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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387화 (387/628)

제387화

지크는 천막을 나왔다. 천막 안에는 냉기가 흐르다 못해 얼음이 솟아 사람을 찔러 죽일 것 같은 분위기가 흘렀지만 지크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가 내던진 말이 그 원인이었음에도 마찬가지.

‘출출한데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다른 사람이 들으면 허탈하기 짝이 없을 사소한 고민이 지금 당장은 지크의 최대 고민거리였다.

그때 천막 안에서 누군가 따라나왔다. 지크가 확인하니 맥스였다.

“가시죠, 지크 님. 성문까지는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지크는 거절하려다 말았다. 그의 의도를 알아차린 것이다.

‘어떻게든 꼬투리 잡힐 일을 만들지 않으려는 거군.’

괜히 캠프를 나서기 전 지크가 다른 용병들과 시비라도 붙었다가는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 상대는 일반인이 아닌,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였던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요 근래 계속 사건을 일으킨 상태.

“호의를 감사히 받죠.”

지크가 허락을 하자 맥스는 누가 봐도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그럼 가시죠.”

지크와 맥스는 캠프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주변에 접근하는 용병은 없었다.

낯선 지크의 모습에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주변을 기웃거리는 용병들이 다소 있었지만 맥스의 서슬 퍼런 시선을 받고 전부 발걸음을 돌렸다.

그 와중에도 맥스는 지크에게 이것저것 말을 걸었다. 중요한 내용은 없는 잡담이다.

처음 본 사람끼리 어색함을 없애기 위함과 동시에 지크에게 조금이라도 친근감을 심으려는 것이었다.

지크와 맥스가 캠프의 입구를 막 나서려던 참이었다.

누군가 캠프 입구로 접근했다.

‘…아이?’

피와 쇠 냄새가 진동을 하는 용병 캠프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아이 둘이 웬 용병 한 명을 따라 캠프로 오고 있었다.

소년 한 명과 소녀 한 명. 나이는 예닐곱 정도 될 것 같다.

혹시 인신매매가 아닐까. 아무리 많은 경험을 쌓은 지크라도 머릿속에 당장 그 생각부터 떠올릴 정도로 아이와 용병단 캠프는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맥스 아저씨!”

“아저씨!”

아이 둘이 용병 곁에서 떨어지더니 맥스를 보고 달려왔다.

맥스의 얼굴은 웃는 아이도 얼굴만 보고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험상궂은 모습이다. 한데, 그런 맥스에게 ‘아저씨’라고 살갑게 부르고는 웃으며 달려오다니. 서로 상당한 친분이 있는 게 분명했다.

맥스도 지금까지의 진중한 혹은 성난 표정을 갖다 버리고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얼굴 근육이 꿈틀거리며 뺨의 흉터가 마치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는 게,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더욱 험상궂은 얼굴이 됐다.

조명으로 켜둔 횃불의 불빛이 얼굴에 음영을 드리우며 더욱 그렇게 보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맥스의 얼굴을 보고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어이쿠! 윌터와 엘리가 아니냐! 이 늦은 시간에 여긴 어쩐 일이냐?”

“아빠를 보러 왔어요!”

“그래요!”

“으음, 하지만 좀 늦은 시각 아니냐? 아저씨는 너희들이 이 시간에 도시 밖으로 나다니는 게 무척이나 걱정되는구나.”

실제로 성문은 이미 닫혀 있다. 아마 저 아이들이 성문을 나온 건 용병단과 관련이 있어 편의를 봐준 것일 터.

지크가 이 시간에 성문 밖에 나와 있을 수 있는 이유와 같았다.

“그, 그래도 요새 아빠 본 지 오래된 걸요!”

“맞아요!”

사내아이가 더듬거리면서도 자기주장을 한다. 여자아이도 질세라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맥스는 곤란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온 용병을 쳐다봤다. 그 용병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 어떻습니까, 맥스 부단장. 단장님과 닉 부단장이 캠프에 같이 있는 날도 얼마 없지 않습니까. 시간이 좀 늦었더라도 이럴 때 같이 만나게 해야죠.”

“맞아! 맞아!”

“응! 응!”

아이들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아이들에게 쾌활하게 미소 지은 용병이 맥스에게 작게 귓속말을 했다. 물론 지크에겐 전부 들렸다.

“그리고 오늘도 분위기 보니 둘이 대판 할 것 같은데. 다른 때라면 몰라도 지금 같은 중요한 의뢰 시기에 그런 꼴을 냅둘 순 없잖습니까. 아이들 앞에서는 싸우지 않을 테니 내가 급히 데려온 겁니다.”

“으음. 그래도 그걸로 둘의 갈등이 해결되진 않아.”

“누가 해결한다고 했습니까? 대판 싸워서 해결될 문제 같으면 내가 먼저 두 사람에게 무기를 쥐어주고 당장 상대를 토막 내보라고 떠밀겠지만, 어차피 지금 두 사람 사이를 보면 감정싸움으로 흐를 게 뻔하잖습니까. 성과라고는 전혀 없는. 그럴 바엔 아이들을 데려와서 당장의 순간을 넘기는 게 낫죠. 하루 정도 지나면 둘도 어느 정도 머리가 식을 테니까요.”

맥스는 두 아이를 쳐다봤다. 반짝거리는 두 쌍의 눈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맥스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용병의 어깨를 두드렸다.

“알았어. 데리고 가 봐.”

“알겠습니다, 부단장!”

그리고 용병은 아이들의 등에 손을 가져다 댔다.

“자, 그럼 이제 아빠를 만나러 가자.”

“응! 맥스 아저씨 안녕!”

“안녕!”

두 아이가 맥스에게 손을 흔든 후 용병 캠프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용병도 지크와 맥스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아이들을 따라갔다.

맥스는 아이들이 캠프 안으로 완전히 모습을 감출 때까지 그 모습을 바라봤다.

“실례했습니다. 안내를 자처했으면서 지크 님을 기다리게 했군요.”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용병 캠프에 아이들이라니, 특이하군요.”

“어울리지 않죠?”

“솔직히 그렇습니다.”

맥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단장님과 부단장의 자식들입니다.”

대화에서 대충은 예상했던 일이다. 둘은 다시 피알루의 성문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남자아이가 단장님의 자식이고, 여자아이가 닉 부단장의 자식이죠.”

“아버지들과는 달리 둘은 꽤 친해 보이더군요. 다행입니다. 모쪼록 아이들은 밝게 자라야죠. 싸움이야 어른이 되면 싫어도 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맥스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처음부터 둘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죠. ‘늑대의 송곳니’라는 용병단의 시작은 그 둘이었으니까요. 저는 나중에 용병단의 규모가 커지며 새로 지위를 받은 쪽입니다.”

그러며 맥스는 용병단의 사정을 말하기 시작했다.

외부인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누군가에 한탄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지크의 지금 신분이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인 것도 그의 입이 가벼워지는 데 한몫했다.

“두 사람 다 실력이 있는 편이고, 특히 단장님의 실력은 무시무시합니다. 웬만한 기사들은 한주먹 거리도 안 될 거예요.”

‘그건 그렇지.’

실력자들이 득시글거리던 지크 브레이브의 동료에도 끼어 있었고, 세상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세 마왕 중 한 명일 거라는 추측도 하고 있으니까.

“닉 부단장도 단장님만큼은 아니지만 실력이 꽤 출중한 데다가 용병단의 살림을 꾸려가는 능력이 탁월했고 말입니다.”

‘단장은 무력을, 부단장은 내정을 담당한다라. 밸런스도 좋군.’

아마 그것이 ‘늑대의 송곳니’를 500의 인원수를 가진 대용병단으로 키운 것이리라.

“게다가 두 사람의 사이도 각별했죠. 서로가 비슷한 사정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아이 말입니까?”

“네. 둘 다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얻고 비슷한 시기에 아내를 잃었죠. 한데, 배운 거라곤 칼질뿐인 두 사람이 어디서 뭘 하겠습니까. 게다가 새장가를 드는 것도,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도 내키지 않아서 그냥 아이를 데리고 용병 일을 시작한 거죠.”

“터무니없는 것 아닙니까?”

“터무니없습니다! 솔직히 이 용병단에 합류했을 때는 어이가 없었다니까요! 아이를 떡 하니 데리고 다니는 용병단이라니. 아이 교육에도 분명 안 좋을 거라고요!”

그 이후, 맥스는 한동안 구시렁거리며 틸과 닉에 대한 험담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상대를 정말로 싫어해서 하는 험담은 아니었다. 그건 가족의 사정을 걱정해야 하는 신세한탄에 가까웠다.

‘틸과 닉에 대한 정이 상당하군.’

한데 그런 용병단이 지금은 왜 이 지경이 된 걸까. 답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단장님과 부단장의 의견에 차이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맥스의 눈이 우울하게 빛났다.

* * *

지크가 떠나간 후, 틸과 닉은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무거운 공기가 천막 안을 휘몰아쳤다.

누가 먼저 입을 여는 즉시, 서로에 대한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두 명의 작은 기척이 천막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둘의 기세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아빠!”

“아빠다!”

윌터와 엘리가 순식간에 천막 안을 가로질러 각자의 아버지 품으로 뛰어들었다.

“어이쿠!”

“이런! 조심해야지!”

각자의 아버지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것도 잠시. 윌터와 엘리의 시선이 ‘친구의 아빠’에게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닉 아저씨!”

“안녕하세요, 틸 아저씨!”

악감정이 있는 상대의 자식이다. 아무리 아이라지만 과연 좋은 눈으로 아이를 대할까 걱정이 될 만하다.

그러나 틸과 닉은 한껏 미소를 지은 채 상대의 아이의 인사를 받았다.

“오냐, 윌터. 오늘도 씩씩하게 지냈지?”

“그래, 엘리. 나중에 아저씨랑 같이 맛있는 것이나 먹으러 가자꾸나.”

방금까지 전장에서 만난 적처럼 상대를 대하던 용병은 어디로 가고 둘은 자식을 가진 아버지, 아저씨가 되어 아이들을 대했다. 그 모습을 보고 윌터, 엘리를 데려온 용병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당장의 불은 껐다. 이제 아이들이 떠난다 해도 커다란 다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틸과 닉은 잠시 자식들과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시간인 터라 아이들은 금방 졸려 했다.

아이들이 완전히 잠에 취하기 전, 둘은 얼른 부하를 시켜 아이들을 도시 안 숙소로 들여보냈다.

부하의 의도를 알아챈 터라 아이들을 보내기 전에 부하를 한 번 노려봐주긴 했지만, 그 부하도 둘 밑에서 오랫동안 굴러먹던 노련한 자였기에 휘파람 한 번으로 둘의 매서운 시선을 끊어내고 아이들을 데리고 도시로 돌아갔다.

“하여간 저 녀석은 정말….”

닉이 한숨을 내쉬며 아이들과 같이 나간 부하를 향해 구시렁거렸다. 틸도 같은 심정이었다.

“저거 분명히 일부러 그런 걸 거다.”

“동감이야.”

공식적으로는 ‘늑대의 송곳니’의 단장과 부단장이지만, 사적으로는 친구 사이인 둘은 둘만 있을 때는 말을 놓았다.

물론 지금 관계는 친구라고 부르기에 애매해졌긴 하지만.

“아, 의욕이 떨어졌어. 나는 그만 일어나마.”

닉이 일어나 천막 밖으로 걸어 나갔다. 틸도 그와 비슷한 느낌이라 싸움을 하기 싫었다. 그러나 그는 단장으로서 할 말은 해야 했다.

“오늘 일은 꼭 해결해야 할 거야.”

닉이 우뚝 멈췄다.

“오늘은 의욕이 떨어졌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나?”

“네 의욕만으로 용병단의 일을 처리할 순 없지. 내가 말하건대 통제가 되지 않는 부하는 필요 없어. 계속 이런 일이 생긴다면 저 녀석들을 내보낼 거다.”

닉이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틸을 쳐다봤다. 아니, 노려봤다.

“이봐, 단장.”

둘만이 있음에도 이름이 아닌 직위를 부른다.

“우리는 용병이야. 대체 언제까지 그딴 기사 놈들도 하지 않을 딱딱한 삶을 살 거야? 저런 충돌 정도야 용병이라면 언제나 있는 것들이야. 새로 들어온 놈들이 불성실하긴 하지만, 실력은 충분한 놈들이고. 언제 용병이란 직업이 평소의 행실까지 따지는 직업이 된 거지? 시킨 일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 시킨 일을 하는데 문제가 생기고 있잖아.”

“저런 것들은 다른 용병들도 일으켜. 고용주들도 저 정도는 예상 범위 안에 두고 용병을 고용한다고!”

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 사납게 마주쳤다.

“…그만두자. 아이들 봐서 좋은 기분 다 잡치겠다. 너도 그럴 거 아니냐.”

그렇게 말하며 닉은 다시 몸을 돌렸다. 그의 뒤로 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아버지가 되지 말자. 우리가 ‘늑대의 송곳니’를 창단하며 맹세했던 말이다, 닉.”

“‘…부끄러운 아버지가 되지 말자’인가. 그래, 그랬지.”

닉이 조금 아련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다음 이어진 말은 아련함이 아닌, 그 어떤 굳건한 마음가짐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말이야, 틸. 자기가 부끄러워진다고 해도 자식에게 더 많은 걸 해주고 싶은 것 또한 아버지인 법이야. 용병단이 커지면 더 많은 의뢰를 받을 수 있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어. 그러면 자식에게 더 많은 걸 해줄 수 있지.”

그리고 닉은 천막을 나갔다.

그렇게 둘의 다툼은 오늘도 성과 없이 끝났다. 그저 어느 순간부터 갈라진 두 사람의 의견이 또다시 평행선을 내달렸을 뿐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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