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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365화 (365/628)

제365화

“…그럼 마릴린을 일행으로 받은 이유는 감시하기 위해서야?”

“동시에 만약 녀석이 정말로 배신자라면 어느 정도 정보를 뜯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어떤 정보를 말하는 거야?”

“난 녀석들이 아마도 최소 나무 한 그루는 보유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라일라가 얼굴을 굳혔다. 하지만 이내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코어 역할을 했던 나를 알고 있었고 회귀도 여러 번 진행했으니 시스템 그 자체를 지배하고 있을 확률이 크겠네.”

“그리고 지금껏 나무들이 있던 곳은 아드로원 대수림을 제외하면 황제들의 무덤이라든가, 제국의 연구소라든가 하는, 제국의 중요한 지점들이었어. 제국을 지탱하던 시스템이 있는 곳이라면 확실히 한 그루 정도는 있겠지. 나무는 총 다섯 그루라고 했으니까.”

아드로원 대수림도 제국에게 있어서는 뭔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마릴린은 절대 로브 놈들의 말단은 아니야. 오히려 그 역할이나 능력을 보면 아마도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을 거야. 그런 녀석이라면 시스템 근처의 나무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나무를 다루는 방법 말이야?”

“완벽하게 다룰 순 없겠지. 아무리 녀석들이 시스템을 지배하고 있다 해도 클로원만큼 완벽하게 그 나무를 다룰 수 있는 집단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오랫동안 나무를 보아왔을 확률이 큰 만큼 여러 방법을 알 가능성은 있어.”

“그 외의 다른 정보들도 얻을 수 있으면 좋고 말이지?”

지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추측이 맞는다면, 나를 깊이 사랑하고 있음에도 어디까지나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우선하기에 철저하게 나를 이용한 녀석이야. 말단 놈들조차 입을 열지 않는 조직이니, 그보다 더 윗줄로 추정되는 마릴린은 어떻겠어. 고문으로는 입을 열지 않을 거야.”

“그래서 몰래 정보를 빼내야겠다고?”

“그래. 물론 녀석도 머리가 비상한 녀석이다. 아무리 머리 쓰는 걸 싫어했다고 해도 회귀 전의 내가 녀석이 스파이인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철저한 녀석이기도 하지. 자기도 모르게 흘리는 정보는 없다시피 할 거야.”

“그럼 안 되는 거 아냐?”

“아무리 철저한 자라도 그게 사람인 이상 빈틈은 있을 수밖에 없어. 위대하디위대한 나도 그런걸.”

“아, 그건 됐고.”

또 다시 시작된 자뻑질을 라일라가 칼같이 잘라냈다. 지크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콧방귀를 한 번 뀌고 얘기를 계속했다.

“녀석이 빈틈을 보이지 않은 것은 녀석의 치밀함도 있지만 회귀 덕에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일 확률이 커. 한마디로 예상 가능한 상황이었던 거지.”

“그런데 지금은 예상 가능한 상황이 아니다?”

“많은 회귀가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회귀란 개념을 녀석들 이외의 사람이 알게 됐던 시간선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나도 이 녀석이 아니었으면 몰랐을 거야.”

지크는 윈두르를 툭툭 두드렸다.

“즉, 지금은 녀석들의 계획이 완전히 틀어진 시간선이라는 거지.”

“마릴린이 무척이나 당황할 만한 상황이라는 거구나.”

“맞아.”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회귀라는 능력이 있는 만큼 녀석들은 변수가 나와도 귀찮을 뿐, 그다지 위협적이진 않을 거다. 시간을 다시 돌려버리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그 변수가 회귀란 개념을 알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져. 게다가 그 변수가 능력마저 뛰어나다면 더더욱 그렇게 되지.”

“회귀라는 그들의 수단에 뭔가 영향을 끼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지.”

존재에 대해 인식을 하고 있는 것과 아닌 것은 차이가 크다.

“좋아, 네가 하고 있는 의심은 알았어. 일리가 있는 것도 알았고.”

“그런데 왜 이 말을 지금 하느냐지?”

“맞아. 아니, 이유는 필요 없어. 네 성격상 이런 일은 최대한 숨기고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겠지. 그게 같은 편이라고 해도 말이야.”

이제는 익숙해진 터라 라일라는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 이 얘기를 꺼냈다는 건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어졌거나 듣는 이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지?”

“정확해, 라일라. 네 협력이 필요하다.”

지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번엔 말하지 않은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어. 미리 말했다면 마릴린이 눈치를 챌 수 있거든. 내가 말했다시피 그 녀석은 머리가 비상하고 눈치가 빨라. 네 연기가 나쁜 건 아니지만 마릴린을 오래 속일 수는 없을 거야.”

“그 말은 곧 마릴린의 처리가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는 소리네?”

“맞아.”

지크의 스산한 분위기에 라일라가 마릴린의 모습을 떠올렸다. 항상 웃는 낯으로 자신에게 달라붙던 밝고 활기차던, 친구.

라일라는 마치 모래를 한 움큼 삼킨 것 같은 씁쓸함을 느꼈다.

“그 짧은 사이에 정이 든 모양이군.”

지크는 라일라의 표정으로 그녀의 감정을 알아차렸다.

“한 가지 얘기해 두자면, 그 녀석이 너에게 달라붙은 이유는 너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였을 가능성이 커.”

“…시스템의 코어니까?”

“어쩌면 이 시간선이 다른 시간선보다 변동이 큰 이유를 너를 통해 찾으려 했는지도 모르지.”

“그건 참 서글픈 이유네.”

“그래?”

“넌 담담하구나.”

“이런 식으로 배신을 당하거나 뒤통수를 맞는 건 일상이었으니까. 마인시대는 그런 시대였어.”

라일라는 지크의 얼굴을 봤다. 그의 얼굴은 무척이나 담담했다.

지크에 이어 친구라 부를 수 있는 두 번째 존재가 자신들을 몰락시키기 위해 잠입한 스파이일지도 모른다.

마릴린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라일라는 굉장히 착잡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지크는 그런 일에 익숙하다고 한다.

‘스틸월이 모어로 타락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둘의 성격의 낙차를 생각한다면 아마 보통 일은 아닐 터. 지크가 간간이 꺼내는 얘기도 그것을 증명한다. 라일라는 처음으로 지크 모어에게 동정심을 품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크는 말을 계속했다.

“녀석이 이 도시에 온 것도 아마 조사를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해. 이 도시의 유적에 있던 에스텔레이드와 토르니움의 주인이 바뀌었지. 몬스터의 습격은 그 놈들이 저지른 거니 뺀다고 쳐도 그림자들에 의한 습격을 그렌 제너드가 목격하기까지 했어. 아주 변수의 향연이잖아?”

그것도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가 변동된 것이다.

“그런데 그 도시에 또 다시 나와 네가 등장한 거지. 아마도 우리의 정보를 빼내려고 접근했을 거다. 일행으로 스며드는 것도 내가 있는 이상 자신 있었을 테니까.”

“그래서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야?”

그녀의 질문에 지크는 조용히 설명을 시작했다. 라일라는 그 설명을 주의 깊게 들었다.

설명이 끝나고 라일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시키는 대로 할게.”

“부탁하마.”

라일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돌아갈게. 더 이상 시간을 끌다가는 의심받을 수도 있으니까.”

“음식도 가져 가.”

지크는 스튜 세 그릇을 퍼 그녀에게 건넸다.

라일라는 자신의 앞에 놓인 스튜 그릇을 쳐다봤다. 한 개는 엘레나의 몫이었고, 한 개는 한스의 몫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마릴린의 몫.

“…아직 마릴린이 배신자라고 확정된 건 아니지?”

라일라의 물음에 지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크는 국자를 냄비에 탁 집어 던지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가능성은 굉장히 높아.”

그 때 라일라는, 지금까지 덤덤하던 지크의 표정에 처음으로 균열이 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곳에서 나온 것은, 지금의 라일라가 가지고 있는 심정과 비슷한 씁쓸함이란 감정이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믿고는 싶다.”

* * *

오랜만에 일행이 한 자리에 모였다. 조사에 집중하느라 퀭한 눈동자를 숨기지 못한 마법사 3인조까지 포함해 일행이 모닥불 근처로 동그랗게 모여 앉았다.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여 하는 식사인 터라 그들의 앞에 놓인 음식은 꽤 화려했다.

잘 익은 두툼한 고깃덩이에 향신료를 듬뿍 끼얹고 취향에 맞는 술을 한 잔씩 곁들였다.

이런 노숙 생활에서는 보기 힘든 화려한 만찬에 일행의 기분이 좋아졌다.

쿠우!

노웸도 자신의 몫으로 배정된 고기를 작은 주둥이 안으로 열심히 집어넣으며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냈다.

“성과는 있냐?”

지크가 묻자 라일라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없어. 조사대상에 대한 사전정보가 아무것도 없으니까.”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

“아마도?”

그렇게 지크와 라일라가 얘기를 시작하자 사람들의 이목이 모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식사 시간 동안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건 흔히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럼 한동안 여기에 머물러야겠군. 하지만 여기에 영원히 있을 순 없어.”

“알아. 나도 이런 지하에서 계속 있고 싶은 생각은 없어. 무엇보다 여기는 무덤이잖아.”

당장 주변 석실로 들어가면 언제 죽은 지 모를 시체들이 들어 있지 않은가. 담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한시라도 있기 싫은 곳이 이곳이다.

그건 다른 이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일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방법을 조금 바꿔볼까 해.”

“방법을?”

“석실에 있던 문자들 있었잖아. 그것들을 먼저 해독해볼 생각이야.”

“거기에 저 갈색 나무나 초록 나무에 대한 얘기가 써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야?”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 거기서 찾은, 흥미로운 단어도 있고 말이야. 그러니까….”

허공을 쳐다보며 생각을 떠올리려는 듯 그녀의 눈가에 살짝 주름이 졌다.

“브뤼셀 시스템. 클로원. 이런 단어가 있었어.”

“클로원이란 이름은 제국의 이름이었죠?”

엘레나가 말했다. 회귀에 관한 중요한 정보들은 지크, 라일라 둘이서만 공유를 하고 있었지만 클로원의 이름 같은 건 제자들도 이미 알고 있는 정보였다.

“제국의 이름이요?”

마릴린이 묻자 엘레나가 설명을 했다.

“아마도 이 무덤을 세운 제국의 이름일 거예요. 옛날에 굉장히 번창을 했다고 하네요.”

“그렇군요. 그럼 브뤼셀 시스템이란 뭔가요?”

“그건 저도 잘….”

엘레나가 도움을 요청하듯 라일라를 쳐다봤다. 라일라는 자신의 몫인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는 대답했다.

“나도 잘은 몰라. 뭔가 제국의 중요한 시스템 같기는 한데…. 뭐, 문자를 읽다가 보면 그 정체에 대해서도 알 수 있지 않겠어?”

“써 있을 것 같아?”

“나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봐.”

마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그럼 다른 건 없었어?”

“호기심이 많네? 역시 마법사는 어쩔 수 없구나.”

“네가 그런 말을 하기야?”

두 사람은 서로를 보고는 웃었다.

“별 다를 건 없어. 나도 모든 석실을 보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게 있을 가능성은 충분해. 그러니까 당분간은 엘레나와 같이 나무의 연구를 부탁해. 나도 하루에 한 번씩은 들를 테니까. 그리고 해석도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대부분이 황제를 찬양하는 이야기거든. 그것들을 건너뛰고 읽으면 중요한 건 얼마 없을 거야.”

“알았어. 나무의 연구는 나에게 맡겨 둬.”

“고마워, 마릴린.”

그리고 며칠 뒤.

“브뤼셀 시스템을 중단시키는 방법을 찾았어.”

해석에 몰두하던 라일라가 일행에게 말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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