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3화
지크 일행은 석실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지크의 예상이 맞았는지, 석실에서 발견된 수상한 것은 없었다.
있는 것이라곤 그저 시신이 들어 있는 관이 전부였다.
발견한 석실을 모두 뒤진 후, 지크 일행은 다시 황금황제의 석실로 모였다.
“뭔가 발견한 거 있냐?”
지크의 질문에 한스, 스녹, 엘레나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에스텔레이드의 빛으로 구석구석을 비추며 찾아봤지만 그럴 듯한 건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 벽 안에 뭔가 있나 싶어서 능력을 써서 살펴봤는데 역시 발견된 것 없었습니다.”
쿠!
“마법적으로 숨겨둔 것도 없는 것 같아요.”
각자의 특성을 살려 석실을 조사한 세 사람도 뭔가 발견한 건 없는 모양이었다.
지크가 이번엔 마릴린을 쳐다봤다. 그녀도 도중부터 라일라의 곁을 벗어나 수상한 곳을 찾아다녔다.
“저도 뚜렷이 발견한 건 없어요.”
절대로 좋은 소식은 아니었지만 지크는 그다지 실망하지 않았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다.
오히려 나무를 봉인하고 있는 것이 피라미드에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더 강해졌다.
지크는 석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 곳엔 라일라가 계속해서 고대 문자를 번역하고 있었다.
“좀 어때?”
지크가 묻자 번역에 빠져 있던 라일라가 고개를 돌렸다.
“잘돼가?”
“번역이야 이젠 문제없어. 클로원의 문자 체계는 대부분 머릿속에 있으니까.”
라일라는 자신의 앞에 있는 문자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중요한 건 발견했어?”
“응.”
지크의 눈이 빛났다.
“뭐지?”
“나중에 알려줄게. 다른 석실들의 문자들까지 전부 번역한 다음에 정리를 좀 해서 알려주는 게 너한테도 편하지 않겠어?”
확실히 일리 있는 말이다.
“그게 낫겠군. 너라면 정리도 깔끔하게 할 테니까. 다만, 거기에 나무를 봉인하는 수단에 대해서 적혀 있다면 알려주면 좋겠는데 말이야.”
“못 찾았구나?”
“예상하고 있었잖아? 우리 둘 다.”
“내가 해석한 문자 중에 그럴 듯한 건 없었어.”
“그럼 남은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군.”
피라미드. 다시 석상과 그림자들이 날뛸 가능성을 안고 저 피라미드를 올라야 했다.
라일라도 지크의 말에 동의했다.
“언제 올라갈 거야?”
“일단 하루 정도 푹 쉬고 올라가자고. 격렬한 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컨디션은 최대한 끌어 올리고 가야지.”
“응, 그게 좋을 것 같아.”
“너도 좀 쉬어라. 쉬지도 않고 계속 문자만 들여다 본 모양인데, 피라미드는 너도 같이 올라가야 해.”
“알았어.”
라일라는 순순히 지크의 뒤를 따라 석실을 나갔다.
일행은 한쪽 구석에 캠프를 차렸다. 석실 안에 캠프를 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지만, 누구도 시체와 같이 잠을 자고 싶지 않았다.
마법 상자에 준비해 온 천막을 치고 두터운 모포를 깔자 나름 괜찮은 잠자리가 완성됐다.
지크의 훈련 때에 비교하면 이 정도는 고급 숙소였다.
땔감을 모아 불을 붙이고 준비해 온 음식을 데워 먹는다. 소소하기까지 한 저녁 식사였지만 하루의 노곤함을 풀어주기에는 충분했다.
“다 좋은데 위쪽의 불빛이 거슬리네요.”
천장에서 공간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마력 빛을 올려다보며 스녹이 투덜거렸다. 한스가 피식 웃으며 동의했다.
“그건 그러네. 눈부시면 잠이 잘 안 오는데 말이야.”
“그러니까 말이죠.”
“거기 두 분? 평소에 어디 머리를 갖다 대기만 하면 주무시는 분들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전 무척이나 억울한데요?”
굉장히 고귀한 집안의 영애였던 엘레나는 아무래도 처음 지크의 강행군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적응했지만, 합류 초반 툭하면 잠을 설치기 바빴던 그녀에게 있어, 눕기만 하면 곯아떨어지던 둘의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한데, 저 둘이 그런 말을 하다니.
“그래도 너도 이제 꽤 적응했잖아.”
“우리 일행 다 된 거지.”
쿠!
한 마디씩 하고 낄낄대는 두 명과 한 마리를 보며 엘레나의 눈이 샐쭉해졌다.
제자들이 그렇게 잡담을 나누고 있는 동안, 지크와 라일라는 본격적으로 내일 올라갈 피라미드에 대해 상의를 했다.
“일단 네 윈두르를 어떻게 해야 할 거야.”
라일라가 지크가 옆에 내려놓은 윈두르를 가리켰다.
“알아. 놓고 갈 수는 없으니 마법 상자에 넣어 놔야지.”
“가장 좋은 건 놓고 가는 거지만….”
워낙에 상상을 초월하는 일을 일으키던 윈두르와 나무니 아예 가까이 하지 않는 게 가장 좋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크의 무기를 멀리 내버려두라고 하기에도 뭣하다.
혹시라도 윈두르와 멀리 떨어져 있는데 이상사태가 일어난다면 적절한 대비를 하지 못 할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지. 네 말대로 마법 상자에 넣어 놓자.”
일단 윈두르의 처치를 정한 두 사람은 이젠 피라미드 어딘가에 있을 거라 추측되는 ‘나무를 봉인하고 있는 것’으로 화제를 옮겼다.
“역시 피라미드 맨 위 쪽에 있을 확률이 높지 않을까? 나무 근처라든가 말이야. 혹시 네가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갔을 때 뭔가 특이한 걸 본 적 없어?”
피라미드 꼭대기는 일행 모두가 올라가봤지만, 라일라, 한스, 스녹은 나무에 이상이 생긴 후 급히 올라갔을 뿐이다.
느긋하게 피라미드 꼭대기를 본 사람은 지크와 레오나뿐이었다.
“나도 나무에 시선을 빼앗겨서 자세하게 보진 못했어.”
“올라가서 무턱대고 찾아봐야겠네.”
“꼭대기에만 있으리란 법은 없어. 피라미드 내부에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럼 내부로 통하는 입구도 같이 찾아야겠고.”
“스녹을 시키면 좀 쉬울 거야. 마법적 처치가 있을 게 분명하지만 일단 피라미드도 석재로 만들어진 것 같으니까”
그렇게 의견을 나누며 내일의 일정이 차곡차곡 정리됐다.
둘의 이야기를 마릴린이 옆에서 집중해서 들었다.
* * *
다음 날, 일행은 피라미드로 향했다. 피라미드 벽면에 있는 긴 계단을 오른다.
일행은 꼭 붙어서 움직였다. 아무래도 예전 이상사태가 발생한 곳인지라 조금 더 안전에 신경을 써야 했다.
지크의 등에 윈두르는 보이지 않았다. 이미 마법 상자 안에 넣어 놓은 것이다.
대신 혹시나 있을 급박한 상황에 대비하여 그의 허리춤에는 평범한 장검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다만, 윈두르 이외의 검을 다루는 건 오랜만이어서 조금 어색한지 지크는 괜히 허리춤에 있는 검을 두드려댔다.
일행이 피라미드 꼭대기 위에 도착했다. 역시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건 뿌리를 허공에 내린 거대한 나무였다.
그 신비롭고 장엄한 광경은 사람들의 말문을 앗아가기에 충분했다.
고고하게 흐르는 나무의 마력에 처음 보는 엘레나와 마릴린이 넋을 놨다. 다른 이들도 나무에 경이로운 시선을 던졌다.
짝!
그들의 의식을 일깨운 건 지크의 박수소리였다.
“저게 무지막지하게 흥미를 일으키는 건 인정한다만, 지금은 다른 걸 먼저 할 때다.”
그리고 지크는 일행들에게 피라미드 위의 수색 범위를 정해주며 수상한 걸 찾으라 명령했다.
일행은 지크의 말을 듣고 피라미드 꼭대기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다만 스녹만은 피라미드에 손을 대고 노웸과 같이 피라미드의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하려 노력했다.
‘여기도 없나.’
얼마 정도 찾아봤지만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뭐 좀 찾은 거 있냐?”
지크가 스녹에게 물었다. 스녹이 조금 난감해했다.
“피라미드 전체에 퍼진 마력 때문에 세세하게 살펴보기가 힘듭니다.”
쿠우….
노웸도 힘없이 울었다. 지크는 볼을 긁적였다.
‘이거 어쩌면 조금 더 골치 아플 수도 있겠는걸.’
그나마 윈두르가 마법 상자 속에서 잠잠하게 있는 것이 위안이었다.
피라미드 꼭대기를 모두 살펴본 일행이 모여들었다. 그들도 얻은 것은 없었다. 이제는 피라미드 벽면을 살펴볼 수밖에 없다.
“흩어지자. 이제 와서 나무가 발작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
지크의 말에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고 각자 피라미드의 벽면을 타고 내려갔다.
커다란 바위를 반듯하게 가공해 쌓은 피라미드는 그 한 층 한 층이 사람 키의 두 배만 했다.
자칫하다가 굴러 떨어지기라도 하면 보통 사람은 그대로 목숨을 잃을 터였다.
턱!
한 층 아래로 뛰어내린 지크는 그대로 천천히 벽면을 보고 걷기 시작했다. 조금 의심스러운 곳이 보이면 칼끝으로 툭툭 치기도 했다.
‘윈두르를 꺼내볼까?’
그 정체 모를 새침데기 검이라면 또 비밀 통로 같은 것을 알려줄지도 모른다. 문제는 빼는 즉시 나무와 같이 발광을 할지도 모른다는 점.
‘그래도 입구를 찾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지.’
일단 윈두르는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시간이 흐르고 지크 일행의 탐색 범위도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저 옆에서 라일라가 허공에 둥둥 뜬 채 피라미드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허공에서 넓은 시야를 확보한 채 피라미도 전체를 훑고 있었다. 그에 비해 지크는 꼼꼼하게 벽을 살폈다.
그렇게 상당한 시간을 찾고 난 후였다.
“응?”
지크는 어떤 벽 앞에서 멈춰 섰다. 벽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틈이다!’
틈은 돌을 길게 가로질러 나있었다. 마치 진흙에 날카로운 칼을 들이댄 것처럼 깔끔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런 생김새의 틈을 본 적이 있다. 이 무덤을 들어올 때 윈두르를 꽂아 넣었던 열쇠구멍이 이렇게 생기지 않았던가.
지크는 소리를 크게 질러 일행을 불러 모았다.
“무슨 일이야?”
가까운 곳에서 허공을 떠다니며 입구를 찾던 라일라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지크는 아무 말 없이 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틈이네?”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는 것 같지?”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인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라일라는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아마도 그럴 거야.”
“윈두르를 꺼낼까?”
지크는 품속에서 마법 상자를 꺼냈다. 라일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무까지와의 거리를 한번 재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난 찬성이야. 나무와 어느 정도 거리도 있고, 무엇보다 지금 이것밖에 단서가 없으니까.”
라일라가 찬성하자 지크는 바로 윈두르를 꺼내 들었다.
“…….”
“…….”
두 사람이 긴장한 눈으로 윈두르의 반응을 본다. 다행히 윈두르는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두 사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오자마자 지랄발광을 해대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히 조용하군.”
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주인이라니.
“젠장, 나도 이제 마왕 칭호는 진짜 갖다 버려야겠어.”
“잘 생각했어. 그딴 칭호 뭐가 좋다고 연연하니?”
지크는 입을 삐죽이 내밀고는 틈에 윈두르를 밀어 넣었다.
철컥!
안쪽에서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지크와 라일라가 서로를 마주봤다.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다시 틈으로 시선을 향했다.
지크가 윈두르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그그그긍!
바위의 틈이 한 바퀴 회전했다.
쿠르르릉!
약간의 진동과 함께 벽이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들의 앞으로 통로 하나가 나타났다.
“지크 님! 무슨 일이십니까!”
지크의 부름에 서둘러 달려온 한스가 물었다. 지크는 턱짓으로 눈앞의 통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찾았다, 통로.”
(다음 편에서 계속)