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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383화 (383/628)

제383화

그 녀석들을 발견한 건 틸에 대한 정보를 더욱 자세히 얻기 위해 용병단이 머무르고 있는 곳 주변을 둘러보려 할 때였다.

용병단은 원활한 명령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인지 도시를 나가 성벽 아래 캠프를 차려 지내고 있었다. 따라서 용병단 주둔지를 둘러보려면 일단 성문을 나가야 했다.

지크가 성문 쪽으로 걸어갈 때였다.

지크와 그렌의 눈이 마주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마치 사랑하는 상대를 만나는 것처럼 둘은 바로 서로를 알아봤다.

하지만 당연히 거기에 사랑이라는 감정은 없었다. 증오가 넘실거리면 몰라도.

그러나 무시하기에는 서로에게 인연이 꽤 있다. 물론 지크, 그렌 둘 다 가면을 뒤집어쓰고 서로를 염탐하는 사이에 불과했지만.

“어라? 왜 그래, 그렌?”

그렌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던 라라가 지크를 발견했다. 그녀도 지크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렌이 걸음을 떼 지크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지크는 가만히 그를 기다렸다.

“오랜만이군요.”

“그렇군요. 오랜만입니다.”

둘 다 겉으론 싫은 티를 내지 않는다. 서로간의 증오를 알고 있는 라일라가 있다면 둘 다 참 낯짝도 두껍다며 감탄했을 것이다.

둘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몇몇 전투를 같이 한, 하지만 의견 차이로 그다지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지인이라는 거리감으로 상대를 대했다.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지크 님도 데네스트 산맥의 몬스터 이상 사태를 조사하러 오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우연히 이 근처를 지나다가 여기서 일어나는 몬스터 습격에 대해 알게 돼서 말이죠.”

물론 지크가 이곳에 온 이유는 따로 있었지만, 당연히 지크는 말할 생각이 없었다.

그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한 결정이십니다. 같은 카르위먼의 명예 성기사로서 자랑스럽군요.”

“네에, 뭐.”

지크는 그렌의 입바른 말을 대충 흘렸다.

“그런데 일행이 느셨군요.”

그렌의 일행은 지금까지 라라 브라우닝 한 명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두 명이 더 추가되어 있었다.

당연히 회귀 전 동료들은 아니었다.

루벨라는 현재 성녀로서 카르위먼 소속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레오나는 엘프 숲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엘레나는 지크의 동료가 되어 있었다.

원래의 동료 중 세 명이 지크의 영향을 받아 그렌의 동료가 되는 길이 사라졌다.

그 사실에 지크는 무척이나 뿌듯한 보람을 느꼈다.

“네, 새로운 동료를 받았습니다. 이참에 소개를 해드리죠.”

그렌이 먼저 자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일행 한 명을 가리켰다.

“첼시 윈드네입니다. 카르위먼의 신관으로, 성녀 후보에까지 올라갔었죠. 하지만 고맙게도 그 모든 걸 버리고 제 여행에 따라와 주기로 했습니다.”

“첼시 윈드네예요.”

그녀가 지크에게 살짝 목례했다.

그리고 그렌을 보며 미소 지었다.

“예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고맙다는 말씀은 하지 마세요. 저야말로 그렌의 여행에 동참할 수 있어서 기쁘니까요.”

“하하, 역시 첼시는 배려심이 넘친다니까.”

지크는 첼시 윈드네라는 여성을 쳐다봤다.

‘루벨라와 같은 성녀 후보였다라….’

그 말이 맞다면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터다. 카르위먼의 성녀 후보는 아무나 오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예전 루벨라의 고민을 생각하면 요샌 그런 생각도 슬슬 의심이 들지만.’

하지만 지크도 설마 눈앞에 있는 첼시 윈드네가 루벨라의 고민 대상이었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닿지 않았다. 정확히는 거기까지 생각의 가지를 뻗을 이유가 없었다.

그렌이 이번엔 다른 일행을 가리켰다.

“우리 파티의 마법사인 피나 어쿠스입니다.”

“…당신이 지크?”

“그렇습니다.”

“…당신의 일행 중에 스누위크 마탑주의 손녀가 있다고 들었어요.”

“엘레나를 말하는 거라면, 네, 있습니다.”

무뚝뚝한, 어쩌면 차갑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을 상대의 얼굴에 희미한 감정이 어렸다.

그건 분명 경쟁심, 바로 그것이었다.

“마법은 잘 사용하게 됐나요?”

“물론이죠. 굉장한 재능에 뛰어난 스승, 거기에 본인의 노력이 결합됐습니다. 지금은 웬만한 마법사보다도 강할 겁니다.”

“그렇구나. 감사해요.”

엘레나와 뭔가 인연이 있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크는 그 이상 파고들지 않았다. 궁금하다면 나중에 엘레나에게 물으면 된다.

‘대충 구색은 갖춘 모양이군.’

전사 둘에 마법사 하나. 그리고 신관 한 명. 파티 밸런스는 극화력형인 지크 일행보다 오히려 낫다.

‘물론 붙는다고 해도 질 생각은 없지만.’

솔직히 한스, 스녹, 엘레나도 필요도 없다. 지크와 라일라 선에서 정리가 가능한 놈들이다.

하지만 지크는 방심하지 않았다. 뭐니 뭐니 해도 상대는 회귀라는 힘을 휘두르며, 한 번 지크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 녀석인 것이다.

‘하여간 골치 아프게 됐어.’

나무가 있을 것이라 추측되는 윈두르가 가리키는 곳을 찾고, 재난의 마왕으로 추정되는 틸의 주변을 감시해야 하는데 떡 하니 그렌 제너드마저 나타나 버렸다.

사태가 더욱 복잡해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렌의 행동에 눈을 뗄 생각은 없었다.

‘잘됐다고 생각하자고.’

그렌을 감시하면 틸의 마왕화에 대한 단서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지크는 그렌과 그의 양옆에 서 있는 첼시, 피나를 깊은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다 문득 조금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라라 브라우닝.’

지크가 그렌의 동료가 될 세 명을 날려버렸을 때도 꿋꿋이 그렌의 동료로서 존재했던 자. 그녀는 그렌의 뒤쪽에 서 있었다.

‘그다지 표정이 좋질 않군.’

지크는 그녀의 허리춤을 살폈다.

‘검은 버리지 않은 모양이야.’

그렌이 검 대신 방패를 들라고 종용했다고 하던데, 아직까지 뚝심을 지키고 있는 모양이었다.

‘방패를 든 라라 브라우닝도 나쁘진 않지만.’

나쁘지 않다 뿐인가. 회귀 전 마지막 전투 때, 지크의 가공할 공격을 꿋꿋이 받아냈던 그녀다. 그걸 생각하면 방패를 들었을 때 전투 능력도 절대 얕볼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저 여자는 검이 어울려.’

싸우는 걸 몇 번 보진 않았지만 지크는 확신했다.

“브라우닝 씨도 오랜만이군요.”

“네, 오랜만이네요.”

인사를 받긴 하지만 목소리를 보면 역시 지크에 대한 감정이 좋은 편은 아닌 듯 보였다. 그러나 예전에 봤었을 때처럼 적대감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이건 단순히 기운이 없는 것뿐인가?’

이유야 바로 보였다.

‘겉돌고 있군.’

그렌을 포함한 세 명과 라라와의 거리가 희미하게나마 보였다.

파티에 새로운 인물이 들어와 인간관계가 변하는 건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지크는 고작 그런 이유로 그녀가 겉돌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그렌 녀석이 주도해서 따돌리는 건가?’

너무도 설득력이 넘쳐난다. 지크는 속으로 혀를 찼다. 하지만 드러내진 않았다.

아직 자신이 그렌 제너드의 본질을 파악했다는 것을 드러내면 안 된다.

‘뒤통수는 가장 예상하지 못했을 때 쳐야 하니까.’

“그럼 제너드 씨는 앞으로 몬스터 소탕을 하실 겁니까?”

“그래야죠. 도시를 순찰하고 시민들을 보호하며, 웬만하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조사도 해 볼 요량입니다.”

“당신이라면 잘할 수 있겠죠.”

지크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태연히 내뱉었다.

“지크 씨는 어쩌실 겁니까?”

“저도 당신과 비슷합니다.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원인 조사를 해야죠.”

물론 지크는 원인 조사, 정확히 말해 나무의 탐색 쪽에 더 무게를 둘 것이다. 하지만 그걸 말할 필요 따위는 없었다.

“예전처럼 같이 싸우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그렇게 말하며 그렌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우고 조금 딱딱하게 말했다.

“하지만 예전과 같은 상황은 없었으면 합니다.”

컨델 이시드를 괴롭히다 죽인 건을 말함이다.

그렌과 반대로 지크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말했다.

“예전에도 말했다시피, 제게 당신의 생각을 강요하고 싶다면 방법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지크가 등 뒤에 있는 윈두르의 자루를 툭툭 두드렸다.

그렌 일행의 얼굴이 굳었다. 첼시와 피나가 슬쩍 지팡이를 잡았다. 그녀들을 그렌의 손이 막았다.

“괜찮아. 지금 싸울 일은 없으니까.”

“제너드 씨의 말이 맞습니다. 지금 싸울 일은 없죠. 장소도 장소고 이유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 말은 장소가 다르고 이유가 있다면 싸울 수 있다는 소리도 된다. 지크와 제너드 일행 간에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그러나 방금 한 말처럼, 적어도 지크는 지금 싸울 생각이 없었다.

“도시에 막 들어오신 듯한데, 지치신 분들을 너무 오래 잡고 있었던 것 같군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죠. 할 일이 있어서 말이죠.”

그러고는 목을 한 번 까딱이고 그렌 일행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렌의 시선이 지크의 등을 뒤따른다. 지크는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저 사람이 지크인가요?”

첼시가 그렌의 옆에 서며 물었다.

“맞아.”

“분명 루벨라 씨를 도운 분이 저분이라고 했죠?”

“내가 알기론 그래.”

“그럼 우리 카르위먼의 은인이시네요.”

첼시가 가볍게 손을 모으고 눈을 감는다. 그 모습은 마치 카르위먼의 은인의 앞길을 축복해주는 것 같다.

그러나 그녀의 내심은 딴판이었다.

‘저게 그 빌어먹을 놈이었어!’

카르위먼의 성녀를 뽑기 위한 후보들의 대결은 너무도 어이없고 허무하게 끝났다.

애초에 루벨라라는 인물의 능력 자체가 다른 후보들에 비해 너무도 특출난 것이 원인이었다. 그것을 루벨라 특유의 미숙함이 발목을 잡아 그나마 다른 후보들이 버티고 있었던 것.

하지만 지크가 그녀를 성장시키고, 거기에 밸리드의 음모 저지라는 커다란 공까지 안겼다. 그 순간 다른 성녀 후보들이 성녀의 자리에 오를 가능성은 사라졌다.

예상대로 카르위먼의 성녀 자리는 루벨라에게 돌아갔다. 그것도 예상보다 무척이나 빠르게.

하지만 첼시는 인정할 수 없었다.

자신보다 훨씬 능력 있고 뛰어난 루벨라. 그녀는 언제나 첼시의 질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첼시는 능력적으로는 도저히 그녀를 넘을 수 없었다. 때문에 도전한 것이 카르위먼의 성녀다.

성녀 자리를 손에 넣는다면, 루벨라의 위에 설 수 있다면 그녀보다 자신이 위대하다는 확실한 증거가 될 테니까.

하지만 그 목표도 날아갔다. 게다가 과거 성녀를 괴롭힌 전적이 있는 자신이 교단에서 제대로 지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루벨라가 괴롭힘을 폭로한 건 아니지만, 입을 여는 건 언제라도 할 수 있다.

때문에 그녀는 교단을 나왔다. 그리고 지크와는 다른 명예 성기사인 그렌의 파티로 들어갔다.

‘루벨라가 공을 쌓아 성녀 자리를 차지했다면 나도 그러면 돼.’

루벨라와 비견될 만한 공을 쌓은 후, 정치적으로 루벨라를 흔들어 그녀를 성녀 자리에서 끌어내리면 충분히 그녀도 성녀가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그렌 제너드와 인연이 닿은 건 아주 행운이었다.

‘누가 봐도 지크란 인간보다는 이 사람이 성기사에 어울려.’

루벨라를 도왔다는 지크에 대한 정보를, 그녀는 집착하듯이 모았다. 그리고 지크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성기사와는 다르다는 걸 알아냈다.

‘나중에 지크란 작자의 인성을 공론화시킨다면 루벨라를 더 쉽게 끌어내릴 수 있을 거야. 그런 쓰레기에게 도움을 받았으니까.’

문제는 그 쓰레기가 세운 공이 보통 공이 아니라는 것.

어설프게 공론해봤자 그 압도적인 공적에 묻힐 게 뻔했다.

따라서 그녀는 그것보다 더 확실한 공을 세워야 했다.

‘이 사람이라면 가능할 거야.’

첼시는 환하게 웃으며 그렌을 쳐다봤다.

자신을 정당한 자리로 올려줄 진정한 용사를.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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