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7화
‘오늘도 별문제 없었군.’
지크는 커다란 나무의 가지 위에 반쯤 드러누운 채 육포를 질겅질겅 씹었다.
하늘엔 이미 해가 떨어져 어둠의 세력이 점령한 상태.
당장이라도 쏟아질 듯 반짝이는 별들과 그 사이에서 한층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달, 그리고 지크가 있는 나무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보이는 모닥불의 붉은 불빛만이 어둠이라는 점령군에 대항하는 세력이었다.
지크는 육포 하나를 더 꺼내 입에 던져 넣으며 모닥불이 있는 곳을 주시했다.
그곳은 윌터, 엘리와 둘을 호위하는 용병 무리가 야영을 하는 곳이었다.
아이들이 탄 마차가 가장 안쪽에 배치되어 있었고 용병들은 마차를 둥그렇게 에워싼 채 잠들어 있었다. 모닥불 옆에는 불침번 한 명이 주변을 경계했다.
미행하는 지크의 김이 빠질 정도로 용병 무리의 이동은 무척이나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몬스터 한 무리와 마주치긴 했지만 용병들의 잘 훈련된 움직임 앞에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 하고 순식간에 몰살당했다.
그러나 지크는 마음을 놓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긴장을 바짝 끌어 올렸다.
‘슬슬 시작할 때야.’
이곳은 피알루와 목적 도시 사이의 중앙 지점. 즉, 도시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다.
피알루의 몬스터 습격 때문에 가도 자체에 인적도 드물어진 상황. 게다가 지금은 사람들이 잠에 빠져 들어 있을 시간이기도 했다.
사람이 없을 조건이 무척이나 중첩되어 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주변에 인기척은 전혀 없었다.
‘나라면 여기서 움직인다.’
그리고 지크의 예상은 적중했다.
스윽!
잠을 청하고 있던 용병 한 명이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아직 불침번을 교대할 시간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화장실이라도 가려고 하는 것일까.
그러나 그런 분위기도 아니었다. 불침번을 서던 용병이 방금 일어난 용병과 눈을 맞췄다.
의미심장한 분위기가 흘렀다.
‘으슥한 밤을 틈타 밀회를 즐기려는 건 아니겠지.’
지크는 씹고 있던 육포를 ‘퉤!’ 뱉었다.
조심스럽게 나무에서 뛰어내린 후 야영지에 접근했다.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속도도 상당히 빠르다.
그가 라일라에게 말했던, 본인은 암살자가 아니라는 말이 무색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두 용병이 옆에 두었던 자신들의 무기를 조심스레 집어 들었다.
모닥불의 불빛이 잘 벼려진 검에 비쳐 불길하게 번뜩였다.
그들은 다시 한번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가장 가까이에 있는 동료들에게 다가갔다.
불온하기 짝이 없는 움직임이다. 지크는 야영지 근처의 수풀에 숨어들었다.
그의 손에는 오면서 주운 돌멩이 몇 개가 쥐어져 있었다.
습격자로 변한 용병 두 놈 따위 단칼에 목을 베어버릴 수 있지만 지크는 그러지 않았다.
‘저놈들이 배신자라는 건 알려줘야지.’
그러지 않는다면 오히려 도움을 준 지크가 습격자로 몰릴 수 있었다.
‘녀석들이 몇 놈 목을 딴 후에 깨우면 착각이야 하지 않겠지만….’
그러나 살릴 수 있는 용병들을 죽게 놔둘 수도 없다.
‘귀찮군. 용사 노릇이란 것도.’
용사란 단어에 역시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그의 손은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돌멩이를 튕겨 보냈다.
카앙!
“윽!”
잠든 동료에게 검을 내리치던 용병 아니, 습격자가 신음을 흘렸다.
조용해야 할 야습에 소리를 내는 것은 엄금해야 하는 사항이었지만, 그러기엔 손이 너무 아팠다.
퍽!
돌멩이에 맞고 궤도가 꺾인 검이 목표였던 목에서 크게 빗나가 용병의 머리 위에 꽂혔다. 흙이 튀며 잠든 용병의 머리를 때렸다.
“…응?”
용병이 눈을 떴다. 갑작스러운 외부의 충격에 눈을 뜬 것이라 아직 눈에는 잠기운이 진하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눈앞에 드리워진 칼의 섬뜩한 모습에 잠기운은 순식간에 날아갔다.
퍼억!
습격자의 칼이 다시 한번 용병의 목을 노린다.
하지만 용병도 경험 많은 베테랑이었다. 그는 급히 몸을 옆으로 굴려 검을 피했다. 그 와중에 옆에 뒀었던 무기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습격자의 칼은 이번에도 목표를 놓쳤다. 용병이 깔고 있던 모포를 날카롭게 갈랐을 뿐이었다.
“이런 씨발! 어떤 새끼…!”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던 용병의 눈이 커졌다. 습격자의 얼굴을 확인한 것이다.
“네드빌?”
얼빠진 음성이 그의 심정을 대변했다. 당연했다. 눈앞의 습격자는 그의 절친한 동료였으니까.
“젠장!”
네드빌은 완전히 꼬여버린 상황에 욕을 하면서도 용병을 향해 다시 한번 검을 날렸다.
상대가 당황한 틈을 타 일격에 목을 날려버린다면 상황을 수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였다.
그러나 그의 가냘픈 희망도 덧없이 사라졌다.
챙! 챙! 챙!
검이 몇 번 부딪친다. 서로의 실력을 너무도 잘 아는 두 사람인지라 결판은 쉽게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소란은 잠에 빠진 이들을 깨웠다.
“뭐야!”
“습격인가!”
“불침번은 뭘 한 거야!”
황급히 무기를 들고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는 용병들.
하지만 그들의 눈에 보인 것은 몬스터나 강도 같은, 그들이 상상하던 적이 아니었다.
살벌하게 서로 칼을 맞대고 있는 동료였다.
“…너네 지금 뭐 하냐?”
예상치 못한 상황에 용병들이 당황하고 있을 때, 네드빌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로닉 이 새끼가 갑자기 공격했어!”
네드빌과 싸우던 그로닉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이게 뭔 개잡놈의 헛소리야! 잘 자던 나한테 칼 꽂으려던 게 네놈 새끼잖아!”
“이 새끼가? 동료 대가리와 몸뚱아리를 이별시키려 했던 놈이 그딴 말을 해!”
질 수 없다는 듯 험악하게 혓바닥을 놀리면서도 네드빌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다른 이들이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해 당장 공격을 받진 않고 있지만 그건 잠깐이다.
네드빌이 불침번을 서던 시간대에 벌어진 사건이라는 것과 무엇보다 그의 칼에 찢겨진 그로닉의 모포가 증거가 될 터.
게다가 자신의 야습을 방해한 정체 모를 무언가까지 있다.
‘제대로 대응 못 했다간 죽는다!’
“어이, 빌과 셰드도 맞붙었어!”
“썅!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그의 공범인 셰드도 실패한 모양이다. 네드빌의 머릿속이 한층 더 헝클어졌다.
용병들 간의 묘한 대치가 잠시 이어졌다.
그때였다.
“윌터! 엘리! 너희는 절대 마차 밖으로 나오지 마라!”
이 목소리는 셰드의 것이었다. 아이들이 소란에 휘말리지 않도록 경고하는 소리 같았지만, 셰드의 공범인 네드빌에게는 전혀 다른 소리로 들렸다.
‘맞아! 녀석들을 인질로 잡으면 적어도 이놈들에게선 안전할 거야!’
네드빌이 그로닉을 경계하는 척하며 은근슬쩍 마차 쪽으로 접근했다. 네드빌을 노려보던 그로닉이 네드빌의 의도를 눈치챘다.
“저 새…! 누가 마차를 지켜!”
하지만 늦었다. 그로닉의 고함을 신호 삼아 네드빌이 빠르게 마차로 달려갔다.
그의 의도는 성공했다. 다른 용병들이 화들짝 놀라 마차로 다가오려 했지만 네드빌이 마차에 검을 겨누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네드빌. 어느새 공범인 셰드도 마차 옆에 붙어 있었다.
일단 인질을 잡는 것은 성공이었다.
“가까이 오지 마! 한 발자국이라도 다가오면 마차를 날려버리겠어!”
네드빌이 크게 외쳤다.
“뭐? 지금 저 새끼가 뭐라고 지껄인 거야?”
“야 이 개새꺄! 거기에 윌터랑 엘리가 타고 있다고!”
늑대의 송곳니 초창기 때부터 함께 움직여 온 그들에게 윌터와 엘리는 자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끼는 조카와 같은 정도의 의미는 있었다.
몇몇 용병은 정말 자식처럼 생각하기도 했다.
당연히 네드빌과 셰드의 행동에 극도의 분노를 표출할 수밖에 없었다.
배신감까지 더해져 용병들은 당장이라도 네드빌과 셰드의 생살을 씹어 먹을 것처럼 살기등등하게 둘을 노려봤다.
그러나 네드빌과 셰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셰드. 들어가서 애새끼들 확실하게 제압해.”
“알았어.”
셰드가 슬금슬금 마차의 문 쪽으로 접근했다. 분에 찬 용병들이 몇 걸음 움직였지만 네드빌의 검이 마력에 진동하는 것을 보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네드빌의 실력이라면 일격에 마차를 날려버릴 수 있다. 그 충격을 연약한 아이들이 버틸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용병들은 이를 갈면서도 네드빌과 셰드를 노려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언뜻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 같지만 네드빌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전력의 우위는 상대방 쪽이 훨씬 위인 것이다.
게다가 처음 습격을 방해한 무언가는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때문에 그는 전 동료들을 견제하면서 야영지 바깥을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튀어나올지도 몰라.’
숙련된 베테랑의 눈이 사소한 일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사방을 집요하게 훑는다.
하지만 그도 설마 적이 하늘에서 내려올 줄은 몰랐다. 그게 그저 높이 점프를 한 결과인 것도.
쿠웅!
마차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셰드가 마차 문을 연 것일까.
‘아니, 그러기엔 소리가 너무 크…!’
콰직!
무언가 으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끄아아아아악!”
이어지는 비명. 셰드의 목소리였다.
뭔가 잘못됐다. 네드빌은 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뒤쪽으로 검을 휘둘렀다.
상대의 정체도 모르고 앞에는 아직 적들이 있었지만 그의 위험 신호는 당장 뒤쪽의 무언가를 배제하라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행동을 하는 것과 그 행동이 결과를 일으키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카앙!
마력을 가득 담은 그의 검이 너무도 쉽게 튕겨나갔다. 손에서 올라오는 통증에 인상을 찌푸린 채 뒷걸음질 친 그가 자신의 검을 튕겨낸 자를 쳐다봤다.
하늘에서 반짝이는 달과 별의 빛 아래로 그의 모습이 보였다.
마차의 지붕에 걸터앉은 채, 한 손엔 나뭇가지 같은 기괴한 검을 들고 다른 손엔 오른팔이 짓이겨진 채 신음을 흘리고 있는 셰드의 멱살을 틀어쥐고 있다.
아는 얼굴이었다. 친분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를 모를 리 없다.
피알루의 전투에서 보였던 그의 괴물 같은 활약은 충격으로써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었다. 게다가 도시를 떠나기 전 아이들이 묵던 숙소에서도 본 적이 있지 않던가.
“…지크.”
네드빌의 그의 이름을 뇌까렸다.
“여어!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건 처음이지?”
그렇게 말하며 지크는 셰드를 내던졌다.
네드빌 옆에 떨어진 셰드가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상처가 지면에 끌리며 통증을 일으킨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셰드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지크의 존재감 앞에 그의 비명 따위 태양 앞의 반딧불보다도 못했다.
툭!
지크가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네드빌이 주춤 물러섰다.
“내가 말이야. 요새 호기심이 무척 많아졌어. 나이 먹으면 보통 호기심이 줄어드는데, 나는 어째 반대로 가는가 몰라.”
입을 삐죽 내밀고 투덜거리는 모양새가 마치 친근한 친구를 대하는 것 같다.
하지만 네드빌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어쩌겠어. 어차피 이렇게 태어난 거, 나잇값 못 한다고 욕먹어도 호기심 풀며 살아야지. 그런 내가 지금 정말로 궁금한 게 있어. 근데 그걸 네가 알고 있거든?”
지크가 윈두르를 들어올렸다.
“아마 넌 말하기 싫어할 텐데, 굳이 억지로 말할 필요는 없어. 내가 알아서 들을 테니까. 그런 건 내가 또 전문이거든.”
지크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하지만 네드빌은 전혀 웃고 싶은 심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크는 그의 심정 따위 알아줄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두 용병의 배신은 허무하리만치 쉽게 종결됐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