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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386화 (386/628)

제386화

만약 그 사건에 대해 언급하며 시비를 건다면, 매타작을 해서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할 생각이 만만이었던 지크는 조금 김이 샜다.

“이미 끝난 일이고 사죄도 받았습니다. 더 이상 사죄를 받을 일은 아니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지크는 맥스를 묘하게 쳐다보다가 다른 용병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전장을 대충 정리한 용병들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자신들의 부단장이 고개를 숙이고 있고 그 상대는 자업자득이라지만 그들 동료를 교수대로 보낸 자다.

불쾌한 눈빛 정도는 보일 만도 하건만 그들은 묵묵히 서 있었다. 마치 지크에게 그들의 부단장이 고개를 숙이는 게 당연하다는 모습이었다.

지금껏 만난 ‘늑대의 송곳니’ 일원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호기심이 일었다.

조금 ‘늑대의 송곳니’에 대한 정보를 알아 볼 필요성이 느껴졌다.

“솔직히 놀랐습니다.”

지크가 운을 뗐다.

“‘늑대의 송곳니’는 굉장히 제멋대로고 폭력적인 용병단이라고 느꼈습니다만, 여러분들의 태도를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군요.”

“그렇게 생각하셨어도 어쩔 수 없죠. 당하신 게 있으니 말입니다.”

맥스가 씁쓸하게 말했다.

“아뇨. 그때의 사건 때문만이 아닙니다. 오늘도 순찰을 하는데 ‘늑대의 송곳니’의 일원이 상행과 충돌하는 걸 봤거든요.”

“…그 이야기, 자세히 좀 해주실 수 있습니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크는 오늘 목격했던 바를 설명했다.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맥스의 얼굴이 일그러져갔다.

“그 개자식들이…!”

맥스가 이를 뿌득 갈았다.

“다시 한번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드렸군요.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이번에 시비가 붙은 건 제가 아니니까요.”

“네, 그 상행분들도 만난다면 사과를 드려야겠죠.”

정말 이상했다. 아무리 성격은 사람마다 다르다지만 그래도 같은 용병단 내에 있는 용병들의 성향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단 말인가.

지크는 슬쩍 질문을 던졌다.

“맥스 씨는 제가 본 다른 ‘늑대의 송곳니’의 일원들과는 다르군요. 여기 있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고요. 뭔가 이유가 있습니까?”

맥스가 크게 한숨을 쉰다. 뭔가 사연이 있는 게 분명하다. 지크는 맥스의 말을 기다렸다.

“그 녀석들은 나중에 들어온 녀석들입니다.”

“나중에요?”

“이런 말을 하면 변명같이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저희 용병단은 원래 철저하게 신뢰와 실적을 바탕으로 움직여 왔습니다. 다른 용병들에게 주제 모르는 기사 지망생들이라고 비아냥을 받을 정도였죠. 하지만 상관없었습니다. 저희도 저희가 다른 용병과 다르다는 걸 긍지로 삼았었으니까요.”

“맥스 씨와 지금 여기 있는 용병분들 같은 사람들이 ‘늑대의 송곳니’의 원년 멤버라고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바로 그겁니다!”

자신의 말이 제대로 전달되고 있다는 기쁨 때문인지 맥스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그 녀석들은 용병단의 규모를 확장하면서 새로 들어온 녀석들입니다! 아무리 용병단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라지만 그런 기본적인 인격조차 떨어지는 것들을…!”

흥분해 소리를 치던 맥스가 급히 흥분을 추슬렀다.

“죄송합니다. 못 볼 꼴을 보여드렸군요.”

“괜찮습니다.”

“어쨌든 그놈들만 보고 저희 용병단을 평가하지 말아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원래의 ‘늑대의 송곳니’는 그런 곳이 아니니까요.”

‘예전이 어땠든 지금은 다르지 않나’ 같은 말을 지크는 하지 않았다. 굳이 맥스의 신경을 긁을 이유가 없었다. 지금까지 본 그는 적어도 악당은 아닌 것이다. 인성질을 할 대상이 아니었다.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누고 지크 일행은 용병들과 헤어졌다.

“어떻게 생각해?”

라일라가 물어 왔다. 대상이 뭔가는 말할 것도 없었다.

“부단장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내부의 알력이 심하겠어.”

“그게 그에게 악영향을 끼친 거려나?”

주변에 제자들이 있는 터라 라일라는 애매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알아듣기 어렵진 않았다.

“가능성은 충분하지.”

“그럼 저 사람과 용병 단장이 내부에서 충돌하는 건가?”

“그럴 수도 있지만, 네가 본 틸은 그런 사람이었냐?”

라일라는 예전에 잠깐 본 틸을 떠올렸다.

“잠깐 본 거라 확신을 할 순 없지만, 오히려 저 맥스란 사람과 같은 부류인 것 같았어.”

“그렇다면 알력을 일으키는 전혀 다른 사람이 있다 생각하는 편이 더 자연스러울 거야.”

“단장과 부단장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도 알력을 일으킬 수 있다고?”

“500명쯤 되면 여러 가지 의견이 튀어나오는 법이니까. 아무리 단장과 부단장이 같은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모든 구성원들의 의견을 짓밟으면서 갈 수는 없어. 게다가 그 알력을 일으키는 사람의 지위가 둘과 비슷하다면 말할 것도 없지.”

지크는 피알루가 있는 방향을 쳐다봤다. 저 멀리 피알루의 성벽이 흐릿하게 보인다. 그 아래에 ‘늑대의 송곳니’의 캠프가 있을 것이다.

“역시 한번 방문을 해봐야겠어.”

* * *

지크는 결정을 내린 바로 그날 저녁, ‘늑대의 송곳니’의 캠프를 방문했다.

신분을 밝히자 그는 어렵지 않게 틸에게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지크는 캠프 안을 간략히 훑었다. 성벽 바로 아래에 캠프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캠프의 방어 준비는 꽤 충실하게 갖춰져 있었다.

곳곳에 방벽이 설치되어 있고 천막의 위치도 교묘하게 침입자의 시야를 가리는 식으로 쳐져 있다.

천으로 만든 천막이라 쉽게 부서질 테지만,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저런 사소한 것의 차이가 목숨 한둘 정도는 건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캠프의 모든 곳이 그렇게 철저한 건 또 아니었다.

‘저기는 좀 허술한데.’

천막도 방벽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설치되어 있긴 하지만 묘하게 대충했다는 티가 났다.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목숨 한둘 정도를 살려줄 걸, 잘해야 하나 정도밖에 살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캠프를 살피던 지크는 곧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캠프가 두 쪽으로 갈렸군.’

한쪽은 방벽도 천막도 철저하게 쳐져 있지만, 한쪽은 허술함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캠프를 돌아다니는 용병들도 마찬가지. 방벽, 천막을 철저하게 친 쪽은 무기를 정비하며 다음 날 임무를 준비하는 티가 뚜렷하지만, 허술하게 친 쪽은 술판을 벌이거나 건들거리며 돌아다니는 등, 다음 날 임무를 나가야 하는 자들이 맞는지 의문일 정도로 태만했다.

하지만 마지막 문제에 비하면, 앞의 것들은 애교에 불과했다.

짧은 시간 본 것뿐이지만, 지크는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두 집단 사이에 심한 불화가 있다는 것을.

서로 좋지 않게 생각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거의 적의에 가까운 감정이 서로에게 향하고 있었다.

언제라도 등을 맞대야 할 동료끼리 적의에 가까운 감정을 갖고 있다?

‘실력은 제법이다만 계기만 있다면 쉽게 와해되겠어.’

지크는 ‘늑대의 송곳니’의 평가를 하염없이 밑바닥으로 처박았다.

“여깁니다.”

안내를 하던 용병이 커다란 천막 앞으로 지크를 안내했다. 천막 안쪽으로 몇 명의 인기척이 느껴진다.

안내를 한 용병이 천막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인 지크 님이 오셨습니다!”

“들어오시라고 해!”

예전에 들어봤던 틸의 목소리다. 용병이 천막을 가리켰다.

“들어가시죠.”

지크는 천막 입구를 가리는 천을 손으로 들어 올린 후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보인 건 입구 맞은편에 앉아 있는 틸이다. 그는 뭔가 골치 아픈 일이 있는 듯 머리에 손을 갖다 대고 있었다.

아마 지크 자신의 방문도 그가 골치를 썩게 만드는 일 중 하나가 아닐까.

틸의 옆으로는 낮에 봤던 맥스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맞은편으로 처음 본 사람이 앉아 있었다.

단장, 부단장과 함께 앉아 있는 것을 보니, 아마 그도 이 용병단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인 것으로 추측됐다.

“어서 오십시오.”

틸이 자리에서 일어나 지크를 맞이했다. 맥스와 처음 본 이도 몸을 일으켰다.

“늦은 시간에 방문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한데 무슨 일로 방문을 하신 겁니까?”

예의는 차리지만 이런 직설적인 면은 분명 용병다웠다. 지크도 이쪽이 더 편했다.

“혹시 오늘 있었던 일을 들으셨습니까?”

그러며 지크가 맥스를 슬쩍 쳐다봤다. 틸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니 맥스에게서 보고를 들은 모양이었다.

“저희 용병단과 상행이 충돌한 것을 말씀하시는 거겠죠?”

“그렇습니다.”

“또다시 불미스러운 일을 보여드려….”

일단 사과를 하려던 틸이었지만 그의 말은 옆에서 끼어든 사람에 의해 끊겼다.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께서 참견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만.”

“어이!”

틸이 급하게 말리려 들었지만 말을 한 사람은 자신의 말을 번복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단장. 약간의 다툼 정도는 용병들 사이에서는 흔한 일일 텐데요. 칼부림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누군가 장애를 갖게 된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일은 우리와 다툼이 있던 상인, 용병들과 알아서 할 일이지,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께서 참견할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는 지크를 향해 말했다.

“고귀하신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께서는 이런 일이 무척 불미스럽게 느껴지실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건 이 바닥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저희들의 방식도 존중해주시죠.”

말을 끝낸 그는 당당하게 지크와 눈을 맞췄다. 자신에게 꿀리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모습이다.

“이 분은 누구십니까?”

“…부단장인 닉입니다.”

닉을 서늘하게 노려보며 틸이 대답했다. 맥스 외의 다른 부단장인 모양이었다. 지크는 고개를 끄덕이고 닉을 향해 입을 열었다.

“좋아요, 닉 씨. 오늘 일어난 일이 용병들끼리의 일이며 제가 참견할 바가 아니라고 하셨는데. 맞습니다. 저도 동의해요. 제가 끼어들어 크게 만들 일은 아니죠. 저도 용병들의 생리를 전혀 모르는 건 아니니까요.”

지크가 동의하자 닉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지크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얼마 전, 상행을 유인해 상인들을 살해하고, 재물들을 가로챈 용병단의 일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틸, 맥스, 닉 누구 할 것 없이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사건은 ‘늑대의 송곳니’ 그 누구에게도 달가운 것이 아니었다.

“보통 그 정도면 아무리 거친 용병들이라도 얼마 정도는 눈치를 보는 편인데, ‘늑대의 송곳니’의 용병들은 바로 사고를 치더군요.”

닉이 다시 한번 말을 하려 했지만 지크는 손을 내저어 말을 막았다.

“좋아요. 용병 바닥의 일에 대해 참견하기 싫어한다면 참견하지 않겠습니다. 저도 거기까지 고지식하게 ‘옳다, 그르다’ 잣대를 들이대고 싶지 않으니까요. 카르위먼에서 명예 성기사로 임명을 받았습니다만, 어디까지나 ‘명예’입니다. 정식 성기사는 아니에요. 정식 성기사 분들이 용납 못 할 일도, 저는 어느 정도 용납하는 게 가능합니다.”

실상은 성기사는커녕 일반인들조차 따라가지 못할 인성질을 하는 게 지크지만 당연히 그런 말은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저도 이번 ‘늑대의 송곳니’의 행위에 대해서는 생각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보통 용병이라면 눈치를 볼 만한 기간에도 대놓고 주변과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잖습니까. 비상 시기라 웬만한 문제는 눈을 감아준다고는 하지만 자칫하다가는 또 선을 넘지 않을까 우려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서릿발 같은 말을 날리던 지크가 갑자기 빙긋 웃었다.

“이런, 분위기가 너무 과열됐군요. 저도 ‘늑대의 송곳니’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할 생각은 없습니다. 닉 씨가 말씀하셨듯 용병에게는 용병들만의 생리가 있을 테니까요. 저는 그저 조심스러운 충고를 건네드리러 온 겁니다. 조금만 더 조심해주셨으면 해서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닉 씨?”

“…잘 알겠습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닉이 대답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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