌든 그 때문에 인망을 모조리 잃어버렸으니, 어머니는 선택을 잘못한 거지. 그리고 그 선택 때문에 나도 천덕꾸러기가 됐고.”

그리고 지크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뭐, 그 일이 아니더라도 어머니는 원래 성격이 엄청 더러웠지만.”

라일라가 입을 벌렸고 한스는 외면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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