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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367화 (367/628)

제367화

일단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모든 일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지크 일행이 시스템을 중단시킬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마릴린은 한시라도 빨리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일단 라일라의 말이 사실인가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했다.

“정말 모르겠어. 그때는 한시라도 빨리 단서를 찾아내거나, 단서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무 연구에 합류할 생각뿐이었으니까.”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글귀에 대해 다시 한번 물었을 때 라일라가 한 대답이었다.

“아마 저 즈음이지 않을까?”

라일라가 무덤의 일정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후 빙글 돌려 대략적인 범위를 지정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석실의 수는 많았다.

라일라가 지정한 범위에 있는 석실의 개수를 세던 마릴린은, 그 수가 50을 넘어가자 그만뒀다.

‘몰래 확인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잖아!’

마릴린은 라일라처럼 당당하게 조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고대 문자를 알고 있는 그녀지만, 지크 일행에게 들키지 않고 석실에 들어가 글자들을 전부 읽기에는 조사할 석실의 수가 너무 많았다.

‘라일라는 대체 어떻게 저 많은 석실들을 조사한 거야!’

정말로 기겁을 할 만한 일이었다. 무덤에 있는 석실들의 숫자는 클로원의 긴 역사를 증명이라도 하듯 정말로 많았다.

하지만 마릴린은 그게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라일라가 황금 황제의 석실에서 고대 문자를 읽는 걸 본 마릴린은 그녀의 문자를 읽는 속도에 경악을 했었다. 너무나 빨랐다. 분명 속독법까지 사용하는 게 분명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정말로 읽고 있는지 슬쩍 확인도 해봤었다. 라일라는 정확히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다.

‘터득한 지 얼마 안 된 문자라더니 그걸 속독법까지 써가며 읽어댈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때, 마릴린은 재능이란 벽을 여실히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 라일라가 거의 잠도 자지 않고 석실들을 조사했으니. 그걸 생각한다면 라일라가 며칠 만에 모든 석실을 조사했다는 것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불가능했다.

이제 와 석실에 가서 다시 조사를 하겠다고 나설 수도 없다. 클로원의 문자를 모른 척하지 않았던가.

안 그래도 나무에 대한 연구에 시간을 많이 줄 수 없다는 지크의 압박을 받고 있는 판국에, 글자도 모르는 자신이 석실의 글자를 조금 더 연구하겠다?

말도 안 되는 변명이다.

‘분명 의심받을 거야.’

결국 몰래몰래 할 수밖에 없는데, 석실 한두 개라면 모를까 시간적으로 저 많은 석실들을 몰래 조사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녀도 클로원의 글자를 알긴 알지만 그녀는 어디까지나 더듬더듬 해석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했다. 라일라처럼 속독법까지 써가며 읽어낼 스킬은 없었다.

‘한두 개도 솔직히 불가능할지도 몰라.’

지크와 한스, 스녹은 피라미드에 무슨 일이 있을까를 대비해 지키고 있는 한 명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쓸모 있는 게 없나 무덤을 돌아다녔다. 그때 걸릴지 모른다.

‘특히 지크 님이 위험해.’

마릴린은 힘의 마왕 지크 모어의 능력을 잘 알고 있다. 당연히 그의 기척 탐지 범위가 변태적이라고 말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넓은 것도 안다. 재능이 완벽히 개화하지 않은 지금이라도 탐지 범위도 상당히 넓을 것이다.

‘불의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나 순찰하는 의미도 있으니 당연히 탐지 범위를 넓히고 다니겠지.’

그리고 지금 마릴린의 실력으로는 지크의 탐지를 피하기 힘들다.

결국 라일라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건 실질적으로 불가능했다.

‘일단 그 방안은 버리자.’

실현 불가능한 걸 계속 잡고 있어봤자 심력의 낭비일 뿐이다.

‘그냥 이대로 나가서 보고를 할까?’

지크 일행을 만난 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이었지만, 그녀는 계획적으로 지크 일행에게 접근했다.

사적으로는 사랑하는 지크와 같이 다니고 싶은 욕망이 컸다. 실제로 지크와 다니기 시작한 후 그녀는 정말로 행복해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주 이유는 지크 일행에게서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였다. 이미 지크 일행은 요주의 인물들이 되어 있었다.

그녀의 주인에 따르면 그들은 이번에 너무 많은 변수를 만들고 다닌다고 했다. 이번 시간선은 이미 무너졌다고 판단하고 있는 기색도 보였다.

‘그 병신은 이 지경에도 용사 놀이를 버리지 못했다고 하셨지만.’

그 정도면 정말로 마릴린 자신의 사랑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집착이다.

어쨌든, 주인의 의사가 변수의 확인이었으니 계획보다 조금 일찍 접촉하더라도 만난 김에 지크 일행에 합류해 그들의 정보를 빼낼 요량이었다.

하지만 지금 일개 변수 따위와는 비교조차 안 되는 정보가 흘러들어 온 것이다.

아직 확인된 건 아니지만, 절대 무시할 수도 없는 정보다. 차라리 지크 일행이 무덤을 나갈 때 같이 나가, 주인에게 정보를 보내는 게 나을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만약 시스템을 중단시키려 한다면?’

그리고 정말로 그게 브뤼셀 시스템의 정지로 이어진다면?

일단 라일라와 자신의 반대로 지크가 뜻을 꺾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잠시 물러난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라일라도 시스템의 중단이 절대 불가하다는 반응은 아니었다.

만약 시스템을 중단시킨다고 해도 무덤의 유지에 별 이상이 없다면 그녀도 충분히 시스템을 중단시켜 볼 것이다.

‘문제는 무덤의 유지는 시스템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문제없을 거라는 거야.’

나무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마릴린이다. 주인에게 들은 정보가 있으니까. 때문에 나무를 연구하는 척하며 어느 정도 나무에 대한 정보를 캐낼 수 있었다.

특히 라일라가 석실의 문자들을 해독하느라 자리를 비웠을 때가 기회였다. 엘레나로서는 마릴린이 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걸 눈치챌 능력이 부족했다.

‘나무의 마력으로 유지되고 있긴 하지만, 시스템과 연관되어 있는 건 아니니까. 그저 따로 힘을 조금 빌려 쓰고 있는 것에 불과해.’

그리고 그 정도는 라일라 정도의 마법사라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다. 그것도 빠른 시간 내에.

‘일단 라일라의 조사를 최대한 방해해보자.’

연구에 빠진 라일라의 곁에서 조심스럽게 그녀의 조사를 다른 쪽으로 유도해 무덤의 유지에 관한 마력을 최대한 숨긴다. 라일라가 그 마력에 접근하려 하면 자신의 마력으로 몰래 끊어낸다.

원래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나무의 정보에 대해 라일라보다 그녀가 훨씬 더 해박하니 한번 해볼 만한 일이었다.

‘만약 그럼에도 그들이 시스템을 중단시키려 한다면….’

정말로 상상하기 싫은 일이지만, 그것도 대비를 해야 했다.

‘이번 시간대에 나와 지크 님의 만남은 이걸로 끝이겠지.’

그녀의 눈에 옅은 살기가 번뜩였다.

* * *

라일라가 다시 나무 연구에 투입되고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지크 일행의 행동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마법사들은 연구에 집중하고 다른 이들은 마법사들을 지키거나 순찰을 돈다.

하지만 역시 변화 없는 무덤 안에서만 지내다 보니 슬슬 일행은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특히 한스와 스녹이 그랬다. 언제 갑작스러운 전투가 일어날지 몰라 훈련조차 하지 못 하는 시간이 무료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편히 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던 중 그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확인했다고?”

“응.”

지크의 물음에 라일라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갈색 나무의 마력이 이 공동 전체를 감싸서 흐르는 걸 확인했어. 그게 공동을 유지시키는 거야.”

“그럼 그게 브뤼셀 시스템인 거냐?”

“아니. 이건 그저 나무의 마력을 이용한 간단한 마법적 처치일 뿐, 시스템이란 거창한 명칭을 붙일 만한 게 아냐.”

“그럼 적어도 시스템을 중단시켰을 때 이 공동이 무너지는 일은 없겠군.”

“아마 그럴 거야.”

“그럼 시스템을 중단시켜 볼 거냐?”

지크가 눈을 빛냈다. 그도 상당히 이 생활에 질린 모습이었다. 라일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모로 조사를 했는데, 적어도 이 주변에 피해를 끼칠 일은 없을 거라고 봐. 더 이상 연구한답시고 시간을 끄는 것도 그렇고.”

그렇게 말하고 라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제 시스템 중단을 연구하려고.”

“잘 생각했어.”

지크는 라일라의 의견이 무척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다른 일행들도, 드디어 이 무덤에서의 생활에 끝이 보이는 것 같아 얼굴이 밝아졌다. 하지만 마릴린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래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갑자기 중단시키는 건 좀 그렇지 않아?”

“주변에 해를 끼칠 확률이 극히 낮다는 건 마릴린 너도 동의한 거잖아.”

“그래도 만약이란 게 있으니까.”

“물론 그렇긴 하지만, 우리도 시간이 없어.”

“그냥 두는 게 어때? 솔직히 무덤에 오래 있는 게 싫을 뿐, 다시 오지 못하는 게 아니잖아. 다음에 연구를 하러 또 오면 되지.”

“여기에 자주 들를 거야?”

라일라가 지크에게 물었다. 지크는 고개를 저었다.

“비올루윈 근처에 터를 잡을 생각은 없어. 계속 이곳저곳 떠돌아다닐 생각이고, 아마 네가 만족스럽게 연구를 할 만큼 자주 오진 않을 거다.”

지크의 말을 들은 라일라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그러나 곧 결론을 내린 듯 고개를 들었다.

“역시 중단시키는 게 좋겠어. 중단하면 주변에 해를 끼칠 확률이 없는 건 아니지만, 반대로 저 시스템이 주변에 해를 끼치고 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알겠어.”

마릴린은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미안해, 마릴린. 내 의견만 밀어붙여서.”

“아니야. 나도 나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무척 적다고 생각하니까.”

“고마워.”

자신을 향해 웃는 라일라를 보며 마릴린도 웃어줬다. 하지만 그 속내는 전혀 달랐다.

‘어쩔 수 없네.’

라일라와 자연스럽게 잡담을 나누면서 그녀는 생각을 굳혔다.

‘결국 최후의 수단을 쓰는 수밖에.’

* * *

먼저 연구를 하고 있겠다며 마릴린이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갔고 다른 일행도 각자의 일을 하기 위해 움직였다. 자리에는 지크와 라일라만이 남았다.

“이제 시작하는 건가?”

“시작하는 거지.”

지크와 라일라의 시선이 피라미드, 정확히는 피라미드 안에 있을 마릴린에게 꽂혔다.

“녀석이 정말로 로브 놈들 쪽 스파이라면, 브뤼셀 시스템을 중단시키겠다는데 가만히 있을 순 없을 거야.”

지크가 말했다.

“어떻게 나올 것 같아?”

“모르지. 일단 저 녀석 단독으로 우리를 어떻게 할 수는 없어. 녀석이 아무리 미래의 위치라고 해도 전력 차이가 너무 나니까.”

그러며 지크는 제자들이 있던 곳을 쳐다봤다.

“일단 마릴린이 잘 움직일 수 있도록 우리 전력을 조금 줄여야겠군. 한스, 스녹, 엘레나는 핑계를 대서 위로 올려 보내야겠어.”

“그러네. 마릴린이 위험시하는 건 우리 둘뿐일 테니까.”

적이 스스로 전력을 분산시키겠다는데 말리진 않을 것이다. 거기에 둘의 움직임을 조금 더 쉽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아무래도 마릴린이 본색을 드러내면 회귀 같은 중요 정보들이 언급될 가능성이 높았다.

“당장 생각나는 건 역시 나무의 마력을 이용하는 것일 테지.”

“마릴린이 나무의 마력을 이용할 수 있다면의 얘기겠지만.”

“그래. 그러니까 라일라, 앞으로 마릴린과 같이 나무의 연구를 할 때 녀석의 동태를 세밀히 살펴 줘. 뭔가 수작을 부릴 가능성이 높으니까.”

“막으면 돼?”

“굳이 그럴 필요는 없고. 나무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놔. 나중에 언제 사용하게 될지 모르니까.”

“알았어.”

라일라도 피라미드로 향했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던 지크가 고개를 조금 들었다. 거대한 피라미드의 모습이 들어온다.

‘이제 어떤 선택을 할 거냐, 마릴린.’

지크의 시선은 한동안 피라미드를 떠나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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