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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420화 (420/628)

제420화

그렌은 피알루와 상당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건 거대한 산봉우리들이 줄기줄기 서 있는 데네스트 산맥. 그도 피알루 침공의 원흉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순찰을 도는 중이었다.

그의 상태는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별다른 외상이 보이는 건 아니다. 하지만 팔짱을 낀 채 발을 까딱거리는 모양새가 뭔가 초조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스윽!

순간 그렌의 앞에 조그마한 그림자가 어리더니 한 명의 사람이 나타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로브를 둘러 쓴 그 사람은 그렌의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됐지?”

그렌의 싸늘한 목소리가 그의 심경을 대변했다. 로브를 입은 자의 고개가 더욱 숙여졌다.

“예상대로입니다. 몬스터들을 관리하던 동료들이 모두 당한 것 같습니다.”

퍼억!

그렌의 발이 로브를 입은 자를 강타했다. 마력을 실어 찬 건 아니지만 단련된 다리에서 뿜어진 위력은 상당하다.

로브를 입은 자의 몸이 뒤로 풀썩 넘어졌다. 급히 일어나 다시 그렌의 앞에 고개를 조아리긴 했지만 움직임이 어색해진 걸 보니 부상을 입은 모양이었다.

“원인은?”

“몬스터들에게 내려진 명령이 풀린 모양입니다. 상황을 살펴보러 갔던 동료들에게 몬스터들이 덤벼들었습니다.”

“당했나?”

“설마 몬스터들이 습격할 줄은 몰라 몇 명은….”

퍼억!

다시 한번 그렌이 그를 걷어찼다.

걷어차인 팔 부위가 덜렁거린다. 부러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로브를 입은 자는 신음조차 내지 못한 채 묵묵히 다시 무릎을 꿇었다.

“그걸 말이라고 쳐 하는 거냐!”

그렌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일각뿔의 한탄으로 모인 몬스터들을 관리하기 위해 그렌은 부하 몇 명을 파견했다. 몬스터들의 전력을 파악하고, 몬스터들의 전투력을 최대한 감소시키지 않기 위함이었다.

아무리 일각뿔의 한탄으로 모인 몬스터들이 먹이사슬 관계에서 벗어나 서로 공격하지 않는다지만 그렇게 방치를 하면 몬스터들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몬스터도 먹어야 사는 것이다.

때문에 전투력이 떨어지는 약한 몬스터들을 강한 몬스터들에게 먹이로 주는 관리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하는 것이 그렌이 파견한 자들.

그들은 며칠에 한 번 씩 도시 밖에서 그렌을 만나 몬스터의 전력에 대한 정보를 전해줬었다.

한데, 그 정보 전달이 며칠 전 뚝 끊겼다. 사태를 알아보기 위해 부하를 몇 파견했지만, 갖고 온 정보란 것이 이따위 것이다.

성질 같아서는 눈앞의 무능한 부하 놈을 완전히 짓이겨버리고 싶지만, 그렌은 필사적으로 인내심을 발휘했다.

“원인은?”

사건이 터졌으면 그 원인이 있어야 했다.

“몬스터들에게 주입된 명령을 풀 수 있는 것은 사각뿔의 원혼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각뿔의 원혼을 가진 사람이 명령을 풀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현재 이 근처에서 사각뿔의 원혼을 가진 자 중 한 명은 그렌이다. 하지만 그렌 자신이 몬스터들의 명령을 푼 적은 없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한 명.

“닉, 그놈이 그랬다고?”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렇게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렌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놈이 왜?’

닉은 여러 번의 회귀에서도 변수가 별로 없는 편에 속하는 놈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착실히 그렌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자이기도 했다.

한데, 그런 닉이 몬스터의 명령을 제거하다니.

‘아니, 녀석은 몬스터들에게 그런 명령이 내려진지도 몰랐을 텐데.’

몬스터들에게 로브를 입은 자들의 명령을 따르라는 명령은 그렌 자신이 내린 것이다. 닉은 알 수 없어야 한다.

‘젠장! 또 변수야!’

이젠 정말 지긋지긋하다. 이 시간대에 첫 단추를 잘못 꿰맨 놈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알게 된다면 절대로 쉽게 죽이지 않을 것이다.

‘회귀를 할 때마다 최악의 고통을 선사해주마!

하지만 새삼 그런 의지를 갖는다고 해도 눈앞의 상황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일단 몬스터들은 멀쩡히 있는 거겠지?”

“네. 지금껏 관리한 게 어디가진 않아, 적어도 고위 몬스터들은 확실하게 본래의 힘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진 않을 듯합니다. 녀석들도 먹어야만 힘을 내고 살 수 있으니까요.”

그렌은 생각에 잠겼다.

‘다시 몬스터들에게 명령을 내려야 하나.’

하지만 이미 한 번 명령이 벗겨진 이상 또 그럴 확률이 높다. 게다가 그렌은 이번 사태의 주체로 나갈 생각이 없었다.

그가 하는 건 어디까지나 판을 깔아주는 것뿐.

‘주된 실행범은 닉이 되어야 해.’

그래야 틸이 재난의 마왕이 될 영광스러운 첫 걸음을 뗄 테니까.

게다가 지크가 근처에 있어, 들킬 위험도 컸다. 하지만 만약 계획이 계속 어긋난다면 어쩔 수 없이 그나 부하들이 다시 수면 위로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은 닉을 한번 만나 보자.’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다. 음모의 주체가 그렌이란 사실은 닉조차 모르니까. 하지만 그의 반응을 볼 순 있을 것이다.

‘다행히 이번 귀환 시기는 닉과 겹친다.’

“물러가라.”

그렌의 명령에 로브를 입은 자가 일어섰다.

그렌의 화풀이 때문에 당한 부상이 그의 거동을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그는 여전히 신음 한 번 내지 않고 그렌의 앞에서 사라졌다.

그렌은 하늘을 쳐다봤다. 새파란 하늘이 마치 고민에 휩싸인 자신을 놀리는 것 같다.

퍼억!

그렌은 신경질적으로 근처에 있는 돌멩이 하나를 걷어찼다.

* * *

도시로 귀환한 그렌은 형식적으로 시청에 있는 사령관에게 보고를 했다. 주변에 물으니 아직 닉은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일정상 오늘 올 것은 확실하다. 그렌은 시간을 때우기 위해 근처 가게로 들어갔다.

거기서 그렌은 그다지 달갑지 않은 사람과 마주쳤다.

“어라? 제너드 씨가 아닙니까.”

지크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 인간도 오늘 귀환하는 날이었나.’

안 그래도 짜증나는 판국에 지크의 얼굴을 보자 절로 욕지기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나 그렌은 참았다. 사람들이 보고 있을 때의 그는 한결같은 정의의 용사여야 했다.

“오랜만입니다, 지크 씨.”

“식사를 하실 생각이시라면 여기 앉으시죠.”

지크가 자신의 맞은편 자리를 가리켰다.

‘농담하지 마.’

지크와 같은 자리에서 식사라니. 차라리 더러운 화장실 바닥에서 식사를 하는 편이 낫다. 그러나 속내를 바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

“하하! 권유는 감사하지만 지크 씨도 임무로 피곤하지 않습니까? 식사는 혼자서 느긋하게 하시는 편이 좋지 않으실까 합니다만.”

완곡하게 거절한다. 그리고 그 정도면 지크도 물러나리라 여겼다. 애초에 그와 지크는 겉으로도 그다지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의외로 지크가 끈질겼다.

“그 정도로 지칠 만큼 체력이 적진 않습니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겠죠. 말씀드릴 게 있어서 권하는 거니 불편하시더라도 잠시만 참고 앉으시죠.”

저렇게까지 말하니 그렌도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그렌은 어쩔 수 없이 지크의 맞은편에 앉았다.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다.

그렌은 음료 한 잔을 시켰다. 용건만 듣고 일어나겠다는 무언의 의사 표시였다.

충분히 눈치챘을 지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작게 끄덕이는 것이 그렌의 행동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무슨 용건입니까?”

얼굴은 여전히 밝고 목소리도 상냥하지만 그가 친 벽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지크도 굳이 그 벽을 깨뜨릴 필요성을 못 느꼈기에 아니, 오히려 그 벽보다 훨씬 더 크고 두꺼운 벽을 수백 겹으로 쌓고 싶었기에 바로 용건으로 들어갔다.

“이번에 데네스트 산맥에 올라갔다 와 봤습니다.”

“위험한 짓을 하셨군요.”

그렌이 우려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속내에 지크에 대한 걱정은 전혀 없었다. 그저 쓸데없는 일을 했다며 욕을 퍼부을 뿐이었다.

“굳이 그러실 필요가 있으셨을까요.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건 틸을 찾는 것일 텐데요.”

겉으로도 불쾌한 티를 냈다. 이 정도는 괜찮았다. 행동의 우선순위를 헷갈리는 것 같은 자에게 한마디 정도 한 것에 불과했으니까.

“그것도 그렇습니다만, 지금껏 그를 찾아내지 못했잖습니까. 그렇다면 틸을 찾지 못한다는 최악의 상황도 가정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몬스터들이 내려올 때 넋 놓고 있을 수도 없으니, 적어도 몬스터 군단이 제너드 씨가 말했던 때에 비해 어떻게 변했는지 정도 파악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아, 당연히 위험하게 가까이 접근은 하지 않았습니다. 멀찌감치 살짝만 보고 빠졌으니까요.”

“…그렇습니까.”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니 그렌은 더 이상 불평을 내뱉을 수 없었다.

“그래서, 뭘 발견하셨습니까?”

그렌은 살짝 긴장했다. 혹시 거기서 뭔가 쓸데없는 걸 발견하지 않았는지 걱정이 된 것이다.

그리고 분통이 터지게도 그렌의 예측은 맞아 떨어졌다.

“로브를 입은 자들을 봤습니다.”

“그래요?”

그렌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뭘 본 거지? 녀석들이 몬스터들을 관리하는 걸 봤나? 아니면 연락이 끊긴 녀석들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한 녀석들을 본 건가?’

그 녀석들이 발견되었다고 해봤자 그렌에게 별로 위협이 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정보를 얻을 필요성은 느꼈다.

“그놈들이 밸리드 놈들인지 아니면 제가 쫓는 로브 놈들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녀석들이 몬스터들에게 대놓고 접근하더군요.”

“그리고요?”

“뭐, 몬스터의 습격을 받아 죽었습니다. 도망친 놈도 있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자신이 후에 파견한 자들을 본 모양이다.

그렌은 대놓고 고개를 갸웃했다.

“몬스터의 습격을 받고요? 혹시 다른 세력이 아닙니까? 지크 씨가 말한 세력이 그렇게 어이없이 죽었다는 게 좀 믿기지 않는군요.”

“그건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도 조금 아리송한 상태니까요.”

일단은 다른 가능성을 끼워 넣어 용의자가 확정되는 것은 막았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적의 정보에는 계속 혼선을 주는 게 맞았다.

그러면서도 그렌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다만, 지크가 자신의 의견에 납득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꽤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사소한 것이라도 상대를 속이는 것에 작은 성취감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이야, 확실히 생각해보면 제너드 씨의 말이 맞습니다. 자기들이 길들인 몬스터에게 죽는 놈들이라니! 뭐, 그런 멍청한 놈들이 다 있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군요.”

그렌은 최대한 태연히 지크의 말을 받았다. 그러나 지크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만약 그놈들이 지금의 상황과 관련이 있는 놈들이라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멍청한 놈들일 겁니다. 그런 놈들을 부하로 데리고 있는 우두머리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그렇죠.”

“분명 그 우두머리는 성격이 음습하고 더러울 겁니다. 머리도 좋지 않을 거고요. 일명 멍청이란 거죠. 아니, 그건 멍청이에 대한 모욕인가?”

“…….”

“아마 제깟 놈이 똑똑한 줄 알고 사람들을 비웃고 있을 텐데, 제너드 씨도 아실 겁니다. 이 세상에 가장 무식한 놈이 그런 놈이라는 걸요. 아마 부하들도 그놈을 욕하고 비웃고 있을 겁니다. 찌질이는 뭘 해도 찌질이라면서요.”

그리고 크게 웃고는 그렌에게 물었다.

“안 그렇습니까, 제너드 씨?”

“…네, 확실히 그렇군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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