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392화 (392/628)

제392화

전투가 끝난 후, 지크와 그렌 일행은 엄청난 환대를 받았다. 시장이 저택에 초대를 해 직접 그 공을 치하할 정도였다.

“얘기는 들었습니다! 이번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셨다고요! 과연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이십니다!”

입에 침을 튀겨 가며 시장이 온갖 아첨을 해 온다. 하지만 둘의 활약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만했다.

평소 같았으면 성대한 연회를 열었겠지만 도시가 처한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들은 간단한 저녁 대접만을 받고 왔다.

함께 초대받았지만 지크 일행과 그렌 일행은 서로 그다지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애초에 겉으로는 서로를 껄끄러운 존재로 대하는 중인 것이다. 내심은 상대를 못 죽여 먹어 안달이었고.

언제 또 몬스터가 쳐들어올지 모르는 터라 식사도 일찍 끝났다. 시장은 돌아가는 길이 편하도록 일행에게 마차를 내줬다.

상당한 전투를 한 날이니 오늘만큼은 일행 모두 차이는 있지만 적지 않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던 터라 약속이나 한 듯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저녁에 지크의 방으로 의견 교환 및 노닥거리러 오던 라일라조차 오늘은 방문하지 않았다.

지크도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그가 잠에 빠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단잠을 잘 순 없었다.

‘빌어먹을! 또 이 꿈이야!’

지크는 투덜거렸다. 그의 눈앞에서는 몇 번 본 적이 있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가벼운 말다툼을 하는 윌위스와 레오나. 그것을 쓴웃음을 지으며 바라보는 지크 브레이브. 소란 속에서도 카르나에게 짧은 기도를 하고 있는 루벨라.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틸.

언제나의 꿈에 나오는 모습 그대로였다. 그리고 여전히 지크의 입장에서는 개 같은 기분이 드는 꿈이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 꿨을 때처럼 무작정 눈을 돌리고 부정부터 하지는 않았다.

이 꿈으로 인해 얻은 것도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크는 팔짱을 끼고 이번엔 꿈이 무엇을 보여줄지 기다렸다.

하지만 별다른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일행이 나누는 사소한 잡담이 전부.

틸을 만난 터라 그에 대한 정보를 주기 위한 꿈이 아닐까 생각된 지크는 고개를 갸웃했다.

‘오늘은 그냥 개꿈인가?’

그렇다면 정말로 불쾌하다. 저 짜증 나는 지크 브레이브의 면상을 보는 것조차 고역인데 아무런 정보마저 없다니.

지크가 기분 나쁘게 혀를 찼을 때였다.

그는 이상을 눈치챘다.

눈앞의 광경은 여전했다. 윌위스와 레오나가 다투고 루벨라는 기도를 하며 틸은 잡일을 한다.

그러나 나머지 한 사람. 지크 브레이브의 행동이 변했다.

윌위스와 레오나의 다툼을 보고 쓴웃음을 짓고 있던 그가 어느새 지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뒤에 뭔가가 있는 것일까. 지크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풍경이 계속 이어지고 있을 뿐.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지크 브레이브는 여전히 자신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크가 한 걸음 왼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지크 브레이브의 고개가 조금 돌았다.

이번엔 오른쪽으로 다섯 걸음. 이번에도 지크 브레이브의 시선이 그를 따라왔다.

확실했다. 지크 브레이브는 지금 지크 자신을 보고 있었다.

‘내가 꿈에 간섭할 수 있다고?’

이런 적은 처음이라 지크는 적지 않게 놀랐다.

그때, 지크 브레이브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지크를 향해 입을 열었다.

[곧 만나자.]

그 말의 뜻을 이해할 순간도 없이, 지크는 꿈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니 보이는 건 어둠에 휩싸인 천장이다. 아직 꼭두새벽인 듯 닫힌 창문으로 흘러나오는 빛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지크는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방금 건 뭐지?’

평소에 꾸던 꿈과는 확연히 다르다. 지크는 방 한쪽에 놓인 윈두르를 쳐다봤다.

시치미를 딱 잡아떼는 것처럼, 윈두르는 여느 때와 같이 벽에 조용히 기대어 있었다.

하지만 지크가 눈을 떼지 않아서일까. 어쩔 수 없다는 듯 윈두르에게 변화가 일었다.

스윽!

나뭇가지 같은 날들이 한쪽을 향한다.

지크가 나무가 있는 곳을 찾을 때 가리켰던 것과 같은 상황.

“역시 네가 보여준 거냐.”

윈두르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한쪽 방향을 가리킬 뿐.

지크는 윈두르가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봤다.

보이는 건 어둠에 가려진 벽. 하지만 그 너머에 뭐가 있는지는 안다.

‘데네스트 산맥.’

저 새침데기 같은 검이 저렇게 열렬히 자기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이다. 가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다.

‘안 그래도 슬슬 산맥 안으로 들어가 보려고 했으니까.’

한 번 대대적인 공격을 받았다. 많은 수의 몬스터들이 죽었으니 아마도 당분간은 안전할 가능성이 높았다.

‘더 강력한 공격이 올 가능성도 없는 건 아니지만.’

이번 공격 때 보이지 않았던 정말로 강한 몬스터들이 공격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번에 아무리 많은 몬스터를 죽였다고 해도 데네스트 산맥의 몬스터들의 씨가 말랐다고도 생각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산맥 전체로 보면 그다지 많은 몬스터가 죽은 건 아닐 것이다. 데네스트 산맥은 그만큼 거대한 규모의 산맥이었다.

‘다른 녀석들은 두고 가야겠군.’

그의 일행이 남는다면 웬만큼 강한 몬스터들이 와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다른 병사들과 ‘늑대의 송곳니’까지 합친다면 피알루가 함락될 일은 웬만하면 없을 것이다.

‘그렌 제너드의 파티도 실력만 따지면 괜찮지만….’

그놈들은 실력이 아니라 머릿속이 위험한 녀석들이다.

솔직히 지크 브레이브의 동료이자 재난의 마왕이라 추정되는 틸까지 이 도시에 있는 마당에 도시를 떠나는 건 내키지 않는다.

언제 그렌의 수작이 시작될지 모르니까.

일행을 두고 가는 건 그렌 제너드를 견제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지금의 라일라라면 나머지 녀석들을 잘 이끌어 줄 거야.’

적어도 지크가 돌아올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건 충분하다.

결론은 내렸으니 이제 실행할 일만 남았다. 그리고 이런 때 지크의 결단은 과감하다.

‘동트면 바로 간다.’

굳이 시간을 끌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 * *

“그런 연유로 산맥에 갔다 올게.”

“그걸 꼭 이런 꼭두새벽부터 찾아와 말해야겠어?”

해도 뜨지 않은 시각에 갑자기 찾아와 저런 말을 해대는 지크에게 라일라가 투덜거렸다.

“원래 이런 건 생각나자마자 해야 하거든.”

“하여간, 말은….”

하지만 라일라도 지크가 말한 꿈의 이상을 두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지크 브레이브가 널 쳐다봤다고? 그리고 ‘곧 만나자’라고 했고?”

“맞아. 정확히 나를 인식하고 있었어. 그래서 무지하게 아쉽다.”

“뭐가?”

“그때는 내가 그 꿈에 간섭할 수 있는 순간이었을 수도 있잖아. 일단 지크 브레이브 그 새끼 대갈통부터 찍어버렸어야 했는데….”

“…넌 참 한결같네.”

정말 한결같을 정도로 지크 브레이브를 싫어한다.

“녀석이 이제 곧 만날 수 있다고 했으니, 그때 찍어버리지, 뭐.”

라일라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이 흐릿해졌다.

“…그건 대체 무슨 뜻일까?”

“‘곧 만난다’는 소리 말이냐?”

“응. 지크 브레이브는 지크 너잖아.”

지크가 대놓고 인상을 썼다. 그 호구병신정의바보가 자신이라는 소리는 들을 때마다 끔찍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인상을 쓸망정 얌전히 라일라의 말을 기다렸다.

“회귀 전, 지크 브레이브는 분명 대단한 용사였을 거야. 하지만 그건 회귀 전의 이야기야. 시간이 돌려지고 전혀 다른 만남과 사건들을 거듭해서 지크 브레이브는 사라졌어. 그리고 많은 회귀를 거쳐, 힘의 마왕 지크 모어가 모어란 성을 버리고 그냥 지크로 남은 게 바로 지금의 너지.”

“결국 모든 일은 옳게 귀결되는 거야. 그렇게 따지면 회귀도 나쁘진 않았어.”

현재의 자신을 옳은 것, 회귀 전의 자신을 그른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지크의 뻔뻔함은 여전했다. 그러나 라일라의 심각한 표정은 여전했다.

“그럼 대체 어떻게 지크 브레이브가 너를 만날 수 있을까? 수많은 지크가 있었지만, 한 시간 전에 지크는 한 명뿐이었는데 말이야.”

그제야 지크는 라일라가 뭘 걱정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지크 브레이브로 바뀌며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군.”

“지금껏 온갖 일이 일어났어.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믿는 건 멍청한 짓이야.”

“지크 브레이브는 네가 원하던 인물상 아니었나? 그럼 바뀌는 게 좋지 않아? 녀석은 절대로 네가 걱정하는 마왕이 되지 않을 텐데.”

“헛소리하지 마, 지크.”

라일라가 지크의 눈을 또렷하게 보며 말했다. 그건 지금껏 본 라일라의 모습 중 가장 박력 있는 모습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 지크 브레이브가 아니라.”

지크가 눈을 깜박였다. 설마 이런 대담한 말을 그녀가 할 줄이야.

하지만 아무래도 기세에 내맡겨 나온 말인 모양이었다. 라일라의 방에 있는 촛불 하나가 조명의 전부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얼굴이 빨개지는 걸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숙이거나 하지 않았다.

지크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걱정 마라. 내가 그 새끼의 대가리를 깨부술지언정 그 녀석이 내게 해를 끼치진 못할 테니까.”

“…믿을게.”

“좋아. 그럼 다른 녀석들에게 설명 좀 해줘. 그리고 몬스터의 습격이나 그렌 제너드의 견제 같은 것도 부탁하고.”

“일이 너무 많은 거 아냐?”

“내가 널 믿으니까 이런 말도 하는 거야.”

“좋아. 알았어.”

라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지크의 팔을 툭 쳤다.

“조심히 갔다 와. 괜히 엄한 데서 부상 같은 거 당하지 말고.”

“오냐.”

“그리고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돌아오고.”

“나도 모든 걸 해결하겠다는 각오로 가는 건 아니다. 뭔 일 있으면 바로 도움 요청하러 내려오마.”

“그럼 됐어.”

그렇게 라일라와 이야기를 끝내고 지크는 숙소를 나섰다. 라일라는 창문을 열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지크를 배웅했다.

* * *

데네스트 산맥은 그 엄청난 규모답게 산의 형세도 가파르다. 특히 가장 높은 봉우리인 셀록블럼은 더더욱 그렇다.

툭 하면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이 가로막는 데다가 높은 산 특유의 만년설과 툭하면 바뀌는 기상. 그리고 살을 엘 듯한 추위는 산을 오르는 인간에게 엄청난 시련을 선사한다.

거기에 산맥을 어슬렁거리는 몬스터들까지.

도저히 산을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평범한 인간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콰직!

깎아지를 듯한 절벽에 지크가 손가락을 박아 넣는다.

손가락이 단단하게 고정된 것을 확인한 후에 지크는 팔에 힘을 줬다.

지크의 몸뚱이가 위로 올라간다. 그 상태로 다른 손의 손가락을 절벽에 박아 넣었다.

이마 한참을 올라온 터라 아래로 보이는 지면이 까마득하게 보였다.

추락한다면 목숨을 여벌로 갖고 있더라고 한 번에 모두 잃을 것 같다. 그러나 지크는 묵묵히 다시 절벽에 손가락을 꽂아 넣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크가 절벽을 등산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지크를 가로막는 건 높은 절벽만이 아니었다.

꾸에에엑!

품위라곤 하나 없을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

지크는 고개를 돌렸다. 커다란 무언가가 지크에게 날아오고 있었다.

날개를 가진 커다란 몬스터. 그리폰이었다.

그것은 쏜살같이 지크에게 향했다. 그를 먹잇감으로 취급하는 게 분명했다.

지크는 등의 윈두르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그리폰이 접근하며 입을 쩍 벌렸을 때, 무성의하게 휘둘렀다.

그리폰의 입을 중심으로 가느다랗지만 강력한 마력이 훑고 지나갔다.

서걱!

순식간에 그리폰의 몸체가 두 동강 났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던 그리폰의 몸은, 이제는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피와 내장을 흩뿌리며 까마득한 지면으로 추락을 했다.

그러나 지크는 죽은 그리폰 따위에는 관심 없었다. 윈두르를 등에 메고 다시 절벽에 손가락을 박아 넣었다. 그리고 등반을 계속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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