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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371화 (371/628)

제371화

마릴린은 입을 열지 못했다. 서늘한 지크의 눈을 바라보며 코 위로 주름을 그렸다.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하지만 곧 그 의문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차피 중요한 건 다 알고 있는 모양인걸.’

그것보다는 더 중요한 게 있다.

‘회귀를 경험했다고?’

그럴 리가. 그녀가 알기로 회귀를 경험한 자는 용사 병신과 그녀의 주인뿐.

‘회귀의 힘이 하나가 더 있을 리 없을 텐데….’

그렇게 아무 곳이나 굴러다닐 능력이 아니다. 하지만 지크의 행동이나 태도를 보면 그가 회귀를 했다는 주장이 진실성 있게 다가왔다.

만약 그의 주장대로 지크가 회귀를 했다면. 그가 그녀가 속한 조직처럼 회귀라는 힘을 휘두르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악몽. 그 두 글자로 충분히 가능하다.

‘그 용사놀이 병신이 그렇게 회귀를 하고도 단 한 번도 만족스럽게 이기지 못했다고 하던데.’

그 정도로 지크의 잠재력은 어마어마하다. 한데, 그 잠재력에 회귀라는 기적적인 능력까지 추가된다고?

마릴린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과연 자신들이 그를 이길 수 있을까.

아니, 회귀 능력을 가진 사람들끼리 대결을 한다면 과연 승자가 탄생할 수는 있는 것일까.

‘정말로 지크 님이 회귀를 용사 병신처럼 다룰 수 있다면, 여기서 지크 님을 죽여봤자 아무 소용 없어!’

회귀 능력을 지닌 자에게 진정한 의미의 패배는 없다. 그저 시행착오가 하나 더 추가될 뿐.

총명하고 상황판단 빠른 마릴린도 여기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일단은 정보를 얻어 보자. 지크 님의 회귀가 정말로 용사 병신이 갖고 있는 것과 같은지.’

만약 그렇다면 지크를 죽이는 것보다 이 이상사태를 주인에게 보고해야 한다.

“하나만 더 물어도 괜찮을까요?”

“하나만이 아니지 않아? 지금 온갖 질문이 머릿속을 떠돌아다닐 거 아냐. 대체 어떻게 회귀 능력을 얻게 됐나, 그 능력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너희들 조직의 회귀 능력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 등등.”

“역시 지크 님. 제 마음을 아주 잘 알고 계시네요. 그럼 지크 님의 말씀대로 하나만이라는 조건은 접어두죠. 일단 지크 님께서 말씀해주신 질문의 답, 모두 해주실 수 있나요?”

라일라는 감탄했다. 방금까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마릴린이었건만 순식간에 신색을 회복하고 지크의 말에 여유 있게 반응하고 있다.

과연, 회귀 전 지크가 참모로서 의지했다고 하는 능력의 싹이 벌써부터 보이고 있었다.

“물론이지. 네가 한 가지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말이야.”

“뭘까요?”

“내 밑으로 들어와라.”

“…….”

마릴린은 입을 다물었다. 지크의 아래로 들어가는 것. 무척이나 매력적인 일이다.

잠깐이라도 지크와 같이 다니던 근래 얼마나 행복했던가. 게다가 계획이 정상적으로 진행됐다면 그녀는 나중에 지크의 밑으로 들어가게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지막에 지크를 파멸시키기 위한 스파이로서의 행위일 뿐. 지크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닐 것이다.

조직을 벗어나 완벽하게 지크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

그런 조건이라면, 생각할 필요도 없다.

마릴린은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한 조건이네요.”

거짓 충성을 해 지크의 밑에서 기회를 노릴까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지금의 지크에게 그런 얄팍한 수가 통한 것 같진 않다.

‘오히려 역으로 내 정보가 모조리 털릴 수 있어.’

그녀가 들은 지크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꽤나 단호하군. 역시 타인에 대한 사랑을 강제로 주입할 정도로 철저했던 세뇌에 의한 충성심인가?”

“글쎄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지만 마릴린은 입가가 가늘게 떨리려는 걸 필사적으로 참았다.

‘그것까지 알고 있어?’

점점 지크의 지식이 두려워졌다.

“뭐, 알겠다. 역시 제대로 된 대화는 되지 않는군.”

“그건 안타까운 오해네요. 전 지크 님과 제대로 대화를 할 생각이 있어요.”

“그래그래. 내가 널 어떻게 안 믿을 수 있겠냐. 회귀 전에 그렇게 나에게 헌신한 너인데. 하지만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파. 네가 배신자라는 사실이 말이야.”

지크가 윈두르를 들어 올렸다.

“미래에 네 동료가 될 이들을 알고 있냐? 뱀파이어, 서큐버스, 웨어울프말이야.”

“…알아요.”

이제 와 부정해봤자 변하는 건 없다. 마릴린은 순순히 긍정했다.

“내가 녀석들의 미래를 바꾼 것도 알고 있냐?”

“그것도 알아요.”

주인이 이번 시간선이 망했다고 한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 아니었던가.

“요하임과 이블린은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둘이 연인 사이로도 발전했지.”

“정말인가요? 그거 잘됐네요!”

빈정거림일까. 하지만 마릴린의 태도는 아무래도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 같았다. 지금 연기를 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역시 녀석들에 대한 정도 미리 주입되어 있었군.’

그래서 지크는 더더욱 착잡했다.

“하지만 팀 녀석은 너무 늦었어. 네 녀석들이 선수를 쳐서 타락해버린 후였거든.”

“그거 기쁜 소식….”

“그래서 내가 죽였다.”

“……!”

마릴린이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받은 지식에 의하면 팀 플랫은 마릴린을 빼면 지크와 가장 죽이 잘 맞는 측근이었다.

마릴린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크를 위해 세팅되었단 걸 생각하면, 팀이야말로 지크와 가장 마음이 잘 통하는 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를 죽였다니.

“솔직히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난 슬프다, 마릴린.”

윈두르에 마력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내 손으로 내가 가장 아끼던 부하 넷 중 둘을 죽이게 됐으니까 말이야!”

지크의 몸이 빛살처럼 뻗어나갔다. 마릴린을 보호하는 그림자들을 베어내며 똑바로 질주했다.

동시에 지크의 뒤에서 커다란 불덩이가 쏘아져 주변에 있는 그림자들을 태워 지크를 보조했다.

지크의 속도는 정말로 빨랐다. 주변에서 덤벼드는 그림자들이 막대한 숫자로 밀어붙이고 있었지만 그게 무슨 방해라도 되느냐는 듯 쭉쭉 앞으로 나갔다.

당연히 마릴린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녀가 손을 흔들자 석상들과 그림자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몸으로 마릴린의 앞을 막아서며 지크를 공격했다.

후방에 있던 것들은 라일라를 직접 공격하기도 했다. 마릴린의 지팡이에서도 저주가 발동했다.

콰앙! 콰앙! 콰앙!

연속적으로 터지는 굉음. 석상 세 체를 물러나게 만들고 깊게 파고든 지크였지만 그 앞으로 이번엔 다섯 체의 석상이 막아섰다.

거기에 몰려드는 그림자들까지. 물론 지금에 와서 그림자들은 별 문제가 안 됐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림자들 사이로 은밀하게 파고드는 저주였다.

콰직!

지크가 내지른 주먹에 저주의 빛이 깨져나간다. 얼핏 보면 마릴린의 저주가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고 허무하게 깨져나간 것 같다.

하지만 아니었다. 너무도 가까이 접근해 지크가 윈두르 대신 마력을 불어넣은 주먹으로 요격을 해야 했을 정도로 저주는 충분히 지크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게다가 마릴린의 저주는 이런 식으로 빛을 쏘아내는 것만 있지 않다. 효과는 다소 떨어지더라도 시야에 있기만 한다면 바로 내릴 수 있는 저주도 있다.

이미 몇 겹의 저주에 걸려 지크의 움직임은 확실히 둔해져 있었다.

그러나 시야에 잡히는 것만으로 내릴 수 있는 저주는 그다지 대단한 저주는 아니다.

물론 뛰어난 저주술사인 마릴린은 그 약할 수밖에 없는 저주도 상당히 강한 강도로 내릴 수 있지만, 지크의 마력 저항도 굉장히 높았다.

서걱!

옆으로 뛰어드는 그림자 하나를 베어냈다. 그리고 지크는 자연스럽게 칼을 한 번 더 휘둘렀다.

퍼엉!

그림자 뒤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저주가 윈두르에 파괴됐다.

‘저걸 막아?’

마릴린은 놀랐다. 이건 예전 라일라와의 대련 때도 보여주지 않은 기술이다.

소환한 곤충 혹은 같은 편의 몸에 붙여 저주를 숨긴 후 목표의 근처에서 갑자기 튀어나가게 하는 기술.

하지만 지크는 무척이나 수월하게 막아냈다. 저건 빠르게 반응한 게 아니다. 그녀의 기술을 알고 있는 것이다.

‘역시 회귀 전에 내 기술들은 모두 섭렵했다 이건가?’

하지만 실망하진 않았다. 어디까지나 기술 하나가 파훼됐을 뿐이다. 거기에 지금 유리한 건 자신이지 않던가.

쾅! 쾅! 쾅!

지크가 분전하고 있지만 전세는 슬슬 마릴린 쪽으로 기울었다. 지크는 무서웠지만 라일라는 마법이 통하지 않는 석상이란 존재 때문에 아무래도 힘이 달릴 수밖에 없었다.

후방에 자기 방어가 약한 마법사가 있으니 지크도 마릴린을 잡기 위해 멀리 떨어질 수 없었다. 전위의 가장 큰 역할은 후위의 보호에 있는 법이다.

전세가 유리해짐에 마릴린은 일단 마음을 놓았다. 그건 지크가 라일라의 곁으로 크게 물러서며 더 커졌다.

“적당히 포기하시는 게 어떤가요, 지크 님?”

마릴린이 입을 열었다.

“지크 님이 아는 회귀에 관한 모든 정보를 주신다면 이쯤에서 그만둘게요.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지크 님은 우리 조직에서 상당히 인기가 많은 인물이랍니다.”

용사 병신은 당연하고 그녀의 주인도 지크를 상당히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가 알지 못하는 시간선에 일어난 어떤 사건 때문이겠지만, 마릴린은 그 사건을 알지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가 원하는 건 그저 주인이 목적을 이룰 때까지 무한히 반복될 모든 시간 안에서 지크와 함께 있고 싶을 뿐.

“아무리 지크 님이 회귀란 개념을 안다고 하셔도 결국 우리를 이기지는 못할 거예요. 우리는 지크 님이 상상도 하지 못하는 시간 동안 회귀를 해 왔으니까요.”

그녀의 음성은 마치 아이를 타이르는 어머니처럼,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처럼, 그리고 사람을 꾀는 악마처럼 들렸다.

“회귀란 건 정말로 대단한 힘이죠. 놓기 힘들 건 알아요. 하지만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었더라도 세계가 과거로 돌아가면 전부 없었던 일이 돼요. 이미 지크 님은 경험해봤잖아요? 그러니까 힘들고 어려운 일은 이제 잊어버려요.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이 세상의 굴레에서, 저랑 함께 살아가죠. 언제나 말이에요.”

옅은 열기를 담은 눈길이 지크를 향한다. 광기마저 깃든 애정의 눈빛. 하지만 그 마음만은 진심임이 확실히 느껴졌다.

마릴린은 굉장한 미인이다. 라일라보다 조금 처지긴 하지만 그건 라일라의 외모가 인간을 초월한 수준이다 보니 그렇게 보일 뿐, 절대 마릴린이 달리는 건 아니다.

저 정도의 미인이 사랑과 애정을 담아 하는 애틋한 말. 웬만한 남성이라면 마음이 흔들릴 만도 하건만, 지크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표정은 냉막했다.

“거절한다! 난 남에게 놀아나는 무한한 생은 필요 없어. 내 뜻대로 살아가는 단 한 번의 일생이 훨씬 더 좋다!”

“역시 그렇군요.”

마릴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어쩔 수 없죠. 거친 수단을 쓸 수밖에.”

마릴린이 손을 흔들자 석상과 그림자의 공격은 더 거칠어졌다. 당장이라도 지크와 라일라가 그 공격에 휩쓸릴 것 같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나요? 아무리 지크 님이라도 라일라라는 짐이 있는 이상 무리예요. 포기하시죠.”

“한 가지 충고해두지, 마릴린.”

“뭔가요? 지크 님의 충고라면 두 귀를 듣고 잘 듣겠어요. 겸사겸사 항복의 말을 덧붙여주신다면 훨씬 더 좋을 것 같고요.”

“미래의 너라면 말이야. 아무리 내가 밀리고 있는 것 같더라도 절대로 마음을 놓지 않을 거다. 그것도 내게 엄청난 실력의 마법사가 함께 있다면 더더욱!”

콰아아아아!

지크가 커다랗게 윈두르를 휘두르자 거센 검기의 폭풍이 몰아쳤다. 석상들이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콰아앙!

동시에 사방에 라일라의 마법이 작렬했다. 지크와 라일라 주변이 깨끗해졌다.

하지만 마릴린은 개의치 않았다. 석상은 뒤로 물러났을 뿐이고 그림자는 언제든 보충할 수 있다. 그녀의 전력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퍼엉!

라일라가 바람의 마법을 쐈다. 마릴린은 석상을 마법의 궤도 앞으로 움직였다. 이제 석상에 부딪친 마법은 별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소멸할 것이다.

하지만 마릴린의 눈에 예상치 못한 광경이 들어왔다.

라일라가 쏘아낸 바람을 지크가 마치 윈두르에 휘감듯 끌어당긴 후 다시 쏘아냈다. 자신의 검기와 함께.

“어?”

마릴린의 벙찐 소리가 가시기도 전.

콰아아아앙!

석상의 상체 절반이 날아가는 소리가 무덤을 크게 울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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