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8화
권력 상층부에 대한 인간의 도전은 어느 곳, 어느 시대에나 있어 왔다.
그게 클로원이라고 다를 리 없다. 게다가 이미 지크 일행은 파이넬을 통해 클로원에 반란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애초에 파이넬이란 존재 자체가 클로원의 반란군이 만들어낸 것이지 않던가.
“네 말대로 반란이 일어났어. 그리고 성공했지.”
“누군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대단한 놈들이군.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상대는 세계를 주름잡는 거대 제국의 황제다. 게다가 그 황제는 회귀라는 거대한 무기까지 있는 상태. 도저히 틈이 보이지 않는다.
“일단 제국의 사람들은 브뤼셀 시스템이란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게 첫 번째 이유야. 그래서 대비를 할 수 있었어.”
“대비를 한다고 어찌할 수 있는 힘이 아닐 텐데.”
지크조차 함부로 그렌 제너드를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힘이 바로 회귀의 힘이지 않던가.
“두 번째는 제국의 귀족 몇이 비밀로 브뤼셀 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는 거다. 파이넬도 그로 인해 만들어졌고. 물론 그건 이전부터 종종 있어 왔던 일이야. 황제들도 감히 브뤼셀 시스템을 넘보는 자들은 정말로 집요하게 찾아내서 잔인하게 가문 전체를 몰살했지만, 그럼에도 브뤼셀 시스템을 넘보려는 자들은 계속해서 나왔지. 너도 알잖아? 인간들의 욕망이라는 건 정말로 끈질기다는 걸.”
지크는 그 의견에 열렬하게 동의했다.
“물론 그걸로는 부족했어. 브뤼셀 시스템을 연구한다고 해봤자, 시간 회귀는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었거든. 회귀 능력의 근원인 다섯 그루의 나무는 제국에서도 철저한 선별을 거쳐 실력과 충성심을 증명한 사람들만이 드나들 수 있는 곳에서 지켜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거기에서 윈두르가 끼어들었지.”
지크는 다시 한번 자신의 애검을 내려다봤다.
“윈두르가 자신들을 향해 이빨을 드러낼 줄은 황금 황제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야. 어쩔 수 없지. 황금 황제도, 여타의 다른 황제들도 그런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으니까.”
“미쳐버릴 때까지 시간을 돌리는 상황 말인가?”
다른 황제들과 마지막 황제의 차이는 그것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 아무래도 같은 시간을 계속해서 돌리는 건 브뤼셀 시스템에 무리를 주는 모양이더군. 물론 시스템이 망가지게 될 정도는 아니지. 하지만 시스템에 약간의 틈이 만들어졌고 그건 세계수에게 기회를 주기에 충분했어.”
“자유를 원한다고 했었지. 역시 지금의 상황은 세계수에게 그다지 기분 좋은 상황은 아닌 모양이야.”
“몸이 다섯 개로 쪼개진 후, 마력을 다루기 쉽도록 억제까지 된 상황이었으니까. 물론 세계수가 인간처럼 적극적인 자유 의지를 갖고 있는 건 아냐. 그러나 적어도 지금 자신의 상태가 비정상적임을 느끼고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려는 의지 정도는 확실히 존재해.”
“계속 설명해 봐.”
“세계수는 그 약간의 틈을 이용해 자신의 해방을 꾀했어.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클로원을 무너뜨려야 했지. 하지만 자신의 본체와 분신들은 모두 마력이 억제된 채 마력을 약탈당하는 중이라 제대로 된 힘을 쓸 수 없는 상태. 거기서 세계수가 이용한 것이, 자신의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유일하게 억제되지 않은 윈두르였어.”
지크는 윈두르의 자루 부분을 한 번 스윽 쓰다듬었다.
“너도 경험해 본 적 있을 거야. 뭐니 뭐니 해도 네 시간을 돌려준 물건일 테니까.”
“…운명을 비트는 열쇠.”
“바로 그거야.”
지크는 운명을 비트는 열쇠가 박혀 있던 손가락을 한 번 내려다봤다. 그리고 다시 윈두르를 쳐다봤다. 그의 시선은 윈두르의 날 하나에 꽂혔다. 운명을 비트는 열쇠가 윈두르와 일체화된 부분의 날이었다.
“운명을 비트는 열쇠를 얻은 기억이 없지?”
“그래. 전혀.”
“세계수의 의지를 전해 받은 윈두르는 자신의 몸의 일부를 한 사람의 몸속으로 옮겼어. 그 자는 세계수가 자신과 연결된 모든 기억 속에서 찾아낸, 클로원을 무너뜨릴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판단한 사람이었지. 윈두르의 몸 일부가 그의 몸속에 자리를 잡았을 때, 세계수는 그 사람을 위해 딱 한 번 기적을 사용할 수 있었어.”
“회귀.”
지크는 드디어 왜 자신의 몸속에 기억에도 없는 ‘운명을 비트는 열쇠’가 박혀 있었는지, 어째서 자신이 회귀라는 능력을 얻을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저 상황이 자신에게도 고스란히 일어난 것이리라.
“황제는 그 회귀를 알 수 없었어. 이번엔 오히려 회귀에 휘말리는 상황이 된 거지.”
“당연히 그 회귀는 황제에 대한 중대한 반격의 실마리가 됐을 테지?”
“맞아. 세계수가 선택한 자는 조쉬 리브라는 자였어. 클로원 제국의 후작으로서, 제국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자이자 온갖 폭정을 끼치는 황제를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 중 하나였지. 그의 리브 후작가는 몰래 브뤼셀 시스템을 연구하는 자들 중 하나였고. 몇 대를 잘 숨겨서 연구를 행해온 리브 후작가였지만, 결국 연구를 들켜버리게 돼. 당연히 리브 후작가는 멸망했고 그 구성원들은 온갖 고문과 능욕 끝에 몰살당했지. 조쉬 리브도 그때 목숨을 잃었어. 황제가 직접 목에 칼을 꽂아 넣었지. 하지만 리브 후작이 눈을 떴을 때, 그는 과거로 돌아와 있었어. 다시 기회를 잡은 그는 망설이지 않고 반란을 일으켰지.”
그리고 그 반란은 성공했다. 하지만 지크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브뤼셀 시스템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을 것 아냐. 그러면 반란군이 최후의 최후까지 밀어붙였어도 승리할 수 없었을 텐데.”
회귀를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브뤼셀 시스템이 지금까지 멀쩡했던 걸 보면 나처럼 시스템을 무력화시킨 것도 아닐 테고.”
“그는 브뤼셀 시스템의 발동 조건을 노렸어.”
“죽음이라며? 그럼 자결하면 끝일 텐데.”
“그렌 제너드야 조작 장치를 모르기 때문에 죽음이란 기본적인 발동 조건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거지. 솔직히 발동 조건을 바꿀 수 있다면 뭐 하러 죽음이란 조건을 계속 유지하겠어? 아무리 시간이 되돌아가 죽지 않는다고 해도 자살을 시도할 때 엄청나게 아플 게 뻔한데 말이야.”
“그 정도 아픔 참는 것쯤이야 쉬운 일이잖아.”
“누구나 너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마.”
지크 브레이브가 조금은 한심하게 지크를 쳐다본다.
순간 설명이고 뭐고 지크 브레이브의 대가리 깨기를 다시 시작할까 지크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 낌새를 눈치챈 것인지 지크 브레이브는 급히 다시 설명을 이었다.
“다만 회귀의 발동 조건은 황제 외에는 아무도 몰라. 즉위한 후에 조작 장치를 이용해 발동 조건을 자신만 아는 것으로 바꿔버리거든. 하지만 조쉬 리브는 알고 있었어. 그자의 가문이 파이넬을 만들어낸 곳이었으니까.”
“회귀 전에 완성한 건가?”
“프로토 타입이 완성되어 있었지. 그때 어느 정도 라일라의 기억을 빼냈었어.”
“거기에 발동 조건이 들어 있었군.”
브뤼셀 시스템에 정보를 입력하는 매개는 에스텔레이드와 토르니움, 그리고 윈두르다.
윈두르는 황제의 상징이니 당연히 발동 조건을 바꿀 때도 가지고 있었을 터.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변경된 발동 조건은 라일라의 기억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 회귀의 발동 조건이 조쉬 리브의 손에 들어갔다.
“회귀 전, 라일라의 기억을 빼내는 연구를 발견했을 때 황제는 엄청나게 분노했어. 당연히 리브 후작가가 얻은 모든 연구 자료를 철저하게 짓밟았지. 하지만 그렇다고 위기감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어. 결국 리브 후작가는 몰살당했으니까. 설마….”
“설마 조쉬 리브가 회귀를 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겠지.”
지크 브레이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회귀를 한 조쉬 리브는 반란을 철저하게 준비했어. 그리고 왕궁에 들어갔을 때, 기회를 노려 회귀의 발동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지. 황제는 회귀의 힘을 자신의 왕관에 넣어놨었거든. 그걸 알고 있던 조쉬 리브는 왕궁에 침입해서 왕관을 부쉈어. 생각보다 꽤 쉽게 성공했어. 라일라의 기억을 빼내 왕관이 어디 있는지 훤히 알고 있었으니까.”
황제의 가장 막강한 힘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조쉬 리브는 그 참에 황제도 죽일 생각이었지만, 그건 실패했어. 하지만 절대 나쁜 상황은 아니었지. 황제의 절대적인 우위가 사라진 거니까.”
“그리고 바로 반란을 일으킨 거냐?”
“그래. 엄청난 폭정을 한 황제에게 안 그래도 불만을 품고 있던 자들이 많은 상태였어. 거기에 황제가 회귀의 힘을 잃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니 반란의 규모는 폭발적으로 늘 수밖에. 그렇게 클로원은 내전에 빠져들었지.”
“왕관을 부쉈어도 새롭게 발동 조건을 지정하면 되는 거 아닌가?”
“브뤼셀 시스템의 제어 장치와 세계수의 본체는 바다 너머 외딴 섬에 있어. 발동 조건을 변경하려면 직접 윈두르를 들고 그 섬까지 가야 해. 보안을 위해서였지만, 회귀의 힘을 잃은 상황에서는 그 거리가 치명적으로 작용했지. 조쉬 리브가 황제가 그 섬에 가는 것을 철저하게 막았으니까. 황제는 자신의 힘을 찾으려면 반란군을 먼저 쓰러뜨려야 하는 상황에 놓였어. 남은 건 두 세력의 정면충돌뿐. 파이넬이 제국에 넘어간 것도 이때 즈음이야.”
“그리고 반란의 결과는 조쉬 리브의 승리로 끝났다는 거군.”
“음, 그건 좀 달라.”
지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란이 성공했다고 하지 않았나?”
“맞아. 반란은 성공했어. 황제는 죽었고 클로원은 멸망했지. 하지만 그게 꼭 조쉬 리브의 승리를 뜻하진 않아.”
“공멸한 모양이군. 아니면 뒤통수를 맞았거나.”
“둘 다야. 제국은 쓰러졌지만 반란군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지. 그리고 조쉬 리브는 권력을 원한 아군에게 찔렸어.”
지크 브레이브는 고개를 저었다.
“그 후의 상황은 누구도 몰라. 그때부터의 상황은 라일라의 기억에도 없거든. 정보의 입력이 끊긴 탓이지.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엄청난 혼란이 휘몰아쳤을 거라는 거야.”
거대한 질서의 붕괴는 거대한 혼돈의 시작인 법이다.
그리고 그 혼란과 뒤이은 시간이 클로원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고 지금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지크가 가볍게 박수를 쳤다.
“꽤 재미있는 이야기였어. 궁금증도 상당히 풀렸고. 한데, 그 후에 세 검은 어떻게 됐지?”
“에스텔레이드와 토르니움은 부상을 입은 한 장군이 제국 황제의 무덤 위에 만들어진 곳에 갖다 놓은 후 죽었더군. 네가 토르니움을 찾은 그곳 말이야. 그리고 윈두르는 세계수가 가까스로 지하 동굴로 날려버렸어. 누가 윈두르를 갖든, 지금까지처럼 이용만 당했으면 당했지 자신의 자유를 위해 싸울 것 같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으니까. 그렇게 세계수의 자유를 위한 시도는, 반절의 성공만으로 끝나고 말았어.”
“그리고 윈두르는 내가 발견할 때까지 잠들어 있었다는 건가.”
“그래.”
지크 브레이브는 잠시 말을 멈췄다.
지크가 지금까지 들은 정보를 정리할 시간을 주려는 모양이었다.
‘정말로 장엄한 이야기군.’
이걸로 클로원에 대한 대부분의 궁금증이 풀렸다. 지크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렌 제너드가 브뤼셀 시스템을 발견한 것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모양이군.”
지크는 지크 브레이브 다음으로 재수 없는 놈을 떠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지크 브레이브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브뤼셀 시스템을 재가동시킨 자는 전혀 다른 사람이야.”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