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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438화 (438/628)

제438화

전투는 끝났다. 당장이라도 피알루를 삼켜버릴 것 같던 몬스터들은 그 덩치만큼이나 거대한 사체들만을 남긴 채 전멸해 버렸다. 더 이상 그것들은 피알루를 위협할 수 없었다.

병사들은 격한 기쁨에 휩싸였다. 말 그대로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살게 된 것이다. 그와 동시에 가족의 죽음도 함께 사라졌다. 이것만큼이나 기쁜 일이 또 있을까. 옆에 있는 상대방을 끌어안고 앞으로의 삶이 연장된 것에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기쁨이 크면 클수록 한 사람에 대한 경외도 고조되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무서운 베히모스의 시체 위에서 오연히 검을 들어 올린 자.

그 모습은 어렸을 적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꿈꾸었던 이야기 속 용사의 모습 그 자체였다.

자신들은 후세에 길이길이 알려질 위대한 역사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벅찬 감동을 느꼈다.

전장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베히모스의 시체 위에 서 있는 지크에게 쏠려 있었다.

당연히 베히모스의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주먹을 꽉 쥐고 있는 자에게 시선을 보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 * *

“으하하하하하! 역시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님은 다르군요!”

목젖이 보이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린 채 웃는 사령관이 지크의 어깨를 팍팍 쳤다.

“저 엄청난 몬스터의 대군을 일거에 쓸어 버리다니! 마치 이야기 속의 용사가 아닙니까! 아니, 앞으로 지크 씨의 위업은 대대로 전해질 테니 이야기 속의 용사가 맞군요!”

그러며 다시 크게 웃는다. 주변 사람들도 따라 웃었다. 지크를 향한 환호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한데, 어째서 지금까지는 그런 힘을 사용하지 않으셨는지 여쭤도 괜찮을까요?”

자칫하면 지금까지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냐는 추궁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사령관의 표정이나 어조를 보면 추궁하는 건 아니었다. 그도 나름의 사정이 있으리란 걸 짐작을 한 것이다. 그러나 사령관으로서 물어볼 건 물어봐야 했다.

“조금 전의 힘은 특수한 조건이 있어야 발휘할 수 있는 힘입니다. 아무 때나 사용할 순 없죠.”

“역시 그렇군요.”

그리고 사령관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누가 봐도 비전임이 분명한 기술을 캐내는 건 실례였다.

“그래도 어느 정도 귀띔은 해주지 그러셨습니까. 그러면 그렇게 가슴 졸일 일도 없었을 텐데요.”

“믿으셨겠습니까?”

“하긴. 그건 그렇습니다.”

조금 섭섭하다는 듯 말을 했던 사령관이지만 지크의 대답에 바로 수긍했다.

눈으로 직접 본 지금도 현실감이 없을 정도다. 말로 설명해봤자 오히려 지크에 대한 신뢰만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변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지크가 자못 심각하게 말했다.

“어서 데네스트 산맥에 있는 일각뿔의 한탄을 전부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이번만큼의 대규모까진 아니더라도 또 몬스터의 침공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웃음은 멈췄어도 입꼬리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실룩거리던 사령관도 진지해졌다.

“지크 씨의 말이 맞습니다. 아직 전투가 끝났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사령관은 부관들에게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지크와 사령관을 둘러싼 채 환호를 하고 있던 병사들도 둘의 진지한 모습에 하나둘 환호성을 멈췄다.

환희에 젖어 있던 병력이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일부는 전장의 뒤처리를 위해 움직였고 일부는 아티팩트를 들고 데네스트 산맥으로 향했다. 이 전투의 확실한 끝을 위해서.

하지만 사람들의 얼굴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달랐다. 절망은 완전히 말라붙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대신 희망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렇게 피알루에 대규모 몬스터가 습격한 사건은 완전한 종결을 향해 나아갔다.

* * *

지크와 일행은 거대한 저택 안에 머물고 있었다. 지크를 위한 특별 대우였다.

지금까지도 지크는 충분히 대우를 받고 있었다. 피알루의 주요 전력 중 하나이자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를 소홀히 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대우는 차원이 달랐다.

피알루의 주요 전력은 지크 말고도 몇이 더 있었고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라는 신분도 그렌이라는 다른 이가 있었지만, 지금의 지크는 피알루를 구한 용사라는 유일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대우도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시장은 도시 소유인 저택 중 가장 고급스러운 저택 하나를 지크 일행에게 통째로 빌려줬다. 그리고 여러 사용인들을 붙여 단 한 점의 불편함도 없도록 수고를 들였다.

하지만 지금, 시장의 호의에 힘입어 아무 걱정 없이 전투 후의 피로를 풀고 있어야 할 지크는 급속도로 기분이 나빠지는 중이었다.

그 곳은 큰 방이었다. 커다란 침대와 고급스러운 가구, 화려한 장식들이 어우러진, 이 저택에서 가장 커다란 방이자 지크에게 배정된 방.

하지만 지금, 방에 있는 이는 지크만이 아니었다. 지크의 일행이 전부 모여 있었다.

지크는 침대에 옆으로 누워 손으로 얼굴을 괸 채 방 한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계까지 일그러진 그의 얼굴이 그의 심기가 얼마나 불편한지 알려주고 있었다.

방의 두터운 카펫 위에는 노웸이 엎드려 있었다. 덩치를 사람의 서너 배 정도로 키운 녀석은 마치 사냥당해 쓰러진 사냥감처럼 혀를 빼문 채 축 늘어져 있는 상태였다.

물론 녀석의 상태는 멀쩡했다.

노웸의 등에는 라일라가 올라가 있었다. 웬일인지 그녀의 손엔 지크의 검인 윈두르가 들려 있었다. 그녀가 천장을 향해 윈두르를 쭉 뻗는다.

“푸흐흐흡!”

라일라가 웃음을 터뜨렸다. 배를 잡고 노웸의 등에 주저앉아 끅끅댄다. 그녀의 눈꼬리에 눈물이 맺혔다.

“…재밌냐?”

지크가 불퉁하게 말했다.

“그럼! 재밌지! 천하의 지크가 진정한 용사로서 길을 걷기 시작한 것 아냐? 이토록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어. 포즈도 아주 그럴 듯했잖아.”

그리고 다시 일어서 윈두르를 쭉 들어 올렸다. 그녀가 주저앉았을 때 고개를 들어 라일라를 쳐다보던 노웸도 다시 머리를 땅바닥에 대고 혀를 빼물었다.

“푸흡!”

라일라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지금 전투가 끝났을 때 지크가 취했던 행동을 흉내 내고 있었다. 몸을 키운 채 죽은 척하고 있는 노웸은 베히모스의 대용이었다. 노웸의 위에 올라가 윈두르를 하늘을 향해 뻗으니 비슷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실실 웃음을 흘리는 라일라에 비해, 방 한구석에 모여 앉아 있던 제자들은 시뻘건 얼굴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라일라야 저렇게 지크를 조롱해도 별 피해 없이 끝나지만, 만약 그들이 웃음을 터뜨린다면 지크로부터 처절한 보복이 뒤따를 것임은 자명한 일이었던 것이다.

“피알루를 구한 용사 지크!”

라일라의 외침에 안 그래도 한계까지 올라왔던 웃음보가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가까스로 참았다. 숫제 고문이나 다를 바 없었다.

‘젠장!’

지크는 라일라에게서 시선을 떼고 침대에 드러누워 버렸다.

‘괜히 그 새끼를 따라했어.’

용사 짓을 한다고 했지만 용사와는 완전히 반대쪽 인생을 살아온 지크에게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회귀 초에 착한 일은 뭘 하면 되냐고 루벨라에게 물어봤던 지크가 아니었던가.

그런 그의 뇌리에 가장 인상 깊게 박힌 용사란 건 역설적으로 그렌 제너드였다.

이번의 전투가 끝나고 취한 포즈도 회귀 전 봤던 그렌의 동상을 따라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반응은 굉장히 좋았다. 지크의 그 모습을 동상으로 제작하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였다.

그저 그게 라일라에게는 훌륭한 놀림감이라는 것이 문제일 뿐.

본인이 부끄럽지만 않다면 상대가 어떤 조롱을 하든 꿈쩍도 않는 지크였지만, 용사라는 것에 무척이나 거부감을 느끼는 지크인지라 라일라의 놀림은 확실한 대미지로서 그에게 꽂히고 있었다.

그렇게 지크 일행이 오랜만의 여유를 느끼며 –지크는 죽을 맛이었지만-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똑! 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요?”

라일라가 노웸의 등에서 내려오며 문 밖을 향해 말했다. 노크를 한 이는 사용인이었다.

“한스 님을 찾아오신 분이 계십니다. 어떻게 할까요?”

“절요?”

한쪽에 찌그러져 열심히 웃음을 참고 있던 한스가 일어났다.

자신을 찾아올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누굽니까?”

“라라 브라우닝 씨라고 하시더군요.”

한스는 성큼 문으로 다가갔다.

* * *

라라는 이 자리가 불편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 전부 안면이 있는 자들이었지만 딱 거기까지인 사람들이다.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한스를 제외하면 그건 거의 말다툼에 가까웠던 것들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것이 한스라는 점이었다.

그는 이 방에서 아니, 이젠 이 도시에서 그녀가 가장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사용인이 그녀의 앞에 차를 가져다 줬다. 라라는 고마움을 표하고 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귀족인 그녀의 혀도 충분히 만족시킬 만한 고급 차였다. 몇 모금을 더 마시자 마음이 좀 진정되는 것 같았다.

“무슨 용건으로 오셨습니까?”

한스가 그녀를 향해 물었다. 사무적인 어투에 그녀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퍽!

라일라가 한스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라일라는 분명 마법사지만 어느 정도 훈련을 쌓은 기사 지망생도 맨주먹에 마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면 충분히 때려눕힐 수 있는 자다. 고통에 한스가 정강이를 벅벅 문질렀다.

“편하게 말해요. 이 녀석이 조금 무뚝뚝한 놈이라서.”

“감사해요.”

라라는 라일라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괜찮아요. 한스 씨가 나쁜 뜻으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건 아니까요.”

“그래요? 그럼 다행이네요.”

라일라가 묘한 눈으로 한스를 바라봤다. 그가 라라와 어울리고 있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라라의 반응을 보니 생각 이상으로 친해진 모양이다.

‘정말로 지크의 바람처럼 그렌 제너드와 헤어질 수도 있는 거 아냐?’

침대 쪽을 살짝 바라보니 지크가 흡족한 표정으로 한스와 라라를 바라 보고 있었다.

“중요한 이야기라면 비켜드릴까요?”

라일라의 제안에 라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불청객으로서 그렇게까지 불편을 끼칠 생각은 없어요. 그리고 대단한 이야기를 하려고 온 것도 아닌 걸요. 도시를 떠나기 전에 작별 인사를 하러 온 거에요. 한스 씨에게는 이번에 신세 진 게 많으니 감사 인사를 할 겸요.”

“어머, 벌써 떠나려는 건가요? 도시에서 제너드 씨의 파티에게도 섭섭지 않은 보상을 계획하고 있을 텐데요.”

이번 피알루 습격에서 가장 공을 많이 세운 이는 누가 뭐래도 지크였지만 그게 다른 이의 공을 폄하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그렌과 그의 파티가 세운 공적은 지크와 그 파티가 세운 공적 다음으로 평가되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지크 일행의 공적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지만.

라라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맺혔다.

“그렌과 윈드네, 어쿠스는 도시에 남을 거예요.”

“응? 그럼 브라우닝 씨만 도시를 떠나는 건가요? 어, 설마?”

놀란 라일라에게 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왔어요. 그렌의 파티에서.”

지크가 눈을 빛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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