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7화
데네스트 산맥에서 내려 온 몬스터 군단은 피알루에 있어 심각한 위협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대적할 생각조차 하지 못할 고위 몬스터들이 수십 체나 있으며 일반 몬스터들도 드글드글하다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많았다.
원군을 요청했다고는 하나 아직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상황.
당연히 몬스터들이 피알루를 습격할 시 피알루의 사람들에게 남은 운명은 죽음뿐이었다.
자신과 가족이 몬스터들의 한 끼 식사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공포에 사람들은 무기를 들긴 했지만, 제발 사령관이 말한 그 대책이란 것이 실제로 있었으면 하고 빌고 또 빌었다.
그리고 그건 눈앞에서 보이는 광경으로 완벽하게 보답받았다.
콰아앙!
성벽조차 위협할 정도로 커다란 덩치를 가진 타이탄이 어린 아이처럼 고꾸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타이탄의 덩치가 크기에 그 장면은 성벽 위에서도 잘 보였다.
“우와아아아!”
“와아아아아!”
병사들이 누구라도 할 것 없이 무기를 흔들며 환호성을 지른다. 그들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공포가 실시간으로 지워 없어지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로 자신들을 짓이길 수 있는 몬스터들이 제대로 된 힘도 못 쓰고 이리저리 희롱당하는 모습에는 벅찬 상쾌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콰아아앙!
또 한 번의 폭음이 들리고 몬스터들이 대량으로 죽어 나갔다. 병사들이 다시 한번 환호성을 질러댔다.
“정말 대단하시네.”
지팡이를 꽉 잡은 채 지크의 활약상을 쳐다보던 엘레나가 한숨 쉬듯 내뱉었다.
그녀도 일행에 합류한 후 지크의 신위를 본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다. 단순 위력만으로는 검사의 검보다 마법사의 마법이 더 위라는 게 세간의 인식이었고 실제로도 그랬지만, 엘레나는 자신의 마법이 지크의 공격을 능가할 수 있다는 상상이 도무지 들지 않았다.
그에 비해 이미 익숙해진 스녹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도 고위 몬스터의 시선을 끌기 위한 자로서 전장을 누비고 있었지만 지크의 몬스터 학살이 시작되자 다시 성벽으로 돌아 온 상태였다.
“지크 님의 계략이나 검술 같은 것들도 충분히 대단하지만, 솔직히 가장 대단한 건 저거라고 생각해. 강대한 마력에 힘입은 순수한 힘 말이야.”
“저게 지크 씨가 마력을 완전히 해방했을 때의 힘이라고 했지?”
“그래.”
스녹과 엘레나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이미 그들에게 전장의 긴장감 따위는 사라져 있었다. 스녹의 어깨에 축 늘어져 하품을 쩍쩍 하고 있는 노웸의 모습을 보더라도 그건 자명했다.
하지만 전투를 편안하게 쳐다보던 그들과는 다르게 오로지 경악에만 들어차 있는 사람도 있었다.
“…저게 뭐야.”
평소의 차가움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다. 피나는 눈을 크게 뜬 채 지크가 그려내는 광경을 눈에 새겼다.
그녀는 또래보다 자신의 머리가 딸린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니, 오히려 월등하다고 생각했다. 그건 내로라하는 천재들만이 모인 마탑에서도 마찬가지. 천재 중의 천재. 그녀는 스스로를 그렇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평가는 틀린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분명 머리 좋은 마법사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머리가 좋았다.
하지만 눈앞에서 보이는 광경은, 그 좋은 머리로 아무리 이해를 하려 노력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일개 개인이 저 정도의 무력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대단한 걸 넘어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네요.”
옆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피나는 살짝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라일라와 엘레나, 스녹의 옆에 있었다. 아무래도 마법사들을 손쉽게 보호하기 위해 사령관이 한 곳에 모아뒀던 것이다.
방금 목소리를 낸 건 스녹이었다.
“생각보다 지크 님의 공격이 좀 무딘 것 같지 않나요? 전력을 다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전력을 다하셨으면 이미 몬스터들을 괴멸시켜도 충분히 괴멸시켰을 것 같은데.”
‘저게 전력을 다한 게 아니라고?’
피나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보여주는 무위만으로도 경악스러운데 저게 전력을 다한 게 아니라니.
‘자기 일행이라고 허풍을 치는 건가?’
그녀는 스녹이 허풍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어진 라일라의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휙 돌려 라일라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주변을 신경 쓰는 거지. 거리를 뒀다고 해도 주변에 사람들이 있잖아. 자기 멋대로 공격하다가 사람들이 휘말릴 수도 있어. 그리고 저긴 도시 근처잖니. 괜히 지형을 필요 이상으로 바꾸는 건 피알루 사람들에게도 민폐를 끼치는 일이니까.”
그러며 라일라는 살짝 웃었다.
‘기특하게 주변을 생각하고 있어.’
지크 모어라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본인이 한 말처럼 지크는 착실하게 용사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이제 지크가 모어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라일라는 흐뭇하게 지크가 날뛰는 모습을 지켜봤다.
‘…정말로 저게 전력을 다한 게 아니라고?’
라일라와는 달리 피나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피나에게 있어 라일라의 발언은 스녹의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아무래도 같은 마법사로서, 심상치 않은 실력을 가진 마법사인 라일라의 말은 다른 이의 말과는 무게가 달랐던 것이다.
피나의 옆에는 첼시도 있었다. 그녀도 평소의 선한 가면이 깨진 채 지크의 활약을 보고 있었다. 아니, 그건 노려보고 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옆에 있던 피나에게조차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그녀가 끊임없이 중얼거린다. 전투의 소음과 병사들의 환호가 더해져 그녀의 말을 듣는 사람은, 그녀의 주위엔 다행히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걸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
‘저렇게 강하다고?’
지크. 그녀의 라이벌-본인의 주장일 뿐이지만-인 루벨라를 성녀로 만든 일등 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간. 당연히 첼시에겐 눈엣가시 같은 인간이다. 따라서 지크의 불행을 첼시는 언제나 바라고 있었다.
한데, 그런 그가 저렇게 대단한 인간이었다니.
그저 기분 나쁜 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지크의 저 힘은 첼시에게 무척 위험했다. 그렌을 이용해서 자신의 지위를 되찾는다는 계획이 완전히 어긋나는 것이다.
‘그렌이 저자를 능가할 수 있을까?’
첼시는 고개를 저었다. 여행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렌의 실력은 얼추 알고 있었다.
그의 실력은 지금 날뛰고 있는 지크의 발치도 쫓아가지 못한다.
‘쓸모없는 새끼!’
자기가 잡은 동아줄이 제대로 되지 않은 아니, 경쟁해야 할 동아줄이 너무도 튼튼하다는 걸 알아버린 첼시는 입맛이 썼다. 마치 입에 모래를 가득 문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당장 첼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독기 어린 눈으로 지크를 노려보며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을 할 수밖에.
그렇게 성벽 위의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생각을 하며 지크가 몬스터를 상대하는 걸 쳐다봤다.
* * *
쿠웅!
옆쪽으로 무언가 스쳐 지나간다. 지면에 부딪쳐 커다란 굉음을 내는 것이 상당히 육중한 무게를 지닌 것인 모양이다.
그건 방금 지크에게 잘려나간 바실리스크의 머리였다.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썰물 빠지듯 바실리스크의 머리에서 거리를 뒀다. 머리가 잘렸더라도 그것이 주던 공포는 여전했던 것이다.
그러나 바실리스크의 머리가 옆을 스쳐 지나가도 꿈쩍도 하지 않던 그렌은 여전히 묵묵히 전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어떤 상황에서도 동요하지 않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그렌에게 그런 착실한 마음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질투로 흉하게 물든 목소리가 마음속에 계속 메아리 쳐댔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의 눈에 핏발이 섰다. 눈동자는 계속 몬스터를 학살하는 지크에게 못 박혀 있다.
나이가 다르다. 들고 있는 검이 다르다. 시대도 다르다.
그러나 지금 지크의 모습은 그렌에게 있어서는 너무도 익숙한 모습이었다.
‘저건 지크 모어잖아!’
자신이 걸을 영웅의 길에 마침표를 찍어줘야 할 최후의 말. 하지만 절대로 지금 나타나서는 안 될 말이기도 하다.
혹시 자신이 잘못 본 것일까. 현실을 부정하며 눈을 몇 번 비볐다. 하지만 보이는 건 변하지 않았다. 지크는 여전히 지크 모어가 생각나는 막강한 힘을 휘두르고 있었고 몬스터들은 학살당하고 있었다.
지크가 갑자기 지금은 없어야 할 힘을 휘두르는 것에 충격을 받긴 했지만, 지금 그렌의 심경을 한없이 아래로 처박는 건 다른 이유가 더 컸다.
콰아앙!
지크의 가공할 만한 공격이 몬스터들을 휩쓴다. 몬스터들은 별 반항조차 하지 못 하고 목숨이 끊어졌다.
그리고 울리는 환호.
“와아아아아아아!”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기뻐하며 울부짖는다. 성벽 저편에서도 환호 소리가 들려온다. 그게 지휘관이든 병사든 용병이든 가리지 않고 사람들은 목청이 찢어져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렌으로서는 익숙한 소리다. 이미 몇 번, 몇십 번, 몇백 번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많은 환호성을 받아 왔었다. 태양의 용사 그렌 제너드에게 있어 사람들의 환호성은 호흡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저 환호성은 자신에게 보내지는 게 아니다. 자신의 숙적으로서 최후에 쓰러져야 할 힘의 마왕 지크 모어가 그 대상이었다.
‘웃기지 마!’
마왕이 사람들의 환호성을 받는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그것도 ‘정당한 용사’인 자신이 있는 곳에서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속으로 이를 갈아도 바뀌는 건 없었다. 지크는 몬스터 군단을 홀로 쓸어버리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런 지크에게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자신이 아니라.
콰아앙!
다시 한 번 몬스터들이 죽어 나갔다. 그리고 다시 한번 환호성이 터졌다.
‘닥쳐! 이 쓸모도 없는 약해빠진 것들이! 자신들이 해결할 생각은 못 하고 남에게 빌붙으려고만 하는 쓰레기들이!’
사람들이 자신에게 환호를 보낼 때는 당연하다는 듯 받았으면서, 환호의 대상이 지크로 바뀌었다고 사람들에게 독설을 퍼붓는다.
하지만 그 독설은 그렌의 마음속에서만 울려 퍼졌다.
당장이라도 독설을 세상 바깥으로 뱉고 싶다. 저 쓰레기들에게 다가가 진정한 용사는 자신이라고, 그것도 알아보지 못하는 눈은 왜 가지고 있냐며 눈을 뽑아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렌은 필사적으로 참았다. 여기서 성질대로 했다가는 자신의 용사 칭호가 완전히 날아가 버린다는 생각으로 욕설을 꾹꾹 눌러댔다.
정말로 속이 뒤집어질 것 같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눈으로는 지크의 활약을 지켜보고 귀로는 지크에게 향하는 환호를 듣는 채 그저 비참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콰아앙!
베히모스가 쓰러졌다. 그것이 그렌의 바로 앞에 나뒹군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몇 배나 더 커졌다. 그것이 마지막 몬스터였다.
피알루를 위협하는 모든 몬스터가 사라졌다. 피알루는 승리한 것이다.
하지만 그렌은 그 환호에 끼지 않았다. 베히모스의 시체 위로 지크가 걸어온다. 그렌은 지크를 올려다봤다. 지크도 그렌을 내려다봤다.
“서로 무사한 것 같군요.”
“…그렇군요.”
그렌은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지크를 향해 몰려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지크는 베히모스의 시체 위에 선 채 윈두르를 높이 들어 올렸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사람들의 환성이 주변을 뒤흔든다.
그 사이에서 그렌은 조용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