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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418화 (418/628)
  • 제418화

    자신의 순찰 구역으로 돌아온 닉은 여느 때처럼 모닥불을 피우고 야숙 준비를 했다.

    몇날 며칠을 야외에서 보내야 하는 만큼 이런 준비는 필수였다.

    해가 지고 밤이 되자 모닥불의 불빛만이 주변을 비췄다. 저녁으로 준비한 고기들을 꼬치에 꽂아 불가에 둔다.

    곧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닉은 어제까지만 해도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딸이 납치되어 있는 상황에 먹을 것이 제대로 넘어갈 리가 없는 것이다.

    그저 나중에 딸을 구할 기회가 올 때 체력이 달릴까 꾸역꾸역 집어넣었을 뿐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목구멍 너머에 억지로 쑤셔 넣는 것은 같았지만 고기가 완전 분쇄될 때까지 꼭꼭 씹어 넘겼다.

    마치 무언가 중요한 일을 앞둔 사람이 속을 든든하게 채우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털썩!

    누군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누군지 궁금할 만도 하련만 닉은 시선조차 돌리지 않고 묵묵히 식사를 계속했다.

    맞은편에 앉은 자가 꼬치로 손을 뻗었다.

    탁!

    반응하지 않던 닉이 그 손을 쳐냈다. 그리고 으르렁거린다.

    “네놈에게 줄 건 없다.”

    “너무 그러지 마라. 친구 좋다는 게 뭐냐.”

    맞은 편에 앉은 사내, 틸이 말했다.

    “친구? 어떤 개자식이 친구의 딸을 납치한다는 거냐!”

    그 자신도 원래 틸의 자식인 윌터를 납치하려고 했었지만 적어도 지금 그 사실은 닉의 머릿속에 없었다.

    “뭐, 알았다.”

    아무리 파렴치한 자라도 낯짝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그리 집착을 하지 않았던 것인지 틸은 순순히 꼬치로 뻗은 손을 회수했다.

    “할 얘기만 하고 꺼져!”

    고기가 사라진 꼬치를 불 속에 던지며 닉이 말했다. 그의 행동을 보면 아마도 그가 꼬치를 던지고 싶은 곳은 불 속이 아닌 틸의 안면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중요한 용건은 아니다. 네가 제대로 이 권역을 맡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니까.”

    “확인됐지? 그럼 입맛 떨어지게 하지 말고 꺼져!”

    “그러지.”

    틸은 몸을 일으켰다. 닉은 다시 모닥불에 시선을 둔 채 다른 꼬치를 덥석 물었다.

    작별 인사 따위 오고 갈 분위기가 아니다. 그리고 둘 다 그런 걸 기대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틸은 아직 할 얘기가 남아 있었다.

    “엘리는 잘 있다.”

    고기를 거칠게 뜯던 닉의 움직임이 멈췄다. 하지만 그런 그를 무시하고 틸은 모닥불 너머 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으로 몸을 감췄다.

    “…개자식!”

    퍽!

    닉이 손에 든 꼬치를 내던진 건 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이후였다.

    분이 풀리지 않는지 한동안 거친 숨을 내쉬는 닉. 하지만 그는 숨을 골랐다.

    ‘흥분하지 마라. 지금처럼 좋은 기회도 없어.’

    평소 낮에만 데네스트 산맥으로 향하던 틸이 오늘은 어쩐 일인지 밤에 움직였다. 아무래도 미행을 하기에는 낮보다는 밤이 편한 법이다.

    물론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어둠은 미행자의 눈마저 가려 미행의 난도를 높인다.

    하지만 닉에겐 비밀무기가 있었다.

    닉의 품에서 나온 아티팩트가 한쪽 방향을 가리키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티팩트가 가리킨 곳은 어둠 너머에 있을 틸이 아니라 닉 자신이었다.

    ‘역시.’

    어쩔 수 없다. 닉은 마법 상자에서 사각뿔의 원혼을 꺼냈다.

    특유의 사이한 기운을 흩뿌리는 그것을 복잡한 눈으로 내려다보던 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고는 근처에 땅을 팠다.

    마력을 이용해 파니 금방 사람의 하반신은 충분히 묻힐 만큼 깊은 구멍이 파였다. 사각뿔의 원혼을 그 안에 넣고 흙을 덮었다.

    ‘좋아!’

    썩 티가 나진 않는다. 어차피 여기 올 사람도 없다. 못내 흘러나오는 걱정에서 등을 돌린 채 닉은 틸이 사라진 곳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한동안 아티팩트는 계속 사각뿔의 원혼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하지만 어느 지점을 지나는 순간, 일각뿔의 한탄의 뿔 끝이 빙글 돌아 전면을 가리켰다.

    ‘잡았어!’

    닉은 순간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하지만 급히 입을 막았다.

    들리는 소리라야 바람에 수풀이 스치는 소리와 풀벌레 소리만이 들리는 지금, 괜히 환호성을 냈다가는 혹시라도 틸에게 들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음속 스며든 환희는 여전했다.

    ‘아무리 녀석이라도 이 거리라면 괜찮아!’

    거기에 어깨너머 배운 것이라도 조금쯤은 알고 있는 미행 방법을 곁들인다면 틸을 충분히 속일 수 있을 것이다.

    닉은 자신이 들고 있는 아티팩트를 나침반 삼아 앞으로 전진했다. 혹시라도 틸이 눈치챌까 접근하는 것은 극명히 피했다.

    조금만 걸음을 멈추면 바로 일각뿔의 한탄이 목표를 잃고 빙글빙글 도는 거리를 유지하며 틸을 추적했다.

    틸의 걸음은 산맥의 어느 우거진 숲으로 향했다. 닉은 반색했다. 엄폐물이 많은 숲이라면 그가 숨어들기 조금 더 쉽다.

    그는 계속해서 틸을 미행했다.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던 그가 멈칫했다.

    ‘이 녀석, 멈춘 것 같은데.’

    한 걸음 뒤로 물러나자 일각뿔의 한탄이 목표를 잃고 빙글빙글 돈다. 한 걸음 나아가자 일각뿔의 한탄이 다시 전면을 가리켰다.

    다시 뒤로 물러나자 일각뿔의 한탄이 다시 목표를 잃었다.

    틸이 이동을 멈췄다는 뜻이었다.

    닉은 조심스럽게 접근을 시작했다.

    ‘저기 있군.’

    서로 햇빛을 더 받겠다고 탐욕스럽게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치고 있는 숲에, 어떤 이유에서인지 별빛이 지면을 그대로 적시고 있는 작은 공터가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틸이 서 있었다.

    닉은 자세를 낮췄다. 아티팩트와 어둠, 숲이라는 환경 덕에 꽤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여기서 더 움직였다가는 들킨다.’

    거리가 어느 정도 있긴 하지만 충분히 틸이 타인을 감지할 수 있는 범위다.

    오랜 사이인 닉은 알 수 있었다. 계속해서 특이한 움직임을 보인다면 눈치채일 것이다.

    ‘뭘 하는 거지?’

    틸은 숲 안에 조용히 서 있기만 했다. 갖고 있다는 사각뿔의 원혼을 이용해 몬스터들을 움직인다든가 할 거라는 닉의 예상과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다. 하지만 닉은 끈질기게 기다렸다.

    얼마쯤 기다렸을까.

    부스럭!

    숲 안에서 소리가 났다. 혹시 자신이 낸 소리가 아닐까 닉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소리는 그가 낸 것이 아니었다.

    저벅! 저벅!

    어두운 숲 안에서 인영 하나가 걸어 나왔다. 로브를 푹 눌러 쓴 것이 수상쩍기 그지없었다.

    정체를 숨기고 싶어 하는 자들의 흔하다면 흔한 옷차림. 하지만 닉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협력자?’

    그에게 사각뿔의 원혼을 준 협력자가 딱 저 차림이었다.

    “늦었군.”

    틸의 입이 열렸다. 닉이 귀를 쫑긋 세웠다. 들키지 않기 위해 둘과는 상당한 거리를 벌리고 있었지만 귀에 마력을 집중하면 이야기를 듣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거기에 주변이 무척 조용한 것도 도움이 됐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풀벌레 소리가 사라졌어.’

    긴장 때문에 놓치고 있는 사실을 알아챈 닉이 침을 삼켰다.

    ‘저 로브 입은 놈이 등장한 이후야.’

    아마도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스산한 기운에 풀벌레들이 겁을 먹은 모양이다.

    ‘생각보다 더 위험한 놈일지도 몰라.’

    닉의 긴장감이 더욱 높아졌다.

    “그쪽이 빨리 온 거다.”

    로브를 입은 자가 대답했다. 목소리를 숨기기 위함인지 그는 목소리를 인위적으로 긁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잠시간의 침묵. 기싸움이라도 하는 것처럼 둘은 서로를 노려봤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로브를 입은 자였다.

    “계획은 잘 되어 가나?”

    “물론이다.”

    계획이란 말을 들은 닉이 더욱 청각에 집중했다.

    저 계획이란 것을 알게 된다면 엘리를 되찾을 수단이 나올지 모른다. 그러나 닉에게는 아쉽게도 계획이란 것의 자세한 설명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가. 잘 됐군.”

    로브를 입은 자의 짤막한 답변이 전부였다.

    ‘그게 전부냐!’

    계획이라는 건 한 단어로 표현되지만 그 안에 여러 요소들이 결합되어 진행되기 마련이다.

    보통 계획을 검토한다면 세세한 것들까지 전부 확인하진 않더라도 적어도 중요한 요소 몇 개는 짚기 마련이다. 하지만 둘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용건도 그게 끝인 것 같았다.

    “계획이 잘 진행된다면 됐다.”

    그리고 로브를 입은 자가 몸을 돌렸다. 그대로 떠날 기세였다.

    ‘어떡하지?’

    이대로 만남이 끝나고 틸이 돌아가 버린다면 그의 손에 남는 건, 고작 틸이 정체불명의 누군가를 만나 어떤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는 정보뿐이다.

    위험부담을 안고 틸을 미행한 것에 비하면 하찮기 짝이 없는 결과였다.

    여기 이대로 남아 틸을 더 감시해야 할까. 아니면 새로운 정체불명의 인물을 따라가야 할까.

    닉이 고민할 때였다.

    “잠깐!”

    틸이 로브를 입은 자의 걸음을 멈췄다.

    닉은 안도했다. 그리고 기대감을 안았다. 그에게 도움이 되는 새로운 정보가 나올 수도 있었다.

    “뭐지?”

    “닉을 알고 있나?”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닉의 안색이 굳었다. 자신과 관련된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알고 있다. 네 동료잖나.”

    “내가 녀석의 딸을 인질로 잡고 있는 것도?”

    로브를 입은 자가 숨죽여 웃었다.

    절로 갈리는 이를 멈추느라 닉은 고생을 해야 했다.

    “물론이지. 네가 인질을 이용해 녀석을 멋대로 휘두르려고 하는 것도 말이야.”

    “알고 있다면 이야기가 빠르지. 저번에 만났을 때 녀석이 조금 이상한 소리를 하더군.”

    “무슨 이야기를 말하는 거지?”

    로브를 입은 자가 몸을 돌려 다시 틸과 정면으로 마주 섰다. 이 이야기에 상당히 흥미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내가 협력자가 아닌가라고 말이야.”

    “당연히 너는 닉의 협력자가 아니던가? 같은 동료잖나. 아, 지금은 인질을 잡은 배신자일 뿐이던가?”

    조롱조의 로브를 입은 자의 말. 하지만 틸은 흔들리지 않았다.

    “말장난할 생각 없다. 너희들이 내게 접근했을 때 본인들을 협력자라고 소개를 했었지. 한데, 그 단어가 닉의 입에서도 나왔다. 물론 녀석이 말한 게 정말로 단순히 어떤 일을 협력하는 사람을 말하는 걸 수도 있긴 하지만 확인은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짚이는 게 없나?”

    로브를 입은 자의 낮은 웃음소리가 다시 한번 퍼졌다.

    그 반응만으로도 충분했다. 로브를 입은 자는 무언가 알고 있다.

    “알지. 알고말고. 그 병신에 대해서 모를 리가.”

    병신. 그 모욕적인 단어에 닉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럼 녀석이 말한 협력자라는 게 너희가 맞는 거냐?”

    “아마도 그럴 거다. 하지만 그 녀석은 정말로 어리석군. 설마 너를 우리라고 착각을 하다니. 아니, 녀석의 상황을 보자면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을 테니 충분히 그런 착각을 할 수 있나.”

    “혼자서 납득하지 말고 설명을 해라.”

    “예전에 말하지 않았나. 우리가 너 전에 포섭하려고 했던 녀석이 있다고.”

    “내게 내 아들을 납치했다는 편지를 보낸 녀석을 말하는 거냐?”

    틸의 목소리에 진한 불쾌감이 서렸다.

    “그 녀석이 맞다.”

    “그리고 그게 닉이고?”

    “그래.”

    로브를 입은 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네가 놈에게 하는 것처럼 놈은 너를 이용하려 했다. 네 아들을 납치하려 했지.”

    “…내 아들은 내가 데리고 있다만?”

    “그러니까 문제인 거야.”

    로브를 입은 자가 혀를 찼다. 그리고 무척이나 경멸하는 어투로 말했다.

    “고작 그런 간단한 임무조차 놈은 실패했다. 그런 놈을 우리가 계속 데리고 갈 필요가 있나?”

    “그래서 버렸나?”

    “놀랄 일도 아니지 않나? 쓰레기는 당연히 버려야지. 그따위 것 안고 있으면 괜히 냄새만 날 뿐이야.”

    “하지만 편지를 보낸 걸 보면 녀석은 내 아들을 인질로 잡는 걸 성공했다고 여기는 것 같던데. 그건 어떻게 된 거지?”

    “내가 거짓된 정보를 흘렸거든.”

    로브를 입은 자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크게 웃었다. 웃음소리가 숲 안에 쩌렁쩌렁 울렸다.

    “이유는?”

    “장난.”

    말처럼 그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가득하다.

    “놀아나는 줄도 모르고 제 놈이 음모의 주체인 양 으스대는 놈을 보고 있는 게 정말로 즐겁거든.”

    닉의 눈가에 벌건 핏줄이 섰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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