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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427화 (427/628)

제427화

틸의 아들을 구해주고 자유롭게 해준다니.

‘설마 저 녀석들, 틸조차 묶어두고 싶어서 틸의 아들을 납치한 건가?’

만약 그렇다면 저 둘 사이에 내분이 생긴 것도, 로브 놈들의 우두머리가 저런 이상한 제안을 한 것도 이해가 간다.

‘저 놈들이라면 가능하지.’

윌터와 엘리의 납치가 실패했다고 바로 자신을 배신하고 틸에게 손을 내민 녀석들 아닌가. 어쩌면 이제야 저 둘 사이의 관계를 바로 파악할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두머리는 간신히 아귀가 맞았다 생각하던 닉의 머리를 바로 헝클어뜨렸다.

“닉 녀석이 당신의 아들을 어디에 유폐했는지 짐작 가는 곳이 있다. 더 이상 저 녀석의 협박을 받을 필요가 있나?”

“무슨 개소리야!”

아까는 겨우겨우 속으로 삼켰던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틸 녀석을 이용해 내 딸을 납치해서 협박하던 건 네놈들이었잖나!”

그게 아니었으면 자신이 신뢰 하나 없는 머저리 부하 놈들을 데리고 이 밤중에 난리를 치는 일은 없었다.

“설마 내가 틸 놈이 너희들과 연관이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 거냐!”

‘저건 무슨 개소리야.’

우두머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닉과 똑같은 생각을 했다.

‘대체 무슨 의도지?’

만약 닉이 자신들과 틸 사이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말을 했다면 이해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둘 사이를 이간시켜 손을 잡지 못하게 만들려는 의도일 테니까.

하지만 닉은 이간질은커녕 마치 처음부터 그들과 틸이 손을 잡고 있던 것처럼 말을 하고 있었다.

‘저놈이 우리를 공격하는 걸 보고도 그딴 말을 하는 건가?’

갈피조차 잡히지 않는 닉의 발언에 우두머리가 당황할 때였다.

“우리한테 붙어라, 틸!”

닉이 외쳤다.

“네놈도 저놈들에게 배신을 당한 거지? 저 녀석들이라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지. 네 아들을 구하는 데 전력을 다해 도와주마! 대신 너도 내 딸을 구하는 걸 도와라!”

자신의 손을 잡으라는 듯 닉이 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어차피 서로 배신 때문에 믿지 못하는 상대라면, 그래도 예전부터 인연이 있던 나와 손을 잡는 게 더 편할 거다!”

‘배신?’

우두머리는 더더욱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신들과 틸 사이에는 별 인연이랄 것이 없다. 이 계획은 전적으로 닉에게 맡겼으니까. 애초에 제대로 된 인연이란 것을 맺은 적이 없는데 무슨 놈의 배신이란 말인가.

도저히 닉의 의도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서 한 말일 뿐일까.

‘가만.’

우두머리의 머리에 아까 닉이 한 말이 떠올랐다.

‘우리를 조롱하기 위해 한 헛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닉과 자신들이 갖고 있는 정보에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닉.”

“뭐냐!”

험악한 말투로 닉이 대답한다. 하지만 우두머리는 그의 말투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은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네놈은 왜 틸의 행방을 도시에 알리지 않았나.”

바로 앞에서 틸이 듣고 있었지만 이미 그런 걸 신경 쓸 상황이 아니다.

“이제 와서 무슨 개소리야! 네놈들이 한 짓을 모른다고…!”

“얼른 말해!”

그가 윽박지른다. 윽박지른다고 겁을 먹을 닉이 아니지만, 그도 뭔가 사태가 이상하게 흐른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일단 대답했다.

“네 녀석들이 엘리를 데리고 협박을 하지 않았나!”

“엘리? 네 딸? 네 자식은 틸의 자식과 함께 네가 어디로 빼돌려 둔 게 아니었나?”

“어디서 시치미냐! 내가 아이들의 확보에 실패하자 네놈들이 틸과 손을 잡고 아이들을 납치했지 않나!”

“우리는 그런 적 없다!”

“거짓말 마라! 네놈들 중 한 녀석이 틸을 만나고 있는 걸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어디서 거짓말을!”

하지만 그런 다툼 속에서 둘은 뭔가가 잘못됐다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까지 간 상황에서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틸과 만나는 걸 봤다고?”

“그래.”

“누구였나. 그리고 그게 왜 우리라고 생각했지?”

“당연히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놈이었….”

닉은 입을 다물었다. 생각을 해 보니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어 로브 놈들과 동료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 외에 직접적인 증거는 없던 것이다.

우두머리는 사정을 눈치챘다.

“이 머저리 자식이!”

그가 분노로 목소리를 높였다.

“잠깐 기다려! 애초에 그자는 우리 관계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그자가 너희 동료라는 걸 믿지 않았을 거다!”

닉이 변명했다. 하지만 그 변명이 우두머리의 귀에 제대로 들어올 리 없었다.

“게다가 엘리가 납치를 당했다는 건 사실이다! 틸 녀석이 엘리가 아끼던 옷을 증거 삼아 내밀었단 말이다!”

우두머리의 시선이 휙 돌아 틸에게 향했다. 틸은 서늘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녀석이 아이들을 납치했다고?’

그가 알기로 틸은 절대로 그럴 인간이 아니다. 그가 닉에게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려 할 때였다.

“…풋!”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푸흐흐흐흐! 푸흣! 크흐흐흐흐흐!”

당장이라도 터져 나가려는 웃음을 어떻게든 몸 안에 가둬두려는 소리. 솔직히 듣기 좋은 웃음소리는 아니다. 지금처럼 심사가 꼬여 있을 때는 더더욱.

사람들의 시선이 웃음소리가 들린 쪽으로 돌아갔다.

“크흐, 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결국 터져버렸다. 막혔던 둑이 무너지며 일시에 쏟아지는 강물처럼, 지크는 배를 부여잡고 크게 웃었다. 어찌나 강하게 웃는지 폐가 그대로 찌부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닉도 용병도 로브들도 당황한 눈초리로 지크를 쳐다봤다. 하지만 지크의 웃음소리는 멈출 줄을 몰랐다.

“뭐가 그렇게 웃기지?”

우두머리가 불쾌함을 숨기지 않고 물었다.

“아, 미안 미안. 웬만하면 끝까지 참으려고 했는데, 너희들 하는 꼴이 너무 우스워서 말이야.”

말을 하면서도 계속 튀어나오는 웃음에 몇 번이나 말이 끊겼다.

“이봐요, 닉 씨.”

“뭡니까?”

엘리를 구해줬을 거라는 믿음 때문에 여전히 지크에 대해 적잖은 호감을 가지고 있는 닉이었지만 뜬금없이 터진 지크의 폭소 때문에 그의 대답은 조금은 떨떠름했다. 어쩌면 자신이 갖고 있는 호감의 근원 자체가 잘못되어 있는지도 모른다고 본능적으로 알아챈 것인지도 몰랐다.

“당신이 만났다는 사람 말입니다. 혹시 이렇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지크가 꺼낸 물건을 보고 닉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것은 로브였다. 얼핏 보면 로브들이 평소 뒤집어쓰고 다녔던 로브와 별 차이 나지 않는다. 지크는 히죽히죽 웃으며 그것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목소리를 숨기려는 듯 목을 긁어 거친 소리를 냈다.

“이렇게 말이야.”

“너…! 너…!”

지크를 가리키는 닉의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린다. 우두머리도 그제야 제반 사정을 파악했다.

“닉을 꾀어낸 게 네놈이었나!”

“보시다시피.”

지크는 로브를 벗어 다시 상자 안에 넣었다.

“아, 참고로 윌터와 엘리를 납치한 것도 접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닉, 당신이 시킨 납치 시도를 막은 후 내가 원하는 곳으로 빼돌린 거지.”

“네가 엘리를 납치했다고? 그럼 내가 받은 협박은?”

“제가 틸 씨에게 시킨 겁니다.”

사람들이 틸을 바라본다. 그는 여전히 묵묵히 어둠 속에 서 있었다.

“당신이 이 피알루 습격의 주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고작 당신 하나 잡고 끝내기는 정말로 아쉽지 뭡니까. 당신에게 음침한 로브 새끼들이 협력을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역시 바퀴벌레 같은 놈들은 다른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군요.”

말투, 어조, 태도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손안에서 놀아난 사람들을 비웃고 있다. 닉과 우두머리는 물론이고 용병과 로브들까지 인상이 일그러져 갔다.

그러나 지크는 태연했다. 오히려 그들의 분노와 증오가 일신의 에너지라도 되는 양 한층 더 목소리를 키웠다.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죠. 어떻게 해야 저 바퀴벌레 같은 것들을 끌어낼 수 있을까 하고 말이죠. 그래서 당신을 속였답니다.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그래서 저 바퀴벌레들이 조바심에 제 눈앞까지 기어 나오도록.”

로브들을 ‘바퀴벌레 같은 것’에서 아예 ‘바퀴벌레’라고 격하시킨 지크. 그들을 바퀴벌레라고 호칭할 때마다 기분이 꽤 좋은 것 같다. 물론 지크의 기분이 좋아질수록 로브들의 기분은 썩어들어 갔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심심하죠. 그래서 조미료를 좀 쳐봤어요. 이왕 바퀴벌레들을 끌어내는 데 도움을 받는 거, 그것들을 퇴치하는 데도 도움을 좀 받자고요. 그 왜, 더럽잖습니까, 바퀴벌레.”

그러며 더럽다는 듯이 손을 옷에 문댄다. 익살스러운 행동이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재미를 느끼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아무튼 닉 씨에게는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네요. 이렇게 감사할 데가 없어요. 바퀴벌레들을 끌어내 주시고 퇴치에도 도움을 주신 데다가….”

지크의 입이 귀까지 찢어졌다.

“제 손에 놀아나는 멍청한 꼭두각시를 충실히 연기해 즐거움까지 주시다니.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개새끼가아아아아아!”

닉이 괴성을 지르며 지크에게 달려들었다.

콰앙!

검과 검이 부딪쳤다. 닉의 검은 마력이 가득 주입된 채 살기가 가득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윈두르를 뚫지는 못했다.

“거 참, 왜 그렇게 화를 내십니까? 제가 이리도 공손하게 감사를 표하고 있는데요.”

“죽어어어어!”

콰아앙!

닉의 검의 마력이 폭발했다. 주변의 공기를 튕겨내며 검이 미친 듯이 휘둘러졌다. 그러나 지크는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윈두르를 휘둘러 닉의 검을 튕겨냈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말 그대로 꼭지가 돌아버린 상태에서도 닉은 자신 혼자 지크를 쓰러뜨린다는 건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뭣들 하냐! 이 녀석을 죽여!”

닉이 고함을 쳤다. 하지만 용병들은 어리바리 얼을 탔다.

“이 녀석을 죽이지 않으면 네놈들도 끝이다! 이 녀석이 너희들을 살려둘 거라고 생각하냐!”

“물론이죠. 감히 단장을 배신하고 옳지 않은 길로 가버린 배신자들을 가만히 둘 수 있나요.”

지크의 그 한마디가 불을 지폈다. 용병들이 이를 악 물더니 지크를 향해 뛰어갔다. 닉은 이번엔 로브들을 향해 외쳤다.

“너희들도 도와! 오해는 풀렸겠지! 이놈이 우리를 가지고 논 거라고!”

“우리가 아니라 네놈이겠지.”

우두머리가 불쾌하게 말했다. 그는 부하들을 돌아봤다.

“철수한다.”

굳이 저 난장판에 끼어들 필요는 없다. 게다가 저기 있는 지크는 그렌이 점찍어둔 먹이. 죽이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자신들이 죽여서도 안 된다.

“이 개자식들이!”

닉이 자신들을 향해 욕설을 내뱉는 게 보였지만 우두머리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만큼이나 계획이 들통난 이상 계획은 완전히 실패였다. 더 이상 손을 쓰는 건 손해만 볼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호락호락하게 철수할 수도 없었다.

“누구 마음대로 철수라고?”

지금껏 가만히 있던 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거대한 체구가 로브들을 압박해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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