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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413화 (413/628)

제413화

본능적으로 ‘싫어!’ 소리를 내뱉을 뻔했다.

옆에 있는 그렌의 목을 향해 돌진하려는 윈두르를 말리느라 애를 먹었다. 실제로는 윈두르가 아니라 지크의 손이 꿈틀대고 있는 것뿐이지만.

그러나 본능이 쓸데없는 반란을 일으키는 와중에도 지크의 사고는 계속해서 돌아갔다.

‘여기서 이 녀석을 도와 틸을 제압해야 할까?’

과연 그게 그렌의 계획일까.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든 방해해야 한다.

‘한데, 녀석이 나랑 공을 나눌 셈일까?’

그럴 리가. 녀석같이 음흉한 녀석이 이런 커다란 명성을 얻을 사건에서 공투 같은, 명성을 나눌 만한 행위를 할 것 같진 않다.

‘그렇다고 내가 틸을 잡게 내버려 둘 것 같진 않고.’

그렇다면 남은 답은 하나다.

‘틸을 잡지 못하도록 뭔가 수작질을 부려 놨겠군.’

지크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감각에 뭔가가 걸렸다.

우어어어어!

이어 거친 몬스터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지크가 소리가 난 곳을 쳐다 보자 한 무리의 몬스터들이 그들 쪽을 향해 달려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제법 강한 몬스터들만 있군.’

코볼트나 고블린 같은 약한 몬스터들은 보이지 않고 오거 같은 대형 몬스터들만 보인다. 거기에 가장 앞서 달려오는 건 고위 몬스터인 베히모스.

지크나 그렌에게 그리 큰 위협은 아니다. 하지만 틸과의 전투에 영향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칫! 하필이면 이런 때!”

그렌이 분통을 터뜨린다. 하지만 이 모든 게 그렌의 짓임을 파악하고 있는 지크에겐 살 떨리는 위선자의 연극일 뿐이었다.

몬스터들의 무리가 위협스럽게 가까워지고 있다지만 아직 거리는 남아 있다. 때문에 지크는 틸에게 접근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틸 씨.”

하지만 틸에게서 대답은 없었다. 무섭도록 굳은 얼굴로 지크를 쳐다볼 뿐.

지크가 윈두르를 들어 올렸다.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이 일의 원흉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럼에도 대답이 없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쓰러뜨리고 말하죠.”

지크가 틸에게 덤벼들었다. 틸도 묵묵히 검을 휘둘렀다.

콰앙!

‘역시 강해!’

단 한 번의 충돌에도 손아귀가 찢어질 것처럼 아파왔다.

지크의 눈에 틸의 빈틈이 여럿 보였다.

하지만 쉽게 그 빈틈을 노릴 수가 없었다. 빈틈을 노리는 순간 거력의 검이 공격 자체를 짓이기며 죽음을 몰고 올 것 같다.

지크와 틸의 공방이 몇 번 더 오갔다. 그때 몬스터 무리가 지크 일행을 덮쳤다.

“쯧!”

지크가 혀를 차고 틸에게서 물러났다. 그가 있던 자리에 오거의 두툼한 근육질 팔뚝이 스쳐지나갔다.

지크는 윈두르를 휘둘렀다.

카아아악!

몸에 긴 자상을 입은 오거가 고통에 비명을 지른다.

지크는 소음에 인상을 찌푸리며 오거의 목을 잘라냈다. 더러운 오거의 비명이 끊겼다. 지크는 틸의 모습을 찾았다.

그는 전투 현장에서 멀찌감치 벗어나 있었다. 몬스터는 그를 노리지 않고 오로지 지크와 그렌만을 공격했다.

지크와 그렌은 닥치는 대로 주변 몬스터들을 학살했다.

베히모스가 괴성을 지르며 날뛰었지만, 아무리 녀석이 고위 몬스터라도 지크와 그렌의 협격에 오래 버티지는 못했다.

베히모스는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비명을 내지르며 숨이 끊겼다.

모든 몬스터가 쓰러졌을 때, 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젠장! 놓쳤어!”

그렌이 지면을 걷어차며 성질을 냈다. 그 모습에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지크는 윈두르를 등에 멨다.

* * *

늑대의 송곳니 단장 틸의 도주. 그 사건은 굉장히 큰 파문을 일으켰다.

현 전력에서 늑대의 송곳니의 전력은 결코 작지 않다. 거기에 틸은 도시 내에서도 손꼽히는 강자다.

아무리 도중에 몬스터의 방해가 있었다지만 지크, 그렌의 추적을 피하고 몸을 숨기지 않았는가. 진실이 어떻든간에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틸의 탈주 다음날, 사람들은 다시 시청의 회의실로 모였다.

그래도 해결의 실마리가 잡혀 나쁘지 않은 분위기였던 어제와는 달리 오늘의 회의실 분위기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특히 틸을 대신해 늑대의 송곳니 대표로서 참석한 닉의 분위기는 마치 친한 누군가의 장례식이 온 것 같았다.

사령관이 입을 열었다.

“제너드 씨.”

“네.”

“정확히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을 해주시오.”

“알겠습니다.”

그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의 눈이 그에게 쏠렸다.

“어제 회의가 끝나고 저는 도시를 순찰했습니다. 혹시 도시 안에 흑막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성문 근처에 갔을 때 틸 단장이 보이더군요. 바깥으로 나가려는 모습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틸 단장이 순찰이라도 나가는 줄 알았습니다.”

늑대의 송곳니는 단장과 부단장도 종종 순찰에 동원되곤 했다.

물론 최소한의 지휘체계는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단장과 부단장들 중 무조건 한 명은 캠프에 남는 게 원칙이었다.

“한데 좀 이상하더군요. 아무리 단장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보통 늑대의 송곳니는 무리를 지어 순찰을 다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때 단장은 혼자였습니다. 그래서 이상하게 여겼죠. 혹시 뭔가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전 틸 단장에게 다가갔습니다. 물론 아티팩트는 작동 중이었습니다.”

“…그때 반응한 겁니까?”

닉의 침중한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렸다.

“그렇습니다.”

“혹시 일각뿔의 한탄은 아닙니까? 아티팩트는 그 물건에도 반응하지 않습니까.”

한 사람이 의문을 표했다. 그러나 그렌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얻은 일각뿔의 한탄은 전부 마법사분들께 제공했습니다. 마법사 분들은 일각뿔의 한탄이 반출된 적이 없다고 하셨으며, 제가 수량도 확인했습니다.”

“그럼 정말 사각뿔의 원혼을 틸 단장이 갖고 있는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얘기를 계속하시오.”

사령관이 그렌에게 말했다.

“그로부터는 얘기랄 것도 없습니다. 제가 틸 단장에게 설명을 요구했고 틸 단장은 갑작스럽게 도주를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틸 단장을 추격하다가 놓쳤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몬스터가 틸 단장을 보호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지요?”

“정확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몬스터의 공격 때문에 단장을 놓친 건 사실이고, 몬스터들이 틸 단장을 공격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건 지크 씨도 목격했을 겁니다.”

“사실입니다.”

자신에게 쏠린 시선에 지크는 가볍게 긍정했다.

“그럼 정말로….”

“으음.”

모든 정황이 틸이 도시를 습격한 원흉인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사각뿔의 원혼이란 걸 단장이 가지고 있었다면 어째서 저번 회의에서 알아내지 못한 겁니까?”

닉이 물었다. 그들의 단장의 혐의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의 얼굴엔 절박함이 내보였다.

“설마 그 중요한 걸 다른 곳에 두진 않았을 것 아닙니까. 저번에 아티팩트의 시연도 했다니, 정말로 단장이 사각뿔의 원혼을 갖고 있었다면 그 때 알아챘어야지요.”

나름 근거 있는 말이라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그렌은 차분하게 설명했다.

“아티팩트는 가장 가까이 있는 일각뿔의 한탄이나 사각뿔의 원혼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때, 전 아티팩트의 용도를 확인시켜 드리기 위해 일각뿔의 한탄을 아티팩트 바로 근처에 뒀죠. 즉, 틸 단장이 사각뿔의 원혼을 가지고 있었어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아티팩트의 특성상, 들킬 일이 없었던 겁니다.

“…젠장.”

닉이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단장이 도시의 원흉으로 의심받고 있는 지금, 아무래도 늑대의 송곳니의 용병들은 여러모로 심란할 수밖에 없었다.

배신감도 배신감이고 용병단의 미래도 흐려진 데다가 그들도 배신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닉의 욕설은 그 모든 것에 대한 한탄으로 들렸다.

‘같잖은 새끼.’

물론 진상을 아는 지크에게는 위선자의 꼴불견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혹시 틸 단장이 사람들은 배신할 이유 같은 게 있습니까?”

“있을 리가요! 그 녀석은 한숨이 나올 정도로 착한 녀석입니다! 그런 녀석이 갑자기 흑막이라니….”

회의실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사령관이 입을 열었다.

“어쨌든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해야죠. 제너드 씨. 아티팩트는 전부 준비가 됐습니까?”

“네. 마법사분들이 고생해주셨습니다.”

그렌은 아티팩트들을 꺼냈다.

“여기 계신 분들을 포함해 실력 있는 분들께 아티팩트를 드릴 겁니다. 여러분은 아티팩트들을 이용해 도시 주변부터 산맥까지 수색해 도시를 침략한 원흉을 찾아주십시오.”

“늑대의 송곳니 단장이 원흉 아니오?”

한 용병이 비아냥거렸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 않소. 정확한 건 원흉을 찾으면 모두 해결될 터. 아티팩트는 틸 단장이 가지고 있는 물건에도 반응한다고 하니, 그를 찾을 수도 있겠지.”

“설마 늑대의 송곳니에게도 수색을 맡길 겁니까?”

다른 용병이 말했다. 아무래도 단장이 배신했다는 의심이 강하게 걸린 상황에서 그 용병단까지 수색에 포함시킨다는 것이 꺼려지는 모양이었다.

사령관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도 조금 의심스러운 눈길로 닉을 쳐다봤다.

그러나 곧 결정을 내렸는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용병단을 믿겠소.”

한 쪽에서 잠깐 소란이 일었지만 곧 가라앉았다.

“믿음에 보답하겠습니다.”

닉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사령관은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언제 몬스터의 침략이 시작될지 모르니, 여러분들은 오늘부터 구역을 정해 몬스터를 부리는 자를 찾아주시오. 대가는 섭섭지 않게 드릴 것이고, 원흉을 찾은 자와 처리한 자에게는 따로 보상을 주도록 하겠소.”

* * *

“어떻게 됐습니까, 부단장!”

“계약은 계속 유지되는 겁니까?”

“돈은 제대로 나오는 게 맞수?”

“단장의 행방은 여전히 모릅니까?”

캠프로 돌아오자 용병들이 모여든다. 그들의 얼굴엔 하나같이 걱정이 배어들어 있었다. 단장이 엄청난 뒤통수를 쳤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닉은 회의실에서 있던 일에 대해 말한 후, 능력 있는 자들에게 배정받은 아티팩트를 나눠주고는 순찰을 명령했다.

닉의 명령에 불만을 표하는 자는 없었다. 단장인 틸이 없는 지금 닉이 용병대를 통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단장이라면 맥스도 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틸과 함께 용병대를 창설한 닉에게 지휘 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늑대의 송곳니 용병단은 도시 밖으로 원흉을 찾기 위해 흩어졌다.

대부분은 신뢰를 되찾기 위해 정말로 최선을 다해 움직였다. 지금 그들에게 향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원흉을 찾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닉은 다른 용병들과 전혀 달랐다. 그는 꽤나 설렁설렁하게 움직였다.

애초에 이 일을 꾸민 그가 원흉을 최선을 다해 찾을 리 없었다.

‘일이 꽤 잘 돌아가고 있어.’

불안감을 안은 다른 용병들에 비해 그가 안은 건 깊은 만족감이었다.

‘이 상태로 한동안 돌아다니자고.’

너무도 쉬운 일이다. 그는 자신이 맡은 구역에서 마치 바캉스를 보내듯 여유롭게 움직였다.

그러나 그의 여유로움도 오래가지 못했다.

“이, 이게 뭔…!”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편지를 보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네 딸을 데리고 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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