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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414화 (414/628)

제414화

그걸 발견한 건 한창 순찰이라는 이름의 휴가를 즐기고 있을 때였다.

몬스터의 습격을 걱정할 필요도 없이 자기에게 할당된 구역을 어슬렁거리던 와중, 닉에게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뭐야, 저건?’

얼기설기 엮은, 척 봐도 어설퍼 보이는 허수아비. 삐딱하게 세워진 그것은 팔도 심하게 어긋나 있어 마치 아이들이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허수아비를 장난삼아 따라 만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내구성은 상당히 튼튼한지 상당히 거친 바람에도 끄떡없이 서 있었다.

밭도 아닌 곳에 서 있는 허수아비는 당연히 수상쩍기 그지없었다.

이곳이 데네스트 산맥에 가까운, 지금 같은 대규모 몬스터 습격이 있을 때가 아니더라도 다른 곳보다 몬스터가 꽤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라는 것도 그렇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엔 하루 전까지만 하더라도 허수아비 따위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몬스터가 습격할 수 있는 시기에, 그것도 몬스터의 출몰지인 데네스트 산맥 근처에 허수아비를 만든다?

‘수상해. 수상해도 너무 수상해.’

혹시 그의 협력자가 꾸민 일일까. 아니면 뭔가 전혀 다른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닉은 검을 뽑아들고 조심스럽게 허수아비에 접근했다. 다행히 함정 같은 건 없었다.

그는 허수아비를 자세히 살폈다.

나름 사람 형태를 내게 하려고 한 것인지 그것은 옷을 걸치고 있었다.

하지만 옷의 형태에 닉은 눈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허수아비의 옷은 이곳저곳이 찢어져 제멋대로 날리고 있었다.

허수아비의 옷이야 보통 낡고 허름한 옷을 쓰니 놀랄 일은 아니라지만, 그 옷은 분명 새 옷에 가까웠다.

게다가 찢어진 형태가 날카로운 무언가로 일부러 찢은 형태였고 무엇보다 혈흔이 짙게 묻어 있었다.

그 옷의 주인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무사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옷 같…!’

순간 닉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는 지금까지의 경계가 마치 거짓이라도 되는 양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옷을 움켜쥐었다.

‘이건…!’

머리로 어떤 기억이 흘러 간다.

<<아빠!>>

들리는 건 사랑스럽디 사랑스러운 딸의 음성.

<<나 이뻐?>>

<<그럼! 우리 공주님은 세상에서 제일 예쁘지!>>

<<에헤헤!>>

엘리가 닉의 앞에 빙그르 한 바퀴 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에 달린 예쁜 프릴이 팔랑거렸다.

딸의 생일 날 사주었던, 아이가 예전부터 갖고 싶었다는 옷. 그 옷을 받아들고 환하게 웃으며 안겨들던 딸의 모습은 그의 일생의 최고의 추억 중 하나였다.

얼른 옷을 갈아입고 이곳저곳을 쏘다니다가도 아빠의 허벅지에 달라붙어 뺨을 비비던 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때문에 이런 엉망이 된 상태로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옷이 딸에게 준 바로 그 옷이라는 걸.

그리고 그 옷은 엘리가 피알루를 떠날 때 가방에 가장 먼저 넣었다.

한데 그 옷이 왜 여기 있는 걸까. 그것이 이런 처참한 모습으로.

‘아, 아냐! 아직 엘리의 옷이라고 정해지진 않았어!’

그저 비슷한 옷일 수도 있다. 그는 얼른 옷의 밑단을 살폈다. 이 옷을 딸에게 줄 때, 딸의 이름을 거기에 새겨놓았다.

‘제발! 제발 없어야 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밑단을 들어 올려 확인했다.

그리고 닉은 심장이 멎을 듯한 충격을 받았다.

【엘리】

밑단에는 그 두 글자가 또렷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으, 으아아아아!”

닉이 괴성을 터뜨렸다. 마력이 담긴 그의 목소리가 주변을 쩌렁쩌렁 울렸다.

“어떤 새끼가아아아!”

화가 치솟아 검을 들어 눈앞의 허수아비를 베려 했다. 하지만 바람에 힘없이 펄럭이는 옷이 누구의 것인지 생각나 검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 이이이…!”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흥분을 억누르려고 한다.

‘침착해! 흥분하지 마! 이딴 짓을 한 놈의 목적이 있을 거야!’

그의 순찰 구역에 딸의, 피 묻고 찢긴 옷을 입힌 허수아비를 세워뒀다는 게 우연일 리 없다.

그는 일단 검을 수납하고 허수아비 근처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곧 허수아비의 발치에 묵직한 돌에 눌린 종잇조각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돌을 신경질적으로 들쳐내고는 종잇조각을 살폈다.

“이, 이게 뭔…!”

다시 한 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네 딸을 데리고 있다.】

그건 확인사살이었다. 누군가 엘리를 납치하고 그를 협박하고 있었다.

“이런 빌어먹으으을!”

다시 한번 그의 분노가 울려 퍼졌다.

한동안 씩씩 댄 닉은 다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일단 정말 엘리가 납치당한 건지 알아야 해!’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아쉽게도 그럴 확률은 높았다. 엘리의 보물 1호인 옷이 이렇게 엉망인 채로 뒹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설마 그 놈들이 배신을 한 건가?’

생각나는 건 자신이 고용한 부하 놈들이었다. 역시 돈에 움직이는 개자식들을 고용한 게 실패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만 할 수도 없었다.

‘그놈들이라면 당장 돈부터 요구했을 텐데!’

범인은 엘리를 데리고 있다는 정보만 전달했을 뿐, 구체적인 요구는 하지 않았다. 이건 닉을 곧 마음대로 부려먹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일단 그놈들을 먼저 찾아야 해!’

그놈들이 배신을 한 건지, 아니면 제3자에게 납치를 당한 건지 알아야 했다.

* * *

닉은 바로 도시로 귀환했다. 아직 순찰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그딴 걸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먼저 알아볼 것이 있었다.

저번 회의에서 틸과 닉의 자식들이 옆 도시로 향했다는 화제도 나왔었다.

틸이 자식을 데리러 가기 위해 그 도시로 갔을 가능성이 제시돼 사람이 파견됐다.

“아, 닉 씨!”

경비병이 닉을 알아봤다. 다른 때 같으면 인사라도 하련만 지금은 중요한 일이 있었다.

“혹시 지크 씨가 돌아왔습니까?”

“아, 성기사분 말씀입니까. 네, 그 분이라면 조금 전에 귀환을 하셨습니다.”

닉은 급히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옆 도시로 파견된 것은 바로 지크였다.

단신으로 틸과 대적을 할 수 있으면서 아이들과 안면이 있다는 이유였다.

도시 최대 전력이 잠시나마 자리를 비운다는 소식에 사령관이 싫은 표정을 했지만 틸의 수색이 더 급하다는 이유로 허락을 내렸다.

어차피 다음 몬스터 침공에 도시는 괴멸될 것이 확실했으니까.

‘시청에 있겠지?’

바로 사령관에게 보고를 하러 갔을 터.

닉의 발걸음이 더욱 다급해졌다.

시청의 경비병은 닉을 알아보고 바로 들여보내줬다. 지크가 시청 안에 있다는 사실도 알려줬다.

닉은 작전본부로 사용되고 있는 시청 회의실에 앞에서 숨을 한 번 내쉬고 문을 두드렸다.

“누구야!”

“늑대의 송곳니 부단장, 닉입니다!”

“들어오시오.”

닉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거기엔 지크와 사령관이 앉아 있었다.

“어서 오시오, 닉 씨. 한데 어쩐 일이오? 지금 당신은 순찰을 하고 있어야 할 텐데.”

“지크 씨가 도착할 때가 된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리고 닉은 지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이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사령관이 인상을 찌푸렸다. 닉이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임무를 병폐하고 온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닉 부단장! 지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시오!”

안 그래도 틸 때문에 미운털이 박혀 있는 늑대의 송곳니다.

사령관의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올 리 없었다.

닉이 원하지 않는다면 몬스터의 습격 따위는 없다. 하지만 그걸 말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너무나 궁금해서….”

“자자, 진정하세요, 사령관님.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크가 사령관을 말렸다. 사령관이 입을 다물었지만 얼굴에서 못마땅한 기색이 그대로 드러났다.

하지만 닉은 그의 기분을 헤아릴 틈이 없었다.

“그래서 제 딸은….”

“이런 말씀드리기 죄송합니다만, 그곳엔 없었습니다.”

“…없었다고요?”

“네. 아예 그 숙소에 들어가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잠깐 도시에서도 수소문을 해봤지만 목격 정보도 없었습니다. 아마도 도시에도 도착하지 않은 게 아닐까 합니다만.”

“그런….”

닉이 허망하게 주저앉았다.

기대를 그리 크게 한 건 아니다. 애초에 옆 도시로 가기 전에 두 아이를 납치하는 것은 닉의 계획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진짜 딸이 납치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상황에서는 사소한 것에도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이미 찾아본 곳을 또 찾아보는 그런 심리였다.

“혹시 틸 단장이 납치한 게 아닐까 싶소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납치라기보다는 자기 자식을 데려가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거기에 닉 부단장의 딸도 휘말렸다는 거군.”

사령관이 닉을 딱하게 쳐다봤다. 그의 명령불복종은 당장이라도 온갖 욕설을 퍼붓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나는 일이었지만, 자식의 행방을 알지 못하게 됐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정심이 피어오른 것이다. 사령관도 아버지였다.

“혹시 어떤 흔적 같은 건 없었습니까! 사소한 거라도 좋습니다!”

닉이 일어나 다급히 말했다. 그러나 지크는 고개를 저었다.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흔적을 자세히 살펴 볼 시간도 없었고요.”

지크는 닉의 어깨를 두드렸다.

“너무 심하게 걱정하진 마십시오. 아직 그 아이가 납치됐다는 증거가 있은 것도 아닙니다. 혹 어떤 일 때문에 목적지를 다른 곳으로 틀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소.”

사령관이 지크의 의견을 두둔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을 보면 그다지 믿는 표정은 아니었다.

“내 이번 일이 끝나면 그대의 딸을 찾는데 최선을 다해 도움을 주겠소. 하니, 당장 당신의 권역으로 돌아가시오. 그리고 원흉을 찾으시오. 하루라도 빨리 이 사태가 끝나야 딸의 수색도 가능하지 않겠소.”

“…알겠습니다.”

마치 늙은 병자처럼 닉이 회의실을 나갔다.

그가 나간 문을 보고 사령관이 한숨을 쉬었다.

“저번엔 괜찮아 보이더니, 마치 사람이 변한 것 같군.”

틸의 아들인 윌터와 엘리가 같이 있으니, 어쩌면 틸이 윌터를 찾아갈 때 엘리가 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은 이미 나와 있었다.

그때 닉이 상당히 의연하게 행동해 내심 감탄을 했던 사령관은, 닉이 딸의 일에 완전히 얼빠진 것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자 실망을 금치 못 했다.

“자식의 일입니다. 어찌 태연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건 그렇소만.”

사령관은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닉 씨도 웬만하면 전력에서 배제를 해야겠소. 실력이 있다지만 저런 상태로는 제대로 된 실력을 내보이지 못할 테니까 말이오.”

“순찰 구역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시렵니까?”

“그것도 생각을 해봐야지요.”

일각뿔의 한탄의 개수는 정해져 있으니,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의심스러운 자에게 계속 지니게 할 수는 없다.

“겨우 이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고 좋아했는데 그 후로 사건만 계속 터지는 기분이오.”

“고생이 많으십니다.”

“여러분들에 비하면 일도 아니지.”

사령관은 닉이 나간 문을 한 번 더 쳐다보며 말했다.

“닉 부단장의 심정도 모르는 바는 아니오. 그리고 그 딸도 별일 없었으면 싶소. 아이를 납치하는 놈들은 정말 벼락을 맞아 뒤져야 할 놈들이오.”

“저도 사령관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지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놈들은 꼭 자기도 똑같은 고통을 맛봤으면 합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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