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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404화 (404/628)

제404화

그건 마치 바실리스크의 머리 안에 있는 밝은 광원이 눈을 통해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빛이 주변을 휩쓸었다.

쩌저적!

빛에 닿는 모든 것들이 멈춘다. 고유의 색을 잃어버리고 음울한 회색으로 물들어 굳어버린다.

그건 돌이었다.

바실리스크의 빛이 닿는 모든 것들이 돌로 변하고 있었다.

엉켜 있는 몬스터들은 물론이고 지크와 그렌에게 당해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몬스터의 시체들 하며 하다못해 무참히 짓밟혀 축 늘어져 있는 풀들까지.

그 모든 것들이 딱딱한 회색의 세상에 갇혀 버렸다.

‘석화의 빛!’

지크가 자신의 바로 옆에 생겨난 여러 돌 조각들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막대한 육체적 능력과 단단한 비늘, 치명적인 독과 함께 바실리스크를 압도적인 괴물로 만들어주는 능력.

말 그대로 빛에 닿은 상대를 돌로 만드는 능력이다.

‘맞는다고 전부 돌로 되는 건 아니다만….’

지크나 그렌처럼 강력한 마력을 갖고 있다면 저항을 할 수 있다. 몬스터들처럼 저렇게 일시에 굳어버리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위험하지 않은 건 아니다.

적어도 표피 정도는 닿는 즉시 굳을 것이고, 그렇다면 부상 이전에 움직임에 지장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빛이 닿을 때의 이야기다.

파앗!

석화의 빛이 다시 뿜어진다. 지크는 급히 그 빛을 피했다.

투확!

이번엔 바실리스크의 입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지크는 디딤발을 꺾어 몸을 오른쪽으로 던졌다. 튀어나온 무언가가 지크가 있던 곳을 덮쳤다.

치이이익!

지크가 있던 자리가 매캐한 연기를 내며 녹아들기 시작했다.

‘독!’

저건 석화의 빛보다 훨씬 지독하다. 체내의 마력으로 어느 정도 저항이 가능한 석화의 빛과는 달리, 저건 몸에 닿는 즉시 고약한 냄새와 함께 살이 문드러지고 뼈가 녹아내릴 것이다.

포션도 거의 떨어진 지금, 지크도 저 독엔 몸을 사려야 했다.

그러나 그게 전투 중에 계속 도망만 친다는 뜻은 아니었다.

키에에에엑!

그렌의 토르니움이 바실리스크의 몸에 꽂히는 게 보였다.

이번엔 제번 깊이 꽂혔다. 지크가 공격한 곳을 공격한 것이다. 바실리스크의 몸부림이 조금 더 심해졌다.

그렌이 빠른 속도로 몸을 빼는 게 보였다. 그 뒤를 바실리스크가 추격했다.

지금까진 지크를 더 경계하는 모습이었지만 방금의 공격으로 그렌을 더 위험시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바실리스크의 신경이 그렌에게 쏠린 상황은 지크에게 있어 무척이나 적절한 상황이었다.

지크는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바실리스크에게 뛰어갔다. 윈두르가 강대한 마력의 흐름에 진동했다.

그렌을 쫓으며 독과 석화의 빛을 뿜어내던 바실리스크가 지크의 접근을 눈치챘다. 그것이 꼬리를 휘둘렀다. 강철조차 으깨버리는 강력한 공격이다.

그러나 그것도 맞아야 강력한 공격일 뿐이다.

콰앙!

이번에도 바실리스크의 꼬리는 지면을 강타해 허무하게 흙만 가득 비산시켰다. 그걸 보고 지크가 눈을 빛냈다.

지크는 바실리스크의 전면으로 가속했다. 바실리스크의 눈이 지크를 향한다.

석화의 빛이 온다.

그 순간, 지크는 강하게 땅을 밟았다.

콰아아앙!

마력 가득한 발 구름에 지크의 주변 땅이 일시에 내려앉았다. 바실리스크의 꼬리가 지면을 강타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지크가 마력을 지면에 퍼뜨려 분쇄시키듯 강타했기 때문에 피어난 흙먼지는 더욱 많았다.

일순간 흙먼지 안이 햇빛이 차단돼 어둠에 휩싸일 정도로.

번쩍!

바실리스크의 석화의 빛이 뿌려졌다. 하지만 그 빛은 흙먼지를 뚫지 못했다.

닿은 것들은 돌로 만들어버리는 무서운 빛이지만, 빛 그 자체에 물리력은 없는 것이다.

석화의 빛이 사라지자마자 지크가 흙먼지 안에서 뛰쳐나왔다. 그와 바실리스크의 거리가 무척 가깝다.

바실리스크가 당황했다. 하지만 그래도 고위 몬스터 아니랄까 봐 입을 쩌억 벌렸다. 독이 가득한 이빨로 깨물어 부수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패착이었다.

지크의 앞에 비늘에 덮여 있지 않은, 부드러운 입천장이 보였다. 지크의 윈두르엔 이미 막대한 마력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콰아아앙!

쏘아진 검기가 바실리스크의 입천장을 꿰뚫었다. 입천장은 지크의 막대한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너무도 쉽게 뚫렸다.

하지만 지크의 검기는 고작 입천장을 걸레짝으로 만드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그것은 바실리스크의 속을 계속 파내 결국 뇌에 도달했다. 그리고 뇌 또한 신경질적으로 갈아버렸다.

끄엑!

바실리스크의 비명은 길지 않았다. 그것의 몸뚱이에 힘이 빠진다. 지크는 땅에 내려선 후 살짝 옆으로 비켜섰다.

쿠웅!

그의 옆으로 바실리스크의 머리가 힘없이 떨어졌다.

[우와아아아아!]

저 멀리서 환호성이 들려온다.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이 바실리스크의 죽음에 환호를 터뜨린 것이다.

병사들의 사기가 올라가는 게 뚜렷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성공했군요.”

그렌이 지크의 곁에 다가와 말을 걸었다.

“덕분입니다.”

“별말씀을요. 지크 씨가 다 하신걸요.”

서로를 위하는 말을 하고는 있지만 그 누구도 서로에 대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진 않고 있다.

만약 옆에 라일라가 있다면 끔찍한 광경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생각이야 어쨌든 당면에 가장 큰 적이 쓰러졌다. 그렇다면 이번 습격도 쉽게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둘은 피알루로 귀환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날의 습격도 피알루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두 번째 습격이 첫 번째 습격이 끝난 후 상당한 시일이 지난 다음에야 시작된 것과 달리, 세 번째 습격은 고작 나흘 후에 이어졌다.

그리고 그때의 습격에는 바실리스크 두 마리와 더불어 와이번 같은 비행 몬스터까지 참가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사흘 뒤 네 번째 습격이 있었고, 거기에는 비행 몬스터와 바실리스크 그리고 베히모스까지 섞여 있었다.

* * *

콰드득!

윈두르에 강한 저항이 느껴진다. 언제나 날카로운 날을 유지하며 단단하고 질긴 것들도 진흙처럼 썰어대던 윈두르에 마력을 가득 담은 상태였지만, 단단한 갈기로 덮인 목을 베는 건 아무래도 실패인 모양이었다.

쿠아아아아!

베히모스가 울부짖는다. 직립 보행하는 거대한 사자를 연상시키는 그 몬스터가 목덜미에 있는 지크를 노려봤다.

그것의 날카로운 발톱이 날아왔다.

콰앙!

윈두르를 사용해 그 공격을 막는다. 다만 정면으로 막는 건 아니다. 몸을 조금 옆으로 빼 베히모스의 공격을 흘리듯 막았다.

휘청!

베히모스의 거대한 힘에 지크의 몸이 흔들렸다.

비스듬히 가격당한 윈두르에 쏟아져 들어온 힘이 지크의 중심을 흔든 것이다.

그러나 지크는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지금의 현상을 노렸다.

지크의 몸이 빙글 돈다. 방금 받은 베히모스의 힘을 역이용해 다시 한번 베히모스의 목덜미를 가격했다.

콰아아앙!

크아아아악!

갈기가 잘리고 목에서 피가 튀었다. 베히모스가 급히 다시 손을 뻗었다.

우람한 근육과 체내의 마력에서 나온 폭발적인 힘이 담긴 손이다.

하지만 지크는 그 공격을 오히려 반겼다.

‘당황했어!’

절대 끊어지지 않을 것 같던 자랑스러운 갈기가 끊어지고 목에 타격을 입었다.

베히모스로서는 처음 겪는 일일 터. 녀석은 허둥거리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한 공격이 제대로 된 공격일 리 없다.

지크는 베히모스의 공격을 피하고는 연신 목 부위를 공격했다. 더 이상 갈기를 믿지 못하게 된 베히모스가 과장되게 목을 보호하려 한다.

지크는 계속 목을 노리는 척하면 베히모스를 밀어붙였다.

쿠웅!

결국 베히모스는 지크의 공격에 절명했다.

베히모스의 숨통을 끊은 후 지크는 상황을 살폈다.

저 멀리서 그렌이 홀로 바실리스크를 상대하는 게 보였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래 봬도 저번 시간선에는 아무리 무리를 지었다고 해도 지크 자신조차 토벌했던 녀석 아닌가.

아마 녀석도 곧 바실리스크를 제압할 것이다.

또 한 마리의 바실리스크를 상대하고 있는 건 한스였다.

‘제법이야.’

아무리 지크가 바실리스크의 주의점에 대해 알려줬다고 해도 한스의 몸놀림이 좋은 것 또한 사실이었다.

처음엔 스녹까지 붙여줬지만, 지금 스녹은 주변에서 다른 몬스터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한스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선전을 하고 있다고 해서 상황이 좋은 건 아니었다.

피알루의 성벽에 몬스터들이 잔뜩 달라붙어 있다. 거기에 하늘에는 비행 몬스터들이 성벽이란 방해물을 피해 계속 도시를 공격하고 있었다.

지크는 주변 몬스터를 도륙하며 일단 한스에게 달려갔다. 거대 몬스터들을 제거한 후 그 전력을 피알루 방위에 돌려야 했다.

그날의 습격을 피알루는 또다시 성공적으로 방어해 냈다.

그러나 피해가 예전보다 훨씬 더 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 *

전투에 승리했다. 몬스터들은 무수한 시체를 놓아두고 물러갔다.

코볼트, 고블린 같은, 일반 성인이라도 어떻게 어떻게 쓰러뜨릴 수 있는 몬스터는 둘째 치고 오거 같은, 숙련된 병사조차 상대할 수 없는 몬스터들이 성벽 아래에 잔뜩 널브러져 있다.

계속된 승리와 적들의 그 비참한 모습에 사기가 솟아오르기라도 하련만, 성벽 아래를 거니는 병사들의 표정은 암울했다.

“아악!”

“으으으….”

부상을 당한 병사들이 계속해서 이송된다. 가벼운 부상을 당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사지가 잘리거나 깊은 자상을 입는 등 중상자들도 상당했다. 그들은 이송 중에 숨이 끊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끔찍하네.”

이번 전투에도 몬스터들을 초토화시키며 고위 마법사의 유용함을 다시 한번 사람들에게 각인시킨 라일라가 그 현장을 보고 중얼거렸다.

“전장에는 어쩔 수 없는 광경이지.”

“그래도 분위기가 너무 안 좋은데. 일단은 승리를 했잖아.”

“승리를 하면 뭐 하겠어. 이 전투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게다가 다음 습격 때 적 전력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고.”

기약 없는 전투. 게다가 상대의 전력은 계속 상승한다. 그 두 가지가 사람들의 마음을 좀먹고 있었다.

‘나름 전략을 잘 짰어.’

지크는 그렌에게 감탄했다. 이렇게 된다면 도시의 상층부도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막대한 몬스터의 대군을 눈앞에 떡 보여주는 것보다 이렇게 차츰차츰 불안감을 옥죄어가는 전략이 더 효율적일 때도 있다.

“지크 님!”

한 병사가 지크를 찾아왔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고 있는 폼이 그도 이번 전투에서 상당히 고생을 한 모양이었다.

“사령관님이 찾으십니다!”

“뭐 잘못한 거 있어?”

라일라가 의심의 눈초리로 지크를 본다.

“잘못한 게 뭐 있겠냐. 열심히 몬스터 패 죽인 것밖에 없는데. 아마도 앞으로의 일 때문이겠지.”

지크는 지금 도시가 보유한 최고의 실력자이자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라는 신분을 가진 자다.

아마도 앞으로의 전투에 대한 조언 때문에 불렀을 것이다.

‘어디로 가지 못하게 하려는 뜻도 있을 테고.’

지크는 피알루 소속이 아니다. 그가 떠나려 한다면 도시도 잡기 쉬지 않을 터.

“갔다 오마.”

“잘 갔다 와. 사고 치지 말고.”

마치 엄마 같은 라일라의 말에 지크는 피식 웃고 손을 흔들었다.

병사가 지크를 안내한 곳은 성벽 근처에 있는 커다란 건물이었다.

지크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공간에 커다란 탁자가 있고,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가장 먼저 그를 부른 사령관과 군의 지휘관들이 보였다. 그들의 맞은편에는 용병인 듯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그중에는 틸도 있었다.

그리고 그렌 제너드의 모습도 끼어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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