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5화
용병들의 숫자는 대략 서른 정도. 모두 말을 타고 있는 것이 익숙한 모습이다.
‘‘늑대의 송곳니’ 녀석들인가?’
예전에 봤던 차림새와 비슷한 것이 아마도 그럴 것이다. 용병들은 제멋대로인 만큼이나 복장도 제각각이다. 용병단 중에서도 저렇게, 조금이나마 통일성을 갖추려 노력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용병들은 웬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마차 세 대에 호위로 보이는 용병까지 대동한 것이, 그럭저럭 규모 있는 상행으로 보였다. 하지만 서른 정도 되는 인원에 말까지 탄 용병들과 대적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상행의 대표로 보이는 자와 용병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니, 그건 대화가 아니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을 대화로 인식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는 거리를 두는 게 좋으리라.
“다투는 것 같은데?”
라일라도 지크와 같은 감상인 모양이었다. 그녀가 지크에게 고개를 돌렸다.
“뭐 때문에 다투는 거야?”
지크의 좋은 귀라면 이 정도 거리에서도 뭐라고 다투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길 때문에 다투는 모양이야. 용병들이 순찰을 해야 하는데 상인들이 조금 늦게 비켜준 것 같아.”
“고작 그것 때문에 저렇게 싸운다고?”
멀리서 봐도 두 집단의 분위기는 보통 안 좋은 게 아니었다. 세력이 큰 용병 쪽은 수틀리면 당장 칼이라도 뺄 것 같다.
“원래 전쟁 중에서도 ‘고작 그깟 걸로?’ 같은 이유로 일어난 것들이 많은 법이야. 싸움이란 건 대부분 감정이 격해져서 일어나거든. 그쯤 되면 이유 따위야 사소한 게 되는 법이지.”
그렇게 말한 지크가 용병들을 바라봤다.
“뭐, 저 상황은 아무리 생각해도 용병들 쪽에서 시비를 건 것 같지만.”
“제 동료들이 상행들을 건드려서 사형당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시비를 걸어?”
“그러게 말야. 원래 용병 놈들이 뒷일 생각 안 하고 행동하는 거야 흔한 일이지만, 그래도 그런 큰일 이후라면 며칠 정도 눈치를 보긴 하는데. 아무래도 저 녀석들은 생각 이상의 또라이들인 모양이다. 눈치를 본다는 개념조차 없는 것들 말이야.”
지크의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용병과 상인 호위들이 맞붙었다.
다행히 둘 다 검을 뽑진 않았다. 거기까지 이성을 잃진 않은 모양이다. ‘늑대의 송곳니’는 말에서도 내렸다.
하지만 둘 다 칼밥을 먹는 인간들이다. 주먹질도 상당히 살벌했다.
“보고만 있을 거야?”
“생각 같아서는 그러고 싶지만, 그러면 안 되겠지.”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건 나중이 될 테지만, 일단은 용사 노릇을 한다고 정한 것이다.
지크는 가볍게 발을 굴렀다. 그의 신형이 쏜살같이 쏘아졌다. 한창 패싸움이 일어나는 곳 옆에 내려앉은 지크가 외쳤다.
“그만!”
마력을 가득 실은 지크의 고함이 주변에 쩌렁쩌렁 울렸다. 사정없이 휘둘러지던 주먹질이 멈췄다. 싸움을 하던 사람들이 모두 지크를 바라봤다.
그들의 몰골은 가관이었다. 입가나 코가 터져 피를 흘리는 사람은 흔하고, 한쪽 눈두덩이가 시퍼렇게 부어오른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죽거나 중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혈기를 참지 못할 거면 다른 데 쏟아라. 몬스터가 횡행하는 이런 곳에서 어쭙잖게 주먹질하지 말고.”
“너는 뭐야!”
용병 한 명이 큰소리를 쳤다.
“‘늑대의 송곳니’ 용병단이지?”
“그래!”
지크의 예상이 맞았다.
“네놈들과 같이 도시 방위를 위해 고용된 사람이다.”
그러면서 지크는 혀를 찼다.
“몬스터를 상대해야 할 놈들이 지켜야 할 상행과 난투극을 벌이는 꼴이라니.”
“뭐야, 이 새꺄?”
그가 고함을 쳤다. 흉측한 얼굴이 일그러지며 더욱 위협적인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지크에겐 동네 뒷산에 사는 개구리 얼굴만큼이나 의미 없는 일이었다.
“두 쪽 다 별로 다친 덴 없는 것 같으니까 이쯤 하고 끝내라. 하려면 도시 안에서 계속하든지.”
터지고 깨진 모습이 역력하지만, 용병들 사이에서 저 정도 상처는 상처도 아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갑자기 나타난 지크의 명령을 들으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게 거친 용병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네놈이 뭔데 이래라저래라 명령질…!”
후웅!
씩씩대며 지크에게 다가오던 용병이 우뚝 멈췄다. 어느샌가 자신의 목 바로 아래 드리워져 있는 지크의 손날 때문이었다. 반응을 하긴커녕 지크의 움직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만약 이게 칼이었다면….’
용병의 등허리가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다른 용병들도 얼어붙었다. 방금 전의 활화산 같은 분노가 거짓말 같았다.
“이 정도면 네놈들에게 ‘고이 네 할 일이나 해라’ 정도는 말할 수 있겠지?”
용병은 겁먹은 눈초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크가 손날을 치우자 용병은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자신이 한동안 숨조차 쉬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고작 목 아래 손날이 닿았다는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상대의 무형의 압박이 너무도 거대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체 누구지?’
용병은 눈치를 보며 힐끗힐끗 지크와 지크의 일행을 살폈다.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지크 일행의 인상착의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카,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
“동료의 소문을 들었나 보군.”
지크가 부정하지 않자 용병은 더욱 긴장했다.
“네놈들 동료들처럼 교수대에 목이 걸리고 싶지 않다면 조금쯤은 얌전하게 지내는 게 좋지 않을까? 이렇게 네놈들이 지켜야 할 사람들과 다투지 말고 말이야.”
“…가자!”
용병이 거칠게 몸을 돌리며 외쳤다. 다른 용병들도 흘린 피를 손으로 대충 닦아내고는 하나둘 말 위에 올랐다. 곧 그들은 가도 너머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기 전, 하나같이 고개를 돌려 지크와 일행을 노려봤다.
마치 절대 그 얼굴을 잊지 않겠다는 듯이.
물론 지크는 그 모습을 보며 공포심을 느끼긴커녕, 꼬리 말고 도망치는 것들이 자존심까지 챙긴다며 비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무척이나 대견하게 생각했다.
‘성질 많이 죽었다, 지크. 저런 놈들도 살려 보내고.’
이제는 제법 용사다워진 것 아니냐며 속으로 낄낄대다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신이 용사다워진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한 것 자체가 소름 끼쳤던 것이다.
‘아, 젠장! 이것 좀 빨리 없애야 하는데….’
용사 노릇을 하려면 용사 칭호를 듣는 데 익숙해져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크는 그게 무척이나 쉽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다.
“그냥 보내도 돼?”
라일라가 지크의 옆으로 와 물었다.
“이런 건 잡아갈 사건이 못 돼. 상행을 습격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시비가 붙은 것뿐이니까. 죽거나 팔다리 날아간 사람도 없고, 무기를 쓰지도 않았으니까. 게다가 도시의 상황이 상황이잖냐. 이런 것까지 일일이 벌을 내리진 못할 거야.”
계획적으로 상행을 납치해 살해한 후, 증거 인멸까지 시도한 저번 애꾸 무리와는 다른 것이다.
“게다가 놈들의 정체도 알고 있으니 불만을 표한다면 상인들이 ‘늑대의 송곳니’ 본진에 가서 하겠지.”
지크의 말처럼 상인들은 부랴부랴 출발 준비를 했고, 호위 용병들도 거나하게 욕을 하고 바닥에 침을 뱉을지언정 ‘늑대의 송곳니’를 쫓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지크 일행에게 상인 두 명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아마도 싸움을 말려준 고마움을 표하려고 오고 있을 터. 겸사겸사 현재 피알루의 상황을 물어볼 요량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기다리며 지크는 슬쩍 ‘늑대의 송곳니’가 향한 쪽을 쳐다봤다. 저 멀리 작아진 그들의 등이 보였다.
‘예상처럼 폭력적인 용병단이 맞는 건가.’
도시에 퍼진 소문과도 일치한다.
‘틸은 그런 용병단의 우두머리로 있다는 건데.’
어쩌면 팀 플랫의 경우처럼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크의 의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흔들렸다.
* * *
콰앙!
트롤의 거대한 주먹이 휘둘러졌다. 하지만 트롤의 공격 대상이었던 용병은 큰 방패를 들어 침착하게 트롤의 주먹을 막아냈다. 트롤의 옆구리에 빈틈이 생겼다.
“지금이다!”
방패를 든 용병 뒤에서 커다란 대검을 든 용병이 튀어나왔다. 그 용병은 트롤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갈랐다.
쿠어어어어!
몬스터가 고통에 비명을 내지른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그 고통에 공감해주고 동정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검에 이어 도끼가 트롤의 목을 노렸다.
크악!
콰직!
트롤이 급히 팔을 들어 올렸다. 날카로운 도끼가 트롤의 팔에 박혔다. 재생력 강한 트롤에게는 별로 의미 있는 상처는 아니다. 하지만 공격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콱!
새로 튀어나온 할버드의 창날이 트롤의 목에 적중했다.
끄륵!
아무리 트롤이라도 목의 상처는 치명상이다. 트롤의 몸에 한순간 힘이 빠졌다. 그때를 노려 대검이 다시 한번 휘둘러졌다.
서걱!
트롤의 목이 높이 솟았다. 머리를 잃은 트롤의 몸이 힘없이 쓰러졌다.
그런 모습은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서너 명씩 조를 이룬 용병들이 몬스터 한 마리씩을 나눠 맡아 철저하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 전문적인 모습은 감탄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었다.
“대단하네.”
그건 라일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감탄성을 흘렸다. 지크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거의 전문적인 군사 집단 같군. 평범한 용병들의 모습은 아니야.”
“저 사람들, 저렇게 집단적으로 움직이지 않아도 충분히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정도로 용병들의 실력은 훌륭했다.
“각자 처리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게 집단으로 움직이지 않을 근거는 되지 않아. 아무리 실력 차이가 나도 재수 없게 눈먼 칼을 맞고 뒤질 수도 있는 게 전투야. 안전한 방법이 있으면 그쪽으로 가는 게 옳지.”
그러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뭐, 나 같은 천재는 해당하지 않는 일이지만.”
“잘났어, 정말.”
둘이 그렇게 잡담을 나누는 사이 전투가 끝났다. 온갖 상처를 입고 나자빠진 몬스터들과는 달리 용병들은 상처 하나 없었다.
전장을 정리하는 그들을 보며 라일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복장을 보니 저 사람들도 ‘늑대의 송곳니’ 같지?”
“그래.”
“자주 만나네.”
“같은 구역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도시의 행정관도 우려를 표했었다.
그때, 용병들의 우두머리인 듯한 사람이 지크 일행에게 다가왔다. 누가 용병 아니랄까 봐 뺨에 있는 두 줄의 흉터가 몹시도 위협적으로 보이는 인상의 사내였다.
혹시 전투를 구경만 한 것에 화를 내는 것이 아닐까.
지금껏 본 ‘늑대의 송곳니’라는 곳의 이미지가 절대 좋지 않다 보니 절로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다가온 사내의 행동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혹시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님과 그 일행분들이십니까?”
사내는 바로 지크 일행을 알아봤다.
지크 일행에 대한 조금의 정보라도 갖고 있다면 알아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마법사를 둘이나 데리고 다니는 파티는 웬만해서는 찾아보기 어려우니까.
“그렇습니다.”
상대가 예의를 갖춰 나오니 지크도 일단 존대로 말을 받았다.
“전 ‘늑대의 송곳니’ 부단장인 맥스라고 합니다.”
자기소개를 한 사내, 맥스가 고개를 숙였다.
“저희 부하가 여러분께 큰 폐를 끼쳤다고 들었습니다. 그에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지크 일행은 놀랐다. 시비를 걸면 걸었지, 설마 이렇게 대놓고 사과를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맥스의 태도를 보면 빈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