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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430화 (430/628)

제430화

하지만 아무리 머리끝까지 화가 나고 눈에 피눈물이 흐를 것 같이 증오를 한대도 더 이상 그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은 없었다. 감당할 수 없는 적인 지크와 틸은 건재했고, 마지막 희망이었던 사각뿔의 원혼도 적의 손에 있다. 거기에 닉이 우두머리에게 죽음으로써 전력도 떨어졌다.

정말로 이 상황을 돌파할 그 어떤 수도 생각나지 않았다.

이젠 지크가 사각뿔의 원혼을 어떻게 손에 넣게 됐는지 알아내는 것조차 의미가 없었다.

“어라? 조용해졌네? 조금 더 길길이 날뛸 줄 알았는데.”

지크는 사각뿔의 원혼을 집어넣었다. 괴롭힘 대상의 반응이 옅어졌다. 상대의 멘탈이 완전히 갈려 나갔다는 뜻이다.

‘저런 상태면 괴롭히는 재미가 떨어지지.’

그렇다면 더 이상 녀석들을 조롱할 이유가 없다. 시간도 슬슬 끝내도 좋을 시간이다. 지크는 더 이상의 말없이 검을 곧추세웠다. 틸도 지크를 따라 검을 들어 올렸다.

‘끝낼 생각인가.’

우두머리는 희망을 잃은 눈으로 지크와 틸을 쳐다봤다. 자신들의 미래가 어떤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아마 자신이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눈에 공포는 없었다.

‘이번 시간선은 실패로군.’

어차피 지금의 패배도 없던 일이 될 터. 이만큼 변수가 넘쳐나는 시간선을 그 용사 병신이 내버려둘 리 없다.

‘그래도 끝까지 저항은 해 봐야지.’

지크가 자신들을 흉내 내고 다니는 건 이번 시간선에서 처음 나온 행위다. 적어도 그 정보는 알리려 발악을 해야 한다.

“지금부터 사방으로 흩어진다.”

로브들과 용병들이 우두머리를 쳐다봤다.

“각자 생존이다. 다른 생각 말고 무조건 달려!”

탓!

우두머리가 몸을 돌려 뛰었다. 다리에 가득 깃든 마력이 그에게 엄청난 속도를 부여했다.

탓! 탓! 탓!

다음으로 움직인 것은 로브들이었다. 그들은 우두머리의 발이 떨어지자마자 움직였다. 전투는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적어도 속도만큼은 떨어지지 않는 로브들이다. 그들은 순식간에 숲속으로 사라져 갔다.

용병들은 어리바리 당황하다 로브들과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진 후에야 움직였다. 그들도 깨달은 것이다. 이것이 최후의 발버둥, 도박수라는 것을.

“재밌는 짓을 하네?”

지크가 히죽 웃었다.

“로브 놈들은 제가 처리하죠. 틸 씨는 용병들을 맡아주세요.”

용병들보다 로브 놈들이 더 빠르니 틸보다 다리가 빠른 지크가 쫓아가는 게 타당했다. 틸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옛 동료라고 사정을 봐주시는 거 아니겠죠?”

뒤늦게 걱정이라도 된 것일까. 지크가 그렇게 물었다.

애초에 틸을 배려해 로브 놈들을 그에게 전담시켰다. 아무리 배신자에 평소부터 못마땅한 놈들이었다고 해도 동료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건 괜한 걱정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틸이 싸늘하게 허둥지둥 도망가고 있는 전 동료들을 쳐다봤다.

“용병단의 단장으로서 뒤처리는 확실히 할 테니까요.”

“알았습니다.”

더 이상의 걱정은 필요 없었다. 지크의 신형이 순식간에 쏘아져 나갔다.

틸도 움직였다. 다리에 마력을 두르고 거세게 발을 구른다. 땅이 크게 파이며 그의 몸이 앞으로 나아갔다. 세련된 마력 운용은 없더라도 거대한 마력과 강한 근력은 그의 몸을 날랜 화살처럼 만들어줬다.

콰직!

“크아아악!”

가장 먼저 따라잡은 용병의 허리를 끊어 놓는다. 용병이 비명을 질렀다. 피와 내장을 흩뿌리며 두 동강이 난 그의 몸체가 땅에 널브러졌다. 하지만 틸의 시선은 이미 다른 먹잇감을 쫓고 있었다.

서걱!

“아아아아악!”

콰드득!

“끄르륵!”

용병들의 비명이 계속 숲을 울렸다. 용병들도 다리에 마력을 두르고 필사적으로 도망쳤지만 틸보다는 훨씬 느렸다. 앞을 가로막는 나무들을 피해야 하기에 쉽게 가속을 할 수 없다는 사실도 그들이 불리한 점이었다.

물론 나무는 틸의 앞길도 막아섰다. 그러나 틸은 속력을 줄일 필요가 없었다.

콰앙! 콰앙! 콰앙!

눈앞의 나무를 베어 가른 뒤 몸에 마력을 잔뜩 두르고 그대로 몸으로 들이받는다. 찌그러진 나무 몸뚱이가 날아가 다른 나무와 부딪쳐 쓰러졌다.

누가 봐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무식한 방법이지만 그 효과는 발군이었다. 용병들은 그리 멀리 도망치지 못한 채 틸의 손에 처참하게 죽어 갔다.

“자, 잠시만요, 단장! 접니다! 늑대의 송곳니 동료라고요!”

틸에게 옛정을 상기시키며 목숨을 구걸하는 놈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향한 것은 자비가 아니라 다른 이들과 똑같은 육중한 일격이었다.

“꺼억!”

몸이 사선으로 두 동강 난 용병의 시신이 넘어간다. 틸은 서늘한 눈으로 다른 사냥감을 찾았다. 그의 움직임에 망설임이란 보이지 않았다.

* * *

틸만큼이나 지크도 로브 놈들을 잘 처리하고 있었다.

탓!

눈앞에 보이는 나뭇가지를 밟고 지크의 신형이 날아오른다. 그는 아예 나무를 밟아가며 숲 위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야심한 시각이라 특유의 녹색 빛을 뽐내고 있지 못한 검은 수해가 지크의 시야를 가로막았지만 그 정도로 로브 놈들을 놓칠 지크가 아니었다.

부스럭!

지크의 몸이 나뭇잎과 나뭇가지들을 뚫고 숲속으로 내리꽂혔다. 그의 앞으로 열심히 도망을 가고 있던 로브 놈의 모습이 보였다.

서걱!

“크악!”

지크의 가공할 검기가 로브의 몸을 갈랐다. 비명을 지른 로브는 잠시 숨을 헐떡대더니 곧 절명했다.

그러나 지크는 그런 로브에겐 신경 쓰지 않고 다시 나무 위로 올라갔다.

잠입이 특기인 만큼 자신들의 기척을 능숙하게 숨기는 로브들이었지만 지크의 탐지 능력은 그들이 기척을 숨기는 능력보다 더 뛰어났다. 로브들의 숫자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결국, 남은 로브는 우두머리 단 한 명이 됐다.

탁!

자신의 앞으로 지크가 내려앉자 우두머리는 달리는 걸 멈췄다.

“이제 너 하나 남았다.”

지크가 윈두르를 보란 듯 들어올렸다.

“부하들은 전부 죽었나?”

“그래, 네가 마지막이지.”

역시인가. 우두머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마지막 도박은 실패였다.

‘그래도 얌전히 죽어줄 수는 없지.’

로브는 주먹을 쥐었다.

“죽어!”

로브가 지크를 향해 뛰어들었다. 괴물화로 인해 상승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지크를 공격한다. 지크는 가볍게 윈두르를 맞휘둘렀다.

콰아앙!

커다란 폭음이 일고 일순 주변 나무들이 휘청였다. 주변 전투에 숨죽이고 벌벌 떨고 있던 새들이 일시에 날아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숲은 다시 평소의 고요를 되찾았다.

“쿨럭!”

부딪친 충격으로 허리 부분이 완전히 꺾여버린 나무의 밑동에 우두머리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의 행색은 처참했다. 사지가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꺾여 있었고 가슴 부분은 크게 함몰되어 있었으며 입가로 피가 줄줄 샜다. 몸 여기저기에 있는 깊은 자상에서도 피가 꿀럭꿀럭 뿜어졌다.

평범한 사람은 당장에 절명할 수준의 상처다. 그러나 우두머리는 꿋꿋이 숨을 쉬고 있었다. 상처도 슬슬 수복해가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 정말로 괴물이라 부를 만한 생명력이었다.

그러나 상처가 너무 깊어 아무리 뛰어난 생명력을 가진 그라도 거동이 가능할 정도로 상처를 회복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서 윈두르를 겨누고 있는 지크가 그 시간을 기다려 줄 리 없었다.

“죽여라.”

우두머리는 그렇게 말했다.

“혹시라도 내가 정보를 토해낼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걱정 마. 그런 헛된 기대는 하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좋을 대로 죽여라. 단칼에 죽이든, 갖고 놀다 죽이든”

그리고 우두머리는 눈을 감았다. 그 모습에 두려움이란 감정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지크는 잠시 그를 응시했다.

“무서워하지 않는군.”

“흥! 두려워 벌벌 떨길 바라기라도 했나?”

우두머리가 이죽거렸다. 죽음의 그림자가 목까지 드리워졌지만 절대로 지크에게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여실히 드러났다. 오히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자 특유의 무모함으로 지크에게 뻗댔다.

그리고 지크의 취미는 그런 인간들을 밟아주는 것이다.

“어차피 네 죽음도 없던 일이 된다는 거냐?”

“…무슨 헛소리냐.”

우두머리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지크가 무슨 의미로 저런 말을 했건 그가 회귀에 대해 알 리는 없다. 하지만 마치 그들의 최대 비밀을 아는 것 같은 말투에 저절로 표정이 굳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우두머리는 곧 표정을 풀었다.

‘저놈이 그 비밀을 알 리 없으니까.’

하지만 지크의 다음 말에 그는 방금 전까지의 여유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렌 제너드 그 개자식이 시간을 되돌리면 너도 다시 살아나니 그딴 배짱을 부리는 거 아니냐는 말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연기 똑바로 해. 목소리 흔들린다, 야.”

지크가 윈두르의 끝으로 우두머리를 콕콕 찔렀다.

“살기 힘들지? 이번 시간선에는 변수가 하도 많아서 그렌 제너드 그 새끼가 온갖 짜증을 부리지 않았을까 싶은데 말이야. 하여간, 그런 놈이 태양의 용사는 무슨.”

우두머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이 새하얬다.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지만, 하나만은 확실해 보였다.

‘회귀에 대해 알고 있어!’

그건 우두머리가 생각하기에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렌의 집착의 대상으로 최강의 마왕이 되어야 하는 인간. 그에 대한 위험성은 조직원이라면 모두 다 머릿속에 넣어 놓아야 했다. 하지만 조직원 중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리 위험한 자라도 어차피 그들의 계획 안에서 놀아나는 자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지크 모어가 그들의 계획을 대부분 꿰고 있었다.

‘이건 정말로 위험해.’

우두머리의 얼굴로 식은땀이 주룩주룩 흘렀다.

“이야, 괴물처럼 변해도 식은땀은 흐르네?”

지크는 소맷단으로 우두머리의 땀을 닦아줬다. 땀만이 아니라 우두머리의 얼굴에 묻어 있던 피까지 소매에 묻었지만 지크는 신경 쓰지 않았다.

타인이 본다면 굉장히 친절해 보이는 행동이었지만 우두머리에겐 괴물이 자신을 갖고 노는 행위로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 변명하지 않는구나. 하긴, 내가 이 정도 알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변명 같은 게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았겠지.”

“…어떻게 알게 된 거냐.”

“간단해. 나도 회귀를 했거든.”

“뭐?”

“힘의 마왕 지크 모어가 회귀를 한 상태가 바로 지금의 나란 거다.”

“말도 안 돼!”

비명과도 같은 경악성. 소리를 칠 때 목에서 피가 같이 튀어나왔지만 지금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회귀가 있었고 그로 인해 지크 모어가 회귀를 했다.

그제야 우두머리는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서, 설마 이 시간선의 변수가…!”

“나야.”

지크는 비릿하게 웃었다.

“그리고 고작 이 정도 변수로 끝낼 생각도 없어. 내 인생을 놀아나게 만든 네놈들을 뿌리까지 뽑아낼 생각이야. 그렌 제너드는 물론, 그 뒤에 있는 흑막도 전부.”

“주인님조차 알고 있다니!”

“어때, 이젠 좀 절망할 것 같아?”

“그 정보를 어떻게….”

“그건 알 필요 없어. 더 이상 정보를 줄 이유도 못 느끼겠고.”

우두머리의 충격과 절망에 빠진 표정을 봤으니 충분했다.

“아, 죽기 전에 한 가지 더.”

지크는 우두머리의 얼굴에 윈두르를 겨눴다.

“너희들, 이제 회귀 못 해. 내가 회귀 능력을 정지시켰거든. 그게 무슨 뜻인지 알지?”

지크는 빙긋 웃으며 손에 힘을 줬다.

“넌 이제 끝이야!”

퍼억!

우두머리의 머리가 터지며 빨간 운무를 만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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