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8화
상황은 수습됐다. 기습을 했던 네드빌과 셰드는 부상을 입고 간단한 치료만 받은 채 포박되어 야영지 한쪽에 던져졌다.
그 후, 용병 무리의 대장인 듯한 자가 급히 마차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힉!”
“우으으….”
마차 안으로 울상을 지은 채 서로를 껴안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겁을 먹은 티가 역력하다.
“이제 괜찮다! 괜찮아!”
대장이 아이들을 보듬으며 말했다. 아이들이 그의 품속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마차 안에서 받은 공포를 모두 쏟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아이들은 한참을 펑펑 울었다.
그는 품속의 아이들을 찬찬히 살폈다.
마차에 직접적인 공격은 이뤄지지 않아 부상을 당하진 않았을 것 같지만 혹시 또 모르는 일이다.
다행히 눈에 띄는 외상은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사그라지더니 고른 숨소리로 바뀌었다.
잠이 든 모양이다.
안 그래도 아이들은 푹 잠들어 있을 야심한 시간인 데다가 바짝 조여졌던 긴장감이 일거에 풀리고 안도감이 찾아왔으니 수마를 버티기 힘들었던 것이다.
아이들을 마차 안에 깔린 모포에 조용히 눕힌 대장이 살며시 마차의 문을 닫고 나왔다.
“잠들었어?”
“그래.”
동료의 질문에 대답해준 그가 모닥불 옆에 앉아 있는 지크에게로 다가왔다.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인 지크 씨시죠?”
“그렇습니다.”
“전 지금 이 무리를 책임지고 있는 달튼입니다.”
자기소개를 한 달튼이 지크를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우선 윌튼과 엘리를 도와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용병답지 않은 너무도 정중한 인사에 지크도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혹 저 녀석들의 습격을 막아주신 것도 지크 씨가 아닙니까?”
야습, 그것도 같은 편인 줄 알았던 자가 본인이 불침번을 맡은 시간에 일으킨 사건이다.
죽기는커녕 다친 이도 없는 지금의 상황은 기적에 가깝다. 그리고 달튼은 기적이란 단어를 그리 신뢰하지 않는 이였다. 무언가 이유가 있다.
달튼이 그 이유로 지크를 떠올린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네. 아예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 처음부터 개입을 할까 생각도 했습니다만, 여러분도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에 처음 습격만 막고 개입은 뒤로 미뤘습니다. 처음부터 개입을 했다가는 습격자들이 오히려 제게 누명을 씌울 수도 있었으니까요.”
“역시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구해준 것이다.
달튼은 다시 한번 깊이 고개를 숙였다.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저도 목적이 있어서 한 일이니 개의치 않으셔도 됩니다.”
“목적이요?”
그러고 보니 지크가 왜 피알루가 아닌 이곳에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는 피알루 방위의 핵심 전력이 아닌가.
늑대의 송곳니에서 용병들 몇을 뽑아 아이들의 호위로 붙이려 할 때 도시에서 전력의 유출이라며 무척이나 탐탁지 않아 했다는 것을 달튼은 알고 있었다.
그걸 생각하면 피알루 상층부는 지크를 절대로 놓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도시에서부터 여러분을 미행하고 있었습니다.”
달튼이 살짝 얼굴을 굳혔다. 아무리 생명의 은인이라도 미행을 당했다는 사실이 기분 좋을 리 없다.
하지만 동시에 지크가 미행을 한 이유가 궁금했다.
“어째서입니까?”
“지금 같은 습격을 정확히 예측한 것은 아니지만, 당신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리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게 무슨…!”
“알려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지크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달튼은 섣불리 되물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저도 정확히 어떤 일이 꾸며지고 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이제 알아봐야죠.”
지크가 네드빌과 셰드를 쳐다봤다.
“뭘 하시려는….”
“정보를 뽑아내야죠. 과정이 무척이나 험악할 테니 조금 거리를 벌리겠습니다.”
험악한 과정. 달튼은 그게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고문.
그는 쓰러져 있는 배신자들을 바라봤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울고 웃으며 지내던 동료다. 녀석들과 쌓은 추억이라면 얼마든 말할 수 있다.
자신들을 습격한 건 생각만 해도 머리가 거꾸로 솟을 만큼 열 받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끔찍한 고문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니 안쓰러운 감정이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달튼은 그 상념을 쫓아냈다.
‘배신자들이다!’
그리고 윌터와 엘리를 노린 파렴치한 놈들이기도 했다.
“저도 같이 가죠. 이딴 짓을 시킨 놈이 누군지 알아야겠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그 놈에게 칼자국 하나라도 내주고 싶었다.
하지만 달튼은 뜻밖의 반대에 부딪쳤다.
“아뇨. 여러분은 여기서 아이들을 지켜 주세요.”
말은 아이들을 지키라는 것이지만 그 뜻은 완곡한 거절이다.
“네? 아니, 이건 우리가 당사자인 일입니다! 우리도 원흉을 알아야…!”
“아까도 말씀드렸죠? 알려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라고요.”
지크의 단호한 발언에 달튼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납득한 표정은 아니다. 지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이건 현재 피알루의 위기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어떤 음모에 관련된 일입니다. 아무리 당사자라도 알게 할 수 없어요. 제가 알려드릴 수 있는 건 이게 정말 한계입니다.”
그리고 입을 닫는 게, 정말로 더 이상 알려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풍겼다.
다른 때 그리고 다른 이라면 그게 뭔 헛소리냐며 닦달했을 달튼이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달튼은 그렇게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죠. 금방 끝날 겁니다. 비명 소리도 들리지 않게 할 거고요. 잠든 아이들이 깨게 둘 순 없죠.”
그리고 지크는 두 사람을 집어 든 채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게 달튼과 용병들이 본, 네드빌과 셰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시간이 흘러 지크가 다시 야영지로 돌아왔을 때, 네드빌과 셰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크의 외견은 고문을 하러 간다고 한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깨끗했다. 고문이 아니라 마치 밤 산책을 다녀온 사람 같다.
그러나 달튼은 지크의 몸에서 진한 피 냄새가 감도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 *
지크는 용병 무리와 목적지까지 동행했다.
가는 동안 별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도착한 도시. 피알루만큼은 아니지만 이 도시도 분위기가 그리 좋아보이진 않았다.
성문으로 드나드는 사람도 적고 경비병의 얼굴엔 긴장감이 흘렀다.
아무래도 옆 도시가 계속해서 몬스터의 습격을 받고 있는 만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피알루보다는 나았다. 몬스터의 직접적인 위협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도시는 안전하다고 할 만했다.
그러나 일행은 목적한 도시를 앞두고도 멀리서 성문을 바라보고 있을 뿐, 움직이지 않았다. 무리의 맨 앞에서 복잡한 눈으로 도시를 보던 달튼이 옆에 있던 지크를 쳐다봤다.
“정말 다른 곳으로 가야 합니까?”
네드빌과 셰드를 심문하고 돌아온 지크는 달튼에게 목적지를 변경하는 게 어떠냐고 조언했다. 아니, 그건 요구에 가까웠다.
“도시를 지나쳐 가까운 곳에 마을이 있습니다. 도시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규모가 있는 곳이죠. 지내기 나쁜 곳은 아닙니다.”
지크가 말했다.
하지만 마을이 아무리 크다 해도 도시보다 수준이 나을 순 없다. 무엇보다 지금 달튼이 걱정하는 것은 아이들의 안전이었다.
내부에서 배신자가 나온 이후로 그는 안전에 더더욱 신경을 쓰고 있었다.
달튼이 여전히 고민을 하고 있자 지크가 말을 이었다.
“저는 도시로 돌아가 납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고 공작을 할 겁니다. 적을 속이기 위해서죠. 한데, 여러분이 저 도시에 떡 하니 머물고 있다면 소용없는 일이 됩니다.”
“음….”
달튼은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결국 지크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적이 여러분들이 저 도시에 있는 걸 발견했을 때, 다시 수작을 부리지 않는다고 할 순 없습니다.”
지크의 그 말이 결정타였다.
“알겠습니다. 마을로 가도록 하죠.”
“정말로 나쁘지 않을 겁니다. 치안도 괜찮은 곳이니, 오래간만에 휴가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푹 쉬시죠.”
“그러겠습니다.”
달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말씀드렸다시피 절대로 용병단에 연락을 하면 안 됩니다.”
지크가 신신당부를 했다.
납치를 당한 상황을 연출해야 하는데 용병단에 연락을 넣어버린다면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이번에도 달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달튼 일행은 도시를 지나쳐 지크가 말한 마을로 향했다.
* * *
지크가 피알루에 귀환했을 때, 피알루는 여전히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나 그뿐, 지크가 떠났을 때와 비교해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지크의 예상대로 몬스터의 습격이 없었던 게 분명했다.
지크는 먼저 경비병에게 귀환 보고를 했다.
얼마 전 달튼이 생각했던 대로, 지크 같은 강대한 전력을 도시가 쉽게 보내줄 리 없었다.
지크는 몬스터가 오는 낌새를 살피러 데네스트 산맥 어귀를 순찰하겠다는 명분으로 도시를 떠나 있었다.
그 사이 몬스터가 습격을 했었다면 지크의 거짓말이 들켰겠지만, 몬스터의 습격은 없었다. 때문에 지크는 아무 문제 없이 도시로 들어올 수 있었다.
숙소로 들어가니 이제는 아예 일과가 되어버린 듯 정원에서 차를 마치고 있는 라일라가 보였다.
“지크!”
지크를 발견한 그녀가 해맑은 표정으로 그를 반겼다. 지크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별일 없었지?”
“응. 네 예상대로 몬스터의 습격조차 없었어.”
“그거 다행이군.”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몬스터의 공격이 끝난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슬슬 나돌고 있어.”
“뭐, 그렇게 희망적으로 생각을 하고 싶겠지.”
하지만 보통 현실이란 건 잔혹한 법이다.
“그렌 제너드는?”
“아무 소식도 없어. 아직 도시에 돌아오지 않은 거겠지.”
“그렇군.”
윌터, 엘리의 납치가 녀석의 계획의 일부가 맞다면, 납치의 성공을 알게 된 후 움직이지 않을까 지크는 짐작했다.
지크의 질문에 열심히 대답을 해주던 라일라가 이번엔 질문했다.
“갔던 일은 잘 됐어?”
“그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봐도 될까?”
“호위로 뽑힌 용병들 중 두 놈이 배신을 때리고 윌터와 엘리를 납치하려고 했다.”
라일라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두 아이와 상당한 친분을 쌓은 라일라가 기분이 나빠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믿을 만한 녀석들 아니었어? 용병단 초기부터 함께 했던 자들이라며.”
“세월이 흐르며 쌓인 신뢰는 분명 믿을 만한 것이지만 그게 절대는 아니지.”
“왜 배신했대?”
혹시 뭔가 사정이 있던 걸까.
“돈.”
“…겨우 돈 때문에?”
“겨우는 아니지. 그 돈이란 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데.”
“그래도 오랜 세월 봐 왔던 아이들을 납치할 정도의 일이야, 그게?”
“약속받은 액수가 상당했어. 선수금도 두둑이 받은 상태였고. 무엇보다 뭐가 가치 있을지는 본인이 정하는 거야. 타인이 아니라.”
라일라는 입술을 삐죽였지만 반박하지는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