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372화 (372/628)

제372화

‘뭐야!’

떨어지는 석상의 파편들을 보며 마릴린은 경악했다. 하지만 놀라 날뛰는 감정과는 다르게 머리로는 냉철하게 지금의 상황을 파악했다.

‘마치 라일라의 마법을 검에 휘감은 후에 자신의 마력을 덧대서 더욱 강하게 쏘아 보내는 것 같은 모습이야.’

그때, 마릴린의 뇌리에 스치는 정보 하나가 있었다.

‘마력 덧대기!’

주인이 알려줬던 지크의 기술 중 하나.

동료가 사용한 마법을 이용, 마법에 자신의 마력을 덧대어 위력을 더욱 증폭시켜 날리는 것이다.

위력 증폭도 위력 증폭이지만 마법 대미지와 함께 검기의 대미지도 들어가는 데다가, 가장 놀라운 점은 지크의 마력에 반응한 마법의 성질이 살짝 바뀐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마법에 한해서만은 완전한 내성을 자랑하는 석상의 파괴였다.

마릴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석상이 파괴됐다든가 자신의 뜻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든가 하는 문제 때문은 아니었다.

‘저 기술은 원래 나랑 사용하는 기술인데!’

보통 지크와 측근들이 모두 출동하는 커다란 싸움에서 최전방으로 나가 희희낙락하며 다른 이들을 학살하는 다른 세 측근들과는 다르게 마릴린은 언제나 지크와 꼭 붙어서 움직였다.

그때 종종 사용하던 기술이 바로 저 마력 덧대기였다. 저주에 덧씌워진 지크의 검기의 폭풍은 주변의 모든 걸 썰어버렸고 그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로 저주를 퍼뜨렸다고 했다.

다른 세 사람이야 지크와 협력하기보다는 직접 상대를 쳐 죽이는 걸 선호했고, 세 사람의 능력이 워낙에 특이하다 보니 마력 덧대기가 불가능하기도 해 어떻게 보면 마력 덧대기는 마릴린과만 사용한 일종의 특수 기술에 가까웠다.

한데, 그 기술을 라일라와 사용하다니.

그녀가 질투에 눈이 뒤집히는 것도 당연했다.

“훌륭한 마력 덧대기네요. 한데, 그건 저와만 사용하는 기술이 아니던가요?”

전투 중이라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크도 전투 중 말이 많은 사람인지라 쉽게 대답해줬다.

“회귀 전엔 그랬지. 하지만 앞으로 그럴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을 거다.”

“전혀요. 시간이 돌려지고 다시 지크 님은 저와만 그 기술을 사용하실 거예요.”

“자기 마음대로 희망을 품고 착각을 하는 것에 나는 상관하지 않아. 난 무척이나 관대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 착각에 나를 억지로 끼워 넣겠다면 나도 나름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만. 감당할 수 있겠냐?”

“적어도 지금은 가능할 것 같네요.”

“뭐, 열심히 노력해 봐라.”

그러며 지크는 다시 석상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이번엔 불꽃이었다. 지크의 검을 거친 커다란 불꽃이 석상에 직격해 폭발했다. 석상의 머리가 통째로 날아갔다.

다시 한번 마릴린의 눈에서 질투의 불꽃이 확 튀었다. 하지만 그녀는 감정을 억누른 채 머리를 돌렸다.

‘그런데 벌써 지크 님이 마력 덧대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환상적이라고 불릴 지크의 마력제어가 없다면 시도조차 엄두를 못 내는 기술.

하지만 그건 초월적인 마력제어 하나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상당한 양의 마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크 님의 마력이 벌써 그 정도까지 깨어났단 말이야?’

지크에 대해 관심이 많은 조직인 만큼 그에 대해 상당한 조사가 진행되어 있었다. 당연히 지크의 힘은 최대의 관심사 중 하나.

그 조사에서 나온 하나의 결과가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마력을 해방하기 시작한다 하더라도 지크의 마력은 절대로 스물다섯 이전까지 전부 해방될 수 없다고.

그 정도로 지크의 마력은 무지막지했다.

그리고 대략적으로 지크의 마력 해방 가능 선을 나이대마다 정리해 놓기도 했다.

때문에 조직은 지크가 비올루윈에서 막대한 힘을 휘둘렀음을 알고도 지크가 마력을 모두 해방했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아마도 뭔가의 도움으로 일시적으로 어떤 힘을 휘둘렀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후 지크의 힘은 상식으로 납득 가능한 선으로 돌아갔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적어도 지금 지크 님의 나이대에서 마력 덧대기를 사용할 정도로 마력을 해방하는 건 불가능해.’

아무리 지크가 회귀를 경험했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게다가 정말로 갓 태어난 아이 때로 돌아가 마력을 쌓아 놓은 것도 아닐 터다.

‘스틸월 백작가에 있을 때 지크 님의 성격은 지크 스틸월 그 자체라고 했었어.’

하지만 백작가에서 나올 때 즈음 성격이 변해 있었다고 했다.

조직에서는 그 사이에 그들도 모르는 어떤 변수가 있었을 거라고 추측하고 백작가 주변을 뒤지고 있었다.

용사 병신이 이젠 충분하다며 정보 단체를 없앤 터라 시일이 오래 걸리고 있긴 하지만 결국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귀라는 변수는 조직에서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회귀란 자신들만이 소유한 것. 그 고정관념이 너무 컸다.

‘고정관념이라고 폄하할 것까지도 없지.’

그들이 회귀한 숫자는, 마릴린 자신도 정확히 알진 못하지만 주인의 말을 들어보면 굉장히 많다는 건 알 수 있다.

그동안 전혀 보이지 않았던 또 다른 회귀 능력이 갑자기 튀어나올지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어쨌든 지크는 회귀를 경험한 듯하고, 정말로 그렇다면 그 기준점은 갑자기 성격이 변했을 때일 것이다.

혹시 지크가 자기의 회귀를 숨기기 위해 한동안 연극을 한 게 아닐까 생각도 했지만 마릴린은 그 가능성을 지워버렸다.

‘얘기를 들어보면 지크 모어 상태에서 회귀를 한 것 같은데, 지크 모어가 성질 죽이고 숨어 사는 건 불가능해.’

솔직히 힘의 마왕 지크 모어에 대해 들은 얘기를 생각하면 지금의 지크는 무척이나 둥글어져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지크 모어다.

게다가 백작가에서 지크 스틸월을 좀 괄시했는가. 지크가 그걸 참을 확률은 한없이 0에 수렴한다.

그렇다면 지크는 그 짧은 기간에 이만큼 막대한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건, 아무리 지크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력을 꽤 많이 푸셨네요.”

마릴린의 질문에 지크는 이번에도 시원하게 대답했다.

“굉장하지? 엄청나게 노력했다는 거 아니냐.”

“노력만으로 가능한 게 아닌 것 같은데요? 괜찮다면 이유를 알려 주시겠나요?”

“궁금증이야 얼마든지 풀어줄 수 있지. 하지만 마릴린. 더 이상 설명할 시간이 있을까?”

콰아앙!

지크의 검기에 허리가 움푹 패고, 마력 덧대기에 의해 얼음 마법이 계속 파고들어 결국 허리가 끊긴 석상의 상체가 아래로 떨어졌다. 하체도 힘없이 주저앉았다.

이미 지크와 라일라는 마릴린에게 상당히 가까워져 있었다.

지크의 말처럼 당장 지크가 마릴린을 제압해 전투를 끝낼 것 같다.

그러나 마릴린도 믿는 수가 있었다.

“그러게요. 저도 더 이상 질문할 시간이 없을 것 같네요.”

마릴린이 지팡이를 높게 들었다가 땅을 찍었다.

변화는 전투지점과 좀 떨어져 있던 피라미드에서 일어났다.

우우웅!

어떤 소리가 들렸다. 마치 무언가가 공기를 진동시키는 것 같다.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지크와 라일라는 이 소리를 꽤 많이 들어봤다.

나무가 진동하고 있었다.

후웅!

가까이 있던 석상이 지크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지크는 지금까지처럼 검을 튕겨내려 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떨어지는 석검을 확인한 지크는 검을 흘리는 걸로 마음을 바꿨다.

검의 속도가 지금까지와 확연히 달랐다.

콰아아앙!

“크윽!”

지크의 입에서 신음이 비집고 튀어나왔다. 검을 흘리지 못한 건 아니다. 석상의 검은 지크의 검에 흘러나가 지크의 옆으로 떨어졌다.

나뭇가지 같은 형태의 윈두르로 이렇게 공격을 잘 흘려내다니. 지크의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는 광경이다.

하지만 흘려 넘겼음에도 지크의 팔이 저릿할 만큼 석상의 공격력이 증가했다.

지크가 힘들어하자 라일라가 바로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지크에게 덤벼드는 그림자들을 향해 벼락을 쏘아냈다.

콰르르릉!

번개의 빛이 공동을 빛낸다. 많은 수의 그림자들이 마법에 휩쓸려 사라졌다. 하지만 라일라는 눈을 찌푸렸다.

소멸한 그림자의 숫자가 아까보다 훨씬 적었다.

석상과 그림자가 강화된 것이 틀림없었다.

지크가 마력 덧대기를 사용해봤지만 이것도 효율이 감소했다.

“다시 상황 역전이에요.”

마릴린이 윙크했다.

“역시 석상과 그림자들을 움직이는 마력은 나무에서 나오던 모양이네.”

라일라가 중얼거리며 마릴린을 쳐다봤다. 그녀의 눈이 날카로웠다.

“나무의 제어 장치를 느슨하게 해서 석상과 그림자에 공급되는 마력을 올린 거지?”

“맞아. 역시 라일라. 그 정도는 쉽게 눈치채네.”

“그러면 일시적으로 성능이 향상될지라도 시스템이 과부화될 텐데.”

“걱정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괜찮아. 너희 둘만 잡는다면 이런 방위 시스템, 부서져도 상관없거든.”

혹시 방위 시스템이 부서져 무언가 중요한 정보가 사라진다고 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이 장소의 존재를 말해주기만 한다면 그녀의 주인이 회귀 후 이곳을 조사할 것이다.

지크를 잡아 회귀에 대한 비밀을 토해내게 만들고 라일라를 잡아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릴 수 있는 게 이런 유적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럴 거라면 아예 제어 장치를 완전히 벗기지 그러니?”

“그럴 순 없지.”

마릴린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내게 저 제어장치를 벗기도록 유도했지? 무덤에 브뤼셀 시스템에 대해 쓰여 있다고 하면서 말이야.”

자신이 배신자라는 걸 지크와 라일라가 모두 알고 있다고 깨달았을 때 바로 든 생각이었다.

“뭣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저 제어 장치를 벗겨주기를 기다렸던 모양인데, 그걸 그대로 해줄 리가 없잖니.”

“역시 눈치가 빠르군.”

지크가 말했다.

“이 정도는 돼야 지크 님의 참모로서 활약할 수 있지 않겠어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앞으로 네가 내 측근으로서 활약할 기회는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전 계속 지크 님의 옆에서 활동할 거예요.”

그녀의 집착이 말투에서 여실히 드러나 지크는 혀를 찼다.

콰앙!

옆에서 내려쳐진 석상의 검을 피하며 지크가 윈두르를 휘둘렀다.

퍼억!

석상의 팔뚝에 커다란 상흔이 남았다. 하지만 석상이 무력화될 정도는 아니었다.

“이제 정말 포기하세요. 당신들에게 승산은 없으니까.”

다시 권유하는 마릴린.

그녀를 보며 지크가 웃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허탈한 웃음 같은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묘한 장난기가 어린, 그런 웃음.

그걸 본 마릴린의 얼굴이 굳었다. 이유도 모른 채 소름이 돋았다.

“내 귀여운 전 참모 마릴린아.”

지크가 과장되게 혀를 차며 말했다.

“네가 눈치챌 거라는 사실을 내가 정말 모르고 계획을 짰다고 생각한 거냐?”

“무슨….”

마릴린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콰아아아아!

새로운 소리가 들린다. 소리는 방금 전과 같이 피라미드에서 들려온다.

하지만 그 소리는 작은 진동음이 아닌, 커다란 굉음이었다.

마릴린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피라미드를 쳐다봤다.

그녀의 착각일까. 피라미드 위에 선 대지의 나무가 방금보다 훨씬 더 생기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수 있는 것도 그때뿐이었다.

“마릴린.”

지크가 그녀를 불렀다. 무척이나 여유 있는 목소리다.

“그러고 보니 넌 힘의 마왕 시절의 나에 대해서 이야기만 들어봤다고 했지?”

마릴린이 지크를 쳐다봤다. 지크가 윈두르를 높이 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가 경쾌하게 외쳤다.

“내가 왜 힘의 마왕이라고 불렸는지 지금부터 똑똑히 보여주마! 거절할 필요는 없어! 내 사랑스러운 측근을 위해서 이 정도쯤 못 해주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지크가 윈두르를 휘둘렀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