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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422화 (422/628)

제422화

하지만 라라는 지크의 말을 바로 받아들이진 않았다. 그렌과 거리를 두라니. 지금껏 생각도 못 해본 일이었다.

지크가 말을 이었다.

“실례지만 지금 브라우닝 씨는 무슨 일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까?”

“저요? 그…, 순찰을 하고 있어요.”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조그맣게 말한다.

순찰. 저렇게 자신감 없게 말할 정도로 보잘 것 없는 일은 아니다. 게다가 지크가 아는 바, 라라 브라우닝은 고지식할 정도로 정의감이 넘치는 자다. 그런 그녀가 순찰을 한다고 부끄러워 할 리 없다. 오히려 이런 사소한 일이라도 무척 중요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라며 가슴을 폈으면 폈을 것이다.

‘당연히 그렌 제너드와 연관된 무언가가 있겠지.’

아마 그렌 제너드에게 반쯤 방치되어 할 일이 없는 와중 순찰이랍시고 도시를 돌아다니는 중이 아닐까.

지크는 짐짓 생각을 하는 것처럼 턱을 쓰다듬었다.

“브라우닝 씨는 틸을 수색하는 작업엔 참가하지 않으셨죠?”

“…네.”

틸을 수색하는 작업에 참가했다면 이런 도시에 있진 않을 것이다. 아티팩트를 받고 틸의 수색에 동원된 자들은 거의 전부 도시 밖으로 나가 있다.

“이상하군요. 제가 아는 브라우닝 씨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틸 수색대에 참가할 수 있는 실력인데 말이죠.”

그녀보다 실력이 낮은 이도 아티팩트를 부여 받고 틸 수색대에 참가했다.

물론 이유는 불 보듯 뻔하다. 그렌이 그녀의 참가를 원치 않았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지크는 의뭉스럽게 말했다.

“제너드 씨가 브라우닝 씨의 실력을 몰라서 추천하지 않았을 리도 없고.”

“…….”

브라우닝의 고개가 조금 더 숙여졌다.

“이런, 제가 괜한 참견을 했군요. 그거야 제너드 씨가 판단할 일이지 제가 뭐라 할 일은 아니죠.”

그리고 다시 고민에 빠진 척을 한다.

“그렇다면 이러면 어떻습니까, 브라우닝 씨?”

그녀가 살짝 고개를 들어 지크를 쳐다본다.

“제 추천으로 한스도 틸 수색대에 참여를 했습니다.”

그녀의 시선이 한스를 따라간다. 본인이 그녀를 데려왔음에도 한스는 대화에 끼지 않고 묵묵히 둘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자신은 받지 못한, 그렌과 같은 임무.

살짝 질투의 마음이 들지 않는 곳도 아니었지만 라라는 순순히 납득했다. 그녀가 보기로도 한스의 실력은 그런 중요한 임무를 맡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제너드 씨와 잠시 거리도 둘 겸 한스와 같이 다니지 않겠습니까?”

“네?”

라라가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야기에 끼어들지 않던 한스도 이 말은 예상 외였는지 꽤 놀란 표정이었다.

“저는 브라우닝 씨의 실력을 꽤 높이 평가하거든요. 특히 검에 재능이 많아요.”

라라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검의 재능이 많다는 말에 기쁨이 샘솟았지만, 그 말을 해주길 원하는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분명 지크의 제안은 그녀에게 있어 좋은 것이었다.

더 이상 순찰이라는 명목 하에 그저 정처 없이 도시를 헤매고 다닐 필요가 없어진다.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보람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안면이 있다고 해도 생판 남인 남자와 같이 다니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제안을 거절하려 했다.

그러나 뒤이은 지크의 말에, 거절의 말을 내뱉으려던 라라의 입이 거짓말처럼 닫혀버렸다.

“당신이 한스와 같이 임무를 수행한다고 해도 제너드 씨가 그다지 관심 가질 것 같지도 않고 말이죠.”

“…….”

* * *

‘저질러 버렸어.’

라라는 내심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꽤 몰려 있다는 판단 정도는 하고 있었다. 때문에 이상한 미혹에 걸리지 않도록 나름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고 다짐하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 이 꼴이라니.’

지크의 한마디에 흔들려버린 자신이 너무도 한심했다.

마음가짐이 부족했던 걸까?

‘아니면 생각 이상으로 내가 몰렸을 수도 있어.’

그걸 생각하면 꼭 이 상황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적어도 자신의 현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에 따른 결과가 문제였다.

라라는 앞을 쳐다봤다. 한 사내의 등이 보였다.

허리춤에 새하얀 검을 차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앞을 향하고 있는 자. 적어도 며칠 동안은 그녀의 임시 동료로서 일을 함께 해야 할 한스였다.

지크의 말에 결국 라라는 한스와의 임시 파티를 받아들였다. 한스도 반대 의사를 보이지 않아, 그 이후부터 일은 단번에 진행됐다.

이미 대부분의 준비는 한스가 갖추고 있어 그녀는 말 그대로 검 하나와 여분의 옷가지만 들고 한스를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는 한스와 더불어 그의 순찰 구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거절할까?’

아마 지금 거절을 한다 해도 한스는 개의치 않을 것이다. 어차피 그 혼자서 잘 해오지 않았던가. 게다가 실력을 봐도 그는 자신보다 훨씬 윗줄의 실력을 갖고 있었다.

‘그렌과 비슷, 어쩌면 더 강할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면 지크의 파티는 정말로 경이로운 파티다. 그렌을 리더로 한 자신들의 파티도 상당히 강한 파티라고 생각하지만 지크의 파티와 비교할 순 없었다.

‘하지만 거절하면? 그 이후에 뭘 하게?’

아마 계속 의미 없는 순찰만 도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게다가 아까 전에 봤던 그렌의 냉담한 시선.

‘윽!’

떠올리는 것만으로 가슴이 쑤신다. 심장이 펄떡여 제발 자신을 살려달라 외치지만, 감정의 격류는 계속해서 심장을 자극했다.

지크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당신이 한스와 같이 임무를 수행한다고 해도 제너드 씨가 그다지 관심 가질 것 같지도 않고 말이죠.】

차가운 비수가 되어 그녀의 심장을 후벼파기 충분한 말이었다. 그 말이 그토록 날카로운 비수가 된 이유는, 무척이나 설득력이 있는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거절해도 괜찮습니다.”

그때, 한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앞서 걷고 있던 그가 고개를 뒤로 돌려 라라를 보고 있었다.

“부담가질 필요 없어요. 임무는 저 혼자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당신이 거절하고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지크 님도 그다지 불쾌해하지 않을 겁니다.”

아마 그녀가 뒤늦게 거절을 했다고 보고하더라도 ‘그러냐’라는 소리를 심드렁하게 말하는 것이 전부가 아닐까.

“하지만 뭔가 고민이 있고, 그게 당장 해결되지 않는 것이라면 조금 거리를 두는 게 좋다는 지크 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다고는 생각됩니다.”

그리고 한스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마치 이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듯한 행동이다. 하지만 곧 결심을 굳혔는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저번부터 생각하던 일입니다만, 브라우닝 씨는 너무 제너드 씨에게 얽매여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적인 참견까지 할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요.”

라라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날카롭게 반응했다. 그렌과의 사이는 안 그래도 무척이나 민감한 부분이다. 그걸 얼굴 좀 아는 타인이, 안 그래도 복잡한 생각을 가진 시기에 건드린 것이니 그런 반응도 당연했다.

그러나 한스는 당황하지 않았다.

“확실히 사적인 참견을 할 사이는 아니죠. 하지만 제가 말하는 건 당신과 제너드 씨의 관계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한스는 라라를 처음 봤을 때의 모습을 떠올렸다.

예전의 그녀는 저런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가 모시는 지크와는 상극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고지식하게 원리 원칙을 따지던 모습.

무척이나 머리 아픈 성격이지만, 분명 그 기반은 정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라라에게 그 때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당신이 여행을 시작할 때 품은 마음가짐. 거기에 있던 건 제너드 씨에 대한 감정뿐이었습니까?”

“…….”

라라는 마치 거대한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침묵했다.

* * *

‘잘 하고 있으려나?’

지크는 한스와 라라가 사라진 곳을 쳐다봤다.

‘브라우닝을 흔들 수 있는 시기가 딱 지금이긴 한데 말이야.’

그렌은 다른 곳에 한눈이 팔려 있고 파티 내에서의 지위도 위태롭다. 라라를 그 파티에서 빼내려면 아니, 적어도 그 계기를 만들려면 지금만큼 적격인 시기도 없었다.

때문에 지크는 그녀를 한스에게 맡겼다.

‘그 녀석이라면 브라우닝과 마음도 잘 맞겠지.’

용사 지망생과 고지식한 원칙주의자라면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될 터.

‘뭐, 한스가 내 영향을 많이 받은 게 조금 걸리긴 하지만.’

원칙주의자가 보기에 지크란 존재는 상종조차 하지 못할 인물이다. 한스도 적잖게 지크의 영향을 받았으니 그 또한 원칙주의자에게 좋게 보일 인물은 되지 못 할 것이다.

‘그래도 근본은 정의감인 녀석들이니 통하는 게 있을 거야.’

그리고 잘 안 돼도 상관없었다. 라라를 빼내는 건 어디까지나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정도의 계획이었다.

‘그럼 나도 슬슬 일을 마무리 지어야지.’

이미 계획은 무르익을 때로 무르익었다. 지크는 몸을 일으켰다.

* * *

정기보고를 위해 도시에 들렸던 닉은 다시 자신의 순찰 구역으로 돌아왔다. 계획이 꼬였을 때부터 그의 심사가 편할 날은 없었지만, 오늘은 한 결 더 불편했다.

‘개자식이 쓸데없이 힘을 빼고 있어!’

닉의 불평대상은 그렌이었다.

순찰구역으로 돌아가려는 그를 갑자기 나타난 그렌이 계속 붙잡고 귀찮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중요한 이야기를 하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안 그래도 뒤틀려 있던 닉의 심사가 한층 더 꼬여버린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렌에 대해 한바탕 욕지거리를 거하게 내뱉은 닉은 언제나 머물렀던 야영지에 앉았다.

‘오늘은 성공해야 해.’

개량된 아티팩트를 얻은 후, 닉은 틸이 방문할 때마다 계속 그의 뒤를 밟고 있었다. 그가 꾸미는 계획을 엿보기 위한 것과 더불어 혹시 엘리가 있는 곳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첫날의 성공이 운이 좋았던 것뿐인지 닉의 미행은 번번이 실패했다. 틸이 마력을 이용해 빠르게 이동하고 다녔던 것이다.

그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닉은 틸의 속력을 따라잡지 못했다. 무리해서 틸에게 근접해 미행하다가 들킬 뻔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닉은 포기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엘리만은 구해야 해!’

독한 마음을 먹고 그는 오늘도 틸을 미행했다.

운이 좋았다. 오늘도 미행에 성공한 첫 번째 날처럼 어두운 시간에 틸이 방문했다.

이미 산맥에는 들렀다 오는지 그는 산맥 쪽에서 등장을 했다. 여느 때처럼 무의미한 대화로 닉의 속을 긁어 놓은 틸은 산맥과 반대 방향으로 사라졌다.

오늘은 정말로 뭔가 되는 날일까.

보통 틸이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하면 금방 목표를 놓치고 뱅글뱅글 돌던 아티팩트이다. 하지만 오늘 아티팩트는 계속해서 앞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늘은 걸어서 이동하는 건가.’

밤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단순한 변덕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미행의 성공확률이 무척 높아졌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틸을 미행하던 닉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녀석, 멈췄는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자 아티팩트가 뱅글뱅글 돈다.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가자 아티팩트가 전면을 가리킨다.

혹시 목적지에 도착한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닉의 순찰 구역에서 별로 멀어지지 않았다.

‘확인을 해 보자.’

닉은 위험부담을 안더라도 틸에게 가까이 접근하기로 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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