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7화
‘그리고 그놈들은 평범한 로브 놈들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
각자 사람들을 타락시키는 임무를 띠고 세계 전역에 흩어져 있을 놈들이다. 한데 그렌이 필요하니까 바로 임무에 투입시킬 놈들이 우연찮게 근처에 있었다?
‘틸이 있으니까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러기엔 늑대의 송곳니가 피알루로 오게 된 사건이 녀석들에겐 너무 갑작스러웠을 거야.’
지크의 생각엔 지금 틸에게 향하는 올가미는 그렌이 부랴부랴 짜낸 것일 확률이 높았다. 그런 갑작스러운 계획에 로브 놈들이 바로 움직일 수 있었다니.
‘평소 그렌 주위에 따라붙는 로브 놈들이 있을 확률이 높다는 거지.’
물론 그의 곁에 찰싹 붙어 움직이는 건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지크가 옛적에 발견했을 것이다.
‘하지만 필요할 때 바로 부를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 대기하고 있었을 확률이 높아.’
정말로 그렇다면 그 놈들은 로브 놈들 중에서도 꽤 정예인 녀석들일 것이다. 그렌이 직접 이끌고 있는 자들이란 이유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렌 제너드가 아니라 흑막이 또 있다고 했지.’
그 빌어먹고 말아 먹고 씹어 먹어도 성이 안 찰 지크 브레이브가 그렇게 말했다.
녀석의 말처럼 흑막이 있고 그렌이 조종당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렌의 옆에 감시를 두고 있을 가능성도 있을 터.
그리고 가장 좋은 감시자는 감시자인 줄 모르고 곁에 둔 자다. 원래 방심하고 있을 때 옆에서 날아오는 칼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
‘내 생각이 맞다면 그렌의 팔도, 흑막의 팔도 동시에 자를 수 있는 거야.’
물론 지크의 주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아니어도 그렌 녀석을 또 한 번 엿 먹일 기회잖아! 그럼 된 거야!’
그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 * *
틸에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협박을 당했을 때부터 닉은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도저히 연결되는 고리가 없었다.
아이들을 납치하려고 했건만, 오히려 다른 이가 납치를 해버렸다. 그리고 그 범인은 자신이 죄를 뒤집어씌우려던 틸.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버린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닉은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보였다.
‘틸이 엘리를 데리고 있다.’
그리고 그건 닉에게는 악몽 같은 상황이기도 했다.
오늘도 자신의 구역에 순찰을 나와 있는 닉. 그러나 여전히 그는 순찰 따위는 아랑곳 않고 있었다.
요새 그가 하는 일이라곤 지금 처한 일에 대한 고민이나 괜한 체력을 낭비하는 화풀이. 그리고 지금 하는 일이었다.
저벅! 저벅!
조금 떨어진 곳에 틸의 모습이 보인다.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는 용의자라곤 볼 수 없는 너무도 여유 있는 걸음걸이로 걷고 있다.
그게 자신의 약점을 잡아 보일 수 있는 여유라고 생각하니 닉은 분통이 터졌다.
당장이라도 틸의 멱살을 잡고 엘리가 어디 있는지 불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럴 실력도 없었고 무엇보다 엘리라는 약점이 너무도 컸다.
결국 지금까지 그랬듯 닉은 틸을 죽일 듯 노려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틸은 닉에게 단 한 번의 시선도 주지 않았다. 닉이 마치 투명 인간이라도 되는 듯한 취급이다.
그게 닉은 더욱 짜증났다.
‘네가 아무리 열불을 낸다고 하더라도 나를 어쩔 수는 없다’라는 표명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계속 이렇게 있을 수는 없어!’
무슨 수를 내야 했다. 하지만 여태껏 생각을 짜냈어도 또렷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적어도 저 녀석이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지만 알아도 뭔가 일이 될 것 같은데….’
틸은 며칠에 한 번씩 데네스트 산맥에 들어가고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걸 알면 어떻게든 돌파구가 생기지 않을까 닉은 생각했다.
‘문제는 내가 저 녀석의 뒤를 밟을 수 없다는 거야.’
틸은 정식으로 마력을 다루는 법을 배운 게 아니다.
압도적인 재능으로 정면 대결만으로는 웬만한 기사들도 무리째 짓이겨버리는 힘을 얻게 됐지만 그 이외에는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다.
따라서 기척을 감지하는 능력도 좋지 않았다.
어느 정도의 잠입 능력만 있다면 쉽게 쫓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정식으로 뭔가를 배운 게 아닌 것은 닉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의 재능은 틸보다 훨씬 떨어졌다.
‘내가 몰래 따라간다면 반드시 걸릴 거야.’
하지만 지금 생각나는 건 틸의 뒤를 밟는 것뿐이다. 틸에게 들키지 않고 그의 뒤를 밟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순찰은 잘 되어갑니까, 닉 씨.”
정기적으로 며칠마다 한 번씩 들르는 피알루에서 닉은 지크를 만났다.
순찰자들은 도시와의 정보 교환을 위해 며칠에 한 번씩 도시에 들른다.
시청에서 한 대략적인 정보 교환은 별 소득 없이 끝났다. 다만 성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저번, 엘리의 납치로 눈이 뒤집혀 순찰 구역을 무단으로 이탈한 전적 때문에 순찰에서 제외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사령관은 닉에게 구역의 순찰을 계속 맡겼다.
닉은 안도했다. 틸의 요구를 맞추려면 계속해서 자신이 그 구역을 담당하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신히 현 상황을 유지할 수 있을 뿐 여전히 앞은 보이지 않는 상황.
지크가 다가온 건 닉이 시청 근처 가게에서 억지로 식사를 하며 타개책을 찾고 있을 때였다.
가뜩이나 심란한 판국에 지크의 접근이 짜증나기 그지없었지만 닉은 어떻게든 대응했다.
“별 소득은 없었습니다.”
“기운이 별로 없으시군요. 하긴, 따님의 행방을 모르니 이해는 갑니다.”
그러며 지크가 닉의 맞은편에 앉는다. 당장 꺼지란 말이 목구멍 바로 밑까지 차올랐다. 한시라도 빨리 이 성가신 사내를 내쫓으려 머리를 굴릴 때였다.
“음, 역시 이건 당신에게 드리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지크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닉의 시선이 그것으로 향했다.
“이건….”
“아티팩트입니다.”
지크가 꺼낸 것은 사각뿔의 원혼, 일각뿔의 한탄을 탐색하는 아티팩트였다.
금속판에 새겨진 복잡한 무늬가 시선을 빼앗는다.
“이걸 왜 주는 겁니까?”
이미 아티팩트는 그에게도 한 개가 있었다. 애초에 틸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아티팩트 하나와 일각뿔의 한탄 하나씩을 갖고 있지 않던가.
“이건 닉 씨가 갖고 있는 것과 다릅니다.”
“…다르다고요?”
“네. 이건 지금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아티팩트의 성능을 한층 더 높인 녀석입니다.”
닉의 눈이 커졌다.
“이 짧은 시간 내에 아티팩트의 성능을 높였단 말입니까?”
“제 동료 마법사가 천재라서 말이죠. 녀석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지크의 목소리에 자랑스러움이 섞였다. 그에 비해 닉은 우려 섞인 눈으로 눈앞에 있는 아티팩트를 봤다.
틸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지만, 피알루 습격을 일으킨 자는 닉이다.
이 예상치 못한 아티팩트가 자신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줄지 당장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대단한 분이군요. 어떤 성능이 향상됐습니까?”
당장은 정보가 필요했다.
“탐색 범위가 압도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얼마나요?”
“적어도 이 도시 보다 두 배는 더 큰 범위를 아우를 겁니다.”
“그건 굉장하군요.”
닉은 진심으로 놀랐다. 성능을 올렸다고 해도 그 정도까지 엄청난 향상이 가능하다니.
“하지만 장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기세등등하던 지크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다.
“아무래도 들어가는 희귀 재료가 더 늘어나 단가가 더욱 높아집니다. 게다가 세공되는 마법진의 수준도 한층 더 올라갔죠. 저번 아티팩트처럼 빠르게 양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군요.”
다행일까, 불행일까. 눈앞의 아티팩트의 효용을 끊임없이 저울질하던 닉에게 지크의 말이 들려왔다.
“그래도 이것만 있으면 사각뿔의 원혼을 갖고 있는 사람을 더 먼 거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몰래 추적한다 해도 들킬 가능성도 더 낮아지겠죠.”
순간 닉의 머릿속에 빛이 번뜩였다.
‘이 녀석이 있다면 틸을 추적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닉의 실력이 달려 틸을 쉽게 추적할 수 없다지만, 이 녀석이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긴 거리를 두고 쫓아간다면 아무리 틸이라도 그를 쉽게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닉은 아티팩트가 무척이나 탐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까 지크가 한 말을 떠올렸다.
“이, 이걸 제게 주시겠다고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지크가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닉에게는 지금의 미소가 마치 신이 신자에게 지어주는 자애로운 미소 같았다.
지크 일행이 알았다면 못 볼 걸 봤다고 눈을 질끈 감을 만한 섬뜩한 생각이었다.
“지금 틸을 가장 간절하게 찾을 사람이 당신이니까요. 이걸 가지고 한시라도 빨리 틸을 찾길 바라겠습니다. 그래야 엘리도 무사히 돌아올 테니까요.”
“저, 정말 감사드립니다!”
닉이 테이블에 이마를 찧듯 고개를 숙였다. 처음 만났을 때 지크와 언짢은 분위기를 만든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지크는 여전히, 닉이 자애롭다고 생각하는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꼭 성과가 있길 바랍니다.”
* * *
몇 번을 더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닉이 저 편으로 사라졌다. 끝까지 닉의 등에서 시선을 떼지 않던 지크는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언뜻 보면 자애롭지 않은 것도 아닌 것 같은 미소를 지우고 등을 등받이에 기댄 채 다리를 꼰다.
그렇게 평소의 껄렁껄렁한 태도로 변한 지크는 다시 한번 닉이 사라진 곳을 쳐다봤다.
‘그래, 꼭 성과가 있기를 바라마.’
그때 지크가 지은 미소는, 닉이 봤다면 그 미소를 자애롭다고 본 눈을 뽑고 느낀 머리를 박살내고 싶지 않을까 생각될 만큼, 비틀리고 비틀려 있었다.
* * *
닉은 자신의 구역으로 돌아간 후에 가장 먼저 아티팩트를 가동시켜봤다.
아티팩트 위에 일각뿔의 한탄을 올리고 사각뿔의 원혼을 떨어진 곳에 묻은 뒤 점점 멀어졌다. 한참을 뒷걸음질 쳤음에도 불구하고 일각뿔의 한탄은 뚜렷하게 사각뿔의 원혼을 가리키고 있었다.
일각뿔의 한탄이 목표를 놓치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 건, 사각뿔의 원혼을 묻은 장소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였다.
“좋았어!”
닉이 크게 소리쳤다. 나이도 잊고 어린 아이처럼 방방 뛰었다. 그만큼 새로운 아티팩트의 성능이 만족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기뻐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얼른 사각뿔의 원혼을 회수해야 했다.
닉은 원래의 장소로 돌아와 사각뿔의 원혼을 회수했다.
‘이것만 있으면 충분히 틸을 미행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곧 어떤 걱정이 들었다.
‘사각뿔의 원혼이 있다면 아티팩트를 제대로 쓰지 못하잖아.’
아티팩트의 범위가 넓어져봤자 가장 가까이 있는 사각뿔의 원혼 혹은 일각뿔의 한탄을 가리키는 아티팩트의 특성상 아티팩트는 항상 그가 갖고 있는 사각뿔의 원혼을 가리킬 것이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사각뿔의 원혼을 찾을 생각이 없던 지금까지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고민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둘 중 하나는 품에서 떨어뜨려 놔야 한다는 건데.’
당연히 버려야 할 것은 일각뿔의 한탄이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역시….’
아티팩트 위에 사각뿔의 원혼을 올려놓고 마력을 주입했지만 아티팩트는 발동하지 않았다.
닉은 입술은 지그시 깨물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