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446화 (446/628)

제446화

지크의 귀환. 그 사실에 백작가에는 자그마한 소란이 일었다. 커다란 소동 끝에 나간 장자의 귀환은 사람들에게 많은 흥미와 상상력을 불러 일으켰다.

많은 사람들이 지크가 백작가의 후계 위를 잇기 위해 돌아오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그만한 소동 끝에 나간 사람이 창피함을 무릅쓰고 돌아올 리 없다는 것이었다.

저택의 사람들은 둘 이상만 모이면 그 주제로 쑥덕댔다. 지크의 귀환을 반기는 자도 있고 꺼리는 자도 있었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는 사람도 있었다.

하나 확실한 건, 사람들이 지크의 행동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가 가문을 박차고 나갔을 때의 소동은 여간 유명한 것이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이번에도 지크가 뭔가 엄청난 소동을 일으키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은 적중했다.

“…무슨 일이야?”

그레이그가 자신의 앞에 선 지크를 향해 말했다. 둘의 사이가 사이니만큼 당연히 그의 말투는 험악했다.

하지만 여전히 지크와 눈을 마주치긴 힘든지 묘하게 그의 시선이 흔들렸다.

“받아.”

지크가 옆에 세워뒀던 것을 휙 던졌다. 그레이그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받았다.

‘검?’

병사들에게 지급하는 검이었다. 그다지 좋은 검은 아니지만 날만은 날카롭게 서 있다.

“이게 뭐야?”

“보면 모르냐? 검이잖냐.”

“그딴 걸 물어본 게 아니잖아!”

지크는 피식 웃었다.

“나잇살 처먹은 게 이제 와서 형한테 어리광이냐? 그런다고 사정 봐주지 않으니 잔머리는 그만 써라.”

그레이그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지크는 그러든가 말든가 무시하고 검을 뽑았다.

챙!

날카롭게 벼려진 검날이 햇빛을 부서뜨리며 주변에 위협을 가한다. 검을 든 지크를 보자 그레이그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예전의 트라우마가 생각이 난 것이다. 지크가 당장이라도 피 칠갑을 한 채 달려들 것 같다. 검을 쥔 손이 가늘게 떨렸다.

“이야기는 들었지? 이 형님이 친히 너를 치료해 준다고 한 걸.”

“난 병 따위에 걸리지 않았어!”

“이런, 내가 예전 전투 때 너한테 한 말이 기억나지 않는 거냐?”

그레이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말이 기억나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지크는 굳이 그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 주는 걸 택했다.

“네가 지금 시련을 견딘다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지금 네 꼴을 봐라. 도약은커녕 시궁창 바닥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뿐이지. 내가 치료하려는 건 네 트라우마다. 그리고 그건 틀림없이 병이야.”

그리고 지크는 턱으로 그레이그가 들고 있는 검을 가리켰다.

“뭐 해? 어서 안 뽑고.”

“…….”

그레이그는 검을 내려다 봤다. 치료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하려는 게 대련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 사실이 그레이그의 심부를 꽉 옥좼다.

예전의 혈전이 생각난다. 손의 떨림이 조금 더 커졌다.

생각 같아서는 멋들어지게 검을 뽑고 싶다. 설령 실력이 되지 않더라도 당당하게 그와 맞서고 싶다.

그러나 좀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뭐야. 뽑지 않을 거냐?”

“…….”

“뭐, 별로 상관은 없다만.”

그레이그가 지크를 쳐다봤다. 혹시 대련을 하지 않으려는 것일까. 그가 작은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그가 본 것은,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와 있던 지크의 모습이었다.

후웅!

지크의 검이 깨끗한 궤적을 그린다. 그 궤적에 그레이그의 몸통이 정확하게 들어갔다.

서걱!

“아악!”

그레이그의 몸에 기다란 사선이 그어졌다. 그가 커다랗게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지크는 그 비명에 반응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레이그의 상처 입은 몸통을 걷어찼다.

퍽!

“억!”

그레이그의 몸이 지금 그들이 있는 대련장 끄트머리까지 데굴데굴 굴러갔다.

“네가 검을 뽑든 말든 난 계속 공격을 할 거거든.”

차가운 걸 넘어 냉기가 풀풀 날리는 지크의 말.

그레이그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지크의 말은 조금의 과장도 없는 진심이라는 걸.

대련장 밖에서 지크와 그레이그의 대련을 보고 있던 몇몇 기사가 움찔 몸을 떨었다. 영지의 특성상 실전 성향이 강해 조금 험악한 대련에도 별 감흥이 없는 그들이었지만 베이고 얻어맞아 굴러가는 자가 영지의 후계자라면 상황이 다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영지의 후계자라는 자리 때문에 그레이그가 특별 취급을 받는 것일 뿐, 저 정도의 대련은 그들도 하고 있는 것이다. 지크에게 베인 상처도 그리 깊은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지크의 치료(?)에 절대 상관하지 말라는 백작의 엄명이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이번 대련에 참견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 결심이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서걱! 서걱! 퍽! 서걱!

섬뜩하고 소름 끼치는 소리들이 들린다. 모두 다 그레이그의 몸에서 나는 소리였다. 지크는 정말로 그레이그를 죽일 듯이 몰아붙였다. 치명상을 입히는 공격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가 하지 않는 건 오직 하나, 상대를 즉사시킬 수 있는 공격뿐이었다.

“저, 저거 말려야 하는 거 아냐?”

“백작님의 명령이 있었잖아.”

“백작님도 설마 저런 미친 짓이 벌어질 거라고 예상하신 건 아닐 거 아냐!”

백작가 한가운데에서 후계자를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이는 일이 일어나다니.

“저거 진짜로 까딱하면 죽게 생겼다고!”

이미 호기심을 보이며 기웃거리던 하인들은 얼굴이 새하얘진 채 모두 도망간 상태였다. 몇몇은 입을 틀어막고 있는 것이, 방금 먹은 음식을 확인하려는 모양이었다.

그 정도로 대련은 살벌했다.

“내버려 두는 게 낫지 않아?”

그때, 기사 중 누군가가 전혀 다른 의견을 냈다.

“내버려 둬? 저 참상을? 너 제정신이냐!”

“확실히 제정신이다. 솔직히 그레이그 공자님이 진짜 죽는 것도 아니잖냐.”

지크도 그레이그를 죽일 생각은 없는지, 대련장에 몇 명의 신관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그레이그가 정말로 한계에 다다랐다 생각되면 신관을 불러 그를 치료했다.

그리고 치료가 끝나면 다시 지옥이 시작되었다.

“예전에는 괜찮았지만, 요새 그레이그 공자님의 모습은 솔직히 실망스러워. 그리고 공자님이 그렇게 변한 계기는 예전의 그 결투고 말이야. 트라우마가 된 거겠지. 그렇다면 저렇게 강제적으로 익숙해지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야.”

그 기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는 절대 할 수 없는 방법이지만.”

영지의 후계자를 저렇게 계속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자가 과연 영지에 있을까. 죽을까 싶을 정도의 훈련 같은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하지만 저러다 공자님이 완전히 망가지실 수도 있어!”

“그럼 계속 지금의 한심한 공자님을 두고 보자는 거야?”

기사들의 의견이 갈렸다. 어느 쪽도 모두 일리는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 갈등은 한 기사의 말로 끝이 났다.

“어차피 우린 백작님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저 치료인지 괴롭힘인지 모를 것도 백작님의 귀에 들어갈 거야. 그때 백작님이 명령을 바꾸신다면 개입하면 되고, 아니라면 지금처럼 지켜보면 돼.”

기사들이 모두 수긍했다. 그리고 다시 대련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때, 한 기사가 저택 쪽을 바라봤다.

“일단 오늘은 조용히 끝나긴 글렀군.”

백작 부인이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 * *

퍼억!

지크의 주먹질에 정통으로 얼굴을 얻어맞은 그레이그가 다시 한번 땅바닥에 엎어졌다. 이미 그의 몸뚱어리는 지크의 칼질에 의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짜식아, 엄살 부리지 말고 일어나.”

지크가 검 끝으로 그레이그를 콕콕 찌른다. 하지만 그레이그는 옅은 신음을 흘릴 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음, 진짜 한계인가?’

오늘은 이 정도만 해도 될 듯했다.

‘스트레스 해소도 잔뜩 했고.’

건방진 동생을 두들기는 건 언제라도 짜릿했다. 명분이 있으니 방해할 사람도 없다.

‘그래도 조금은 반항하는 맛이 있어야 재미있는데.’

아무래도 그때의 혈투가 생각 이상으로 그레이그를 좀먹고 있었던 모양이다. 마치 고양이 앞의 쥐처럼, 그레이그는 변변한 반항 한 번 못 했다. 실력 차이 때문이 아니다. 의지의 문제였다.

“그레이그!”

순간 누군가 그레이그의 이름을 불렀다.

‘역시 왔군.’

만약 대련 첫날에 누군가에게 방해를 받는다면 그녀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백작 부인이 급히 그레이그에게 달려왔다. 피투성이가 된 아들을 손으로 보듬는다. 그녀의 얼굴이 피로 뒤덮인 아들의 얼굴과 달리 새하얘졌다.

“뭐 하는 겁니까! 당장 그레이그를 치료해 주세요!”

백작 부인이 신관들을 향해 소리쳤다. 신관들이 지크의 눈치를 봤다. 카르위먼 소속의 그들에게는 백작 부인의 명령보다 카르위먼 명예 성기사인 지크의 명령이 더 위였던 것이다.

“치료해 주세요.”

지크의 허락이 떨어지자 신관들이 그레이그에게 다가가 성법을 사용했다. 그레이그의 몸이 서서히 아물더니 곧 흉터 하나 남지 않고 깨끗해졌다.

그레이그가 상체를 일으켜 그대로 땅바닥에 앉았다. 백작 부인이 그의 얼굴을 잡았다. 혹시 자그마한 상처라도 남지 않았을까 그의 얼굴 곳곳을 확인했다.

“아픈 곳은 없느냐?”

“괜찮습니다, 어머니.”

그레이그가 멀쩡하다는 걸 확인한 백작 부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용건이 끝난 게 아니다. 그녀가 휙 고개를 돌렸다. 분노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지크를 노려봤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어라? 백작님께 말을 듣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그레이그를 치료한다고요.”

백작 부인과는 전혀 다르게 지크는 평소의 태평한 모습으로 유들유들하게 말했다. 그 모습이 백작 부인의 분노에 더욱 부채질을 했다.

“이게 어딜 봐서 치료라는 게야! 사람을 이딴 식으로 만드는 치료가 어디 있어!”

“무척이나 전문적인 치료라 백작 부인께서는 모르시겠지요. 이해합니다.”

“저, 전문적인 치료?”

이따위 괴롭힘이 전문적인 치료라니.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어 몸에 힘이 빠질 정도였다.

지크를 향해 이를 부득부득 갈던 백작 부인이 그레이그의 손을 잡았다.

“가자! 내 당장 백작님을 찾아 항의하겠다! 기필코 저 녀석을 쫓아낼 것이야!”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시죠. 하지만 백작님이 명령을 바꾸지 않으신다면 치료는 계속될 겁니다.”

“내가 그 꼴을 두 눈 뜨고 보고만 있을 것 같으냐!”

“어떠려나요? 아무리 백작 부인의 위세가 좋다고 하더라도 스틸월 백작가는 백작님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백작님도 그레이그가 계속 그대로 있기를 바라진 않을 것 같습니다만.”

시선만으로 사람을 죽일 것 같이 지크를 노려보던 백작 부인이 꼴도 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거칠게 돌렸다. 그리고 그레이그를 데리고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향해 지크가 소리쳤다.

“내일도 오늘 나온 시간에 나와라, 그레이그! 치료는 계속 해야지!”

“저, 저, 저 녀석이…!”

백작 부인이 소리를 빽 질렀지만 지크는 무시한 채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천천히 대련장을 벗어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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