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5화
닉의 장담처럼 전투는 용병들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로브들은 지크의 생각처럼 조직에서도 정예인 자들이었지만, 아무래도 계획의 실현을 위해 무력보다는 잠입 같은 능력에 더 중점을 둔 이들이라 전투 능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그에 비해 용병들은 칼로 먹고사는 자들답게 정면 대결에 강하다. 게다가 닉이 데려온 자들은, 그 인성에도 불구하고 늑대의 송곳니에 받아들여진 자들답게 실력이 뛰어난 자들이었다.
하지만 로브들도 정예답게 용병들을 능숙하게 상대했다. 그들은 지형을 이용해 용병들의 접근을 최대한 막으며 닉을 먼저 쓰러뜨리려 했다. 그러나 로브들의 의도는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다.
닉은 강했다. 틸에 밀려 용병단의 무력을 상징하는 자가 되진 못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틸이 괴물같이 강하기 때문이다. 닉의 실력은 적어도 늑대의 송곳니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뛰어났다.
“쯧!”
로브의 우두머리가 혀를 찼다. 자신들 넷의 협공을 수월하게 막아내는 닉에게 짜증이 난 것이다. 그래도 머릿수가 유리하기에 아무래도 로브들이 유리한 상황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당장 닉을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시간을 끌면 용병 놈들이 개입해 오겠지.’
그러면 닉을 놓칠 가능성이 커진다.
‘최소한 사각뿔의 원혼은 회수해야 한다.’
우두머리는 부하들이 다른 용병들과 싸우는 곳을 쳐다봤다.
‘한번 흔들어볼까.’
“어이, 네놈들은 이 녀석이 어떤 놈인지 알고 싸우는 거냐!”
우두머리의 마력이 담긴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피알루를 공격하고 너희 단장인 틸에게 누명을 씌우려 한 놈이 이놈이다! 그런데도 너흰 이놈을 위해 싸우려는 건가!”
싸우는 와중 적이 외치는 이런 말에 넘어갈 가능성은 얼마 없다고 생각되긴 하지만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그러나 용병들의 반응은 우두머리의 예상과 달랐다.
“크흐흐흐흐!”
“으흐흐흐!”
낮은 웃음을 흘리며 가소롭게 그를 한 번 흘겨보는 용병들. 믿지 않는 자들의 반응이라기엔 확연히 이상하다.
“…설마 알고 있는 건가.”
대답은 닉에게서 나왔다.
“너희들과 싸우다 괜히 이상한 소리를 들어 당황해 전투력이 떨어지는 것보다는 미리 알고 있는 게 낫지.”
“그럼 놈들은 그걸 알고도 납득했다는 건가. 역시 소문대로의 쓰레기들이군.”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우두머리는 결론을 내렸다. 애초에 예상에 없던 용병들이 들이닥쳤을 때부터 생각하고 있던 터라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짝! 짝!
우두머리가 뒤로 물러나 손뼉을 두 번 쳤다. 마력이 실린 그 소리는 격렬한 전투 중에도 로브들의 귀에 정확히 들렸다.
‘무슨 짓이지?’
닉은 우두머리의 행동을 예의주시했다. 검과 검이 마주치며 한순간의 방심이 목숨이란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만드는 격렬한 전투 와중 우두머리가 취한 기묘한 행동이다.
‘전투 중에 정신이 나가 한 짓은 아니겠지.’
무언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닉은 쏟아져 들어오는 검격을 막아내며 상황을 계속 파악했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냉정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눈앞의 이상 현상을 보는 순간, 닉은 다짐을 한 게 무색하게도 경악 어린 시선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콰드득!
우두머리의 로브가 거칠게 찢어지며 그 안으로 부풀어 오른 근육이 솟아올랐다. 광폭한 마력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우두머리의 몸이 점점 더 커졌다.
쿵!
우락부락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어울릴 수 없을 정도로 덩치가 커진 우두머리는, 이제는 몸에 걸쳐 덜렁거릴 뿐인 다 찢긴 로브를 옆으로 휙 집어 던지고 발을 내디뎠다.
‘저건….’
닉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저런 힘을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우두머리가 닉에게 달려들었다.
콰아앙!
“크으으윽!”
공격을 막아낸 검이 부들부들 떨린다. 아까보다 훨씬 더 강력해진 힘이 그를 몰아붙였다. 닉이 조금 살짝 뒤로 물러났다.
아린 손을 몇 번 움직이며 우두머리를 쳐다봤다. 궁금했던 로브 밑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지만 본래 얼굴은 아닐 것이다. 누가 봐도 괴물 같은 얼굴이었다.
‘확실히 강해지긴 했어.’
그러나 상대를 해 본바, 그렇게 위협적이지는 않다. 혼자서 이기지는 못할 테지만 부하들이 다른 로브 놈들을 죽이고 도우러 올 때까지는 충분히 버틸 수 있다.
그러나 그건 너무 섣부른 판단이었다.
우두머리가 닉에게 덤벼들었을 때, 역으로 다른 세 명의 로브는 닉에게서 거리를 뒀다.
우둑! 우두둑!
그들의 몸에서도 우두머리의 몸에서 났던 소리가 똑같이 들리기 시작했다. 광폭한 마력에 휘감겨 몸이 부풀고 로브가 찢겨져 나간다.
그 모습을 본 닉의 눈이 커졌다.
‘설마 다른 녀석들도 변신할 수 있던 거냐!’
닉이 급히 자신의 부하들과 로브들이 싸우고 있는 곳을 쳐다봤다.
그곳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일부의 로브들이 용병들을 상대하는 동안, 다른 로브들이 괴물로 변하고 있었다.
“젠장!”
절로 욕설이 흘러나왔다. 싸움은 용병들 쪽이 우위를 잡고 있었지만, 로브 놈들이 모두 저 괴물 같은 것으로 변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일단 한 놈이라도 죽여야 해!’
닉이 급하게 움직였다. 앞에 있는 우두머리를 공격하는 것처럼 검을 휘둘렀다. 우두머리도 반격했다. 하지만 그건 속임수였다. 닉은 검을 회수하고 허리를 굽혀 우두머리의 옆을 벗어나려 했다. 변신을 하고 있는 로브들을 먼저 처리할 셈이었다.
그러나 그의 의도는 우두머리에게 막혔다.
콰아앙!
우두머리의 커다란 발이 닉을 가격했다. 닉은 검을 눕혀 그 공격을 막아냈다. 별다른 타격을 입진 않았지만 다른 로브 놈들을 공격한다는 계획은 엉클어졌다.
“내가 보내줄 줄 알았나?”
저런 꼴을 하고도 인간의 말은 곧 잘 할 수 있는 모양이다. 닉은 이죽거리는 우두머리를 한 번 보고 그 뒤쪽에 있는 로브들을 쳐다봤다. 그들은 변신을 거의 끝낸 상태였다.
‘쉽게 갈 수 없겠어.’
닉은 이를 악물었다.
* * *
용병들과 로브를 입은 자들의 전투는 치열하기 그지없었다. 본인의 목숨을 걸고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오고가는 검격과 괴성 그리고 피. 서로의 생각이나 목적, 신념은 다르지만 그들은 한 치의 여유도 없이 서로의 목숨을 노렸다.
그러나 그 피비린내 나는 전투와 조금 떨어진 곳에, 필사적인 그들의 각오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여유를 가진 자가 있었다.
“호오.”
지크였다.
그는 로브들이 괴물로 변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로브 놈들이 궁지에 몰렸을 때 종종 사용하던 기술이니 새로울 건 없다. 하지만 지금껏 만났던 놈들과 분명 다른 점도 있었다.
‘저놈들은 부하들까지 저 기술을 사용하는군.’
보통 이른바 괴물화를 할 수 있던 건 로브들을 이끌던 우두머리들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용병들과 싸우고 있는 로브 놈들은 우두머리만이 아닌 다른 놈들도 전부 괴물로 변했다.
‘역시 정예들이 분명해.’
지크는 자신의 추측이 적중했다는 것에 무척 만족했다. 그리고 마치 투기장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관람객마냥 두 세력의 싸움을 즐겼다.
그러나 흥미진진한 모습으로 싸움을 보는 지크와는 다른 사람도 있었다.
지크의 옆에 서 있던 틸이었다.
그는 굳은 눈초리로 두 세력의 싸움을 보고 있었다. 특히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용병들이었다. 닉이 끌고 온, 늑대의 송곳니에서도 인성이 파탄 난 놈들. 평소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고 어떻게든 쫓아내고 싶어 했던 놈들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용병단 소속이다.
“크악!”
괴물로 변한 로브의 주먹에 맞은 용병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나뒹군다. 코뼈가 주저앉고 이가 절반 넘게 빠졌다. 하지만 그가 고통을 느낀 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콰직!
괴물의 발이 그의 얼굴을 짓밟았다. 머리가 터지고 눈알이 괴물의 발바닥 옆으로 굴러떨어졌다. 희멀건 뇌수가 살점, 뼛조각과 함께 흘렀다.
자신이 죽인 시체를 보고 히죽 웃은 괴물이 다른 목표를 찾아 움직인다. 틸은 그 모습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쳐다봤다.
“역시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틸이 초조히 말했다. 그러나 지크는 틸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모양이었다. 여전히 느긋한 모습으로 틸을 만류했다.
“놈들의 전력이 줄면 그때 나가죠. 적과 적이 싸울 때는 그저 구경이나 하며 이득을 보는 게 가장 낫습니다.”
“하지만 저기 있는 건 제 부하입니다.”
그 와중에 용병 한 명이 또 죽었다. 틸의 얼굴이 조금 더 일그러졌다.
“원래 용병단에서도 내보내고 싶어 하던 자들 아닙니까.”
“그래도 아직은 제 부하입니다. 늑대의 송곳니 용병단 소속 용병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당신이 누명을 썼다는 걸 알면서도 제들의 이익을 위해 무시한 놈들이기도 하죠.”
틸은 입을 다물었다.
로브들의 우두머리가 진실을 말할 때 용병들의 반응이 절로 생각났다. 적이 한 말이니 믿지 않을 순 있다. 하지만 닉에 의해 모든 사실을 알고 나서도 스스로의 이득을 위해 닉을 따르기로 했다니.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합시다. 더 이상 저놈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걱정은 없지 않습니까.”
자신의 어깨를 툭툭 치는 지크의 손을 틸은 떨쳐내지 못했다.
결국 틸도 상황을 방관하기로 결정하자 두 세력 간의 전투는 계속 이어졌다. 숫자로 밀어붙이는 용병들과 괴물화로 엄청난 힘을 얻은 로브들. 두 세력의 힘은 비슷비슷했다.
용병들이 더 많이 죽어 나갔지만 로브들도 상당수가 쓰러졌다. 전투의 끝에는 공멸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두 세력도 그 사실을 눈치챘다.
하지만 반응은 전혀 달랐다. 로브의 우두머리는 별다른 동요 없이 묵묵히 용병들을 공격했다. 그러나 닉의 얼굴에는 차츰 초조함이 들어찼다.
‘이대론 안 돼!’
용병들은 철저하게 돈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돈도 살아 있어야 의미가 있는 법. 그게 승산이 있는 싸움이라면 자신의 목숨을 걸어서라도 칼을 휘두르는 게 용병이었지만, 승산이 없거나 잘해도 공멸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특히 이곳에 있는 용병들은 이기적이기가 끝 간 데 없는 놈들이었다.
벌써 몇 놈이 슬금슬금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목숨을 걸고 싸움에 임하는 자와 어떻게든 몸을 빼려는 자. 둘 중 누구에게 더 승기가 있는지는 물어볼 것도 없었다.
타타탁!
가장 뒤에 있던 용병이 등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놓치지 마라!”
우두머리가 외쳤다. 자신들의 모습을 아는 자가 더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숫자는 아직 용병들이 많은 상황. 저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간다면 과연 잡을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서걱!
갑자기 나타난 검이 도망가던 용병의 목을 가르고 지나갔다. 용병의 머리가 높이 솟았다 땅에 떨어졌다. 몸뚱이는 달리는 기세 그대로 나무에 처박혀 움직임을 멈췄다.
갑자기 나타난 제3 자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비겁하게 도망을 가면 쓰나. 쓰레기끼리 하나라도 더 죽여야지. 그게 네놈들이 세계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 아니겠어?”
평소와 다름없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와 함께 지크가 눈앞의 인간들을 조롱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