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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435화 (435/628)

제435화

“큭!”

라라는 눈을 깜박였다. 강렬한 빛의 향연이 주변을 훑고 지나가 눈이 조금 아렸다.

그나마 라라는 괜찮은 편이었다. 한스의 경고를 듣고 미리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았었으니까. 하지만 에스텔레이드의 빛을 정통으로 맞은 주변 몬스터들은 눈을 비비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굉장해!’

주변 상황을 확인한 라라는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의 기술은 단순히 몬스터들의 시야를 빼앗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따지자면 그 효과는 부수적인 것. 막대한 빛의 격류로 엄청난 파괴를 일으키는 것이 그 기술의 본연의 효과였다.

한스와 라라를 공격하던 고위 몬스터들의 몸에 새겨진 엄청난 상흔들이 그 증거였다.

하지만 그 기술이 좋은 결과만 가져다준 것은 아니었다.

라라는 한스의 손에 에스텔레이드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한스 씨! 검은요?”

“놓쳤습니다. 아직 완성된 기술이 아니라서요.”

에스텔레이드라는 손꼽히는 검을 놓친 것치고 한스는 무척이나 담담했다. 오히려 라라가 더 기겁을 했다.

“그럼 큰일이잖아요!”

“괜찮습니다. 예비 검은 있어요.”

그리고 한스는 마법 상자에서 여분의 검을 꺼냈다. 그 검도 상당한 명검이었지만 당연히 에스텔레이드에 비하면 태양과 반딧불이 정도로 차이가 났다.

하지만 한스는 묵묵히 다시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마력이 쭉 뻗어 가장 가까이 있던 베히모스를 향했다. 온몸에 상처를 입고 눈조차 뜨지 못하던 베히모스는 그저 커다란 과녁에 지나지 않는다. 한스의 공격은 베히모스의 몸에 깊게 새겨진 상처 위를 또 다시 강타했다.

캬아아아악!

베히모스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대단해!’

요 근래 한스에 대해 얼마나 감탄을 하는 것일까.

에스텔레이드라는 대단한 검의 주인이라면 검의 힘에 어느 정도 기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본연의 검술은 퇴색되기 일쑤다. 아무리 검에 끌려다니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한다고 하더라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스는 달랐다.

에스텔레이드를 들었을 때는 검의 힘을 능숙하게 사용해 전투를 이끌어나갔다. 하지만 검을 바꿔 든 지금은 에스텔레이드를 들었을 때의 전법을 활용할 수 없다. 그에 따른 빈틈이 보일 법도 하건만.

그러나 한스의 전법은 철저하게 평범한 검을 들었을 때의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마치 지금까지 일반적인 검을 쭉 써오던 것 같다.

크아아악!

한스의 검에 타이탄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른다. 정말로 엄청난 실력.

하지만 역시 에스텔레이드의 소실이 완전히 영향이 없을 순 없었다. 분명 일반적인 검으로도 굉장한 활약을 하고 있는 한스였지만 아까보다 위력이 떨어진 건 분명했다.

‘그의 검을 찾아야 해!’

한스는 몬스터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라라는 몬스터들의 공격을 받아내며 주변을 훑었다. 한스가 많은 몬스터들의 시선을 끌어주고 있어 여유를 낼 수 있었다.

반짝!

빛을 발견한 라라가 눈을 번뜩였다. 분명 에스텔레이드의 빛이다. 라라가 몬스터들을 뚫고 빛이 반짝인 곳으로 달려갔다.

“그렌?”

지면에 꽂힌 에스텔레이드의 옆에 그렌이 보였다.

한데, 그의 표정이 이상했다. 평소에 짓고 있는 선한 표정도, 근래 라라에게만 보였던 무관심한 표정도 아니었다.

마치 소중한 무언가가 무너져 내린 것 같은 망연자실한 표정. 주변에서는 전투가 한창이었지만 그걸 인식하는 것 같지도 않다.

크아아악!

오거 한 마리가 그렌의 뒤에서 달려들었다. 평소라면 그렌에게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하고 깔끔하게 두 동강 날 녀석이다. 하지만 지금 그렌의 상태는 이상하다. 뒤에서 오거가 달려드는 걸 분명히 알 텐데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

‘안 돼!’

아무리 그에게 실망을 했다고 해도 그에 대한 감정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니다. 그리고 그녀 자체도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상황을 두고 보는 성격도 아니었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녀가 도달하기도 전에 오거의 거친 주먹이 그렌의 머리를 뭉개버릴 것만 같다.

생각나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후웅!

그녀의 손에서 떠난 검이 오거를 향해 똑바로 날아갔다.

콰직!

캬아아아악!

눈에 꽂힌 검에 오거가 비명을 내질렀다.

일단 그렌을 구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번엔 라라 본인이 위험했다.

크르르르!

한쪽 눈을 잃은 오거가 신경질적으로 검을 빼 내동댕이친다. 그리고 남은 눈으로 살기를 가득 품은 채 라라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던 다른 몬스터들도 라라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방금 검을 집어던진 터라 그녀의 손은 비어 있었다. 한스처럼 마법 상자에서 여분의 검을 꺼내려 할 때였다.

‘저건!’

그녀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한 자루의 검이 널브러져 있는 게 보였다.

검은색의 검신이 무척이나 인상적인 검. 라라도 무척이나 익숙한 검이었다.

‘토르니움?’

그렌의 애검. 언제나 그가 가지고 다니던 검이라 모를 리가 없었다.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였다. 그녀는 급히 뛰어나가 토르니움을 주웠다.

우웅!

“윽!”

라라가 당황했다. 손에서 올라오는 묵직한 힘이 전신을 파고들었다.

크아아아아!

어느새 오거가 그녀의 근처까지 다가와 있었다. 라라는 당혹감을 내리누르고 검을 휘둘렀다.

서걱!

라라는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실은 마력이 너무도 강하게 증폭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오거의 질긴 가죽을 너무도 쉽게 갈라버리는 검의 날카로움도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하지만 주변엔 오거 말고도 몬스터가 많았다. 라라는 다시 토르니움을 휘둘렀다.

콰아앙!

‘대단해!’

검이 마력을 증폭시키는 걸 생각해 마력의 양을 조절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생각 이상의 위력이 튀어나왔다.

‘이게 토르니움의 힘인가.’

대단한 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직접 사용을 해보니 상상 이상이었다.

하지만 단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확실히 무거워.’

검의 무게를 말함이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삶 대부분을 검을 잡고 생활한 그녀가 이제 와 검 한 자루의 무게 때문에 쩔쩔맬 리 없었다.

그녀가 말한 건 반동이었다.

콰아아앙!

다시 한번 토르니움을 휘둘렀다. 증폭된 마력이 주변 몬스터들을 휩쓴다. 동시에 그녀의 손에도 묵직한 반동이 느껴졌다.

‘아무나 사용하면 큰일 나겠어.’

하지만 라라는 토르니움을 능숙하게 사용해서 주변 몬스터들을 퇴치했다.

“그렌!”

멍청하게 에스텔레이드를 쳐다보는 그렌의 어깨를 잡고 흔든다. 흐릿하던 그의 눈에 초점이 돌아온다.

“…라라?”

“정신 차려! 전장에서 한눈을 팔고 뭐 하는 거야!”

다가오는 몬스터 한 마리에게 일격을 먹인다. 몬스터가 더러운 비명을 지르며 죽었다.

그제야 그렌은 라라가 들고 있는 검이 토르니움임을 알 수 있었다.

“…네가 그걸 왜 들고 있어!”

라라는 깜짝 놀랐다. 그렌이 이토록 화를 내는 걸 라라는 처음 봤다. 그녀를 무시할 때도 이런 식으로 흥분한 적은 없었다.

그렌의 얼굴은 가관이었다. 지금껏 보였던 선량한 모습이 마치 거짓이라도 되는 양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내 놔!”

그렌이 거칠게 토르니움을 채갔다. 당황한 그녀는 별 저항도 못 해 보고 토르니움을 놔 버렸다.

그렌은 토르니움을 살폈다. 마치 혹시 망가진 곳이라도 있지 않을까 의심하는 모양새다. 미세한 금이라도 가 있으면 당장이라도 라라에게 책임을 물을 것 같았다.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이다. 하지만 그의 검이라 철석같이 믿었던, 그저 이번 시간선에서만 길이 갈린 거라 믿었던 에스텔레이드의 배신은 안 그래도 계획이 안 풀려 여유가 사라져 있던 그렌을 완전히 몰아붙였다.

“…그렌?”

라라가 조심스럽게 그렌을 불러 봤다. 하지만 그렌은 그녀에게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라라는 깨달았다.

‘…내가 알던 그렌은 이제 없구나.’

그렌이 변한 건지 아니면 자신이 속고 있던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사랑하던 그렌은 적어도 자신의 검을 동료가 썼다고 저렇게 매몰찬 반응을 보이진 않는다.

라라도 더 이상 그렌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어차피 이번 전투에서 그와 함께 싸울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에스텔레이드에 다가갔다. 애초에 그녀는 이 검을 가지러 온 것이다.

에스텔레이드를 쥐었다.

우웅!

순간 몸 전체에 따스한 기운이 흐르기 시작했다. 토르니움과는 확연히 다른 기운이다. 하지만 느껴지는 힘이 거대하다는 건 토르니움과 같았다.

“너…!”

고개를 돌리니 그렌이 경악 어린 얼굴을 한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라라는 그에게서 시선을 뗐다.

지금은 한스에게 이 검을 주는 게 더 급하다.

탓!

그녀가 몸을 날렸다. 근처에 널브러져 있는 자신의 검을 회수한 후 한스에게 일직선으로 나아갔다.

서걱! 서걱!

가로막는 몬스터들을 에스텔레이드로 모두 잘라낸다.

‘정말로 좋은 검이야!’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감탄이 나온다. 토르니움처럼 묵직한 반동이 느껴지지도 않아 사용하기에는 에스텔레이드가 더 수월했다.

검사라면 그 누구라도 눈독을 들일 만한 검이다. 아무리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슬며시 소유욕이 넘실거릴 것 같다.

그러나 라라의 눈엔 한 점의 욕심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이 검을 주인에게 가져다줘야 한다, 그 생각만이 그녀의 머릿속에 가득했다.

번쩍!

눈앞의 몬스터가 빛의 격류에 휩싸여 쓰러진다. 그렇게 생긴 틈을 라라가 잽싸게 빠져나갔다.

‘빛을 다루는 게 조금 어려워.’

역시 아무리 좋은 검이라도 아니, 좋은 검이기에 더욱 숙련도가 중요하다.

그러나 라라의 목적을 이루기엔 충분했다.

“한스 씨!”

그녀가 큰 소리로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는 한스를 부른다. 한스가 맞붙은 몬스터에게서 살짝 떨어져 그녀를 쳐다봤다.

“받아요!”

라라가 에스텔레이드를 힘껏 던졌다. 라라의 마력에 의해 빛을 뿜으며 날아가는 에스텔레이드는 마치 지상에 강림한 유성 같았다.

덥석!

한스가 에스텔레이드를 잡았다. 곧 에스텔레이드의 검신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졌다.

콰득!

한스를 노리던 타이탄의 팔에 빛이 직격했다. 뭉텅이로 살이 깎여 나가며 피가 왈칵 쏟아졌다.

캬아아아아악!

타이탄이 팔을 움켜쥐고 울부짖는다. 그 사이 한스는 라라의 곁으로 다가왔다.

“라라 씨가 가져다주신 겁니까?”

“네!”

“에스텔레이드를 들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에스텔레이드는 주인을 가리는 검이지 않던가. 물론 지크는 자신이 에스텔레이드를 든 이후에 에스텔레이드를 멍청한 검 정도로 여기고 있었지만.

“네? 아뇨, 별로 어려운 건 없었는데요?”

라라는 살짝 주눅 들어 말했다. 방금 전, 토르니움을 썼다고 자신을 죽일 듯 노려보던 그렌의 시선이 떠올랐다.

설마 한스도 그런 시선을 보낼까. 마음 저 편에서 덜컥 겁이 솟아올랐다.

그러나 정말로 다행히도 한스는 오히려 미소 지었다.

“그렇군요. 역시 당신이라면 들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누가 봐도 정의감이 투철한 그녀이지 않던가. 에스텔레이드가 충분히 인정할 만한 사람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를 표하고 한스는 다시 전투를 시작했다. 라라가 사용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빛의 무리가 몬스터들에게 날아갔다.

한스의 싸우는 등을 라라는 조용히 쳐다봤다. 방금 전 사랑하던 사람의 매몰찬 반응을 본 이후이기 때문일까. 한스의 그 간단한 감사 인사 하나가 마음속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감정에 취해 있기에는 주변이 좋지 않다. 라라도 자신의 검을 고쳐 잡고 한스를 돕기 위해 전장에 뛰어들었다.

생각 이상으로 잘 싸우는 피알루의 병력이었지만 슬슬 한계가 왔다. 전력의 차가 너무 컸다.

히드라의 독액을 피한 라라는 옆에서 얼쩡거리는 오크 한 마리를 베었다. 고작 오크 한 마리를 베었을 뿐인데 팔뚝이 시큰거렸다. 한계가 가까웠다.

‘이렇게 가다간 질 거야!’

“한스 씨! 그 대책이란 건 아직 멀었나요?”

라라가 물은 바로 그 때였다.

콰아아아아아앙!

몬스터 무리 한가운데에서 커다란 폭음이 일었다. 라라가 급히 폭음이 인 곳을 쳐다봤다.

몬스터가 한가득 있던 지역에 커다란 크레이터가 생겨 있었다. 지면에 나뒹구는 새빨간 파편들이 그 곳에 있던 몬스터들이 어떻게 됐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줬다.

그리고 그 크레이터 중앙에 한 사람이 오연히 서 있었다.

턱!

라라의 어깨에 누군가 손을 올렸다. 한스가 그녀의 곁에 다가와 있었다. 그가 묘하게 상쾌한 얼굴로 말했다.

“오셨네요. 대책.”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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