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1화
그렌이 내민 일각뿔의 한탄이라는 것을 보고 처음 든 지크의 생각은 이것이었다.
‘뭐야, 저 사각뿔의 원혼 짝퉁 같은 녀석은.’
지크도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그 형태나 이름만으로도 사각뿔의 원혼과 관련이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일각뿔이라니. 무슨 이름이 그 따위야.’
보통 각뿔이라는 이름은 다각형인 밑면을 갖고 있는 뿔에게 붙는 명칭이다. 당연히 일각형이란 건 있지도 않다.
‘대충 붙인 이름이거나 아니면 성능이 비슷한 물건에 연관성을 보이려고 붙인 이름이거나.’
지크는 후자의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아무리 봐도 사각뿔의 원혼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해. 일각뿔이란 이름도 그렇고, 열화판인가?’
느껴지는 더러운 기분은 확실히 밸르 그 물고기 대가리 신의 느낌과 비슷했다.
“이게 뭡니까?”
형태로만은 뭣 하는 물건인지 알 수가 없으니 당연히 질문이 나왔다.
“밸리드란 종교는 아실 겁니다.”
모를 리가 있는가. 공포스러운 사교로서 그 존재감을 떨치고 있는 집단인 그 작자들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었다.
몇몇은 그 더러운 사교도들과 맞부딪친 적도 있었다. 당연히 좋은 감정을 갖고 있을 리 만무한 노릇.
대부분이 인상을 찌푸려댔다.
“그 단체에서 만든 물건입니다.”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일각뿔의 한탄에 손을 가까이 가져가던 사람들이 황급히 손을 뺐다.
“그 말아먹을 잡놈들의 물건이 여긴 왜 튀어나온 거요?”
“이게 몬스터들을 불러들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일각뿔의 한탄을 보던 혐오의 눈길에 충격과 공포가 섞였다.
“몬스터를 불러들여? 그렇다면 지금 피알루에 일어난 사건들이 이 녀석 때문이란 거요?”
“그렇습니다.”
“그럼 뭐 하고 있습니까! 당장 부숴버리지 않고!”
한 용병이 씨근덕거리며 말했다. 부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지는 순간 그 크고 거친 주먹으로 당장 박살을 낼 기세였다.
“괜찮습니다. 이 녀석의 범위는 이 도시를 뒤덮을 정도에 불과합니다. 범위 안에 몬스터가 없다면 이건 그저 괴상하게 생긴 장식품일 뿐이죠. 게다가 이건 발동을 멈춘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인 일이다.
그러나 그렌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또 하나의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 녀석이 데네스트 산맥의 몬스터를 끌어들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범위가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되는데 그만한 수의 몬스터를 끌어들였다고요?”
“당연히 이 녀석만으로는 불가능하죠.”
그러며 그렌은 상자에서 일각뿔의 한탄을 하나 더 꺼냈다.
사람들이 조금 더 놀랐지만, 그래도 그렇게 놀라는 반응은 아니었다. 그저 저 위험한 물건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에 조금 더 위기감을 느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렌의 손이 계속해서 마법 상자를 왕복했고 테이블 위에 쌓이는 일각뿔의 한탄의 양은 계속 늘었다.
잠시 후, 산더미처럼 쌓인 일각뿔의 한탄의 양에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이렇게 많은 수가 한 지역에 뿌려져 동조하기 시작한다면 그 강함과 영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제가 찾은 건 이 정도가 다입니다만, 아직 산맥 안에 상당한 양의 일각뿔의 한탄이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겁니까?”
“아무리 저라도 단신으로 찾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전부 찾기는 무리였습니다.”
“아니, 그걸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그럼 데네스트 산맥엔 지금도 몬스터가 모이고 있단 뜻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끔찍한 대답에 사람들의 표정이 굳었다.
“물론 제가 상당한 양을 가져온 만큼 몬스터가 모이는 속도는 늦춰졌을 겁니다. 실제로 효과도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겠죠.”
“그럼 당장 그것들을 찾으러 갑시다!”
“아뇨,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렌이 말했다. 마치 일각뿔의 한탄을 찾으러 가자는 말을 기다렸다는 듯한 그의 반응에 지크는 집중했다.
아마도 지금부터 하는 말이 그렌이 원하는 것일 것이다.
“보통 밸리드는 이 일각뿔의 한탄을 사각뿔의 원혼과 같이 사용합니다.”
“사각뿔의 원혼은 또 뭡니까?”
“일각뿔의 한탄과 같이 밸리드의 물건인데, 몬스터를 조종하는 물건입니다.”
“그것 참 골 때리게 단순한 능력이네.”
“그리고 무서운 능력이죠. 일각뿔의 한탄으로 많은 몬스터를 모은 후에 그걸 사각뿔의 원혼으로 조종을 한다. 이 두 개의 물건은 그렇게 맞물려 있습니다.”
“그럼 지금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 양반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 보면, 어떤 새끼가 이 두 개의 물건으로 몬스터를 조종해 피알루를 침략하고 있다고 말하는 거요?”
“그렇습니다.”
“으음.”
“어떤 새끼가!”
“잡으면 모가지를 비틀어 버리겠어!”
그렌의 말에 각자의 성향대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었지만 느끼는 감정은 공통됐다. 분노였다.
“밸리드 놈이겠죠? 그 물건이 밸리드의 것이라면서요?”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밸리드의 성물로까지 추앙받는 물건이니까요.”
“하여간 그 새끼들은 세상에 도움이 안 된다니까! 바퀴벌레처럼 보이는 족족 잡아서 으깨버려야 할 놈들!”
어느새 회의실이 밸리드의 성토장이 됐다.
자신이 아는 모든 욕을 동원하여 밸리드의 욕을 내뱉는 사람들. 만약 여기에 밸리드의 신도가 있었다면 아무리 밸리드가 아닌 척 잘 연기를 하고 있었더라도 겁을 먹거나 분노하거나 둘 중 하나의 반응을 보여줬을 것 같았다.
“자자, 얘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소! 모두 정숙해주시오!”
사령관이 크게 외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입을 닫았다. 회의실이 다시 조용해질 때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계속해 주시오.”
사령관이 그렌에게 말했다. 좌중을 진정시켜준 것에 대해 살짝 고개를 끄덕여 감사를 표하고 그렌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예상대로 밸리드의 주구일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지금 사각뿔의 원혼으로 피알루를 침략하고 있는 자가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작자를 토벌하기만 하면 이번 사태는 일단락될 겁니다.”
“그 무슨 당연한 소…!”
한 사람이 항의성 발언을 하려 할 때, 낮은 목소리가 그의 말을 잘랐다.
“찾아낼 방법이 있군요.”
지크였다. 그는 잔잔한 눈으로 그렌을 쳐다봤다.
“네, 있습니다.”
그렌도 그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
원흉을 찾아낼 방법이 있다.
회의실이 달아올랐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그 자를 목매달고 싶어 했다.
용병들도 마찬가지. 자신들의 무력을 팔아 돈을 버는 그들이지만, 그것도 살아 있어야 의미가 있는 법이다.
지크가 테이블 위에 있는 일각뿔의 한탄을 하나 쥐었다.
“제 생각으로는 이 녀석과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과연 지크 씨. 눈치가 빠르시군요.”
“눈치 없으면 시체라는 말까지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지크의 농담에 그렌이 피식 웃었다.
“지크 씨의 말처럼 이 일각뿔의 한탄이 있다면 사각뿔의 원혼이 있는 곳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렌이 마법 상자에서 또 하나의 물건을 꺼내 들었다.
그건 얇은 금속판이었다. 하지만 은은하게 뿜어지는 마력과 반짝이는 광택이 일반적인 철판 같은 건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아티팩트군요.”
“그렇습니다, 지크 씨.”
그렌은 일각뿔의 한탄 하나를 집어 금속판 위에 올렸다. 금속판 위에는 이미 복잡한 도안이 새겨져 있었다. 그렌이 금속판에 마력을 집어넣었다.
우웅!
금속판이 약간 진동했다. 마법진에 마력이 흘러 들어가며 새겨진 효과가 발동했다.
스윽!
일각뿔의 한탄이 조금 떠올랐다. 사람들이 ‘오오!’ 감탄사를 내뱉었다.
일각뿔의 한탄은 공중에 뜬 상태로 천천히 회전하다가 테이블에 무더기로 쌓인 일각뿔의 한탄들을 가리켰다.
“나침반이 떠오르는 형태군요.”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지크 씨.”
“아마도 능력은 일각뿔의 한탄을 가리키는 것. 산맥에서 다른 일각뿔의 한탄도 이걸로 찾으신 것 같고. 이게 사각뿔의 원혼도 가리킵니까?”
“지크 씨의 통찰력이 정말 대단하군요. 전부 맞습니다. 이걸로 사각뿔의 원혼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감탄성이 더 커진다. 하지만 지크는 오히려 눈을 가늘게 떴다.
“조건 혹은 한계가 있겠군요. 그러지 않다면 바로 원흉을 붙잡으셨을 테니까요.”
“범위가 문제입니다.”
그렌은 아티팩트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티팩트가 작동을 멈췄다.
“그게 일각뿔의 한탄이든 사각뿔의 원혼이든 일정 거리 안으로 들어와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저도 그래서 데네스트 산맥을 미친 듯이 뛰어다녀야 했죠.”
고생을 했다는 듯 그렌이 조금 피로감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걸 양산해서 여러분들에게 나눠드리겠습니다. 저는 사각뿔의 원혼을 지닌 자가 이 근처에 있을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도시 안에 숨어 있을 수도 있겠죠. 그럴 때 이 아티팩트를 사용한다면 능히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범위 안에 목적 물체가 여러 개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가장 가까운 걸 가리킵니다.”
그렌은 다시 아티팩트를 발동시킨 후에 일각뿔의 한탄을 여기저기 흩어놨다.
그리고 하나를 아티팩트 바로 옆에다가 두었다. 아티팩트는 가장 가까운 곳에 고정됐다.
원흉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방법이 제시됐다. 사람들이 고무됐다. 하지만 다른 의견을 내는 자도 있었다.
“만약 찾아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차라리 그냥 이 인원수로 데네스트 산맥을 뒤지는 건 어떻습니까? 일각뿔의 한탄을 모조리 찾아내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그렌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표정이 여느 때보다 무거워 보였다.
“지금 데네스트 산맥에 진입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제가 어째서 산맥에서 내려왔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혼자서 일각뿔의 한탄을 찾는 게 힘드니까 그런 거 아닙니까?”
“정확히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어서입니다.”
그렌의 어조는 심각했다.
“여러 일각뿔의 한탄을 회수하여 몬스터가 모이는 속도는 늦어졌지만, 그래도 모이는 게 끝난 건 아닙니다.”
“일각뿔의 한탄을 회수하러 다니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몬스터가 모인 모양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피해가 좀 있을지 몰라도 한 번 더 몬스터의 침공을 막아낸 후 움직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몬스터를 좀 솎아낸 후에 일각뿔의 한탄을 찾아다니면….”
“죄송하지만, 아마 다음은 없을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일까. 사람들은 그렌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기분 탓일까. 그다지 좋은 말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제가 데네스트 산맥을 내려올 당시 확인한 몬스터 중에 우리가 싸웠던 바실리스크, 베히모스는 물론 타이탄이나 히드라 같은 새로운 고위 몬스터도 있었습니다. 숫자는 대략 40체가 넘는 것 같더군요.”
회의실이 딱딱하게 굳었다.
고위 몬스터 40체. 이번에 바실리스크나 베히모스 같은 몬스터들과 싸우며 그것들이 얼마나 무지막지한 존재들인지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한데, 그것들과 비슷한 몬스터들이 더, 게다가 40체나 존재하다니.
“그, 그게 정말이오?”
사령관이 놀라 물었다. 그도 이런 말은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렌의 말은 끝이 아니었다.
“그것도 제가 산맥을 떠나기 전에 확인한 개체수입니다. 지금은 몇 마리가 더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입이 벌어졌다. 누구 할 것 없이 충격에 빠졌다.
“다다음은 없습니다. 다음 몬스터의 공격 때, 피알루는 확실히 괴멸할 테니까요.”
심각하게 말하는 그렌. 지크는 그런 그렌을 조용히 응시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