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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380화 (380/628)

제380화

단 한 방으로 자신에게 덤벼드는 애꾸를 날려버린 지크는 전면을 바라봤다. 다른 용병 놈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자신들의 우두머리가 단 일격에 전투 능력을 상실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들의 행동에 망설임은 없었다.

경험이 많다는 증거다.

하지만 지크와 그들 사이의 실력 차는 고작 경험 좀 많다고 메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녀석들에게 양보할까?’

잠시 제자들을 떠올리는 지크. 하지만 곧 그 생각을 접었다.

‘굳이 양보까지 해야 할 정도로 이놈들이 그 녀석들의 경험에 도움을 줄 것 같진 않군.’

제자들이 경험을 쌓아온 세월은 용병들보다 떨어지겠지만, 그 경험의 질은 이런 허접한 놈들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하나.

‘스트레스나 풀자.’

안 그래도 요새 많은 일들을 겪으며 스트레스가 적잖이 쌓인 상태. 그걸 조금이나마 풀 수 있는 기회다.

때문에 지크는 다른 일행에게 나서지 말라는 신호를 주고는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용병들이 지크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흉흉한 기세를 뿜으며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무기로 다지든가 아니면 말발굽으로 짓밟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깜찍한 녀석들.’

지크가 가볍게 윈두르를 휘둘렀다.

콰아앙!

가장 앞서 달려오던 놈의 무기와 팔이 박살 났다. 그러고는 옆으로 날아가 지면을 뒹굴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주인을 잃은 말이 계속 달려든다. 지크는 몸을 살짝 돌려 말을 피했다. 그리고 다음 용병 놈을 향해 윈두르를 휘둘렀다.

쾅! 쾅! 쾅! 쾅!

연신 폭음이 울린다. 폭음 하나에 정확히 한 명씩. 무기가 박살 나고 팔이 아작 나며 지면에 나뒹굴어 정신을 잃는다.

이 정도면 무슨 빗물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바람에 나뭇잎이 휘날리는 수준의 자연 현상 같을 정도였다.

순식간에 열댓 명의 용병들이 같은 몰골이 됐다.

남은 용병들이 기겁을 해 얼른 말고삐를 돌리려 했다. 도망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지크가 도주를 허용할 리 없었다.

쾅! 쾅! 쾅!

계속해서 폭음이 울린다. 용병들이 말 등에서 휙휙 날아갔다. 전의를 상실한 자들이라도 지크는 자비가 없었다. 집요하리만치 먼저 당한 용병들과 똑같이 무기와 팔 한 짝씩을 작살냈다.

곧 용병들은 모두 정신을 잃은 채 땅바닥에 처박혔다. 그에 비해 말들은 단 하나의 상처도 없었다. 주인을 잃은 그것들은 간간이 투레질을 하며 멀뚱멀뚱 서 있었다.

지크가 윈두르를 다시 등에 멨다. 라일라가 그에게 다가왔다.

“저 녀석들은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그냥 방치해 두…라고 하고는 싶지만.”

지크가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찼다.

“하는 꼴을 보니 이딴 짓을 처음 해본 건 아닌 것 같고. 다른 피해자가 있을 것 같으니 정보를 토하게 만들어야지.”

라일라가 살짝 미소 지으며 지크를 쳐다봤다.

“뭘 그렇게 봐?”

“아니. 정말로 용사 노릇을 제대로 할 생각이 있구나 하고. 예전 같았으면 피해자가 어떻든 죽여 버리거나 방치했을 거잖아.”

지크가 불쾌하게 코를 울렸다. 하지만 라일라의 말을 부정하진 않았다. 그 모습이 웃긴지 라일라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한스! 스녹!”

지크의 부름에 두 사람이 달려왔다.

“저 녀석들 상처나 대충 막은 다음 한군데 모아놔. 심문할 테니까.”

한스와 스녹이 바로 움직였다. 지크의 명령에 따라 용병들을 한곳에 모았다. 그건 어렵지 않았지만 상처를 막는 것이 문제였다.

상처에서는 계속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과다출혈로 죽을 게 뻔했다.

“포션을 사용하는 건 안 되겠죠, 선배?”

“이런 놈들에게 무슨 포션씩이나 사용해. 더 이상 여유도 얼마 없잖아.”

그렇게 말하며 한스가 에스텔레이드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상처 부위를 베어냈다. 지크의 마력에 의해 상처 부위가 아주 걸레가 되어 있던 터라 그 상태로는 어떤 치료든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끄아아악!”

고통에 용병이 의식을 차리고 고래고래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한스든 스녹이든 비명을 무시했다.

“엘레나!”

“네!”

한스의 부름에 엘레나가 달려왔다.

“이 녀석들 상처 좀 지져서 막아줘.”

“알겠어요.”

집을 떠날 때의 엘레나라면 인상을 찌푸리고 주저할 만한 일이었지만, 이미 지크 일행 안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엘레나다. 이제 이런 일 정도는 인상 찌푸리지 않고 할 수 있었다.

“아악! 악! 아아아아악!”

화상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 중 최악의 고통이다. 게다가 지져지는 곳은 잘려나간 팔의 절단면.

당연히 당사자는 성대가 찢어져라 비명을 질러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에 신경 쓰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지크는 가장 먼저 애꾸에게 다가갔다. 상처가 깔끔하게 지져진 그는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하지만 지크는 녀석의 사정을 봐줄 생각이 없었다.

아예 고문이 통하지 않는 로브 놈들과는 달리 이 녀석들은 고통으로 충분히 정보를 끌어낼 수 있다.

지크가 애꾸에게 질문을 던지려 할 때였다.

지크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가 용병들이 등장한 방향을 주시했다.

“왜 그래?”

라일라가 물었다.

“또 몇 놈이 오고 있다.”

“이놈들의 동료 같아?”

“몰라. 하지만 일단 피알루에서 파견한 병력인 건 맞을 거야.”

지크의 말을 듣고 애꾸가 안도했다. 당장 자신이 고문받는다는 결과는 피한 것 같다.

물론 피알루의 병력이 도착하더라도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자신이 한 일을 피알루의 정규군이나 ‘그 인간’이 알게 된다면 곱게 넘어가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눈앞의 인간에게 고문받다가 목숨을 잃게 되는 것보다는 낫다.

도착하는 작자들이 누구든 일단 조사를 위해 도시로 압송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일단 시간을 벌 수 있어. 그 시간 동안 해결책을 찾으면 돼.’

그런 생각을 하며 애꾸는 지크를 노려봤다.

‘이 위기만 벗어난다면 반드시 죽여주마!’

상대가 상상도 못 할 실력자란 건 아주 잘 알게 됐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아무리 실력이 좋은 자라도 다치지 않는 건 아니고 죽지 않는 것도 아니다.

상대가 실력자라도 쓰러뜨릴 방법은 있다. 실제로 그는 자신보다 훨씬 높은 실력자도 거꾸러뜨린 전적이 있다.

물론 아무리 좋게 봐줘도 비열하다는 꼬리표를 떼지 못할 방법이었지만 뭐 어떤가. 세상엔 승자와 패자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애꾸에겐 불행하게도, 지크는 그의 생각 이상으로 막 나가는 인간이었다.

지크가 다시 시선을 애꾸에게 돌렸다. 그 모습에 애꾸는 좀 불안해졌다.

그의 불안감은 정확했다.

콰득!

“끄아아아악!”

지크가 가볍게 애꾸의 정강이를 차자 섬뜩한 소리가 울리며 애꾸가 비명을 질렀다. 지크는 그 모습을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봤다.

“이 짓을 몇 번이나 했냐?”

“으, 으으으….”

고통에 애꾸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물론 지크는 애꾸의 사정을 봐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애꾸의, 잘려나간 후 단면이 지져진 팔을 짓밟았다.

“끄아아아악!”

안 그래도 고통이 심한 절단면이다. 그런 곳을 짓밟혔는데 괜찮을 리가 없다. 거기에 지크는 짓밟는 것으로도 부족한지 발을 움직여 지져진 부위를 짓이겼다.

“끄아악! 악! 끼아아아악!”

“몇 번이나 했냐고.”

지크의 물음에 애꾸는 고개를 들었다. 통증에 그의 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피, 피알루에서 오는 병력이 이걸 본…끄아아아악!”

“그딴 건 네가 걱정할 바가 아니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이 짓을 몇 번이나 했지?”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에 애꾸는 그제야 지크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미친놈.

평범한 사람이라면 새로운 병력이 접근할 시, 그쪽에 신경을 쓰게 마련이다.

접근하는 자들이 애꾸의 동료일 가능성이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지크는 접근하는 자들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애꾸를 고문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도저히 정상적인 판단을 하는 자가 아니다.

애꾸는 덜컥 겁이 들었다. 그게 누구든 새로운 병력이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에 당분간은 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병력이 접근하기도 전에 자신의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네, 네 번! 네 번이야!”

결국 애꾸는 진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들은 어디로 끌고 갔냐?”

“도시 옆에 산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동굴이 있어! 거기로 끌고 갔어!”

애꾸는 감히 거짓말을 할 용기조차 내지 못하고 지크의 말에 순순히 대답했다. 하지만 다음 질문에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일단 물어본다만, 피해자들은 지금 어디 있지?”

“…….”

“뭐, 됐다.”

이번에 지크는 대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물어봤을 뿐, 피해자들의 운명이 어떻게 됐는지는 쉽게 예측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전부 죽었겠지.’

지크가 다음 질문을 하려 할 때였다.

“멈춰라!”

큰 소리가 들려왔다. 피알루에서 파견된 병력이 도착한 것이다. 애꾸의 얼굴이 환해졌다.

드디어 이 끔찍한 고문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러나 도착한 사람을 본 애꾸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지크도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녀석들도 용병이군.’

차림새가 애꾸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어쩌면 애꾸의 동료일지도 모른다.

숫자는 대략 마흔. 애꾸가 이끌고 있던 병력보다 많다.

‘응?’

새로 등장한 용병들을 살피던 지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용병들을 지휘하는 자의 인상이 낯이 익었던 것이다.

‘저자는….’

지크는 어렵지 않게 상대를 알아볼 수 있었다.

‘지크 브레이브의 동료잖아.’

꿈속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라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지크 브레이브의 동료 중 지크가 만나지 않은 유일한 자. 지크가 수줍음 많은 거한이라 칭한 자가 눈앞에 있었다.

그는 사태를 파악하려는 듯 주변을 스윽 훑었다. 그의 시선이 쓰러져 있는 다른 용병들과 애꾸에게 잠시 멈췄다가 애꾸의 앞에 서 있는 지크에게 옮겨갔다.

“너희가 그랬나?”

“뭐, 그렇지.”

거한의 말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지만 지크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거한의 등 뒤에 있던 부하들이 술렁였다. 당장 무기에 손을 올리고는 달려들려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거한이 손을 들어 그들을 말렸다.

하지만 거한도 상당한 분노를 느끼듯 그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

“그 녀석들은 내 부하다. 만약 아무런 이유 없이 그딴 짓을 했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지크는 피식 웃었다. 그에 거한의 기분이 더 나빠진 모양이었다.

“뭐가 웃기지?”

“아니, 부하가 이런 꼴이 됐는데 ‘이유’를 운운하는 게 웃겨서. 물론 댁이 냉정하고 침착한 성향이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이놈들이 하던 짓거리를 보면 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뭐야.”

지크가 유들유들하게 말했다.

“이 녀석들, 당신 입장에서도 골칫덩이구나? 팔 하나가 잘리고 고문을 받는 모습을 보고도, 혹시 이 녀석이 원인을 제공했을 수도 있다고 판단할 만큼 말이야.”

“…….”

거한은 아무 말이 없었다. 하지만 거한 뒤에 있는 용병들의 인상이 찡그려지는 모습을 보니, 지크의 말에 동의하는 모양이었다.

“뭐, 좋아. 칼부림 대신 대화를 원하는데 대답하지 못할 것도 없지. 우리가 가도에 있는, 몬스터에게 습격당한 사람들의 시체를 묻어주고 있었는데 이놈들이 갑자기 나타나 그러더군. 우리가 수상하다고. 상행을 습격한 후 증거를 인멸하는 것 같다고 말이야. 그리고 이런 말도 했어. 자신들은 피알루에서 수상한 자들을 조사할 수 있는 권리를 받았다고 말이야. 그래서 묻는데, 당신들은 정말 그런 권리를 받았나?”

거한의 얼굴이 확연히 구겨지는 걸 보고 지크가 휘파람을 불었다.

“역시 거짓말이군.”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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